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게 충돌하는 신념, 서로 다른 욕망이 뒤얽히며 빚어낸 혼돈.
<지옥> 시즌2의 다섯 배우가 표현한 저마다의 지옥도.
김현주
<지옥> 시즌2를 통해 ‘민혜진’을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민혜진은 시즌1 이후의 8년 동안 큰 변화가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사이의 일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봤다. 고단했겠다 싶더라. 새진리회와 맞서는 단체 ‘소도’의 중심 인물이지만, 본인 의견만 주장할 수는 없었을 테니 집단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지치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았다.
민혜진의 고단함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나?
주로 액션에 녹여내려 했다. 연상호 감독님도 민혜진이 지친 듯한, 눅진한 액션을 하면 좋겠다고 요청하셨다. 매회 등장하는 액션 신을 위해 연습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시즌1과 <정이>를 거친 덕분인지 체력적 부담은 크지 않았다. 민혜진이 간절하고 억척스럽게 싸우는 장면들을 통해 그의 짙어진 감정이 느껴지기를 바란다.
최근 “(시즌2에서) 농도가 좀 더 짙어진 느낌”이라 말한 게 떠오른다.
시즌1에서 고지를 받았지만 부모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이의 영향이 있었을 거다. 민혜진이 홀로 남겨진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 ‘무조건 지킨다’고 다짐했을 것 같더라. 그 아이와의 관계가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인간의 존엄을 중시하고,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는 점이 민혜진의 뚜렷한 성정 중 하나다.
집단 간의 사상적 대립을 그린 작품이기에 연기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었나?
친구나 연인끼리 싸우다 보면 그 목적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지 않나. <지옥>의 집단들도 저마다 신념을 강하게 표현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엇 때문에 대립하는지 잊은 채 단순히 세력 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민혜진은 흔들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왔는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 인물이라는 데 중점을 뒀다.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지옥> 시즌2에 함께하며 인간에 대해 어떤 고찰을 했나?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한데 타고난 본성이 있더라도, 환경에 의해 바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아 악해지기도, 교육이나 사랑을 통해 선해지기도 하니까. 인간의 성향은 후천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 점이 인간이 쉽게 변질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이 “시즌1을 좋아했다면 흥미로운 질문들로 가득 찬 작품이 될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시즌1이 인물들의 신념을 내비치며 주관식 질문을 던졌다면, 시즌2는 몇 개의 보기를 제시하며 생각의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믿음의 힘이 커져 서로 충돌했을 때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불안감을 조성하는지, 신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작품일 거다.
김현주 배우가 생각하는 ‘지옥’이란 무엇인가?
사후 세계만은 아닌 듯하다. 현생에서도 어떤 선택들로 인해 지옥 안에서 살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현실 속 지옥에서 더 외롭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스스로 지옥을 만들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중심으로 삶을 고찰하는 거다.
만약 실제로 고지를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황당하겠지.(웃음) <지옥>에서는 죽어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없는 죄까지 뒤집어씌우지 않나. 나도 내가 죽는 이유를 납득하려 할 것 같다. 그다음엔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듯하다. 고마웠다, 사랑했다 인사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김신록
<지옥>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함께했다.
시즌1의 마지막에 부활한 덕분에 시즌2에도 함께하게 되어 다행이구나 싶다.(웃음) 이번 시즌은 박정자가 시연당한 뒤 8년, 부활한 이후 4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대본을 읽을 때, 지옥에 다녀왔다는 역사를 지닌 박정자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지 않나. 시즌2의 박정자에게 배우로서 새롭게 접근할 수 있겠다 싶어 흥미로웠다.
부활 전후의 박정자가 어떤 점에서 다르게 느껴졌나?
모성과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품고 시연을 감당한 시즌1의 박정자가 수동형 안에서 적극성과 의지력을 지닌 인물이었다면, 시즌2의 박정자는 훨씬 복잡한 위치에 놓여 있다. 사회의 시스템에서 비켜나 있지만,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부활자’ 박정자가 수동적임에도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느꼈다. 박정자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그 힘이 일렁이게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시즌2의 박정자를 분석하며 어떤 고민을 했나?
박정자가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기보다 지옥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조각나고 해체된 채 작동한다고 느꼈다. 이러한 그를 ‘박정자’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건 도대체 무엇일지 자문하게 되더라. 그가 붕괴된 상태로 세계와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촬영에 임했다.
박정자를 표현하며 배우로서 무엇을 얻었나?
박정자는 대본 구조상 ‘이 시점에서는 이런 행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기능적 몫을 따르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도 전형적인 캐릭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가 특별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번 현장에서 연기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작중 중요한 장면을 촬영할 때, 사전에 준비한 것과 너무나 다른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 내 해석과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이 혼재된 상황에서 연기했는데, 두 테이크 만에 오케이가 났다. 당시엔 확신이 없었지만, 완성된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그 순간이 진실에 훨씬 근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순간들을 앞으로 더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만약 실제로 <지옥>의 세계관 안에 들어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나?
무정부주의자가 되려고 할 것 같다. 사회 안에서는 사상이나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특정 시스템에 동조하거나 편입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시도를 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지옥>을 비롯한 디스토피아적 이야기가 지닌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디스토피아를 단순히 작품의 소재로서 소비하지 않고 그 세계가 지닌 의미를 들여다보려 하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디스토피아적 이야기에도 삶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 담길 수 있다고 본다.
김신록 배우가 생각하는 ‘지옥’이란 무엇인가?
지옥은 장소이기보다 상징적인 개념이라고 본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하는 것을 압축해낸 엑기스, 그게 결국 각자의 지옥인 것 같다. 내 지옥은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반대로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라는 대안적 질문도 던져볼 수 있을 거다. 그게 저마다의 삶 속에서 지옥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만약 지금 고지를 받는다면 어떤 행동을 할 것 같나?
이 인터뷰를 당장 중단하고 집에 갈 거다. 내게 가장 소중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뭘 할지는 도착해서 생각해봐야겠다. 일단 귀가 조치.(웃음)
김성철
어떤 마음으로 <지옥> 시즌2의 ‘정진수’가 되기로 한 건가? 기대보다 부담이 더 컸으리라 짐작한다.
물론 부담이 있었지만, 그게 정진수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보단 정진수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배우로서 흥미로웠다. <지옥> 첫 시즌을 보면서 정진수는 기존에 저런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경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배우로서 언젠가 나도 저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역할이 내게 온 거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상호 감독은 “김성철 배우만의 정진수가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의 정진수’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했나?
감독님께서 작품을 제안하면서 원작 책을 같이 주셨다. 보는데 최규석, 연상호 작가님이 그려놓은 정진수가 나와 되게 비슷하게 생겼더라.(웃음) 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의 싱크로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정진수와 내가 잘 맞겠다 싶었다. 이야기 측면에서도 시즌2에서 더 깊이 그려지는 정진수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큰 고통과 두려움을 겪고 부활한 정진수를 보다 다층적인 인물로 구현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정진수라는 인물을 표현할 때 가장 집중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그의 눈에 집중했다. ‘너는 날 숭배해’ 이런 유의 에너지를 눈으로 뿜어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정진수는 자신의 행동 하나, 말 하나에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파급력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독님께서 정진수를 두고 비범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셨는데, 그 비범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게 나의 눈으로 잘 드러나길 바랐다.
첫 시즌에 이어 <지옥> 시즌2도 배우 라인업이 화려하다. 이번 시즌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한 명만 언급한다면?
너무 어렵다. 한 명만 꼽을 수가 없다. 일단 김현주 선배님은 <레지던트 이블>의 ‘앨리스’(밀라 요보비치)와 비견될 정도의 멋을 장착했다. 포스터를 본 사람들이 가장 놀란 문근영 배우는 이렇게까지 에너지가 큰 사람이었나 다시 한번 생각할 정도로 놀랍고 파격적이다. 임성재 배우는 함께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많이 느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또 그에 맞춰 무언가를 해주는 배우다. 첫 시즌부터 이어진 양익준 배우와 이레 배우의 캐릭터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진짜 이 세계관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문소리 선배님은 그야말로 사기캐다.(웃음) 나는 ‘이수경’이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문소리 배우의 힘으로 완벽히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 새진리회 ‘김정칠’ 의장을 맡은 이동희 배우를 포함해 <지옥>의 세계관에 속한 모든 배우가 각자 자기만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만약 실제로 <지옥>의 세계관 안에 들어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나?
나는 아마 ‘천세형’(임성재)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어떤 세력에 참가하지는 않고, 그냥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 그런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면 나도 그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새진리회의 교리는 안 믿을 것 같고.(웃음) 그저 이 세상에 닥친 재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옥>의 세계를 경험한 후 남은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각자의 지옥은 존재한다. 그래서 <지옥> 시즌2는 더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임성재
얼마 전 <지옥> 시즌2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오픈 토크를 할 때, 큼지막한 <지옥> 시즌2 포스터가 보였다. 거기에 내 얼굴도 있으니 감사했다.(웃음) 작품, 배우,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어딜 봐도 우리뿐이던 그날의 그림이 참 좋았다.
<지옥> 시즌2에 함께한 계기는 무엇인가?
연상호 감독님이 애니메이션을 선보이실 때부터 팬이었고, 연상호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다. 실제로 뵈니 왠지 친해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정확한 계산하에 연기할 때 작품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배우로서 내가 지닌 무기가 예민함이라고 여겼는데 감독님이 편하게 임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부담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걸 <지옥> 시즌2를 통해 처음으로 느꼈다.
<지옥>의 세계관으로 새롭게 합류하는 마음은 어땠나?
갑작스러운 고지로 인해 인물들의 여러 본성이 드러나는 시즌1의 시원시원한 구성이 흥미로웠고, 시즌2에 ‘천세형’ 역으로 함께하게 되어 좋았다. 그동안 아내나 연인이 있는 역할을 맡은 적이 드문데, 이번 작품에는 천세형의 아내이자 화살촉을 이끄는 ‘햇살반 선생’으로 문근영 배우가 등장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 문근영 배우가 옆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미 스타였던 그를 군중 속에서 바라보던 내가 잘 성장해 부부로 함께 연기하게 되다니.(웃음) 감회가 새롭더라.
로맨스와 스릴러를 오가는 임성재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출연 배우들끼리 ‘재난 멜로’라 부르기도 한다. 천세형은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 애달픔, 궁금증을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유일한 인물이다. 대중과 가장 가까운 감정 상태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서사를 따라가는 게 <지옥> 시즌2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천세형은 부활한 정진수를 가장 먼저 목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큰 활약을 펼칠 거라 기대된다.
부활한 정진수는 꽤 여유로운 상태인데, 천세형으로서 그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웃음) 힌트를 남기자면, 천세형이 중요한 걸 깨닫는다. 이 지점을 눈여겨보기를 바란다. 또 천세형을 비롯한 인물들의 목적이 점점 뚜렷해지는데,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진다. 무언가를 알아내고, 추격하고, 벌하려 하는 이야기가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면만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맹목적 믿음에 빠진 인물들의 면면과 그 심리를 살피다 보면 <지옥> 시즌2가 울퉁불퉁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임성재 배우가 생각하는 ‘지옥’이란 무엇인가?
가끔 현실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지금껏 행복하게 살아왔더라도 언젠가 지옥 같은 순간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 지옥은 소름 끼칠 정도로 큰 사건일 수도, 일상 속 작은 경험일 수도 있을 거다. <지옥>의 인물들처럼, 우리는 스스로 지옥을 만들 요건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 어쩌면 지옥이란 건 삶과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든다. 한데 그렇다고 불안감을 사서 느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맞다. 적어도 현실에선 고지를 받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현실의 좋은 면을 보게 한다는 게 <지옥>의 명확한 미덕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 지옥의 사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어딘가. 만약 그들이 실제로 인간들을 고열로 태워 죽인다면… 어휴, 무서울 것 같다.(웃음)
문소리
참여하기까지 가장 고민이 많았던 배우라고 들었다.
내가 연상호 감독님의 애를 좀 태운 것 같다.(웃음) 합류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보면 강수연 선배가 맺어준 인연이기도 하다. 선배의 영결식이 있던 날 그곳에서 연상호 감독님과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 얘기를 좀 하다가, 언제 한번 술 한잔 하자고 했고. 그 후에 양익준 배우와 셋이 만나게 됐다. 그날 연상호 감독님이 내게 가볍게 <지옥>의 특별 출연을 제안했고, 인연이 닿은 김에 하겠다며 받았는데 이게 참…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전체 세계관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어떻게 표현하나 싶은 고민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런 연유로 계속 고민하다 결국은 ‘말이 되게 뭐 어떻게든 만들어보겠습니다’ 이러면서 수연 선배가 맺어준 인연으로 함께하게 됐다.
연상호 감독은 ‘이수경’(문소리)이라는 인물에 대해 “보여지는 것보다 더 정교한 악당”이라는 표현을 했다.
이수경이라는 이름이 있고 정무수석이라는 직업이 있지만 이건 그냥 타이틀에 불과하고, 실은 이수경은 이 세상의 시스템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사회, 이 조직의 위에서 장악하는 존재. 어떻게 보면 나는 사람을 연기한 게 아니라 어떤 제도나 사회시스템을 연기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관념에 가까운 무언가를 연기해야 하니까. 사람으로 보자면 그저 나쁘기만 한 악당이 어디 있겠나. 알고 보면 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 그러니까 진짜 악당은 사람들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어떤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수경이 빌런이 되는 거다. 사람들을 더 지옥으로 몰아넣는 시스템 그 자체니까.
완성된 작품을 본 후, 내내 품었던 고민이 해소되었나?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될 수도 있는 이수경의 언어들이 잘 이해되게끔 하는 게 나의 몫이라 생각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반응을 보니 ‘그래도 임무를 수행했구나’ 싶었다.(웃음) 내가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았다는 것. 연상호 감독님의 모든 작품 중에 <지옥> 시즌2가 가장 연기의 밸런스와 앙상블이 좋지 않나 싶다. 그 점이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여줄 거라 생각한다.
<지옥> 시즌2의 이야기를 다 보고 난 후 남은 감정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마지막이 좀 슬펐다. 누군가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슬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는 나의 현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런 면에서 <지옥> 시즌2의 세계관을 경험한 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
글쎄, 아이를 안 낳았으면 훨씬 더 혐오주의적인, 아니면 파괴의 정서를 더 많이 받아들이며 살 수도 있었겠다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어떤 운명에 처해 있으니 책임감을 더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 운명으로서는 그래도 더 희망을 갖고 노력하며 살려고 애쓴다. 늘 다음 세대에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로.
만약 실제로 <지옥>의 세계관 안에 들어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나?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깊은 산속에 들어가 무소유의 삶을 살다 떠날 것 같다. 이 전쟁통에서 한 순간이라도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있다 가면 좋을 테니까. <지옥> 속의 사람들처럼 싸우는 건 좀…. 무얼 위해서든 그렇게까지 싸워야 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식구들이랑 밥 한 끼 따뜻하게 해 먹고 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