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이 계절마다 마리끌레르는 젠더프리의 문을 열어왔다. 단단한 편견에 균열을 내기 위해, 굳건한 규정을 탈피하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8인의 여성 배우가 올해 여덟 번째 젠더프리 필름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나아가는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호텔에서 나와서 왼쪽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 (중략)
좀 더 가다 보면 우측으로 해장국집이 하나 있어. 그 집 아주 깔끔하게 맛있게 잘해.
어젯밤에 내가 계산해뒀으니까 가서 속 좀 풀어. 이만 끊는다.
(전화를 끊고) 아, 존나 카리스마 있었어.
그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좋았어.”
영화 <불량남녀> 방극현 役


모두 MaxMara, 브레이슬릿과 링 모두
Portrait Report.
권유리
영화 <불량남녀> 속 능글맞은 ‘하남자’ 방극현의 그 말 “존나 카리스마 있었어”를 권유리 배우가 내뱉는 순간, 유쾌하면서도 개운했다. 대중이 그려놓은 이미지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와 자신의 선택을 연기해내는 배우의 용기가 만들어낸 기운이었다. “권유리는 이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권유리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편협한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던 것 같아요. 젠더프리도, 제 새 영화 <침범>도요.”
오랜 시간 아이돌이라는, 소녀라는, 여성 배우라는 규정 안에서 머물러야 했던 그는 서른이 가까워질 때쯤부터 자신을 분명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10대 때 데뷔했으니 제가 저를 정립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대명사 안에서 살게 된 것 같아요. 그 시절을 색으로 지정하자면 맑고 고운 백색의 이미지였달까요. 그 틀 안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 때문에 상처받은 적도 많았고요. 제 외면적 특징 중 하나일 뿐인 것들에 대해서도 그땐 ‘나는 이렇다’며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20대 후반에 독립하고 혼자만의 삶을 꾸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잘 받아들이고 나니까 저도 모르게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제 변화에 기인한 건진 모르지만, 이후 사람들 또한 그런 저를 규정짓지 않고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준비한 질문 중 자유로움에 관한 것이 있었지만,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더 묻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같은 것을 반복하거나 일정한 곳에서 머물러 있는 걸 가장 경계한다는 그와 자유는 이미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 듯 보였으니까.
“제가 머무는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자연이나 동물, 그리고 순환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자연 속에서, 동물 곁에서 제가 더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배우로서든 사람으로서든 더 유용하게 잘 쓰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존재하길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