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자리가 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깊은 우정과 신뢰를 나눠온
이소영 대표와 배우 한예리.
이제 두 사람이 각자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다.
그 시작을 앞두고 마주 앉았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송가로 채워진 한 시간 남짓의 대화.

한예리 드레스 Sportmax, 슈즈 Jimmy Choo, 이어링 1064studio.
이소영 드레스 Khaite, 이어링 1064studio, 타이츠와 스틸레토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저는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하고,
한국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신기하게도 이 아름다운 한국 여성 배우들과 함께할 때 영광스러운 순간을 많이 맞이했어요.

이소영 대표

미니드레스 Khaite.
이어링 Ahni, 재킷, 톱, 팬츠, 타이츠,
슬링백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5년간 함께해왔죠. 이례적일 만큼 긴 시간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이소영 사람엔터테인먼트 대표(이하 이소영) 서로가 인식하는 처음의 순간이 다를 거예요. 제가 예리 배우를 처음 본 건 오래전 <씨네21>의 신인 배우를 소개하는 기획에서였어요. 눈이 아주 예쁜 아이가 머리에 꽃을 달고서 정면을 바라보는 포트레이트 한 장이 실린 걸 봤는데, 그 모습에 제가 완전히 반했어요. 알아보니 우리 회사 소속 배우와 영화를 찍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현장에 가서 예리 배우를 지켜봤어요. 근데 그때만 해도 예리 배우가 연기를 본격적으로 할 마음이 없다고 하길래 아쉽지만 잊고 지냈죠.

한예리 배우(이하 한예리) 그 뒤 이종필 감독님의 소개로 다시 만났잖아요.

이소영 이종필 감독이 꼭 소개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고 해서 이름도 못 듣고 만났는데, 그 자리에 예리 배우가 있었어요. 얼마나 신이 났는지. 그날 카페에서 두 시간 넘게 이야기했나? 제가 어필을 엄청 했죠.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다. 왜 안 되냐’ 하면서.

한예리 근데 한편으로 저는 ‘왜 모든 게 다 된다고만 하시지?’ 싶은 거예요. 사기꾼인가?(일동 웃음)

이소영 예리 배우가 하면 정말 다 될 것 같았어요. 당시 예리 배우가 가진 가장 큰 질문이 ‘무용과 연기를 같이 할 수 있는가’ 하는 거였어요. 저는 연기를 위해서라도 무용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심지어 무용을 한다니까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같이 나누는 대화가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강한 확신을 갖고 이야기했죠. 근데 그러고 나서도 또 거절하는 거예요.(일동 웃음)

한예리 그 전에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무용과 연기를 함께 할 수 없다고 했거든요. 저 역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데 자신이 없었고요. 근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왜 이 사람만 모든 게 된다고만 할까 싶었던 거죠. 제 부모님보다 더 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셨어요. 좋은 얼굴이고 필요한 얼굴이라고. 예쁘다고 해주시니까. 우리 엄마, 아빠도 그렇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데.(웃음) 무용만 하고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던 때니까 겁부터 났던 거죠.

한예리 배우가 지닌 무엇이 그렇게 확신을 주던가요? 포트레이트 속 아름다움 너머 그 이상을 보았던 것이지요?

이소영 저는 광고와 마케팅을 한 사람이라 사진 속에 담기는 찰나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찍는 사진도 마찬가지죠. 찍히는 내가 내 의도를 담을 때보다 타인이 보는 순간을 제대로 보면 그 안에 진짜가 존재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굉장히 용감한 결정을 하긴 했지만.(웃음) 그때 예리 배우의 얼굴에서 굉장한 확신을 얻었어요. 이 진실된 눈동자에 진심을 담아 연기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을까 하는 확신이요.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대단한 아티스트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한예리 반대로 저는 무언가에 대해 확신하고 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거든요. 1년 정도 지나서 그동안 연기한 작품을 CD에 담아 드렸어요. 그때는 외려 대표님이 ‘아니야, 이제 괜찮아’ 하고.(웃음)

이소영 1년이 지난 뒤 연락이 왔어요. 저는 진심을 다했는데, 두 번이나 거절당한 터라 상처 입은 상태였죠. 상대방이 나를 알아봐주는 시간도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어필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로 인해 불편을 주는 것도 싫고요. 그리고 불편한 관계가 되면 다음이 없으니까 웬만하면 제안을 잘 안 하는 사람인데 거절당한 거예요. 그래서 한동안 그 CD를 열어보지 않았어요. 연기를 보면 또 반할 것 같아서. 안 넘어갈 거야 하면서 애써 안 봤는데, 그것도 차마 두 달을 넘기진 못했어요. CD를 열었는데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적어뒀더라고요. 그 편지들을 보고, 작품을 보니 사랑이 다시 올라오는 거예요.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그 CD를 열어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열어서 이 대장정이 시작된 거예요.

한예리 저도 시간이 걸릴 뿐 한 번 시작하기로 하면 끝을 보는 타입이라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웃음)

지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꾼 꿈이 있나요? 그 꿈에 얼마나 가까워진 것 같은가요?

이소영 꿈이라면 사랑받을 수 있고, 가치를 가장 잘 알아봐줄 사람들이 있는, 가장 빛나는 자리에 한예리 배우가 서길 바랐어요. 사람의 가치라는 것이 어느 자리에서는 굉장히 쓸모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잖아요. 무엇보다 아티스트는 곁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이 어디일지 늘 고민했어요. 예리 배우는 굉장히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꽃 같은 사람이라 영화 현장에서 사랑받는 순간에 가장 아름답더라고요. 우리는 저마다 자기 속도가 있잖아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리 배우는 무엇이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한 땀 한 땀. 사람을 보는 데도, 어느 상황에 익숙해지는 데도 일정 시간이 걸려요. 느리지만 그만큼 단단한 사람이에요. 그 성향과 속도에 가장 잘 맞는 곳이 영화계였어요. 거기에 있으면 예리 배우가 가장 아름답게 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둘이 손잡고 우리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다녔어요. 특히 영화 속에서 선배님들이 이 아이를 너무나 잘 알아보고 예뻐하셨으니까.

한예리 어떤 큰 목표나 꿈보다는 함께 바란 방향은 있었어요. 그 방향성은 ‘감사’였던 것 같아요. 영화제나 영화와 관련한 일에 초대받을 때 매번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그때의 기회가 이런 결과로 돌아 왔다는 것에 대해 대표님이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우리가 이런 도움을 받고 있고, 가까운 때에 이를 갚아야 한다 하면서. 제가 영화계에서 어떻게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셨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존재 가치를 찾아주셨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저를 귀하게 쓸 수 있게끔 만들어주셨죠.

현장이나 작품을 보는 시각을 넘어 서로 삶에 대한 비전이나 태도도 일정 부분 동의하기 때문에 이토록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떤가요?

한예리 앞서 한 대답과 이어지는데요. 가장 많이 배운 게 ‘감사’예요. 초창기에 대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돈을 벌고, 삼시세끼 먹고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요. 저 역시 아주 큰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무용을 한 터라 그 말이 더 크게 와닿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누가 도와주셨는지, 그 도움을 왜 잊으면 안 되는지, 어떻게 갚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항상 이야기 하셨어요. 내가 잘나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구나, 누군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구나 하고 많이 배웠어요.

이소영 둘 다 하루하루의 과정을 결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가장 큰 책임은 고용주로서 고용인들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는 일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잘 맞은 건 오늘 하루가 있음에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게 놀랍고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함께한 일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웠고요. 특정한 결과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지만 꿈꾼 것들이 현실이 되었죠.

두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동료로서 의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왔다고 생각하나요?

한예리 서로 숨기는 게 없었어요. 거짓 없이 최대한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살아가다 보면 인생에서 이렇게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지려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성인이 되면 결국 본인이 다 짊어지고 가는 것임을 깨닫고요. 나에게 진심을 다하고 이를 행하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이 사람한테는 숨기는 게 없어야 된다, 비밀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보다 내 인생을 더 악착같이 챙겨주는 사람이니까요. 누군가는 회사로서 당연히 리스크 관리를 하는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신인 배우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한 말이 ‘숨기지 마라, 회사가 알아야지 너를 책임질 수 있다’였어요. ‘네 인생에 무슨 일이 있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이 사람이 모르게 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소영 그래서 솔직하지 않은 아티스트를 보면 항상 겁이 나요. 예리 배우와 나는 솔직했고 용감했던 것 같아요. 사회생활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저는 가정이 있고, 지켜야 할 1순위가 따로 있기 때문에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생활을 해야만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호받는 방법은 윤리적이고 솔직한 거라고 믿었어요. 적어도 우리끼리는 서로 신뢰하자고 했죠. 그렇게 큰 신뢰를 주고받았기에 예리 배우에 관해서는 조금도 겁나거나 무섭지 않았어요. 내 진심을 말로 전하기보다 내가 극한의 성실을 다하다 보면 아티스트들이 나를 믿어줄 거라 생각했고, 가장 믿어준 사람이 예리 배우예요. 우리가 오래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솔직함과 믿음,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했던 것. 그 세 가지라고 봐요.

과거 이소영 대표의 한 인터뷰에 한예리 배우가 이런 코멘트를 덧붙인 적이 있어요. “무엇보다 그녀는 사랑이 큰 사람이다. 사람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나는 그 사랑을 듬뿍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랑을 주고받은 것 같은가요?

한예리 대표님이 일을 철저히 하는 편이라 어떤 사람들은 잔정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아주 크고 많은 사랑을 지닌 사람이에요. 삶에 대한 의욕도 에너지도 강한데, 이런 긍정적인 기운을 저에게 줘요. 어떤 시점에는 배우가 스스로를 믿기 어려운 순간도 오거든요. 지금 잘 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때마다 늘 북돋워줬어요. 지금 잘하고 있어, 충분히 잘 가고 있어. 예쁘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니까.(웃음) 다른 사람들은 주변 눈치를 보고 말을 아끼기도 하는데, 대표님만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한 시간, 두 시간씩 ‘내 새끼 너무 예쁘지 않아요?’ 하고 계속 이야기하거든요.

오늘 촬영 중에도 예리 배우를 두고 여러 번 ‘아기 새’ 같다고 표현했죠.(웃음)

한예리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요.(웃음) 이렇게 풍부한 사랑을 거침없이 받으면 누구나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 사랑을 흠뻑 받고, 배부르게 먹고, 잘 자랐어요.

이소영 예리 배우가 예순 살이 되고 일흔 살이 돼도 저한테는 아기 새일 거예요. 시작을 그렇게 했고, 그렇게 만났기 때문에.

한예리 재킷 Re Rhee, 이어링 Ahni.
이소영 이어링 Ahni, 트렌치코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서로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대하는 사이이기 때문에요.
무엇보다 이 업에 여성이 그다지 많지 않잖아요. 우리가 함께해야 해요.

한예리 배우

여성 동료이기 때문에 각별하게 느끼는 순간들도 있나요?

한예리 저마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시기들이 있잖아요. 이 사람이 지금 힘들겠구나 하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서로 공유한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마음 쓰는 걸 모를 수가 없잖아요. 슬픔을 나누면서 보다 밝고 좋은 곳으로 가기도 했는데, 그게 여성 대표여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엄청나게 많은 일이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 싶거든요. 근데 둘이서 지지고 볶고, 속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음 날 대표님은 탁탁 털어내고 일하러 가요. 대표님의 건강한 부분 중 하나죠. 진짜 멋지다, 대단하다, 본받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이렇게 치열하게 살 수가 없어요.

이소영 여성으로서 우리의 연대는 서로가 가진 강함 속 예민함과 섬세함 덕분에 만들어진 것 같아요. 한예리 배우는 외유내강 그 자체예요. 부드러움 속 강함에서 발현되는 연대의 힘이 저를 버티게 한 것 같아요. 저는 여성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하고, 한국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신기하게도 이 아름다운 한국 여성 배우들과 함께할 때 영광스러운 순간을 많이 맞이했어요.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조용히 품고 있던 꿈들이 다 실현되었어요. 선댄스 영화제가 꿈이었어요. 우리가 선택한 영화로 오스카를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고, 그 무대에 서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이었거든요. 그러니 예리 배우와 <미나리>로 처음 선댄스 영화제와 오스카 시상식에 갔 을 때, 저로선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던 일들이 이뤄진 거예요. 돌이켜보면 이렇게 시야를 넓게, 멀리 보며 함께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모두 여성 배우들이에요. 여성 연대의 힘을, 그 뿌리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가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 보고, 만나고 싶어서 각자의 길을 존중하기로 한 거죠.

이제 긴 호흡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 텐데요. 서로에 대해 어떤 바람을 품고 있나요?

한예리 대표님이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어요. 대표님 인생에서 남을 걱정하면서 산 시간이 너무 길어요.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기보다 본인을 위해 치열하게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문득 제게 전화해서 ‘이번에 이거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 내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잖아’ 하며 기뻐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요. 지금의 일이 대표님의 큰 행복임을 알지만, 사실 어느 순간에도 마음 놓고 편하게 좋아하지 못하셨어요. 어느 한 배우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동시에 다른 배우는 잘 안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연말 시상식 기간에도 가슴앓이를 해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데 속상하더라고요. 충분히 신나고 즐겨도 되는데 그걸 못하니까. 이제는 대표님이 많은 걸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이소영 예리 배우는 잘 버티는 사람이거든요. 이제 뿌리가 단단해졌으니까 그만 버텨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케터로서 이름값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인데, 어쩌다 회사 이름을 ‘사람’이라고 지어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을 때가 있어요. 사람이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가 있어요. 그 가운데 가장 사람다운 배우가 한예리라고 생각해요. 긴 시간 사람이라는 이름을 사람답게 만드는 여정을 함께하면서 본인도 이 이름이 무거웠을 거예요. 한예리 배우가 이렇게 헤어질 결심을 하는 데는 진짜 큰 결심이 필요했을 거고요. 하지만 이건 이소영이라는 한 사람과 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엔터테인먼트와 헤어지는 거라고 봐요. 사람엔터테인먼트 는 이제 생명력이 생겼어요. 한예리 배우가 사람엔터테인먼트에 해줄 만큼 해줬고, 너무 잘 버텨줬어요. 이렇게 예리 배우가 한 발짝 떼어주니까 덕분에 저도 회사와 저를 조금 더 분리할 수 있게 됐어요. 예리 배우에게 마지막 사랑 표현을 한다면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엔터는 괜찮고, 나도 괜찮다고요. 우리의 이별은 축하할 일이라고 등 두드려주고 싶어요. 살아가는 데 결혼식도, 입학식도 좋지만 저는 졸업식하고 장례식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헤어지는 과정이 좀 성숙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와 가족같이 살았다는 게 이렇게 좋은 선물로 돌아올 수도 있구나 싶어요.

한예리 단순하게 멀리서 지금 상황만 보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혹은 아주 단순하게는 진짜 헤어지는 것 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가 각자의 필드에서 서로의 성장을 돕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겠어요. 제가 대표님을 사랑하는 만큼 무슨 일이 있을 때 기꺼이 함께하고, 대표님이 저를 사랑하는 만큼 물심양면 얼마나 도와주시겠어요. 그렇게 서로를 더 큰 성장으로 이끄는 거잖아요. 이제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서로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대하는 사이이기 때문에요. 무엇보다 이 업에 여성이 그다지 많지 않잖아요. 우리가 함께해야 해요.

이소영 저는 예리 배우가 새로운 곳에서 자기만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다 보면 또 다른 커다란 숲을 만들 것 같아요. 그런 기대가 있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예리라는 배우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예술이 삶에 주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깊은 배우예요. 한예리라는 배우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제가 그 뿌리를 오래전부터 봤기 때문에 기대가 커요. 그래서 우리의 헤어짐을 이 기회를 통해 널리 알리고 싶은 거예요. 앞으로의 시간은 한예리 배우가 사람엔터테인먼트에서 받은 사랑을 다시 뿌리는 과정이 될 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