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것.
아름다우면서도 골치 아픈 것.
다시 돌아온 넷플릭스 드라마 <엑스오, 키티>의
배우 애나 캐스카트가 생각하는 ‘성장’이란 그런 것.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라라 진’의 연애와 우정, 가족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공개된 당해 넷플릭스에서 3분기 최다 시청 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모두가 지나온 청소년기의 추억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양인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물이란 점이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영화의 세계관은 주인공 라라 진의 여동생 ‘키티’를 주연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 <엑스오, 키티>를 통해 계속 넓어지는 중이다. 돌아가신 엄마를 더 가까이 느끼고, 장거리 연애 중인 한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 고등학생 키티는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성장한다. <엑스오, 키티> 시즌 2 공개를 한 달 앞둔 시점, 작품의 중심에 선 배우 애나 캐스카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작가 제니 한이 지어 올린 넓고 다정한 세계 안에서 캐릭터와 함께 커가는 배우의 모습을 본다.

가죽 미니드레스와 레오파드 힐 모두 Versace, 링 SHAY Fine Jewelry.




인터뷰가 공개될 때쯤이면 <엑스오, 키티> 시즌 2 역시 전 세계에 공개된 뒤겠네요. 시즌 1은 혼자 곰 인형을 안고 모든 에피소드를 감상했다고 들었는데, 시즌 2도 마찬가지 였나요?(웃음)
맞아요.(웃음) 지난달에 시즌 2를 미리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곰 인형을 옆에 두고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이후에는 가족들과 다시 봤고요. 모두의 노력이 모여 탄생한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꿈같은 일이에요.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무척 기대됩니다.
시즌 2 제작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시즌 1이 공개된 직후에 다음 시즌이 제작된다는 연락을 공식적으로 받았는데 믿기지 않았어요. 시즌 1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키티’의 세계로 다시 깊숙이 들어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죠. 첫 시즌이 시범 주행 같은 느낌이라면, 시즌 2에서는 실제로 운전대를 잡고 본격적인 여정을 떠나는 기분이었어요.
촬영을 위해 2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죠. 현장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첫 에피소드를 촬영하던 날 현장의 에너지가 무척 강렬했어요. 모두가 오랜만에 촬영장에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캐릭터에 몰입하는 순간이었죠. 특히 키티와 ‘민호’가 한국식 바비큐 식당 앞에서 대화 나누는 장면을 찍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많은 팬을 큰 충격에 빠뜨린 시즌 1의 마지막 장면 이후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재회하는 장면이라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이날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이 장면을 찍었는데, 추워서 떨면서도 아주 재미있게 촬영한 기억이 나요. 컷 사인과 동시에 감독과 총괄 책임자가 달려와 “이거야!” 하고 외치더라고요.(웃음)
이번 시즌에도 작품 곳곳에 서울의 명소가 담겨 있어 반가웠어요. 지난 시즌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한국에 몇 개월간 머무르기도 했죠? 한국에 대해, 또 서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간직하고 있나요?
한국은 매우 생기가 넘치는 나라예요. 밤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고요.(웃음) 서울은 말 그대로 잠들지 않는 도시 같은데, 동시에 무척 안전하고 깨끗해서 놀랐어요. 이번 시즌에는 서울을 벗어나 외곽 지역에서도 몇몇 에피소드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어요. 자연 풍경이 무척 아름답더라고요.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주인공 라라 진의 여동생 역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뒤, 이제는 <엑스오, 키티>의 주연으로 작품을 이끌고 있어요. 두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여러모로 달랐을 듯해요.
<엑스오, 키티> 첫 시즌을 찍으면서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 들었어요. 열두 살 때부터 연기를 해왔지만 성인 캐릭터로 주연을 맡은 건 처음이거든요. 당시 팬데믹 상황이기도 했고,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도 처음이라 모든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배우로서 굉장히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성장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이번 시즌부터는 이미 해본 적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죠.
<엑스오, 키티>도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조명하는 이야기죠. 이번 시즌에 키티가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태도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시즌 1 에서는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처음 깨닫고 탐색하는 과정이 중심이었다면, 시즌 2에서는 이를 더욱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청소년 캐릭터가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 역시 주저 없이 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게 우리 작품의 특별한 점인 것 같아요.
시즌 1의 이야기가 많은 시청자의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이기도 하죠.
맞아요. <엑스오, 키티>는 결국 ‘진정한 나’와 연결되는 힘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죠. 많은 분이 이런 지점에 공감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미지 제공 넷플릭스

이미지 제공 넷플릭스
키티 역 오디션에 참여한 열세 살 무렵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10대 시절을 줄곧 키티라는 인물과 함께했어요. 배우로서 자신과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인물을 연기하는 일이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인물과 함께 커나갈 수 있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이에요. 특히 인생에서 저와 비슷한 단계에 있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키티가 경험하는 모든 일에 마치 제 일처럼 깊이 공감하게 되고, 작품을 떠나서도 저는 늘 키티와 손을 잡고 함께 성장해온 기분이에요. 작품을 찍는 내내 키티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계속해서 깨우쳐주는 것 같았어요. 성장한다는 게 얼마나 혼란스러우면서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를 통해 배웠고, 그건 그때의 제게 꼭 필요한 깨달음이었어요.
스스로 키티라는 인물과 닮았다고 느끼는 면도 있나요?
키티와 저는 넓고 깊게 사랑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죠. 키티는 늘 마음을 먼저 따른다면, 저는 머리를 따르는 편이에요. 매사에 지나치게 생각하고 분석하는 성향이거든요. 키티는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그저 사랑을 지표 삼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키티의 이런 면을 특히 존경하고요.
그런 키티를 오랜 시간 연기하며 본인이 변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본질적으로 취약해지는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사랑이 때로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사랑이 그 자체로 위험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솔직하고 진실된 상태에 머물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랑에 뛰어들 가치가 있는 거고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얼마나 멋진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잖아요. <엑스오, 키티>도 사랑이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형태로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키티를 통해, 작품을 통해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더라도 겁먹지 않고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키티는 늘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사랑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죠. 최근 자신의 안전지대 밖으로 벗어난 경험이 있나요?
지난 몇 년간 대학에 다니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제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무섭다. 그래도 해봐야지!”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에요.
한 인터뷰에서 “키티가 정답을 알아내지 못해도 괜찮다. 그마저 여정의 일부이자 성장 하는 인물의 아름다운 면 중 하나”라고 말했어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앞으 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가 미래를 두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요즘 저는 불확실성을 아예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에요. 곧 제 앞에 펼쳐질 멋진 일들을 기대해보는 거죠. 지나온 10년을 돌아보면, 열한 살 무렵의 저는 지금의 제가 해낸 일들을 상상조차 못 했을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의 10년도 기대될 수밖에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