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나대로 살면, 그리고 내가 좀 더 아름다운 인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가장 순수한 내가 되어 매 순간 치열하게 나아가는 것. 배우 이채민의 지금.

체크 시스루 셔츠, 슬리브리스 톱, 팬츠 모두 Hermès
데님 재킷과 팬츠 모두 Y/Project by G.street 494 Homme, 이어 커프 Tom Wood.

강한 동기부여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잖아요. 한예종 입시를 준비할 때 1분 30초짜리 현대무용 동작을 수개월간 연습했다고 들었는데, 꿈을 키우던 시절부터 돋보이던 행동력이 지금의 이채민 배우를 만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지나온 작품들을 찾아보기도 하나요?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알고리즘 때문에 보게 돼요.(웃음) 작품이 마무리되면 ‘잘 놀다 갑니다~’ 하면서 곧잘 보내주는 편인데, ‘이때 더 잘할 걸’ 하는 후회는 남더라고요. 음… 제 꿈이 그거예요. 대선배님들도 본인의 연기를 보면 만족이 안 된다고 하시잖아요. 언젠가 작품 속 제 모습을 보면서 ‘잘하긴 했네’ 싶은 때가 한 번쯤은 찾아온다면 좋겠어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유일한 순간일지라도요.

그 순간이 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그때가 오면… 오히려 이 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겠네요.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게 연기가 재미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연기를 잘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고, 미치도록 잘해보고도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다른 일은 꾸준히 하다 보면 소질이 생기는 듯한데 말이죠.

“무엇이든지 못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라고 말한 게 떠올라요. 그 덕분인지 그간의 활동을 살펴보니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매사에 성실하려 하고, 완벽주의 기질도 있어요. 성향상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해요. 연기를 하고, 음악방송 MC를 맡거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세상엔 존경할 만한 사람이 참 많구나.’ 각자의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요. 저 또한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고요. 제 활동을 통해 누군가의 일상을 잠시나마 환기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멋진 일이죠.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요즘 들어 타인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라고 밝힌 적도 있어요. 이채민 배우는 사람을 대할 때 무엇을 제일 중시하나요?

캐릭터를 분석할 때든, 일상에서 소통할 때든 ‘역지사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질 테고, 인생이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을 지니기 마련이니 역지사지를 실천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 틈틈이 상기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제 그릇이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 그릇을 키워가는 와중에 계속 지켜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담백함이요. 제가 생각하는 담백함이란 솔직한 태도에서 비롯돼요. 그것만큼 단단한 건 없다고 봐요. 사람이 거짓될수록 그의 내면은 문드러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 자신을 최대한 꾸미지 않으려고 해요. 꾸미다 보면 점점 더 꾸미게 되고, 결국 나를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애초에 나대로 살면, 그리고 내가 좀 더 아름다운 인간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생각을 품고 스스로를 가꿔가려고요.

스웨이드 레더 셋업 Bottega Veneta, 네크리스 Bvlgari. 레더 재킷 AMIRI,
슬리브리스 톱 Off-White™, 데님 쇼츠 Bally.

이름에 채색 채(彩), 옥돌 민(珉) 자를 쓴다고 들었어요. 만약 본인이 옥돌이라면 어떤 색을 칠하고 싶은지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본연의 모습으로 남겨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이미 채색된 색을 지워내는 건 어렵지만, 아무것도 입히지 않았을 때 색을 더하는 건 쉽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 어떤 색을 칠해두기보다 순수한 원석 상태로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고 싶어요. 어떤 작품에든 잘 스며들 수 있도록요. 그게 제가 배우로서 지닌 무기가 되기를 바라요.

<하이라키>를 연출한 배현진 감독님이 ‘존재 자체로서 빛을 내는’ 배우들과 함께했다고 했는데, 진가를 알아보신 것 같네요.(웃음) 순수에 가까운 상태로 나아가며, 앞으로 어떤 서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나요?

눈물 나는 로맨스를 좋아해요. 영화 <스타 이즈 본> 보셨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 집에서 처음 봤는데, 베개가 다 젖을 정도로 펑펑 울었어요. 영화에 나온 음악을 피아노로 쳐보면서 또 울컥하고. 해마다 챙겨 보는 데도 마음이 무뎌지기는커녕 매번 아려요. 특히 마지막에 ‘잭슨’(브래들리 쿠퍼)이 차에서 내려 창고로 들어가버린 뒤 무대에 오른 ‘앨리’(레이디 가가)가 ‘I’ll Never Love Again’을 부를 때, 과거 장면이 교차하잖아요. 잭슨이 앨리를 위해 만든 그 곡을 피아노 연주와 함께 들려주다가 키스를 하는데… ‘이건 진짜 명장면이다!’ 싶더라고요. 지금도 머릿속에 그 장면이 재생돼요. 하… 제가 너무 심취했네요.(웃음)

인상 깊게 본 영화의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죠. 언젠가 애달픈 사랑을 한껏 표현하는 이채민 배우를 볼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럼 대본 읽을 때부터 눈물 쏟을지도 몰라요.(웃음) 기대된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본인을 ‘여름’에 비유했어요. 지금의 이채민 배우를 계절에 빗댄다면, 여전히 여름일까요?

네. 제가 몸에 열이 많아서 더운 날 촬영하면 되게 힘들어해요. 그런데 신체뿐 아니라 내면도 뜨겁거든요. 열정이 넘치고 승부욕도 강해요. 여름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전 여름형 인간인가 봐요. 곧 차기작 촬영이 시작되니 다시 마음을 다할 거예요. 이번에도 땀을 흠뻑 흘리겠지만, 더운 줄도 모를 만큼 치열하게 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