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고 사랑이 없어질까요? 죽어도 그 사랑이 진짜라면 영원할 거라고 믿어줘야 하잖아요.”
드라마 <우리영화> 중에서 희고 어두운 방, 환한 빛 아래 생의 모서리에서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배우 남궁민과 전여빈이 그려낼 굳건한 사랑에 대하여.
남궁민 셔츠와 팬츠, 레더 코트 모두 Bottega Veneta,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남궁민 재킷과 팬츠 모두 Loewe,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분이 오래간만에 만난 건가요? 무척 반가워하시는 것 같아서요.
남궁민(이하 민) 2주밖에 안 됐는데요.(웃음) 현장에서도 항상 보고 싶은 후배였어요. 보고 싶은 연기자, 파트너.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는 이제 누가 전여빈 배우를 싫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진짜 나쁜 사람인 거야. 그 사람은 악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전여빈 배우 신봉자가 됐어요. 혹시라도 누가 여빈이 욕을 했다? 그럼 멱살을.(일동 웃음)
전여빈(이하 여빈) 그만큼 선배님과 이질감 없이 마음이 잘 통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마음을 누구에게 어떻게 주느냐는 사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잖아요. 선배님이 아주 넓은 마음으로 모든 걸 받아주셔서.
민 여빈 배우가 그동안 해온 작품들이 있잖아요. 그중에 여빈 배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죠.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원래 인간 자체가 그렇게 착한, 좋은 사람, 천연기념물.
너무 동의합니다.
여빈 저는 <우리영화> 촬영을 다 마치고 <착한 여자 부세미>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데요. 선배님이랑 떨어진 지 2주밖에 안 됐잖아요. 근데 선배님이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우리영화> 현장에 함께 다녔던 스태프들은 선배님을 다 알거든요. 저희가 메이크업 도구에 선배님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놨어요. 엄청 귀여운 스티커인데 그거 볼 때마다 저희끼리 다 같이 ‘선배님 보고 싶다!’ 하거든요. 그러다 어제는 못 참겠더라고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친구 다 같이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하면서 영상을 찍어서 보내드렸거든요. 그러니까 선배님이 막 웃으시더라고요.
근데 저도 오늘 그 매력을 조금 본 것 같아요. 유튜브 콘텐츠 촬영 전에 테이블을 한번 쓱 보면서 ‘근데 이거는 어린 친구들이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앉으시더니….
여빈 그렇죠? 제일 잘하시죠?
아니, 진짜 깜짝 놀랐어요.
민 잘하지는 않았지.
여빈 아니에요. 저는 정석대로 했다면, 선배님은 알 수 없는 변주를 막 보여주시면서.
민 나는 눈에서 하트가 계속 뿅뿅 나왔어. 어쩌면 이 아이는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하면서. 심성이 고와서 연기도 이렇게 하는구나 싶었어요. <우리영화>라는 드라마 자체가 여자 주인공의 진정성 없이는 절대로 잘 나올 수 없는 작품인데, 여빈 배우가 진심을 다해 연기해줘서 저는 너무 행복했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이 아주 오랫동안 좋은 드라마로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아주 뜻깊은 작품이었어요.
여빈 저는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좋은 배우가 되길 꿈꾸던 후배 중 한 명이잖아요. 작품을 함께 하기 전에 저희가 딱 한 번 밥 먹은 것밖에 없어요. 그러고 나서 전체 리딩을 하는데 정말 잘하고 싶은 거예요. 연기가 노력과 연습에 얼마나 비례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만큼은 최대치로 하고 싶었어요. 선배님 연기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준비를 엄청 많이 하고 전체 리딩 날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리가 바들바들하는 거예요. 결국 너무 떨려서 그날 제가 잘 못했거든요. 근데 선배님이 그날부터 막 제 기를 한없이 살려주는 거죠. 칭찬과 격려와 애정을 막 주시는 거예요. 선배님은 본인에게 아주 철저하고 혹독하거든요. 자기 관리도, 연기도 자로 잰 듯이 딱딱, 크리스털 같은 사람이라 본인에게는 세울 수 있는 가장 높은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저를 대할 때만큼은 너무나 관대하게 품어주셨어요. 저만 그렇게 챙겨주시는 게 아니에요. 다른 배우들에게도 줄 수 있는 정수, 핵심이 되는 칭찬을 해주세요. 그게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민 아니야. 업계 모든 사람이 다 알 거예요. 저는 워낙 고지식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빈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잘해서 잘했다고 한 거예요. 못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안 보이는 데서 “조금 잘하면 안 되겠니?”(일동 웃음) 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여빈 오늘 화보 촬영할 걸 생각하면서 어제 ‘아싸, 내일 선배님 본다. 선배님 보면 내 얼굴이 밝아지겠구나’ 그런 말을 했어요.
민 갑자기 드는 생각이 이 인터뷰는 질문이 없고 만담만 있는.(일동 웃음) 질문을 하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



이어링과 링 모두 Tom Wood.



질문 없이도 두 분이 사전 질문지에 있는 물음에 다 답을 하셨어요.(웃음) 첫 방송이 정확히 한 달 남았죠. 어떻게 <우리영화>에 함께하기로 결심했나요? 시한부 삶을 다룬 멜로드라마라는, 작품의 큰 틀만 보면 배우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민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이 작품을 해야 할지 고민이 조금 있었어요. 이전에 호흡을 맞췄던 이정흠 감독님이 연출을 맡으셨는데, 감독님에 대한 믿음은 확실히 있었어요. 감독님을 만나 어떻게 찍고, 표현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하루이틀 더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작품을 거절한다면 배우로서 좀 창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만큼 작품이 좋았어요. 그동안 저는 늘 서사가 치밀하고 정확하게 짜여 있는, 지루하지 않은 대본을 선택해왔는데,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살짝 슴슴할 수 있거든요. 감독님은 이를 두고 평양냉면 같은 드라마라고 표현했어요.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웃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여자 주인공인 ‘이다음’이라는 사람의 스토리가 중요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일단 내가 여빈 배우에게 최대한 맞춰보자. 맞춰준다는 게 나는 잘하니까 이 사 람을 어떻게 해줘보자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욕심 없이 접근했어요.
여빈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는 이미 선배님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은 상태였어요. 대본을 읽지 않았는데도 무척 궁금했죠. 어떤 이야기이기에 남궁민 선배님이 선택하셨을까 하고요. 대본을 읽은 후에는 남궁민 선배님이 만들어갈 ‘이제하’를 만나고 싶고, 이정흠 감독님이 연출하는 작품이라면 완전히 다른 결의 멜로드라마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꼭 감당해보고 싶을 만큼 큰 매력을 지닌 이다음이라는 역할도 선택에 큰 영향을 줬어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대비될 정도로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더라고요. 제하는 다음이와 다르게 어떤 뜨거움을 품고는 있지만 겉으로 볼 때는 차갑고 정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을 연기한 민 선배님과 완전히 다른, 뜻밖의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 이 작품으로 전여빈 배우의 역대 최고 연기를 보게 될 거라 자신합니다. 저 나름 보는 눈이 있고, 연기에 대해 냉정하게 보는 편이거든요. 7부 완성본까지 여러 번 봤는데 연기를 너무 잘했어요. 이전에도 잘하는 배우였지만 ‘아니, 이 정도 클래스였어?’ 하며 보시게 될 거예요. 기대해주세요.
여빈 감사합니다. 저는 이미 배가 부릅니다. 배가 터졌습니다.(일동 웃음)
두 분이 함께한 장면 중 기대되는 신이 있나요?
민 편집본을 보다 보면 막 뛰쳐나가고 싶은 장면들이 있어요. 막상 연기 한 저는 부끄러운 거예요. 근데 같이 편집본을 본 여자분은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멜로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정통 멜로만 있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도 나름대로 늘 연구하고 어떤 작품이 세련된지 찾아가는 사람인 지라. 정통 멜로라 하면 로맨스나 유머 없이 그저 절절하기만 한 신파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영화>는 절대 그런 느낌이 아니에요.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드라마예요. 멜로 그 이상의 것이 분명히 있으니 6월 13일에 확인해보세요.
여빈 극 후반부에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원래 좀 울보라서 슬픈 거 봐도 잘 울고, 기뻐도 잘 울어요. 울다가도 종종 이 감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연기로는 만들어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근데 그날은 선배님과 마주 보는데 갑자기 <우리영화>로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얼마나 선배님을 존경하고 애정했는지 그 마음들이 뒤섞이며 파도가 돼 일렁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 서로 통하고 있다는 게 저는 느껴졌어요.
민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저는 그 장면에서 일부러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다음이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나는 거예요. “잠깐만, 다음아, 우리 최대한 절제하자. 지금 오버하면 안 돼” 하면서 “감독님, 나 왜 눈물이 나지” 했어요.
여빈 근데 그날 선배님이 운 것도 아니거든요. 근데 선배님의 표정과 눈을 보고 감독님이 울었어요.
민 그니까. 자기가 울었어.(일동 웃음) 저는 연기를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연기라는 것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영화>에서 감정 신들을 최대한 연기하지 않으려 노력한 건 다음 씨 덕분이죠. 여빈 배우가 아니었으면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매 장면 리액션만 하다가 집에 갔어요. 다음이의 눈빛이 너무 진심이었어요.
여빈 사람들에게 그랬어요. <우리영화>를 보면서 이제하라는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라고요. 제하라는 캐릭터는 감정의 기복 없이 자칫 그저 하드해 보이기만 할 수 있거든요. 한데 남궁민이라는 아주 섬세한 사람이 그 캐릭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사람에게 연민을 품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선배님이 이제하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셨어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캐릭터라는 틀 안에 배우의 영혼이 들어가서 하나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로서 그런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많았어요.

남궁민 셔츠와 팬츠, 레더 코트 모두 Bottega Veneta.

전여빈 이너와 재킷 모두 McQueen, 이어링 Tom Wood.
이 작품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이 순간을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어떤가요?
민 고지식한 말 같지만, 사랑의 의미를 보다 순수하고 고결하게 바라보게 된다고 할까요. 이다음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이제하의 마음이… 잠시만요. 다음이를 생각하니까 또 울컥하게 되는데. (잠시 정적) 이다음 덕분에 진짜 이게 사랑이구나. 그 사람이 내 옆에 없어도, 함께 있었던 추억만으로도 살아가는 게 사랑이구나 하고 배웠어요.
여빈 다음이라는 친구가 자신의 생애에 다가온 이 사랑을 온몸으로, 모든 세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거든요. 다음이는 사랑이 곧 생명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생명의 끝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지금이 전부인 사람이고요. 다음이 덕분에 요즘 제 마음이 명료해졌어요. 무엇이든 사랑하는 지금에 초점을 맞추자, 아닌 것은 조금 흐리게 보며 지내자, 지금 이 순간이 언제까지 갈지 기약할 수 없는 게 삶이니까 보다 단순해지기로 했어요.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고, 열정을 쏟아 붓고, 감사하고 이를 표현하면서도 먼 다음은 약속하지 않기로 했어요.
마지막으로 이 작품으로 시청자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민 이 작품은 섬세한 연출과 신선한 대본, 훌륭한 편집과 좋은 카메라와 조명 등 모든 스태프들의 노력 하나하나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에요. 이들의 120%의 노력 덕분에 슴슴한데도 계속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과 힘을 갖게 됐어요. 근래 보기 어려운 작품이에요. 그 새로움을 나누고 싶어요.
여빈 시간이 유한하잖아요. 우리는 이 순간을 사는 존재들이니까 지금 이곳이 아닌 다음 세계에 대해서는 막연히 생각만 할 뿐이고요. 이 작품을 보는 분들은 그 막연함에 대한 용기와 위로,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아가 다음이는 삶에 제약이 있지만 자기가 가진 마음의 힘으로 날개 돋친 듯 살아가는 친구거든요. 각자 마음 안에 있는 사랑에 지지를 보내는 작품이에요. 함께 보는 분들과 이런 사랑과 위안, 응원을 함께 느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