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언어와 고유한 이야기가 음악이 되는 순간.
보다 넓게, 더욱 깊이 닿는 이무진의 의도.

이무진 뱁새 싱어송라이터 LeeMujin
재킷 Ferragamo, 링 Tom Wood,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5월 27일, 디지털 싱글 ‘뱁새’를 선보입니다. 신곡 공개를 앞둔 마음이 어떤가요?

기대가 굉장히 큽니다. ‘뱁새’의 주요 주제가 상실감이고, 그걸 숨기려 하지 않은 곡이라는 점에서요. 제 대표곡으로 꼽히는 ‘신호등’이 “힘들지만 그래도 즐거워”라는 감정을 녹여냈다면, ‘뱁새’는 “난 힘들어”라고 대놓고 이야기해요. 이걸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선하게 느낄지 궁금해요.

상실감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계기가 있었나요?

이런 주제를 노래하고 싶은 갈증이 늘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이야기에 큰 감동을 느꼈고, 힘겨움을 인정하면서 괴로워하는 심경을 담은 곡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거든요.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걸 나만의 스타일로 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냥 밝을 수는 없으니 어두운 주제의 음악도 필요하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걸 제가 한다는 게…(웃음) 예상치 못한 사람이잖아요.

그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줬을 때, 너무 의아해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저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에 크게 구애받진 않아요. ‘지난 EP에 수록한 ‘청춘만화’를 많이 좋아해줬으니 이번에도 그런 곡을 만들어야겠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죠. 이번 싱글 발매를 앞두고 ‘뱁새’를 포함해 세 곡을 회사에 전했어요. 사람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법한 풋풋하고 설레는 곡도 있었는데, ‘뱁새’가 채택됐더라고요. 아마 이 정도의 변화는 괜찮겠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발표한 곡 모두 제가 원하는 방향이었지만, 늘 외면해온 방향을 쳐다보는 계기가 된 듯해 기쁩니다.

이전과 방향성이 다른 음악을 만들면서 ‘뱁새’라는 소재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외되는 대상이 하나 필요했는데, 때마침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이 생각났어요. 뱁새는 다리가 짧아서 귀여운 매력을 지녔지만, 귀엽게 보이기보다 황새처럼 긴 다리로 빨리 걷고 싶어 해요. 같은 새인데도 황새를 부러워하면서 쫓아가지만, 결국 그 자리에 남게 되는 뱁새의 이야기를 이번 곡에 담았어요.

뱁새의 이야기를 다룬 곡을 통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포기하게 되는 순간’을 그렸다고 들었어요. 끝까지 노력하다 포기하기에 이르는 마음을 짐작해본다면 어떨 것 같아요?

최선을 판단하는 기준이 저한테는 ‘몇 번이나 포기할 뻔했나?’거든요. 포기하려 했다면 진작 그만둘 수 있었을 테고,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을 만큼 좋아하니까 계속 부딪혀 봤을 테고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른데. 전 아직은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이 크게 없었지만, 만약 그런 순간을 겪게 된다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먼저 떠오를 듯해요. 포기라는 절벽 앞에 수차례 섰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은 그때마다 나를 잡아주던 존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거든요. 그런데 내가 결국 포기해버리면, 그 존재도 더 이상 곁에 없을 거잖아요. 그럼 가슴이 많이 아플 것 같아요. 아, 얘기하다 보니까 마음이 힘들어요.(웃음)

넘어가겠습니다.(웃음) 작업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한데,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동양 록 음악에 대한 향수를 담고 싶어서 보컬 라인과 기타 리프가 이중주를 하듯 어우러지며 전개되는 구간들을 넣어봤어요. 보컬의 가사 전달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가요에서는 거의 시도하지 않는 방식이죠. 종종 협업하는 친구한테 ‘서구권 음악의 느낌이 나지 않는 기타 리프’를 부탁했는데, 영국이나 미국의 옛 밴드 음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온 터라 어려워하더라고요.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리프를 짜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잘 나온 것 같아요.

이무진 뱁새 싱어송라이터 LeeMujin
재킷, 폴로셔츠, 팬츠 모두 Burberry,
슈즈, 벨트, 브레이슬릿, 키 체인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대의 흐름에 바싹 붙어 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높이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시대와 때때로 멀어지더라도 저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음악을 시작한 이유를, 첫 모습을 간직한 채 같은 자리에서 오래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고 있나요?

영감은 여전히 일상의 사물이나 현상 등에서 많이 얻어요. 원래는 음악의 전체 테마를 주로 떠올렸는데, 최근엔 각 요소에 대한 영감을 따로 얻는 편이에요. 강물을 보면서 도약이 세지 않은 멜로디를 생각하거나, 무더운 날 달리는 분위기를 닮은 리듬을 연상하는 식으로요.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대단한 작곡가들은 원하면 바로 영감을 얻기도 한다던데, 전 아직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요.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영감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형’이라는 말을 예전부터 자주 해왔죠.

제 노래를 들으면 지금의 톤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다듬은 흔적이 느껴질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보컬에 그렇게까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요. 실력을 많이 다져놨으니 소리 내는 법을 까먹지 않는 이상 예전만큼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연습할 때뿐만 아니라 공연하면서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왔어요. 관객에게 어떻게 감동을 줘야 하는지는 현장을 다니면서 비로소 알 수 있더라고요. 대중 앞에 서길 잘했다 싶어요.

대중 앞에 서면서 무엇을 가장 크게 얻었나요?

어릴 땐 제 음악이 들리는 양보다 질을 더 생각했어요. 한 사람이 깊이 이해해주는 게 여러 명이 출퇴근하며 흘려듣는 것보다 의미 있다고 믿은 거죠. 수익 면에서는 후자가 큰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도 그 믿음이 깨진 건 아니에요. 다만 다수가 듣고 싶어 하는 곡을 만드는 일도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걸 대중 앞에 서고 나서야 안 거죠.

중요한 깨달음이네요. 음악을 만드는 걸 직업으로 삼으면 청자의 폭을 배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이전의 신념이 고집으로 굳어지기 전에, 타협을 거치지 않고도 청자의 수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니 운이 좋았죠. 그러지 않았다면 스물여섯 살이 된 지금쯤 헤매고 있었을 테니까요. 제 주변 친구들은 지금 그 과정을 마주하는데, 그래서 자주 얘기해줘요. “얕게 듣더라도 다수가 네 음악을 찾아야 다음 곡을 만들 여력이 생기고, 그게 음악을 깊이 이해해줄 소수한테도 닿는 방법이다”라고요.

웹 예능 토크쇼 <리무진 서비스>를 통해서도 대중에게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무려 3년 넘게 MC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얼굴이 알려진 20대 뮤지션 중 전공자의 관점에서 보컬을 분석할 수 있는 사람에 가깝다는 점이 제가 MC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이유인 듯해요. 게스트들과 보컬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좋아해주는 분이 꽤 있더라고요. 노래의 기술적 측면을 중시하는 분들이 출연하면 배우는 점도 많아요.

이전 인터뷰를 살펴보니 노래할 때 직감보다 이론에 더 비중을 두는 것처럼 느껴져요. 실제로 어떤가요?

맞아요. 물론 직감으로 노래하는 분들이 전하는 감동도 있어요. 음악은 마음으로 느끼는 거니까요. 하지만 전 감정보다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뼈대를 중시하는 거죠. 그런데 보컬이 아닌 창작을 대할 땐 관점이 좀 달라요. 작업할 때는 수년 전부터 ‘듣기 편한 음악’을 추구해왔어요.

이무진 뱁새 싱어송라이터 LeeMujin
코트, 팬츠, 부츠 모두 McQueen,
슬리브리스 톱, 벨트, 이어 커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진 씨에게 듣기 편한 음악이란 어떤 음악인가요?

자극이 적은 곡만이 듣기 편한 음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힙합이나 메탈 장르에도 들었을 때 편안하게 느껴지는 곡이 있거든요. 튀는 구석 없이, 잘 짜인 곡들이죠. 뾰족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면 얼마나 완벽한 뾰족함을 갖췄는가, 둥글게 흘러가는 곡을 원했다면 얼마큼 유려한 굴곡을 이루는가. 이런 식의 음악적 짜임새가 저한테는 더 중요해요.

4년 전 마리끌레르와 만났을 때 한 말이 떠오르네요. “대중성이라는 집합 안에 듣기 편한 음악이 있다”라고 말했어요.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짜임새 있는 음악을 찾아 듣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한 라디오 방송을 위해 만든 로고송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잖아요. 그럼 그 곡도 짜임새 있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아, 엄청이요.(웃음) 그 짧은 시간 안에 짜임새를 느끼게 하는 게 진짜 어려운데. 운이 좋았어요.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곡이거든요. 그건 제 포트폴리오에 꼭 넣어야 해요.

무진 씨의 음악은 짜임새가 있어 듣기 편하지만, 부르기는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그렇더라고요. 부르기 힘든 음악을 자꾸 만들어서 죄송하고(웃음), 가끔은 무대에 선 저 자신에게도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음악 취향상 급박한 분위기와 격양된 감정을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노트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무진의 음악을 멋지게 부르는 분들이 있죠.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의도가 느껴지지 않으면 좀 속상하고, 자기만의 의도를 가지고 부를 땐 감사해요. 겸허해지기도 하고요. 그 감정도 존중하게 되더라고요. 안지영 씨가 부른 ‘에피소드’를 들어봤는데, 저와 다른 의도가 확 느껴져서 고마웠던 기억이 있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바뀌면 가사가 같은 곡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무진 씨 음악의 가사들을 읽어봤는데, 어려운 표현이 거의 없는데도 쉽게 쓴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가요? 아마 일상적인 단어들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늘 쓰는 말들 속에 어떤 메시지를 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사하는 편이거든요. ‘어떻게’보다 ‘무엇을’ 말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어려운 비유 등을 통해 창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음악도 멋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건 좋은 가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쉬운 단어들로 쓴 가사도 해석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다만 처음 들었을 때 일단 이해되고, 계속 듣다 보면 ‘이런 뜻도 있었구나!’ 하게 된다는 게 차이점이죠. 어릴 때 읽은 <어린 왕자>를 성인이 되어 다시 펼치면 다르게 와닿는 것처럼요.

이무진 뱁새 싱어송라이터 LeeMujin
재킷과 팬츠 모두 Ferragamo, 링 Tom Wood,
슬리브리스 톱, 벨트, 네크리스, 브레이슬릿,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남들이 안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제 안의 사랑, 이별, 청춘을 말할 거예요.
‘이무진이 생각한 건 이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고 싶어요.”

‘이야기’를 중시한다고 말한 적이 있죠. 이야기가 글이 아닌 음악으로 전달될 때 어떤 장점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시와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독자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에요. 글의 분위기를 저마다 자유롭게 파악하는 거죠. 그런데 음악 감상은 눈뿐만 아니라 귀로도 함께 하는 경험이잖아요. 그래서 음악으로 만든 이야기에는 창작자의 의도를 보다 명확히 담아낼 수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음악을 이야기하는 매체로 택하게 된 것 같아요. 듣는 사람에게 해석을 온전히 맡기기보다 제 의도를 전하는 걸 중시하거든요.

하지만 뮤지션의 의도만을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자유로운 해석과 명확한 의도 전달 사이를 섬세히 조율해야 할 듯해요.

그것도 맞죠. 적당한 선을 지켜야 해요. 그 경계를 살짝만 넘어가도 리스너와의 신뢰가 깨질 테니까요. 아직까지는 넘을락 말락 하면서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신뢰를 유지하면서 음악의 세계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죠? 최근 한 인터뷰에서 “튀진 않아도 숨 쉬듯 음악을 계속 하는 사람이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네. 물론 저도 사람이니 야망이 마음 깊숙한 곳에 크게 발현되지 않은 상태로 있겠죠. 시대의 흐름에 바싹 붙어 가면 시간이 지날수록 높이 올라갈 수 있어요. ‘이무진은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계속 들려준다’는 명예도 얻을 테고요. 그런데 시대와 때때로 멀어지더라도 저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음악을 시작한 이유를, 첫 모습을 간직한 채 같은 자리에서 오래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렇게 나아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나요?

남들이 안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음악을 하다 보면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라 사람들이 안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일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 두려움에 지질하게 굴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제 안의 사랑, 이별, 청춘을 말할 거예요. ‘이무진이 생각한 건 이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고 싶어요.

그럼 본인 생각과 감정의 지평을 확장해갈 필요가 있겠네요.

그렇죠. 요즘 최진영 작가님의 <구의 증명>을 읽고 있어요. 시체를 먹는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좀 힘든데요. 그럼에도 참아가면서 보고 있습니다. 사랑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요.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나중에 ‘뱁새’가 공개됐을 때 저답지 않다면서 마냥 미워하는 분들이 생길 수 있으니 미리 보험을 들어 놓는 거예요. “이무진답지 않은 거 했네”라는 말을 들을 마음의 준비도 해놨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곧 찾아 듣게 될 겁니다. 좋은 곡이라서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