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명이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 그저 좋아하기 때문에.

저지 톱 Miu Miu × Petit Bateau, 쇼츠와 팬츠 모두 Miu Miu.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금주를 부탁해> <광장> <고백의 역사>까지. 올 한 해 공명 배우가 참여한 작품이 네 편이나 공개돼요. 정말 열심히 달려 왔구나 싶었어요.

2025년이 시작되고 나서 매일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고 있어요. 오랫동안 기다려온 노력의 결과물이 드디어 하나씩 세상에 나오다니.(웃음) 열심히 준비한 작품을 많은 분에게 보여드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그게 배우라는 직업의 큰 장점이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올해 처음 공개된 작품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에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던 ‘희완’(김민하) 앞에 저승사자가 되어 등장한 첫사랑 ‘람우’를 연기했어요. 이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려 했어요?

기존의 저승사자 이미지와 다르게 어떻게 하면 더 밝고 순수하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람우가 나타났을 때, 희완은 이미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거든요. “넌 7일 뒤에 죽을 거야”라고 말하는 저승사자가 밝은 에너지를 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죠. 무기력한 희완에게서 어떻게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현장에서도 밝은 태도를 잃지 않으려 했고요. 판타지 요소가 있지만 두 청춘의 재회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했어요.

드라마 <금주를 부탁해>도 곧 방영 예정이에요. 애주가 ‘금주’(최수영)가 술을 증오하는 첫사랑 ‘의준’과 재회해 금주에 도전하는 여정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작품인데요. 이쯤 되니 공명 배우의 첫사랑이 궁금해집니다.(웃음)

음… 사람마다 첫사랑의 기준이 다르잖아요. 제게 첫사랑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처음 품었던, 짝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초등학생 때 다니던 태권도장에 남몰래 좋아하던 누나가 있었거든요. 저보다 태권도도 잘하고 멋있어 보여서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이후로 제 첫사랑의 기준도 계속 변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풋풋한 감정이야말로 가장 첫사랑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기도 하고요.(웃음)

두 작품 연속으로 첫사랑의 주인공이 된 소감이 어때요? 잘 어울리는 것 같은가요?(웃음)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조금은?(일동 웃음) 아유, 농담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이런 역할…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두자.(웃음) 제 이미지가 밝고 긍정적인 편인 것 같은데, 그런 면 때문에 제안하시는 게 아닐까 싶었고요. 두 작품을 통해 더 많은 분에게 제가 첫사랑의 이미지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웃음)

문득 궁금해지네요. 첫사랑 같은 맑고 순수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 한 적은 없어요?

물론 있죠. 하지만 저는 제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그것에 가장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류승룡 선배님이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이준익 감독님에게 들은 말을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제가 그 말을 참 좋아하거든요. “땅은 깊게 팔수록 맑은 물이 나온다. 손톱이 아프고 피가 나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더 깊게 파라.” 제가 연기하는 배역이 맑고 순수한, 이전과 비슷한 이미지이더라도 모두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 인물을 더 깊이 연구하다 보면 그 안에서도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믿고요. 그래서 빨리 이미지 변신을 해야겠다거나,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어요. 늘 현재에 충실한 채로 더 멀리 바라보며 하나씩 해나가자고 생각하거든요.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마주한 순간에 집중하는 자신만의 방법도 있어요?

미래의 성공 여부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면, ‘못 하면 어떡하지’ 걱정하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지잖아요. 저는 늘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왔어요. 작품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이 임했다면 결과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으려 했고요.

후회의 기준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맞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도 후회는 어쩔 수 없이 뒤따라오더라고요.(웃음)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부족하다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그럼 그 후회는 그냥 받아들여요. 다음번에 더 노력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지 톱 Miu Miu × Petit Bateau.
니트 톱과 데님 팬츠 모두 Valentino, 플랫 슈즈와 삭스, 네크리스 모두 Valentino Garavani,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Burberry, 쇼츠 J.W.Anderson by G.street 494, 스터드 디테일 로퍼 Bally, 링 Chopard, 셔츠, 타이,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2024년의 목표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해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한 것 같아요?

200%요.(웃음) 한 해를 아주 알차게 썼습니다. 그래서 뿌듯한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커요. 아무리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한들 상황에 따라 못 할 수도 있잖아요. 타이밍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요. 끊임없이 작품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요. 목표대로 열심히 해낸 저 스스로에게도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고요.(웃음)

쉬지 않고 달려온 소감은 어때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촬영에 체력적으로 지치는 순간도 많았어요.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막상 작품이 공개되니까 그 고단했던 순간이 사르르 잊히더라고요. 작품이 공개되는 걸 보면서 다시 열심히 달릴 힘을 얻고 있어요.

커다란 좋음 앞에서 힘들었던 순간이 희미해진 셈이네요. “좋아하는 게 생기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속 람우의 대사예요. 공명 배우가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요?

식상한 답일 수도 있지만, 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데뷔 12년 차인데요. 돌이켜보면 지금껏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달려왔거든요. 근데 그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 제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저는 늘 좋아하는 걸 하라고 말해요.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어도 너무 바빠서 지치거나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 때면 그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잖아요.

음… 그런데 그 흔들리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저 역시 너무 힘들 땐 그 마음이 휘청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걸 딛고 일어나야 좋아하는 마음이 더 단단해지더라고요. 그러니 지친 마음을 억지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고요. 저도 물렁물렁해지다 다시 단단해지기를 반복하고 있거든요.(웃음)

최근 한 인터뷰에서 30대가 되어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건 “배우로서 더해갈 깊이”라고 했어요. 그 깊이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고, 저 역시 방법을 찾는 중이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요. 제 생각엔 결국 경험인 것 같아요. 작품 안에서 연기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고,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다른 작품을 통해 나와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겠죠. 한 개인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결국 다양한 경험을 내 것으로 온전히 흡수하고, 그걸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쉬지 않고 다작해온 것도 그 경험의 일환이겠네요.

맞아요. 20대 때는 무엇이든 다 도전하며 배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배우마다 경험을 쌓아가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전 계속 많은 작품 안에서 새롭게 경험하며 배우려 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마라톤에 여러 차례 비유했어요. 그 생각엔 여전히 변함없어요?

한 번도 변한 적 없어요. 제 페이스를 유지한 채,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래도록 해나가고 싶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 1년은 쉬지 않고 작품에 임하는 게 제 페이스였던 거겠죠. 군대 복무 기간 동안 다짐했거든요. 제대하면 군대에서 보낸 1년 6개월의 기간만큼은 쉬지 않고 달릴 거라고요. 앞으로도 제 호흡에 맞게 하나하나 도전하며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배우라는 긴 마라톤의 여정에서 잃지 않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착한 마음이요.(웃음) 감사함을 아는 것, 순간의 재미를 느낄 줄 아는 것, 그리고 행복한 걸 행복하다고 느끼고 또 말할 수 있는 것. 그걸 저는 착한 마음이라 생각하거든요. 이 마음을 잃지 않으면 이 마라톤에서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재킷과 세라믹 장식이 달린 모자 Dior Men, 셔츠 Bode,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링 모두 Chopard.
니트 톱 Valentino, 네크리스 모두 Valentino Garavani,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티셔츠와 트라우저, 레더 셔츠 모두 Bottega Ven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