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곧 내면의 평화인 것 같아요.”
내 안에서 모두에게로 확장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뮤지션 쏠(SOLE)의 노래.

드레스 Acne Studios.
드레스 Acne Studios.

오랜만에 다시 만났네요! 

그러니까요! 2022년 가을에 처음 만났었죠?

맞아요. 이번에는 새 EP <Time Machine> 발매를 맞아 함께했어요. 

제가 어릴 때 좋아하던 무드의 음악을 직접 작업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앨범이에요. 곡을 하나하나 모아보니 마리끌레르와 함께한 지난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음악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갈 수 없는 곳까지 저를 데려다줘요. 음악을 통해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거죠.” 그래서 이번 앨범의 제목을 ‘타임머신’으로 지었어요.

2년 전의 대화를 흘려보내지 않고 의미 있게 써준 거네요.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에요.(웃음) 

저도 감사하죠.(웃음) 생각을 말로 정리해 밝힐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날 이후 저도 몰래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난 예전부터 여행하는 듯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를 씨앗으로 삼아 2000년대 국내외 바이브를 녹여낸 앨범을 만들어갔어요. 

당시 바이브를 담아내기 위해 사운드적으로 무엇에 중점을 뒀어요?

각 트랙을 처음 들었을 때, 제가 자주 듣고 따라 부르던 음악이 바로 떠올라야 했어요. 이를 테면 그때 제 MP3를 채운 데스티니 차일드, 비욘세, 보아, 거미 등의 곡들이요. ‘아, 이거다!’ 싶어야 비로소 작업을 시작했죠. 2000년대 음악에 자주 사용하던 DJ 스크래치와 신시사이저 사운드 등을 곳곳에 넣었고, 밴드 친구들과 놀듯이 잼(jam)을 하다가 나온 라인을 쓰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예전 팝이나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여섯 곡이 탄생했어요.

레트로 무드의 사운드를 듣다 보니 진짜 2000년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당시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2000년대 음악의 감성은 독보적인 것 같아요. 가사에도 직접적인 표현이 많고요. 이번 앨범의 수록곡은 대부분 멜로디가 나온 이후에 가사를 더했는데, 이때 제 감정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어요. ‘난 지금 누군가와 헤어졌다’ 하는 상상도 해보면서요.(웃음)

그 과정을 거쳐 어떤 내용의 가사가 완성되었어요? 

원래는 보편적인 사랑을 다루려고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제가 사람들한테 전하고 싶은 말들이 가사에 담겼어요. 어느 순간부터 가사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제가 추구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그럼에도 LOVE’를 타이틀곡으로 정한 것도 제 생각을 진솔하게 써냈기 때문이에요.

팬츠 Kenzo,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과 팬츠 모두 pushBUTTON, 슈즈 Ash.

‘그럼에도 LOVE’는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은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사랑의 종류는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내 안에서 비롯하는 사랑에 초점을 맞춘 곡이라고 느꼈어요.

맞아요. 살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고, 주위의 압박을 참아야 할 때도 있잖아요. 이런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미워 하지 말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 하는 거죠. 5번 트랙 ‘1minute’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해요. 우리는 타인의 사랑을 원하는데,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제일 아껴줘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이를 쉽게 잊는 듯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을 담았어요. 

이번 앨범뿐 아니라 전작을 살펴봐도 사랑에 관한 곡이 많아요. 왜 이토록 사랑을 다루고 싶은지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오,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왜 난 끝내 사랑, 사랑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러다 영화 몇 편을 짧은 기간에 몰아서 본 적이 있어요. <밥 말리: 원 러브> <바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이었는데, 장르가 다른데도 전부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며 마무리되더라고요. 요즘 명상에 관심이 생겨 찾아서 본 철학자들의 영상도 마찬가지였고요. 인간이 다양한 영역에서,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랑을 말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어요. 사랑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능인 건지, 아직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새롭게 한 생각도 있나요?

사랑은 곧 내면의 평화인 것 같아요. 나부터 사랑해야 남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이어지다 보면 모두를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사랑 때문에 상처받거나 짜증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LOVE!(웃음) 

‘그럼에도 LOVE’를 비롯한 <Time Machine> 수록곡 등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었던 콘서트가 앨범 발매 다음 날 열렸죠. 첫 단독 콘서트였어요.

콘서트를 앞두니 너무 떨리더라고요. 사람들이 안 오면 어떡하나 싶어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요.(웃음) 그런데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티켓이 빠르게 매진되었어요. 꿈인가 생시인가 했죠. 앨범을 완성할 때마다 ‘해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외의 영역에서 뿌듯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라 새로웠어요. 제 음악을 들으러 오신 분들이 음악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했어요. 밴드와 합을 맞추면서 편곡도 살짝 해봤고, 무엇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데 신경을 많이 기울였어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관객과 직접 만나 본인의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이 무엇으로 채워지기를 바랐나요? 

따뜻함이요. 관객이 공연장에서 받은 온기로 저마다의 삶을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이번 콘서트의 목표이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어떤 가수를 좋아할 때, 그의 음악뿐 아니라 공연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나 인터뷰 등에 드러난 삶의 태도에서도 큰 영향을 받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당연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톱 Songe Creux, 네크리스 RURU.

음악은 누군가에게 삶의 기점이 될 만큼 큰 영향력을 지니기도 하죠. 본인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형태로 존재했으면 하나요?

바람 같으면 좋겠어요. 바람은 곁을 지나가기 전에 잠시 머무르기도 하고, 스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꿔주잖아요. 이처럼 음악을 통해 누군가에게 힘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음악으로 응원을 건네는 게 제 사명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게 제 인생의 숙제겠죠.

뮤지션으로서의 사명감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할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전 분명 음악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음악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제가 어릴 때 두 분이 노래하며 즐거워하시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언제부터 음악이 좋아졌다’ 하는 명확한 계기가 없어요. 아마 처음부터 음악을 사랑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일을 하는 게 운명 같기도 해요. 노래하거나 작업할 때 스스로 제일 자유롭다고 느껴요. 음악 안에서는 마음껏 사운드를 느낄 수 있고, 아무렇게나 춤 춰도 되고,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순간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이번 앨범을 소개하며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그때로’라는 문구를 적었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쏠이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던 ‘그때’는 과거만을 가리키진 않는 것 같아요. 

맞아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순수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슬프기도 한데, 순수를 지키는 건 결국 마음에 달린 일 같거든요. 나에 대해 잘 알고, 내 마음을 굳게 다진다면 언제든 순수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일 수도 있겠죠.

음악을 향한 순수를 지켜가는 쏠의 내일도 기대돼요. 타임머신이 실존한다면, 미래로 가서 쏠의 행보를 미리 보고 싶기도 해요.(웃음)

저도요.(웃음) 과거를 그리워하는 편은 아니라, 만약 타임머신을 탄 저한테 과거와 미래 중 고르라고 하면 무조건 후자를 택할 거예요. 먼 훗날의 제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요.

지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죠. “할머니가 되어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 모습을 직접 마주하면 어떨 것 같아요?

너무 대견할 것 같은데요?(웃음) 꾸준히 음악 하면서 현재를 잘 살아냈다는 뜻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