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이 계절마다 마리끌레르는 젠더프리의 문을 열어왔다. 단단한 편견에 균열을 내기 위해, 굳건한 규정을 탈피하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8인의 여성 배우가 올해 여덟 번째 젠더프리 필름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나아가는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지금도 마찬가지지. 관습과 이념에 사로잡혀서 함부로 단정 짓는 거. 시도 자기 생각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 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히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영화 <동주> 윤동주 役


셔츠 Jinsun.
신은수
“다른 분들은 어떤 작품을 하셨어요?” 배우와 작품을 하나씩 전하던 중, 예수정 배우가 연극 <오이디푸스>를 택했다는 말에 신은수 배우가 작은 탄성을 냈다. “와, 고등학교 때 그 작품 했었는데, 당시에 캐스팅은 당연히 성별에 맞춰 진행해서 저는 오이디푸스 역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그 점이 아쉬웠는데, 선배님께서 하셨다니 멋지기도 하고, 젠더프리의 길이 정말 활짝 열렸구나 싶기도 하네요.” 그의 말은 자신이 체감한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성별이 아니라 배우의 역량으로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이런 변화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느낀 게 많아요.”
변화 안에서 그가 택한 방식은 ‘기준은 나로부터’였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은데, 타인의 평가에 저를 가두게 될 때가 있었어요. 이를테면 부모님이 보는 나, 친구들이 생각하는 나, 대중이 바라보는 나, 이런 여러 개의 제가 있잖아요. 그런 타인의 시선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계속 변화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그 변화가 기존의 시선에 맞지 않으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어떤 모습의 나든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선택하자는 생각으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주변의 조언은 조언대로 두고, 결과는 내 몫이니 그걸 침범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주체적으로 나를 만들어가자 한 거죠.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기준을 제게 두니까 다른 사람들도 처음에만 낯설어하지 금세 다른 모습의 저를 받아들여주더라고요. 확실히 전보다 편하게 저를 드러내게 되었고, 그게 연기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을 지나 저를 가장 많이 투영한 작품이 최근작 <조명가게>예요.”
그리고 덧붙이는 그의 소망. 배우로서 꿈꾸는 세상은 특별한 것이 특별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한편으로 아직은 어색해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생소하고 특별하게 여기기보다는 ‘그게 뭐?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인식이 만드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세계라면 더 거침없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