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누구에게나 자신과 자신의 연기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6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 배우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한 서울독립영화제(Seoul Independent Film Festival, SIFF)의 대표 프로그램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이 어느덧 제7회를 맞이했다. 조윤희&권해효 배우가 이끄는 이 프로젝트엔 지난 6년간 1만8백69명의 배우가 참여했고, 올해는 역대 최대인 4천8백59명이 자신만의 연기를 보내왔다.
서울독립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하며 마리끌레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이후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해가는 5명의 배우 노재원, 오경화, 옥자연, 윤가이, 홍의준을 다시 배우 프로젝트의 이야기 안으로 초대했다. 이들의 연기에 가장 먼저 눈과 귀를 기울인 기획자이자 심사위원, 그리고 응원단인 조윤희, 권해효 배우와 함께.
조윤희 & 권해효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 기획자 겸 심사위원
서울독립영화제(이후 서독제)가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해온 두 분의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권해효 저는 올해로 24회째 한 해도 빠짐없이 개막식 사회를 보는 터라 특별한 어느 한 순간의 기억보다는 그곳에서 마주한 새로운 감독과 배우의 출현의 순간이 머릿속에 스르르 지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또 독립영화제를 이어오면서 그 안에서 예술적 측면 외에 정치적, 사회적 압박으로 부침을 겪은 순간들도 떠오르고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번 50회, 이를 얘기하는 오늘이 가장 기억날 것 같습니다.
조윤희 제가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을 제안했을 때였어요.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한편으론 떨리고 두렵기도 했는데, 김동현 집행위원장이 선뜻 좋다며 받아들여준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2018년 첫 회의 본선을 보던 날도 생각나네요.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 배우들이 모여 새로운 배우의 발견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뜻을 내면 이렇듯 손잡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말씀하셨듯 두 분은 2018년 첫 회를 시작으로 올해 7회까지, 기획자이자 심사위원으로 배우 프로젝트를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마음으로 기획된 프로젝트인가요?
조윤희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배우가 아주 많은데 기댈 데가 없는 거예요. 특히 신인 배우는 프로필 투어라고 해서 영화사마다 프로필을 내는데, 그때마다 ‘내 걸 진짜 볼까? 누가 나를 봐줄까?’ 이런 막연한 불안에 휩싸이기 일쑤예요.
권해효 또 오디션을 본다 하더라도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가 큰 분량을 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기껏해야 지나가는 사람으로 대사 한두 마디 해보는 거죠. 그러니까 오디션에 붙는다 해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가 힘들어요.
조윤희 일단 그 전에 부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저희가 젊을 때만 해도 각 방송사가 해마다 탤런트를 뽑고 했으니, 뭔가 매년 도전할 만한 게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1년에 한 번이라도 이 사람들이 버티고 도전할 만한 관문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권해효 다만 그게 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선별하는 게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연기하는 사람을 지지해주는 역할로요. 성공과 실패 이런 걸 떠나서 ‘당신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라고 같이 응원해주면 사람이 견디는 힘이 훨씬 단단해지잖아요.
그래서 서바이벌이나 오디션이 아니라 ‘독백 페스티벌’이라 이름을 지은 거죠?
조윤희 그렇죠. 우열을 가리는 개념이 아니니까요.
그 축제의 장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어요. 올해 역대 최다 지원자인 4천8백56명을 기록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어떠셨어요? 사실 예심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기쁠 순 없을 듯한데요.(웃음)
조윤희 아, 죽었다. 언제 다 보지, 그랬죠. 하하. 그래도 뭐 하나 허투루 볼 수는 없었어요. 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순간인지를 생각하면 1분짜리 영상 하나하나가 더없이 소중하거든요.
권해효 3주간 꼬박 봤어요. 한 번 보고 1백50명 정도로 추리고, 또 다시 보면서 심사숙고해요.
조윤희 “어쩌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배우가 있을 수도 있어! 다시 봐.”(웃음) 그러면서요.
의견은 잘 맞는 편인가요?
조윤희 대략 잘 맞는 편이에요. 가끔 이런 경우는 있어요. 1회 때 오경화 배우는 제가 픽했는데, 권해효 씨는 ‘글쎄…’인 거예요. 저의 설득으로 올렸는데 결국 본선에서 수상까지 했어요. 그럼 “거봐 내 말이 맞지?” 하는 거죠.(웃음)
권해효 그 반대로 노재원 배우를 볼 땐 제가 좋다고 밀어붙였죠. 조윤희 노재원 배우가 요즘 영화, 드라마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잖아요. 그럼 또 뿌듯해하면서 좀 우쭐해 해요. 하하.
두 분이 심사하는 예심, 그리고 몇 명의 배우와 감독이 함께하는 본선 과정에서 중요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조윤희 어떤 기준으로 통일해 보진 않아요. 각자의 시선으로 보고 난 후에 모여 토론하는 거죠.
권해효 그보다 심사를 할 감독이나 배우들을 초대할 땐 나름대로 조건이 있어요. 올해의 심사위원인 변영주 감독과 조은지 감독 겸 배우, 이종수 배우를 포함해 김선영, 변요한, 이상희, 이정은, 이희준, 조우진 등 그간의 심사위원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시간을 잘 견뎌온 사람들이라는 점이죠. 이들을 내세우며 ‘이들도 20년 견디다가 된 거야. 너희도 견뎌봐’ 하는 거죠, 하하.
작은 도전의 관문을 만들어주려 시작한 프로젝트가 이제는 서울독립영화제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배우와 감독은 물론이고 관객도 주목하는, 이름 그대로 축제의 장이 되었어요.
조윤희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기까진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저 이 페스티벌도, 참여하는 배우들도 잘되길 바랄 뿐이었죠. 그런데 본선에 올랐던 배우들을 작품에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잦아지더라고요. 감독들도 새로운 얼굴을 찾을 때 활용한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권해효 페스티벌에서 중요한 상 중 하나가 ‘디렉터스 초이스’인데, 서독제에 참여한 감독들이 배우의 영상을 보고 직접 뽑는 상이에요. 이 과정에서 접점이 생기는 거죠. 감독들이 이후에 자신의 작업을 하게 될 때 먼저 떠올리고, 실제로 그때의 만남으로 같이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로선 기분 좋은 일이죠.
참여했던 배우들과 영화 현장에서 만나는 일도 많았다고요. 권해효 배우는 오늘 함께한 배우들과 대부분 작품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어요.
권해효 맞아요. 홍의준 배우와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옥자연 배우와 <슈룹>에서 만났고, 윤가이 배우, 오경화 배우는 지금 각각 다른 작품의 현장에서 함께작업하고 있어요. 노재원 배우와도 함께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고요. 그렇게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무척 반가워요. 다들 열심히 잘하고 있구나 싶고, 한 거 없이 괜스레 뿌듯한 마음도 들고요, 하하.
문득 든 생각인데, 만약 두 분이 배우 프로젝트에 지원자로 참여했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것 같나요?
조윤희 예심에서 떨어질 것 같아요, 하하.
권해효 스읍.
조윤희 본선에 갈 것 같은 가보지?
권해효 그래도 본선까지는 어떻게 가지 않겠나? 하하. 상 받기는 힘들 것 같고.
조윤희 그러니까 어려운 일인 거예요. 그러니 안 됐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고요.
이제 배우 프로젝트에서 서독제로 시선을 확장해보겠습니다. 두 분에게 서독제는 어떤 의미인가요?
권해효 제가 매년 개막식 때마다 “한 해의 독립영화계를 결산하는 대한민국 최대, 최고의 영화제”라고 이야기하는데, 저에게도 그런 것 같습니다. 1년 내내 전주, 부산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서 관심을 끈 영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영화까지,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매년 특별한 일이죠. 또 한 가지 서독제는요, 일주일 동안 작품을 열심히 보고 나면,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 독립영화인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 영화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가, 이런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거든요. 그런 면에서 제 시각을 확장시켜주는 영화제인 것 같습니다.
조윤희 그러니까 독립영화라는 게 상업영화의 하위개념이 아니고, 영화라는 예술의 한 흐름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 같아요. 상업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자신의 예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서독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조윤희 날로 너무너무 어려워지고 있으니… 계속 버티고 있어주길 바라죠.
권해효 지난 수십 년 동안 문화계의 위기를 이야기한 것처럼, 특히 한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극장을 중심으로 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해요. 어쩌면 서독제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자체가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거의 마지막 방식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다른 영화제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생긴 영화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잘 견뎌야 된다고, 이럴 때일수록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영화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조윤희 어쨌든 힘들수록 버텨야 해요.
권해효 이 50주년을 이야기하는 축하의 자리에! ‘버텨라. 좌절하지 말자’ 이런 이야기하는 상황이 조금 그지 같네요, 아주.(일동 웃음)
올해의 슬로건이 ‘오공무한대’예요. 그런 의미에서 50주년 이후의, 미래의 서독제는 어떤 모습일 거라 상상하나요?
권해효 어떻게 변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독립영화는 변화의 선두에 있어야 함에도 여차하면 변화에서 가장 뒤처진 모습으로 끝까지 버틸지도 모른다는 이중적인 감정이 들어요. 그러니까 영화라는 형식에 대해서 끝까지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다른 방향으로 점프를 하게 될지, 또 어떤 방향이 좋은지 가치판단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새로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역할만은 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당장 내년 예산 심의에서 서독제 관련 항목 자체가 빠졌다고 하니, 정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네요. 어떻게 보면 이 같은 시련이 잡초 같은 힘을 길러줄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시련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한편으론 더 움직이고 발화하는 힘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듭니다. 서독제를 응원하기 위해 다 함께 모인 오늘처럼요.
조윤희 그렇죠. 힘든 와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중 하나가 서독제고, 배우 프로젝트라 생각해요. 그래서 고마워요.
권해효 마지막으로 바람을 하나 남기고 싶어요. 15~20년 전만 하더라도 매년 관객 수 10만 명을 넘기는 독립영화가 한두 편은 꼭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1만 명을 넘기는 영화를 만나기도 힘들어요. 그게 참 아쉬워요. 올해 서독제 상영작 중 화제를 일으키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어요. 그로 인해 시원하게 독립영화 열풍이 불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