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나나. 서늘하고 투명한 그 파란 빛.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개봉을 2주 앞두고 만났다. 곧 3년 만의 극장 영화로 관객을 만나게 될 텐데 요즘 어떤 기분인가?
기대되는 만큼 긴장도 크다. ‘이 영화가 무조건 잘 되야 한다’ 이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맴돈다.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는 새로운 시도의 영화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던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나?
소재가 신선했고, 실사영화로 만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프로젝트라고 느꼈다. 그 시작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역할로만 봤을 때는 이전부터 액션 연기에 대한 환상과 욕심이 컸다. 판타지 장르 안에 액션 요소를 넣었을 때 관객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넓어지고 커지겠지 싶어 도전했다.
스턴트 없이 모든 액션 연기를 혼자 해냈다는 사실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간 품었던 액션에 대한 환상과 욕심이 발현한 것이겠지.
맞다. ‘정희원’이라는 역할은 액션으로 보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액션을 해보고 싶어서, 잘해내고 싶어서 이 역할을 맡았으니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의존하고 싶진 않았던 거다. 무엇보다 내가 다 해내야만 이 영화가 완성됐을 때 자신 있게 이 연기를 위해 내가 이렇게 노력했고, 결국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액션을 단순히 타격의 희열, 오락적 즐거움이 아니라 연기의 중요한 한 표현으로서 접근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없었나?
액션은 곧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일 텐데, 정희원이라는 인물 자체가 감정을 담아 액션 연기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다 보면 저절로 표정과 호흡, 뱉는 소리들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이 과정에서 배우로서 신기한 경험을 꽤 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액션 연기를 많이 준비했고, 실전에서 난도 높은 액션을 소화해봤으니 다음에는 판타지 요소를 뺀, 오직 나의 힘만으로 작동하는 온전한 액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다.
큰 희열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
액션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 현장의 누구 하나 빠짐없이 힘과 마음을 모아 합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그 순간을 만나기까지 굉장히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액션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장면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친해질 계기가 많고, 자연스럽게 팀워크도 다져진다. 이 영화는 액션 난도가 매우 높고, 테이크 길이도 상당히 긴 장면이 꽤 있다. 과연 가능할까 싶던 고난도 장면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 집중해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하는 마음을 다 같이 품었다. 그렇게 모든 합이 맞았을 때,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고 뿌듯한 순간들이 있었다.
감독이 오케이 컷을 냈을 때 ‘한 번 더’를 제안하는 유형의 배우인가?
대체로 그렇다.(일동 웃음) 연기할 때만큼은 그런 것 같다. 유일하게 좋아하고,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빠져 있는 대상이 연기다. 연기 외에 다른 부분에는 대체로 너그럽다. 연기 외적인 일들은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기는 편인데, 연기할 때는 이상하게 그게 안 된다. 100% 만족할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내가 표현하고자 한 것들이 적어도 내 기준치까지는 나올 때까지 해보려는 편이다. 상황이나 여건상 안 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아쉬움이나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늘 그래왔다.
유튜브 채널 등 다른 매체에서 본 나나는 쿨한 태도가 지배적인데, 의외다. 연기에서만큼은 질척이게 되는 건가?(웃음)
(두 손을 모으면서) “감독님, 괜찮으세요? 저 한 번만 더” 하는 거다.(일동 웃음) 지금까지 연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촬영 현장에서 만나는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이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이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데뷔작인 드라마 <굿와이프> 때부터 나나의 연기를 보아왔는데, 사실 신기했다. 첫 작품부터 굉장히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를 하지 않았나. 그저 타고난 것이 많은 배우라고 느꼈는데, 그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굿와이프>는 오디션만 네다섯 번 볼 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었다. 쉽게 되는 게 어디 있겠나. 연기에 한해서만큼은 더더욱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배우라는 삶을 선택한 이후로 세상이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나? 배우라는 일은 결국 삶과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지 않나.
맞다. 역할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 내가 갖지 못한, 나라면 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하는 인물을 마주할 때 가 있다. 지금까지 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좋은 캐릭터들을 주로 만났다. 그러다 보니 그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행하고, 말하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 ‘저게 맞는데, 저렇게 해야 하는 건데’, ‘나도 저렇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행하게 되는 거다. 연기를 하기 이전보다 정의로워 지고, 자신감도 커졌다. 원래는 소심하고, 남 눈치도 많이 보고, 말수도 적은 편이었는데, 연기를 하면서부터 변화한 거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정의의 사도가 되기도 하고,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오지랖을 부릴 때도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유롭지 않은 부분도 꽤 있지 않나. 무리한 상황을 보거나 겪었을 때, 나는 연예인이니까 지나쳐야지 하는 생각이 이제는 덜 든다. 그래서 가끔 앞뒤 없이 나서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구설에 오를 위험이 있지만… 글쎄, 모르겠다. 이미 성격이 이렇게 변한 터라. 그래도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자제하겠지만.(웃음)
현시점에서 대중이 나나를 사랑하는 이유도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닐까. 특히 여성 팬이 많다. 아마도 모든 것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나나의 모습에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바라봐준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것일 테니까.
그간 생각과 태도가 또렷한 여성들을 연기해왔다. 배우 나나가 생각하는 멋진 여성, 강한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
여유 있는 사람. 어떤 면에서든. 내가 그리 여유가 많은 편이 아니었고, 가까운 지인 중에도 여유 있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한데 아주 간혹 놀라우리만치 여유로운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여유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품이 넉넉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어떤 경험을 했길래, 어떤 삶의 순간에 어떻게 생각을 바꾸었기에 그런 태도와 사고를 지닐 수 있게 됐는지 궁금하다. 단지 물질적인 면에서 혹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 않나. 뭐든 하다 보면 더 하고 싶고, 더 갖고 싶은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니까. 나 스스로 여유 있게 행동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 여유 있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더 커진다.
사실 여유는 나를 대할 때 가장 갖기 어렵지 않나?
맞다. 타인을 향한 비난 등 부정적인 행동이나 표현은 결국 내가 여유가 없을 때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궁금한 거다.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기에 혹은 어떤 경험을 했기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까? 결국 생각의 한 끗 차이이지 않나. 어떠한 생각의 전환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런 궁금증을 품고 생각을 거듭하는 과정이 곧 내게는 자아 성찰의 시간이 된다. 동시에 실수하는 내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마무리할까. 배우로서 그리고 한 명의 여성으로서 지금의 나나를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
지금의 나나는 데뷔 때로 돌아간 나나인 것 같다. 마음가짐도 그렇고, 무엇보다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과 바람이 생겼다. 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계획과 열정이 어마어마하지 않나. 시작의 순간에 느꼈던 이 일에 대한 재미와 신기함, 궁금증, 기대 같은 것들은 데뷔 때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고, 관성도 생긴다. 힘든 일이 쌓이다 보면 굉장히 소중하고 즐거운 일임에도 그 감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기도 한다. 한데 지금의 나는 데뷔 때로 돌아간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생겼고, 하고 있다. 거기서 오는 행복감이 크다.
하고 싶은 일과 하게 될 일 중 하나가 곧 발표할 싱글 앨범이지 않나.
너무 좋다. 사실 음악에 대해서는 많이 포기했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게 가수 활동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던 차에 환경이 바뀌면서 좋은 파트너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이 꾹 참아왔고, 도전하지 못하는, 자신감 없던 나를 밖으로 꺼내주었다.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심어주고, 실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은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새로운 것, 하고 싶었던 것을 계속 찾아가고 있고, 할 수 있고, 아직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더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아무리 바쁘고, 잠을 조금 못 자고, 몸이 지치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나나의 엄청 좋은 순간에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그 말을 듣는데 내 마음까지 새삼 설렌다.
그게 느껴지나? 맞다. 정말,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