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히 보이는 경로를 직시하며, 확고한 신념과 유연한 태도로. 새롭게 펼쳐진 제이비의 여정.



갓세븐(GOT7) 콘서트 <NESTFEST>를 끝으로 3년 만의 완전체 앨범 활동을 마무리했어요. 일곱 멤버가 오랜만에 뭉친 만큼, 여느 때와 사뭇 다른 감정이 남았을 것 같아요.
콘서트가 딱 끝났을 땐 좋았어요. 할 일 다했다, 약간 아쉬움은 있지만 괜찮게 마무리 했다 싶어 뿌듯했죠.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어요.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번 활동을 위해 제 모든 걸 태운 듯해 적잖이 당황스러웠어요.
단기간에 큰 노력을 쏟으면 그럴 수 있죠.(웃음) 멤버들과 따로 시간을 내 모이기도 했나요?
네. 다 같이 볼링을 쳤어요. 일 얘기는 딱히 안 했어요. 서로 고생했다는 말만 하고 그냥 재미있게 놀았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모이는 시간을 자주 가지지는 않았거든요. 제 성격상 애들이 모인다고 하면 ‘나는 집에서 쉴게’ 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사적인 모임을 주도하진 않더라도, 갓세븐 활동은 직접 이끌었어요. 리더로서 컴백 시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그렇죠. 소집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랑 진영이가 거의 동시에 복무를 마치고, 이후 영재가 갈 텐데 그사이에 활동하지 않으면 공백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소집 해제 직후에 컴백을 준비했죠. 그래야 갓세븐이 해체한 팀이라는 오해의 불씨가 사그라질 수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
갓세븐 멤버들이 각자 활동을 시작한 이후 두 번째 컴백이죠. 2022년에 공개한 <GOT7>과 이번에 선보인 <WINTER HEPTAGON>을 준비 하면서 다르게 느껴진 점이 있었나요?
<GOT7> 준비가 더 수월했어요. 일단 빨리 컴백하자는 생각이 컸고, 의도치 않게 제가 만든 곡이 다수 수록되다 보니 멤버들이 대체로 제 디렉팅을 믿고 따랐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할게”라고 했을 때, 당시에는 쉽게 “오케이” 하던 멤버들이 이번엔 “이건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저마다 생각을 말하더라고요. 각자 잘하는 것과 더 신경 쓰고 싶은 부분이 있을 테고, 저도 애들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편이라 조율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멤버들 모두 수록곡의 프로듀싱에 참여했는데, 각 곡마다 본인의 색이 많이 묻어나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그 덕분인지 제이비가 작업한 ‘Darling’을 비롯한 수록곡이 각 멤버의 개성을 뚜렷이 담아낸 것 같더라고요. 한편 타이틀곡 ‘PYTHON’은 기존의 갓세븐 곡과 사뭇 다른 느낌이 들어요.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갓세븐 음악의 색깔은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곡이에요. ‘캘리포니아 보이’의 칠한 느낌이랄까요.(웃음) 이번 수록곡 중에서는 ‘TIDAL WAVE’가 그 느낌에 제일 가까워요. 앨범을 자주 내면서 꾸준히 활동하는 팀은 아니다 보니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멤버들과 논의 끝에 ‘PYTHON’을 타이틀곡으로 정했어요. 갓세븐이 세련되고 각 잡힌 모습도 선보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반응이 좋더라고요.
12년 차 팀으로서 안주하기보다는 도전을 택한 거네요. 그래서 갓세븐의 다음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가능성이 열린 만큼 모호해진 것 같아요.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긴 한데, 편하게 생각하려고요. 여러 가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니까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의 시점에서는 그냥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의 갓세븐에게는 그 어떤 수치나 규모보다 함께하는 것 자체의 의미가 더욱 클 것 같아요.
그렇죠. 확실히 수익성에 초점을 두진 않아요. 한창 팀 활동을 활발히 할 땐 갓세븐이라는 브랜드에 프리미엄을 붙이려고 했다면, 지금은 그러지 않는 거죠.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스태프들에게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팀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다행히 수지 타산이 맞아요. 아직 팬들이 많이 있고, 때가 되면 돌아와주니 고맙죠. 다 같이 즐겁게 노는 시간을 만드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이번 콘서트를 통해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3일간 진행한 공연의 평균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이더라고요. 앙코르 무대를 할 땐 멤버들끼리 신나게 놀던데요.(웃음)
솔직히 좀 걱정했어요.(웃음) 앙코르 무대를 힘 있게 끝내지 않고 길게 이어가면 관객으로서는 지칠 수 있잖아요. ‘이럴 거면 공연장 말고 노래방에 가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무대에서 내려온 뒤 현장 스태프들에게 지루하지 않았는지 여쭤봤는데, 그렇진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다행이다 싶었어요.
관객 중 한 명으로서 즐거웠습니다.(웃음) 이번 콘서트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순간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공연하다 보면 제가 본무대에 있고, 멤버들은 돌출 무대로 나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때 멤버들의 뒷모습과 팬들이 쥔 응원봉의 초록색 불빛이 어우러진 모습이 눈에 담기거든요. 요즘은 응원봉의 광량이 세서 그런지 팬들 얼굴도 보여요.(웃음) 그 장면이 기억에 깊이 남을 것 같아요. 사랑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설레고 가슴 뛰는 감정은 아니지만, 이보다 큰 사랑이 있을까 싶어요.
멤버들과 팬들을 향한 마음을 각자의 진솔한 언어로 표현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어요. 갓세븐이 ‘기다리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기에 탄생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추진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팬들에게 막연한 희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어 요. 무엇이든 확실한 걸 좋아하는 편이라 돌아오겠다고 말했으니 실행한 거예요. 기다려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킨 거죠. 멤버들도 팀 활동을 원했고요. 바쁘게 지내던 애들을 끌어모으고, 앨범 디렉팅을 한다고 해서 제가 더 얻는 건 없어요. 솔직히 제가 희생한 부분도 있다고 봐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다들 좋아했으니, 저도 좋죠. 콘서트 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너희가 좋으면 됐다.’(웃음)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어느 정도 희생을 감내했지만, 스스로 느낀 즐거움도 있었죠?
그럼요. 충분히 즐거웠어요. 앨범을 만들 때도, 활동할 때도 재미를 느꼈어요. 멤버들이 말하는 걸 듣고만 있어도 그냥 웃겨요.(웃음) 이번 컴백이 제게도 분명 좋은 시간이었어요. 이제 멤버들이 개인 활동을 하러 드래곤볼처럼 퍼질 테고, 팬들도 저마다 흩어지겠죠. 그래도 갓세븐의 팬들, ‘아가새’가 머물다 떠난 둥지는 그대로 남아 있을 거예요. 저 스스로 그 둥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슬리브리스 톱과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팀 활동을 통해 솔로 아티스트로서 에너지를 얻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떤가요?
에너지는 오히려 빠진 것 같아요.(웃음) 이번 활동을 마치자마자 캠핑하러 도망쳤어요. 충주호 근처로 갔는데, 어휴, 진짜 춥더라고요. 심지어 침낭 대신 이불을 챙겨 가는 바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왔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른 요즘은 에너지를 충전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평소 자기 계발서나 철학책 등을 읽으면서 동기를 얻는 편인데, 얼마 전에 이런 내용의 글을 봤어요. 원동력이 있어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열심을 다함으로써 원동력을 찾는 사람이 낫대요. 그러니까 저도 다시 움직여야겠다 싶어요.
다시 움직이면서 새롭게 든 생각이 있다면요?
음… 고민이 많아요. 이 일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체력 걱정은 없어요. 오히려 최근 공연들을 통해 ‘내 성대는 아주 튼튼하게 자랐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보다는 현실적인 부분들을 냉정히 바라보게 되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살펴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다음 단계를 장기적으로 구상 중인 거네요.
네. 나이가 더 들면 무대에서 춤의 비중을 낮추고, 프로듀싱 분야로 더 옮겨가지 않을까 싶긴 해요. 현재로서는 제 앨범에 집중해야죠. 완성해둔 곡이 꽤 있는데, 아직 앨범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진 않았어요. 우선 제 안에 연료를 다시 채우려고요. 지금의 제게는 사랑, 슬픔, 분노를 비롯한 감정을 묘사해내는 상상력이 작업의 연료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3월부터 다시 이어가는 아시아 투어도 재미있게 하려고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이번 투어를 통해 지난해 11월에 공개한 첫 정규 앨범 <Archive 1: [Road Runner]>의 곡들도 들을 수 있죠. 이 앨범에 ‘앞으로 선보일 R&B 기반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느껴지는 말이었어요.
제 음악의 방향성은 언제나 일관적이었어요. 오래전부터 R&B 기반의 음악을 추구했거든요. 다만 갓세븐 활동을 통해 쌓아온 음악이 있는데, 갑자기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면 대중에게는 낯설 수 있잖아요. 그 지점에서는 보수적인 편이라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는 천천히 바꿔가려 한 거예요. 첫 정규 앨범이자, 30대가 되고 소집 해제 이후에 내는 신보가 전환점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고요. 2개의 타이틀곡 중, 열정적인 ‘Crash’보다 성숙하고 몽환적인 ‘Cloud nine’ 같은 분위기의 음악을 앞으로 더 내세우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미니멀하고 빈티지한 트랙을 선호하는데, 여기에 제 단단하면서도 뾰족한 느낌의 보컬 톤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확고한 음악적 방향성을 제 방식대로 더 만들어가는 거죠. 음악 전반과 프로듀싱, 마케팅까지 다각도로 고민해보려고요.
‘Road Runner’라는 앨범 제목이 아티스트로서의 여정이 계속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들었어요. 그 여정을 이어가는 마음이 이전에 비해 편안해졌나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편안해졌다고 여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잘못된 생각 아니었나 싶어요. 여정을 이어가는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게 아니라, 길을 잃어버리고 착각했던 거죠. 이후 제대로 된 길을 바라보니 참 복잡하더라고요. 아티스트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안정적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쉽지 않네요. 그래도 다행히 눈앞의 안개는 걷힌 듯해요. 가야 할 곳이 이제는 보이는 것 같아요. 좀 더 노력하면서 나아가야겠어요.
흔들리지 않으며 나아가려면, 단단한 내면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지고 싶다”라고 한 말이 떠올라요.
지금이 저만의 철학을 찬찬히 다져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확고한 신념을 갖되 유연하게 사고하고 싶어요. 나 자신과 상충하는 면을 가진 누군가를 무조건 배제하지 않고,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물론 상대방의 기분까지 전부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도의적으로 타인을 얼마큼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SNS에서 우연히 봤는데, 꿀렁꿀렁한 유체지만 망치로 때리면 순간적으로 고체처럼 굳는 물질이 있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적당한 선을 찾아야겠죠. 모든 면에서 적당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잘 표현 하는 단어가 ‘은은하다’라고 생각해요. 요즘 이 단어를 진짜 좋아해요.
조금 전 영상 콘텐츠를 촬영할 때도 ‘은은한 잔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죠.
항상 그랬어요. 향이 센, 돋보이는 사람이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릴 때도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흐르는 대로, 물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후회한 적은 있어요. 젊은 시절의 욕심은 멋진 독기로 보이기도 하고, 그게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 그런데 결론적으로 전 그럴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어요.
그 은은함이 지닌 미덕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지나친 열정을 다하면 연료가 떨어지다 못해 작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제가 20대였을 때, 같이 음악 하던 크루의 형들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너 그러다 하기 싫어진다”라고요. 당시 사운드클라우드에 개인적으로 만든 곡을 올리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제가 갓세븐 멤버로서 지닌 역량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팀 음악과 제 믹스테이프 작업을 병행했거든요. 번아웃이 올 만도 했죠. ‘열심히 안 살았나?’ 하는 건 아니에요. 그토록 열심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다 끝내고 나면 왠지 공허할 때가 있더라고요. 제가 해온 작업들을 면밀히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을 거슬러 짚어가다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생각보다 많은 작업이 쌓였다는 사실을요.
은근히 자주 돌아보는 편인데, 많이 하긴 했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양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좀 더 알맹이 있게 해야겠어요. 예전엔 손톱만 한 진주였다면 그걸 더 크게 만들어가는 거죠.
내 음악의 알맹이를 키워가면서 궁극적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기를 바라나요?
세대가 바뀌어도 듣기 편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또 요즘 느끼는 건데, 아티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연습할 때 고르는 음악 중 에 제 곡이 많았으면 해요. 제가 더 잘해야겠죠. 배울 점이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온전히 음악적인 부분만요. 인간적인 면은 너무 사사로우니까요.
하지만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멋진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묻고 싶어요. 소집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모르겠다”라고 답한 질문이기도 해요. 오늘의 제이비, 인간 임재범은 삶의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나눔의 행복이요. 한 사람의 삶이 끝나면, 본인이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 두고 가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더욱 짙어졌어요. 제게 더 이상 쓸모없는 것보다는 저한테 좋은 것들을요. 물건일 수도, 정보를 비롯한 무형의 것일 수도 있겠죠. 이를테면 언젠가 다시 꺼내 읽을 것 같은, 밑줄을 긋고 생각을 메모해둔 책을 나눠봐도 괜찮겠다 싶어요. 이런 나눔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무언가를 계속 나누다 보면, 서로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