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 힘을 내보는 거예요. ‘무조건 간다’는 생각만 품은 채 끝내 터치 패드에 손이 닿을 때까지요.”
꾸준히 한계를 넘어서며, 스스로 즐겁게 물결을 가르는 수영 국가대표 김우민의 빛나는 찰나.
파리 올림픽에서 주종목인 자유형 400m의 동메달을 획득한 수영 국가대표 김우민. 한국 수영에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안긴 그는 조금씩, 차근차근 새로운 성과를 이뤄왔다. 계영 영자로 출전한 도쿄 올림픽 이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얻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 2024 도하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포디엄 정상, 3분 42초 42라는 주종목의 개인 최고 기록까지. 놀라운 기세로 성장해온 그에게 파리 올림픽 메달은 일찍이 기대할 만한 성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실은 김우민 선수가 최선 이상의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건너왔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부담을 넘어서는 즐거움으로, 힘듦을 이겨내는 간절함으로 ‘사지를 불태운’ 레이스를 마친 그는 지금껏 그래왔듯 더 멀리 있는 목표들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중이다.
손목 안쪽에 오륜기 타투가 있네요.
3년 전 도쿄 올림픽에 다녀온 직후에 했어요. 평소 눈에 잘 띄진 않는데 가끔씩 보이더라고요. 수영할 때 물속에서도 볼 수 있어요.(웃음)
도쿄에 이어 파리 올림픽에도 참가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는데, 두 번째 올림픽을 앞둔 마음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잘하고 싶은 마음 반, 즐기고 싶은 마음 반이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해 나가는 만큼 자부심도 느꼈고요. 다만 지나치게 부담을 갖기보다는 그 떨림을 저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쓰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잖아요. 설렘과 기대를 안고 파리로 향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좋은 성과를 냈죠. 올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후 개인 최고 기록도 경신했어요.
기록을 단축해가며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웃음) 더 신나게 운동할 수 있었어요.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철저히 운동 중심의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전 운동선수니까 운동 중심의 삶이 좋아요. 오전과 오후에 수영을 했고,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 등도 병행했어요. 운동만큼 휴식도 중요하니 수면에도 신경 썼고요. 잠잘 때만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어요. 밤에 유튜브 보면서 소확행 하다가 졸리면 잤습니다.(웃음) 다만 일어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어요. 원래 새벽 운동을 했는데,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땐 시차를 고려해 오전 7~8시에 기상했어요. 눈뜨자마자 비타민 주워 먹고, 밥 먹고, ‘미라클 모닝’에 적응했으니 커피도 한잔 내려 마시고. 그러다 훈련하러 갔습니다.
국가대표 훈련인 만큼 고된 과정을 거쳤을 듯한데 어땠어요?
힘들었죠.(웃음) 말하자면 끝도 없을 거예요. 몸의 내성을 기르기 위해 격일로 한 ‘젖산 훈련’이 특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힘들어하면 더 늘어지기 마련이잖아요. 훈련 이후 더 발전할 저를 생각하면서 매번 기분 좋게 임하려고 했습니다. 이번 화보 촬영 날에도 오전 운동을 열심히 한 것 같아 뿌듯했어요.
‘훈전드(훈련 레전드)’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들었습니다.(웃음)
훈련할 때 다른 선수들보다 빨리, 오래 수영할 수 있어서 생긴 별명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식어이기도 해요. 그 단어가 안 들리면 좀 서운하더라고요.(웃음)
김우민 선수 특유의 영법이 속도를 더 높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전 경기 영상을 살펴보니 ‘유려하게 수영한다’라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부드러운 수영을 선호해요. 이런 영법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체력을 더 쏟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부드러움이 강함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수영 선수로서 지닌 강점이 아닐까 싶어요.
스포츠는 신체 능력뿐 아니라 정신력도 중요한 영역이잖아요. 심리적 측면에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밝게 튀는 듯한, 긍정적인 면을 지녔다는 점이요. 제가 (MBTI상) 완전 ENFP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쾌활하고, 걱정도 딱히 없으니 타고난 것 같기도 해요. 이런 성향이 큰 경기를 치를 때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훈련할 때도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인데, 동료 선수들이 지쳐 보이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기운을 북돋우곤 해요.
지금이 한국 수영의 황금 세대라고 하잖아요. 동료 선수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아왔을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시합장에 가면 자주 마주치던 선수들인데, 이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사이가 됐어요. 수영은 개인 종목이지만 절대 혼자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선수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각자 성실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도 받아야 실력이 느는 것 같거든요. 동료들이 저를 충전해주는 존재라고 느껴요. 평소에도 같이 수다 떨고, 게임하고, 밖에서 뛰어놀면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베프’죠. 함께 만반의 준비를 한 올림픽이 끝났으니 다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어요. 전 ‘양꼬치 러버’지만 그때만큼은 스테이크 썰어야겠어요.(웃음)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이 대회만을 위해 3~4년의 시간을 오롯이 쓰는 거잖아요. 그 열정이 참 귀하게 느껴져요.
지나고 나면 그것만큼 값진 게 없는 것 같아요. 하나의 목표에 매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았고,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열심히 한 훈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무대에 설 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큰 무대에 나서는 선수로서 느끼는 수영의 매력이 있다면요?
기록을 단축했을 때의 짜릿함이 정말 커요. 도파민에 중독된 느낌이랄까요.(웃음) 그걸 가능케 하는 건 온전히 제게 달린 일이겠죠. 수영은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후반 경기력에 신경을 많이 기울여왔어요. 장거리든, 단거리든 후반부가 되면 몸이 굳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그럼에도 몸을 쉼 없이 움직여야 하고, 마음도 굳게 먹어야 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 힘을 내보는 거예요. ‘무조건 간다’는 생각만 품은 채 끝내 터치 패드에 손이 닿는 순간까지요.
꾸준히 하면 반드시 된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다만 꾸준함을 실천할 때 진짜 힘들어야 해요.
원하는 걸 계속 상기해야 하고요.
그래야만 비로소 꿈같던 장면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파리 올림픽에서 김우민 선수가 자유형 400m 결승에 진출해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임한 시합이고, 너무도 원하던 메달이었어요. 꿈같은 순간이었죠. 해냈다는 벅찬 감정과 함께 지나온 과정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시간들이 저를 한층 성장시켜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영 선수로서 저 멀리 있는 목표들을 바라 보며 나아갈 때 이번 올림픽 여정을 돌아보면 뿌듯할 것 같아요. 집에 있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메달들과 도하 세계수영선 수권대회 금메달 사이에 이번 동메달을 두려고요.(웃음) 우선은 기쁜 마음으로 지금을 즐기려고 합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다시 대회를 준비할 때 그 마음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우민 선수의 레이스를 많은 관중이 함께 응원했어요. 경기를 뛰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되는 그 순간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렇죠. 아름답죠. 선수로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수많은 사람 앞에서 시합을 치르는 걸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듯해요. 경기장에 펼쳐진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경험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이번 대회가 저한테는 첫 유관중 올림픽이었거든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어본 웅장한 광경이었어요. 그 현장을 생생하게 눈과 마음에 담으려 했죠. 모두가 응원하고 환호하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고, 큰 힘이 됐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큰 무대에서 더 자신 있게 수영할 수 있을것 같아요.
이번 올림픽을 통해 본인을 한국 수영 기대주로 다시 한번 각인한 것 같아요. 그런데 김우민 선수의 기량은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선수 생활 초반을 돌이켜보면 결승에 오른 적이 거의 없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조금씩, 차근차근 성장해온 덕분에 실력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할수록 잘하게 되니 성인이 된 이후로 수영의 재미를 훨씬 크게 느껴요.
꾸준함이 지금의 김우민 선수를 만들어냈군요.
꾸준히 하면 반드시 된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다만 꾸준함을 실천할 때 진짜 힘들어야 해요. 원하는 걸 계속 상기해야 하고요. 그래야만 비로소 꿈같던 장면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지향적인 사람일 거라 짐작되는 말이에요.
맞아요. 그런데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편은 아니에요. 목표가 뚜렷하다면, 계획이 없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행동할 테니까요. 예전에 게임할 때 원하는 티어가 있었던 게 떠오르네요. 기어이 달았습니다.(웃음)
또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것 같네요. 일상에서 김우민 선수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나요?
시간을 촘촘하게 잘 쓰는 편이에요. 0.01초 단위로 승부가 갈리는 기록경기 선수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촘촘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요즘 즐기는 것이 있다면요?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다니는 걸 즐깁니다. 하루에 서너 곳씩 갈 때도 있어요. 드립 커피 위주로 마시는데, 요즘은 산미 있는 게 좋더라고요.(웃음) 입안에서 커피의 개성이 마구 날뛰는 게 느껴져요.
앞으로 SNS에서 근황을 자주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win___min’이죠. 승리를 뜻하는 ‘윈’과 김우민의 ‘민’을 활용해 찰떡같이 어울리는 아이디를 지었구나 싶었어요.
4~5년 전쯤 친구가 새로 지어줬어요. 승리하는 걸 좋아하니 마음에 들더라고요. 옆 레인 선수들한테 지고 싶지 않고, 기록에도 욕심이 나요. 아이디를 바꾸고 나서 더 잘된 것 같기도 해요.(웃음)
‘이름 따라 간다’라는 말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웃음) 이제 새로운 목표를 그려나갈 시기예요. 김우민 선수의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는 각각 무엇인지 궁금해요.
단기 목표는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는 거예요. 국제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인터뷰할 때나 다른 선수들과 소통할 때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거든요. 장기적으로는 기복 없이 기록을 계속 단축해가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수영의 어떤 점을 가장 즐기고 좋아해요?
물이랑 물아일체가 되는 순간을 좋아해요. 물에 들어가면 일단 차갑긴 한데요.(웃음) 아무 생각 없이 수영에만 몰두하고 나면, 개운하고 제가 건강해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몸뿐 아니라 마음도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수영이 저를 더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시합에 나가는 게 재미있고, 성과도 잘 나오고 있고, 주변 환경도 좋으니 앞으로도 쭉 수영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곁에 두고 싶기 마련이잖아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김우민 선수의 삶에 수영이 항상 함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것 같아요. 잠시 쉬고 싶을 땐 많았지만, 수영과 제 사이가 아예 멀어졌다고 느낀 적은 아직 없거든요. 며칠만 물에 안 들어가도 몸이 근질근질해요. 휴가를 떠났을 때마저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아, 수영하고 싶다!’ 그럼 그때부터 다시 훈련 시작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