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관에 왔을까요? 그들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곳에 오기 전엔 뭘 했을까요? 영화를 본 후엔 어디로 갔을까요? 당시 이 영화관은 어떤 모습이었고,
얼마나 컸을지, 좌석은 몇 개였을지….” 배우 탕웨이와 1백30년 역사를 품은 영화관에 머물렀다.
오직 영화만이 남길 수 있는 시간의 층위를 더듬으며 그는 자주 벅차올랐다.
어둠 속에서 빛이 투사되는 순간, 그 찬란한 환희와 감동.
그 가운데 우리가 사랑하는 배우 탕웨이의 얼굴.



오래된 영화관에서 만났습니다. 어느 때의 영화관을 좋아하나요?
아침 9시쯤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걸 좋아해요. 그 시간대에는 저 혼자 관객으로 상영관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촬영장처럼 신기한 느낌이 들어요. 필요에 따라 앞자리나 뒷자리로 옮길 수도 있고, 스크린 앞으로 가서 고개를 들어 영화 속 거대한 인물을 바라보기도 해요. 그 순간에는 마치 극장 전체가 제 것처럼 느껴져요. 집에서 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때와 달리, 어두운 극장 안에서는 영화가 전하는 모든 감정을 더욱 집중해서 느끼게 되죠. 감동, 행복, 두려움, 호기심 등 모든 감정이 배로 강하게, 또렷하게 다가와요.
촬영 중에 들었어요. 이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잡지 커버 화보 촬영이 영화관에서 이뤄졌다고요?
맞아요. 2008년, 배우 일을 막 시작한 무렵이었어요.
10여 년이 지나 다시 영화관에서 촬영하게 되었는데,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땐 경험이 없어서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할지 몰랐어요. 다행히 결과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다 떠올라요. 카메라 앞에 서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나고요. 촬영 공간이 영화관이어서 더 강하게 남은 게 아닐까요. 시간이 흘러 다시 이런 기회를 얻다니, 그것도 무려 130년 역사를 가진 극장이라니요. 130년 전이면 1895년이잖아요. 제 외할아버지도 태어나기 전이에요. 그때는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관에 왔을까 요? 그들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 곳에 오기 전엔 뭘 했을까요? 영화를 본 후엔 어디로 갔을까요? 당시 이 영화관은 어떤 모습이었고, 얼마나 컸을지, 좌석은 몇 개였을지…. 오늘 스크린 앞에서 촬영할 때 거대하고 하얀 스크린을 처음 만져봤어요. 처음에는 손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점점 스크린에 이끌리듯 다가가다가 이마까지 닿아버렸어요. 영화의 신께 인사를 드리는 느낌이었어요. 또 위층의 작은 영사실에 들어갔을 때는 그 공간 자체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영화가 남긴 자장처럼 느껴졌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일었어요.
맞아요. 영사실 촬영에서 탕웨이 배우가 어떤 감정에 깊게 빠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영사실은 영화인들에게 성스러운 장소예요. 오랜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영화가 그 작은 방에서 관객에게로 향했으니까요. 사람이 바뀌고, 장비가 바뀌어도 그 방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기계가 돌아가고 어둠 속에서 빛이 투사되는 순간, 영화가 시작되는 거죠. 그곳은 예전에 방문했던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감독님의 개인 영화관을 떠올리게 했어요. 어느 섬에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주 오래된 영사기 한 대만 조용히 놓여 있었거든요. 몇십 년, 아니 어쩌면 백 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을지도 몰라요.
처음 겪은 강렬한 극장 경험을 기억하나요?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절 데리고 영화 <진용(古今大戰秦俑情)>을 보러 가셨어요. 공리와 장이머우가 주연이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공리가 긴 치마를 입고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붉은 화면과 음악,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미소 짓던 그의 표정이 기억나요. 장이머우의 캐릭터가 고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설정도 있었죠. 어린 저에겐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뭔가 마음을 울리는 감정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영화는 참 신기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긍정적인 기억들이 본인을 배우의 삶으로 이끈 것 같나요?
글쎄요. 배우가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저 우연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대학의 다음 해 입학 정보를 알아보러 갔다가 미대 건물 앞에서 중앙희극학원 신입생을 모집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어요. 중앙희극학원 선생님이 저를 보고 한번 와보라고 손짓하셨고, 그렇게 입시 준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중앙희극학원 연극연출학과에 합격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하지만 졸업 후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젊은 여자이고, 아무런 경력도 없다 보니 연극 연출 전공과 관련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생계를 위해 학생처 선생님의 소개로 드라마 배우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고, 그렇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어요.
우연히 들어선 배우의 세계에서 20년 가까이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인연’을 따라가요. 배우라는 일은 제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서로 간에 이미 많은 교감이 생겼어요. 우리 사이엔 ‘무언의 약속’ 같은 게 있죠. Nobody knows the future. 연기를 할 때는 캐릭터의 심리나 행동의 논리를 이해하면서 삶의 경험을 배울 수 있어서 즐거워요. 이런 과정이 제 성장에 도움이 되죠. 그리고 상대 배우나 감독, 스태프들과 말없이도 통하는 교감이 점점 생기는데, 그게 참 중독적이에요.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 안에서 살아왔죠. 어떤 서사를 좋아하나요?
연기할 때는 어떤 서사든 상관없어요. 진심을 다하면 돼요. 작가의 1차 창작, 감독의 2차 창작, 배우의 3차 창작이 어우러져 진정성 있게 표현된 작품이라면 모두 좋아해요. 저는 감독님이나 상대 배우의 전작을 모두 찾아서 보면서 그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스타일인지 영화 속에서 느끼고 익숙해지려 해요.
동료의 필모그래피 전부를 찾아 보며 지나온 역사를 존중하듯, 본인의 필모그래피에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자 하나요?
제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는 각각의 순간마다 그 캐릭터만의 빛나는 장면이 있었을 거예요. 그게 관객에게 얼마나 기억되거나 사랑받았든, 아니면 잊혔든, 전 마음을 다해 표현했기 때문에 모두 사랑해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나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창작에 집중하고 즐기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일에 대한 명료하고 건강한 생각을 듣는 것 같아 제 마음도 덩달아 시원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삶은 최고의 학교예요. 저는 제 단점을 찾는 것도, 장점을 발견하는 것도 좋아해요. 인생에는 다음 단계가 계속해서 주어져요. 결혼이나 출산도 그중 하나예요. 생각나는 웃긴 일이 하나 있는데요. 출산할 때 의사 선생님이 제 표정을 보고 아주 무심히 말씀하셨어요. “얼굴에 힘주지 말고, 배에 힘을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어요. 상상력을 발휘해 방금 전의 제 얼굴을 머릿속으로 재생해봤더니,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던 거예요. 곧바로 의사 선생님의 ‘연
출’을 받아들였고, 배우로서 근육을 정밀하게 조절한 덕분에 14분 만에 아기를 순산했어요.(일동 웃음) 만약 출산 장면을 연기하게 된다면 굉장히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웃음).
뒤돌아보고 곱씹으며 후회하는 성격은 아닌가 봅니다.
네. 후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이걸 안 하면 틀림없이 후회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하려고 해요.
앞으로 50여 년, 삶이 다할 때까지 연기를 계속 해나간다는 가정하에 어떤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나요?
앞으로 50년 더 연기를 한다면 46+50… 아흔여섯 살이네요. 그렇다면 참 행복할 거예요. 건강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럼 50년 후에 우리 다시 만나서 얘기해요.(웃음) 사실 그때가 되면 햇살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새소리를 듣고, 걸을 수 있고, 잠을 잘 잘 수 있고, 크게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어떤 배우가 될지는 미리 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전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의도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물론 제가 믿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선이 있고, 그 선 위에 있다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성격은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자, 그리고 또 하나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고 봐요. 중국에는 “세 살은 어리고, 일곱 살은 늙어 보인다(三岁看小, 七岁看老)”는 속담이 있어요. 세 살부 터 일곱 살 사이 한 인간의 심리와 성격이 형성된다는 의미예요. 그 시기에 평생 동안의 발달 과정이 이뤄진다는 거죠. 아마 아흔여섯 살의 저는 일곱 살 때의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비결은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것’이에요. 계속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건 이미 열정이 식었다는 뜻이죠. 굳이 억지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마치 남녀 관계에서 한쪽이 이미 사랑이 식었는데, 다른 한쪽이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려 하면 결국 둘 다 힘들어지는 것처럼요. 반대로 열정이 계속 살아 있다면 애써 유지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예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열심을 다해 캐릭터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한데 그러다 보면 오히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고, 인물 설정도 무너지는 등 연기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마치 고양이와 놀 듯이 접근하는 거죠. 고양이를 계속 쫓아가면 고양이는 도망가잖아요. 그러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다가오죠. 엄마들은 알 거예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캐릭터도 그래요. 결국 같은 원리로 다가와요.
배우는 작품 안에서 매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하죠.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혹은 없어야 할까요?
연기할 때 ‘판단’을 내려놓는 훈련을 하려 해요. 모든 종류의 판단을요. 연기 인생을 더 길게 걷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마음가짐이에요. 배우에 대한 판단, 감독에 대한 판단, 캐릭터에 대한 판단,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판단까지 모두 내려놓고, 가능한 모든 것을 받아들인 뒤 미지의 과정을 즐기는 거죠. 특정 연기 이론이 아니라,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바라고자 하는 최종점이에요. 연기든 삶이든, 우리는 어떤 상황에 ‘사실’에 기반해 반응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판단’을 기반으로 반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가 많아요. 이 선택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단하는 방식에 익숙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진실에서 멀어질 수도 있어요. 판단을 내려놓는 일은 분명 훈련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건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훈련해야 하는 거예요. ‘판단 줄이기’ 훈련은 연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똑같이 적용되는 일이에요.
오는 제12회 마리끌레르 영화제에서 영화 <만추>를 상영하고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지금 다시 10여 년 전의 <만추>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비록 10여 년이 지났지만, 가을이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떠올려요. 그런 걸 보면 김태용 감독님은 독특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죠. 포인트를 정확히 잡아내고요. 저도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굉장히 인터내셔널한 사람이면서도 인간관계와 인간성에 대한 감각이 매우 뛰어나서 이런 소재로도 가볍고 세련되게 깊이를 파고들 수 있어요. 제가 다국적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영화의 무게를 이해하게 됐어요.
탕웨이 배우 개인의 역사에도 큰 변화를 준 작품이기도 하죠.
그럼요.(웃음) 사람들이 트렌치코트를 보면 <만추>를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저를 연결 지어주더라고요. <만추>의 트렌치코트는 가을의 상징이 된 것 같아요. 또 이 영화를 통해 한국 관객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기에, 이주익 프로듀서님과 김태용 감독님께 감사해요.
마무리할까요. 탕웨이 배우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발견해내는 사람이라고 느껴집니다. 최근 가장 반짝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며칠 전 엄마를 모시고 북경명성벽유적공원(北京 明城墙遗址公园)에 살구꽃을 보러 갔어요. 석양 아래 두꺼운 성벽 위에 서 있으니, 성벽 밖 만개한 살구꽃이 있는 현대 세계와 고대가 교차되는 느낌이 들었죠. 엄마가 석양 속 살구꽃을 휴대폰으로 끊임없이 찍는 모습을 보다가 엄마를 안았을 때 그 행복이 저까지 전해졌어요. 동시에 엄마 눈가의 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했어요. 앞으로 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사랑해드려야겠다고요.
그날로부터 완연한 봄이 왔습니다. 좋아하는 봄의 순간을 묘사한다면요?
봄은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오는 계절이에요. 며칠 전 베이징 집 근처를 두 시간 반 동안 산책했는데, 강가에 갈대가 돋아나고, 물새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제비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더라고요. 연하고 부드러운 느릅나무 열매도 발견했고, 커다란 민들레도 찾아냈어요. 너무 신나서 가족들과 함께 ‘봄의 맛’을 느껴보려고 집에 가져가기도 했어요. 겨울이 끝난 뒤 나뭇가지를 예쁘게 손질하고, 소나무 아래 두껍게 쌓인 솔잎을 헤치면, 그 아래서 몰래 자라난 새싹들을 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도 참 좋아요. 너무 기뻐요.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