괜히 피식거리게 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비극에서 잠시 멀어지게 하는 희극.
웃음이라는 귀한 가치를 나누는 호쾌한 여자들을 만났다.
우리의 일상을 빛내는 건 결국 웃음이니까.
박 미 선
웃음을 나눠온 날들 1988년에 데뷔해 코미디언으로서 보낸 날들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돌아보면 혼자 튄 적도, 스타처럼 빛난 적도 없다. 대중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야 하니 늘 불안했지만, 가늘고 길게 나아가며 잘 버텨온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마이크 잡고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무대의 변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나아갈 길은 끝내 생기더라. 한때 코미디 프로그램 폐지로 고민이 많았지만, 유튜브를 비롯한 플랫폼 덕분에 코미디언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되었다.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눈에 띄는 새로운 얼굴들도 발견할 수 있다. 코미디언들이 지금 펼쳐진 무대를 최대한 누렸으면 한다.
여성 코미디언의 활약 여성 코미디언의 환경이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코미디언의 성별을 떠나 그 사람 자체를 보는 시기가 왔고, 앞으로 더 좋은 시대가 올 거라고 본다. 이 과정을 스스로 개척해온 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계속 배우며 코미디언은 모두 프로이며 서로 경쟁자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후배들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나도 현역으로서 그들의 텐션과 센스를 몰래몰래 배운다.(웃음) 친구들이랑 요새 유행하는 콘텐츠를 촬영하면 즐겁다. 내가 젊게 사는 거겠지. 하하!
숨 같은 웃음 내 콘텐츠를 보면 숨 쉬듯이 자연스레 웃게 된다더라. 사람들을 웃기려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데뷔 초반부터 ‘내 유머가 재미있나?’ 하는 의문을 자주 품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꼭 웃겨야겠다’ 싶은 부담이 없다. 오늘처럼 편하게 말하고 행동할 때 누군가 나로 인해 웃는 순간들이 생긴다. 여태 일하는 걸 보니 내 유머가 꽤 괜찮은가 보다.(웃음) 사람들이 원한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활동해야겠다.
웃음 복사하기 타인에게 웃음을 전하는 내게도 웃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 아이들과 나고야의 지브리 파크에 다녀왔는데 참 즐겁더라. 여행 외에도 로맨스 드라마, 맛있는 음식, 잘생긴 아이돌 등이 나를 웃게 한다.(웃음) 나 또한 많은 이들이 웃는 데서 웃음을 찾는 거다. 어떤 방식으로 얻든 모든 웃음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그래서 웃음의 질이 아닌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웃음은 전파력이 강하다. 재미있게 본 콘텐츠가 있다면 서로 공유하며 ‘웃음 복사’를 해보길 바란다.
보다 행복한 세상 나이가 들수록, 말랑말랑했던 마음이 딱딱해질수록 ‘내게 웃음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것 같다. 더 많이 웃으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떻게 해야 즐거운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궁극에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거겠지. 행복하게 살자는 게 단순한 말이지만 실현하기는 어렵지 않나. 그럼에도 본인의 웃음에 집중하다 보면 이 세상이 좀 더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코미디언의 기쁨 나는 직업상 해야 하는 일을 30여 년간 해왔을 뿐인데, 내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치유가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웃음을 나누는 일의 가치를 실감한다. 여성 코미디언들을 조명하는 이번 기획에 함께한 것도 이 일의 일환일 것이다. 단 몇 명이라도 웃음을 나누자는 내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지금 이 순간의 보람이 커지지 않을까.(웃음)
이 은 지
나의 터닝 포인트 <피식대학>의 ‘05학번이즈백’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길은지’를 만났을 때?(웃음) 유튜브 같은 다양한 채널이 생긴 것이 내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공개 코미디에는 우리 정서에 맞게 만들어진 웃음의 체계나 순서 같은 것이 있는데, 그에 반해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빠르고 거침없이 보여줄 수 있으니까.
코미디의 기본 공감. 난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관찰력과 기억력이 좋아서 공감할 만한 요소를 잘 찾아낸다. 한편으로 그건 타인에게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관심이 없으면 들여다보기도 귀찮은 법이니까.(웃음)
웃음이 시작되는 곳 아침에 눈뜨면 시작이긴 한데.(웃음)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매 순간이 시발점이다. 예를 들어 <코미디빅리그>에 ‘사발면’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내가 (강)재준 선배를 꼬시는 척하면 아내인 (이)은형 선배가 ‘이런 사발면이~’라고 말하는 흐름인데, 이것도 리허설 하면서 장난치다가 나온 거다. 각 잡고 회의할 때뿐 아니라, 평상시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웃으면 ‘이걸 코드로 짜볼까?’ 생각한다.
서로 다른 에너지가 모일 때 코미디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무언가를 던지면 받쳐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 회의를 함께 할 동료도, 소품을 준비하거나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예능 프로를 촬영할 때도 누군가 지쳐 있으면 힘내라고 과하게 웃어주기도 한다. 결국 웃음은 서로 다른 에너지의 합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웃음이 지닌 힘 누군가와 가장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 이야기를 나누다 같은 부분에서 웃으면 그게 곧 공감의 증거가 되고, 거기서부터 교류가 시작되니까. 유쾌한 코미디 현장을 겪고 나면 그 사람과 놀랍도록 가까워짐을 느낀다. 이 장르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주는 힘이 있는 듯하다.
코미디언의 기쁨과 슬픔 내가 한 말에 빵빵 웃어주면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신감을 얻는달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행복해진다.(웃음) 물론 어려운 순간도 많다. 작년에 사랑하는 후배 코미디언 (이)지수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그때 정말 힘들었다. 차에서 펑펑 울고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서 힘차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싶더라. 하지만 슬픈 일이 있어도 미소를 머금고 웃음을 전하는 것이 코미디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나아가기 위해 웃음을 나누다 보면 감정을 소모하게 되는 순간도 많다. 그래서 쉴 때는 계획적으로 철저하게 쉰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고 타인을 관찰하는 데 사용하던 웃음을 위한 에너지를 모조리 나에게 주는 거다. 아르기닌, 루테인, 오메가-3 역시 열심히 챙겨 먹고.(웃음)
여성 코미디언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가비 씨가 댄스 배틀 중에 바지를 못 벗었을 때 아이키 씨가 상대편인 데도 불구하고 대신 벗겨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걸 보고 댄서와 코미디언의 결이 비슷하다 느꼈다. 여성 코미디언들은 의리가 있다.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순간이 있어도 ‘나 혼자 웃겨야지’ 하기보다는 함께 더 큰 웃음을 만들려고 한다. 뭐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어떤 안 좋은 상황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나눠 준다. 세상에서 제일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쿨하며 열정적인 사람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