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영화와 그 안의 인물에 대한 신뢰가 있고, 이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내 연기의 밑바탕이 이런 믿음이다.” 새 영화 <브로큰>을 선택한 배우 하정우의 명확한 기반.

코트 WOOYOUNGMI, 링 Chrome Hearts
점퍼와 팬츠, 슈즈 모두 Gucci, 브레이슬릿 Versace, 티셔츠와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우터와 티셔츠, 팬츠 모두 Sacai, 슈즈 Tod’s, 링 Chrome Hearts.

새 영화 <브로큰>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창 촬영하던 때에 새롭고 날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선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의 어떤 매력에 주목했던 건가?

이 작품을 선택하기 전에 텐트 폴 영화를 몇 편 했었다. 의도적으로 다른 걸 찾은 건 아니지만 정형화되지 않고 상업적인 것의 공식에서 자유로운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감독의 전작 <양치기들>에 대한 인상도 좋았고. 인물이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만큼이나 함께하는 사람을 중요하게 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김진황 감독은 어떤 사람이자 감독으로 느껴졌나?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 상업영화를 처음 찍으면서도 많은 스태프와 경험 많은 배우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주장하는 점, 그와 반대로 시나리오가 현장으로 옮겨지면서 확장되거나 변형되는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고쳐가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소위 말해 깡이 없으면 못 할 일을 잘 대처해가더라.

<브로큰>은 하나뿐인 동생의 죽음을 마주하고, 이를 예견한 소설을 발견하며 진실의 끝에 있는 존재를 향한 복수를 시작한 인물 ‘민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배우로서 중심이 되는 인물 민태를 맡아 그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다.

우선 이야기의 베이스가 되는 감독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통영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 전까지 살면서 접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친형과 자신의 관계, 이런 얘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민태라는 사람에게 다가서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재설계해나갔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민태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이라 생각했나?

복수심. 민태는 그것 하나로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가 죽었고, 결국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면 다른 생각이나 마음이 들어올 여지가 있을까? 더 이상 잃을 게 없기에 복수를 향해 끝까지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김진황 감독은 “하정우 배우가 민태를 본인만의 분위기로 변화시킨 지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작업 과정에서 맡은 인물에 대해, 영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더했나?

초반에 대화하면서 이 작품이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붙들려면 영화적 재미 요소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이를테면 민태라는 인물이 진실의 끝에 있는 인물을 만나 복수하는 것이 이야기의 줄기라면, 이 과정을 좀 더 길게 확장해 어떤 액션을 통해 누구를 물리치고 어떤 스테이지를 극복해 마지막까지 가는지를 더 크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처음 받은 시나리오보다 액션 장면이 많아졌다. 특히 마지막 부둣가 액션 신은 훨씬 크게 확장되었다.

배우가 고생할 게 자명한 의견을 낸 셈이다.

맞다. 그렇지만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는 없으니까.

하정우 배우가 고생하면 영화가 흥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나?

전혀. 이 영화 역시 한겨울에 밤 장면이 많아 육체적으로 고된 부분은 있었지만, 나는 그걸 대단한 고생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실내에서만 촬영해도 그에 따른 고생이 있는 거고, 앉아서 대사만 내뱉는 인물이면 쉬울 것 같지만 또 그만의 고충이 있을 거다. 영화 작업은 뭐가 더 어렵고 수월한 게 없는 것 같다.

코트 Palm Angels.
데님 코트 재킷 Junya Watanabe Man, 안에 입은 셔츠 Stranger.

영화의 성격에 따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는데 <브로큰>은 어느 쪽에 가까운 작업이었나?

이번엔 후자에 가까웠다. <브로큰>을 하면서는 꾸미지 않고 연기하려 애썼다. 처음 이 작품에서 느껴진 날것 그 대로를 표현해보려 한 거다. 그래서 민태라는 인물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외형을 만들고, 어떤 말투를 장착하고 그런 게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 싶었다. 촬영하면서도 같은 마음으로 임했다. 좀 일찍 현장에 도착해 쓱 둘러보면서 즉흥적으로 그곳에 놓인 무언가를 소품으로 이용해보거나 구조를 활용하는 식이었다. 또 이야기 안에선 민태가 복수를 해나가면서 꽤 다양한 인물과 부딪치는데, 이 과정에서도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것에 집중했다.

정형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본능적으로 표현한 영화. 그 정체가 무척 궁금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오묘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걸 휘발유 냄새라 표현하는데 아마 보는 사람마다 느껴지는 건 다를 거다.

예고편을 볼 땐 직선적이고 명확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묘하다니, 이야기 안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 추측하게 된다.

굉장히 하드보일드 같은데 그 안에 블랙코미디가 있고, 거칠고 차가울 것 같은데 차갑지만은 아닌 이야기랄까. 예고편만 보면 복수를 위해 무언가를 쫓는 영화라 예상할 텐데 그보다 레이어가 몇 겹은 더 있는 것 같다. 코언 형제 작품의 뉘앙스를 풍기는데, 그렇다고 그들의 영화 중 무엇과 닮았다고 할 순 없는 영화다.

이 오묘한 말의 의미는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을 듯하다. 그 와중에 관객이 갖는 유일한 확신은 하정의 배우의 연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믿고 보는 배우로 꼽는데, 배우 본인 역시 동일한 믿음을 품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어느 정도라 말할 순 없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선택한 영화와 그 안의 인물에 대한 신뢰가 있고, 이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내 연기의 밑바탕이 이런 믿음이다.

그 신뢰는 언제부터 품게 된 건가?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갖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나는 처음부터 같은 마음이었다. 배우가 캐릭터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완성도는 덜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행하는 데 있어 자신이 가진 만큼 솔직하게 표현하려면 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도, 말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정우 감독에 대한 신뢰는 어떠한가? 곧 세 번째 연출작 <로비>가 개봉한다.

아직은 감독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며 믿음을 쌓아 가는 과정인 것 같다. <롤러코스터>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찍었다. 내가 원하는 코미디를 그렸고, 바라는 캐스팅을 했고, 촬영을 했다. 그런데 이후 <허삼관>에선 내가 이걸 진짜 원한 건가, 자신 있는 이야기였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거기엔 조금 미치지 못한다. 능력 이상의 최선을 다한 건 확실하지만 부족함이 보이는 거다. 그래서 세 번째 연출작까지 가는 데 10년이 걸린 것 같다.

<로비>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

초고는 꽤 오래전에 써둔 작품이다. 작가와 함께 파파라치 기자들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3고까지 한참 써서 읽어보니 내가 그저 흥미로운 소재에만 휩싸여 있었구나 싶어 자신이 없어졌다. 결국 덮어둔 채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후 팬데믹 때 처음으로 골프를 배우게 됐다. 그런 데 그곳에서 발견한 인간의 면면이 눈에 탁 하고 들어온 거다. 평소에 굉장히 얌전한 사람이 골프장에 가면 난폭하거나 쪼잔해지기도 하고,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그야말로 코미디다 싶었고, 이 군상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어 덮어뒀던 시나리오를 발전시켜서 <로비>로 완성했다. 시간이 좀 흘러봐야 알겠지만 이 영화를 완성한 지금은 후회가 남지 않는다.

<롤러코스터> 같은 하정우 감독의 소동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그보단 스토리가 강한 영화긴 한데, 비슷한 면이 있긴 하다.(웃음)

2월엔 배우로서, 4월엔 감독으로서 관객을 만나게 된다. 어떤 위치에서든 관객을 만나기 전의 떨림은 같은가?

맞다. 사실 떨림보다는 걱정이 더 크다. 이맘때면 생각도 많아지고 복잡하다. 영화란 게 어떤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만드는 게 아니니까 그걸 어떤 관객이 어떻게 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나. 시간과 돈을 내고 영화관에 와준 관객 하나하나가 더 감사하고 소중한 요즘이니까 그들에게 실망을 주진 말아야 하는데… 유일한 바람은 그것뿐이다.

좀 전에 언급한 자신과 영화에 대한 믿음이 가장 유효한 시기이지 않나 싶다.

그렇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끝까지 고민을 놓지 않고 작업했다면 그것으로 방점을 찍어도 될 것 같다.

데님 코트 재킷 Junya Watanabe Man, 안에 입은 셔츠 Stranger, 슈즈 Off-White™,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Luisaviaroma, 셔츠 Stranger.
코트 WOOYOUNGMI, 데님 팬츠 COS, 링 Chrome Hearts.
코트와 티셔츠, 팬츠 모두 Palm Angels, 화이트 스니커즈 Tod’s, 네크리스 Chrome He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