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선 실패해볼 수밖에 없다. 배우 옹성우는 이제 실패할지언정 가보는 사람이 됐다.

레드 레더 재킷 Recto, 티셔츠 Valentino, 팬츠 Courrèges, 블랙 앵클부츠 Christian Louboutin,
벨트 Insilence, 링 Enfants Riches Déprimés.
티셔츠 Valentino.
스웨이드 재킷 Versace.

오늘로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3회 차 공연을 마쳤어요. 오늘 공연은 어땠어요?
오늘은 하… (말을 멈추고 탄식을 내뱉더니) 중간에 실수 가 한 번 있었어요.

어떻게 회복했어요?
최대한 실수의 순간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려고 했어요. ‘어떡하지, 다음에 또 실수하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뒤까지 무너져버릴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연습 과정에서 이미 수 없이 겪은 일이라 멘털을 잘 잡고 2막까지 갈 수 있었어요. 어휴, 그런데 곱씹을수록 아쉽긴 하네요. 더 깔끔하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고요.

저는 첫 공연을 봤어요. 그날은 어땠어요? 공연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할 때요, 무척 개운해 보였어요.
개운했죠. 너무 개운하고 후련하고. 신나고 행복하고…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어요. 시작할 때는 너무너무 떨렸거든요. 저 손 바들바들 떠는 거 보였어요?

2층에서 봤는데 전혀 몰랐어요.
가까이서 본 분들은 아마 느꼈을 거예요. 첫 장면에서 깃털 펜을 탁 들고 얘기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리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다행히 상대 배우들과 호흡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극에 빠져서 마지막까지 달려간 것 같아요.

끝났을 때 관객의 박수와 환호 소리 들었어요?
들었죠. 아무래도 첫 공연이라 제 팬들이 많이 와주셔서 환호성이 더 크긴 했던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관객의 온도가 있잖아요. ‘꽤 뜨겁다, 그래도 괜찮게 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퇴장하면서 배우들 모두가 너무 기분 좋다, 벅차다는 얘기를 나눴거든요.

그런데 어떤 연유로 연극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제대 후 어떤 작품을 할지 궁금했는데, 예상 범주에 연극이라는 매체가 들어 있진 않았거든요.
늘 해보고 싶긴 했어요. 계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대 위에서 얻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좀 겁나더라고요. 연극이라는 매체 자체도 낯선데, 게다가 셰익스피어라는 엄청난 인물을 연기해야 하고, 16세기 런던이 배경인 이야기이고.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장벽으로 느껴진 거죠. 작품 자체는 더없이 아름다운 데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실은 ‘못 하겠다’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냈더니, 누나가 “네가 너무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은데?”라는 거예요. 좀 겁 없이 편하고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는데, 늘 제 연기에서 아쉬운 게 그런 점이었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바로 연출가를 만났고, 대화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어떤 얘기를 나눴어요?
저라는 사람이 이렇고 저렇고, 지금 이런 고민들을 안고 있고, 아직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얘기를 쭉 했는데, 연출가가 “지금 그런 모습이 우리 극 안에서 셰익스피어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과 되게 비슷해요. 그렇게 하시면 돼요”라는 거예요. 그 말에 ‘해보자’ 결심한 거죠.

나와 닮은 인물에게서 용기를 얻어 출발한 셈이네요.
맞아요. 극 안에서 셰익스피어가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들이 저와 멀지 않다고 느 꼈어요. 사람들은 그를 완성형 아티스트로 기억하잖아요.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매우 폭넓고 내밀하게 파고드는 작가로요. 그런데 이 연극에서 표현하는 셰익스피어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단 말이죠. 그래서 한껏 불안해하고 흔들려요. 그 점을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순간에 윌 셰익스피어라는 캐릭터와 가까워졌음을 체감하나요?
마지막 부분에 여왕이 등장해 어떤 말을 하고 떠나잖아요.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힘이 좍 풀려요. 1막부터 2막까지 고뇌하다 혼란스러워하다 들떴다가 무너지던 모든 순간을 거친 후 뭔가 탁 놓아지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요. 지금까지 극적으로 오간 모든 감정은 남아 있는 채로요. 모르겠어요. 그 에너지가 무척 신기해요.

레더 재킷 Amiri, 데님 셔츠 AllSaints.
베스트, 재킷, 팬츠 모두 McQueen, 레이어드한 벨트 MMIC, 링 Enfants Riches Déprimés.
베스트, 재킷, 팬츠 모두 McQueen, 레이어드한 벨트 MMIC, 링 Enfants Riches Déprimés

이미 연극이라는 매체와 이 작품에 푹 빠져든 것 같아요. 못 하겠다며 걱정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요.(웃음)
(웃음) 일단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차곡차곡 쌓은 에너지가 끝내 어떤 순간에 확 분출되는 과정이 너무 신기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 감정 신이 있는 날은 촬영장에 가는 내내 불안하거든요. ‘감정이 생각한 대로 안 나오면 어떡하지, 어떻게 해결하지, 촬영을 오늘 끝내야 하는데’ 하는 거죠. 연극할 때도 물론 불안감이 존재하지만, 첫 신부터 쭉 이어나가면서 울고 웃고 뛰어다니면서 땀도 뻘뻘 흘리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연히 올라오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묘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발견한 점이 있는데요. 저는 실패를 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늘 긴장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라는 게 실패의 경험을 축적하는 일 같더라고요. 연습실에서 매일 하는 일이 실패하는 거예요. 그럼 배우들과 모여서 해결하고, 안 되면 연출가와 의논하고, 그리고 또 실패해요. 그렇게 하고 또 하면서 완성해가는데, 그 경험이 되게 귀중하구나 싶더라고요.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계속 틀리니까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던데요. 실패를 두려워하던 내가 이렇게 해볼까 하고 웃으면서 던져보게 되는 거죠. ‘실패할지언정’이라는 마인드가 생겨요. 그런 과정을 겪을 수 있어서 무척 감사했어요.

이제는 조금 가뿐해졌나요? 시도의 두려움으로부터, 첫날의 떨림으로부터요.
극한의 두려움은 완화되었는데 그렇다고 아예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이제 괜찮네 싶다가도 첫 신에서 걸어 나가는 순간에 묵직한 공기가 훅 몰려오는 것 같아요. 그 긴장감은 앞으로도 들 것 같고, 또 계속 들었으면 해요. 긴장감이 이후의 몰입에 좋은 동력이 되는 것 같거든요. 내가 불안할 때 나오는 감정들이 편안할 때보다 오히려 연기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 싶어요.

오히려 긴장을 잘 이용하는 셈이네요.
그래야 해요, 하하. 원체 긴장을 많이 해서 그걸 유리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거든요.

반응은 잘 찾아서 보는 편인가요? 호평이 꽤 많던데요. 자신감을 얻게 된 말이 있었나요?
뻔할 수도 있지만 ‘잘한다’ 그 한마디에 되게 기뻤어요. 저만큼이나 저를 오랫동안 응원해준 분들도 엄청 떨었을 거예요. 이 사람이 잘했으면 좋겠고, 인정받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마음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그 칭찬을 들었을 때 제가 이들을 안심하게 해줬구나 싶더라고요. 자신감까진 아니고 딱 그 정도예요.

제대 후 첫 작품이에요. 약 2년간의 공백기를 지나 연기를 다시 하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와 지금, 연기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다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다르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아요. 군대 다녀와서 ‘바깥세상 너무 좋아(웃음), 새로운 시작이야, 이제 작품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서 전속력으로 달려갈 줄 알았는데 상황상 그러지 못했어요. 그렇게 계속 갈망하다가 연극을 하게 됐는데, 막상 하니까 예전과 비슷한 온도로 연기를 대하게 되더라고요. 연기하는 순간이 좋고, 그래서 더 갈망이 커졌나 싶긴 한데 그렇다고 가속페달을 밟지는 못하겠어요. 돌이켜보면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킬 만큼 긴 시간은 아니지 않나 싶어요. 그땐 영원할 것 같았는데 말이죠.(웃음) 아무튼 동일해요. 지금의 기회에 충실하려는 마음이요.

연극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치르고 난 다음은 어떨까요? 다시 안정을 택하게 될 것 같나요? 아니면 해본 김에 더 가볼 것 같나요?
또 안정적으로 하려고 아등바등하겠죠. 그렇지만 살면서 실패를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연극을 하면서 실패는 필연적인 경험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좋은 기회가 있으면 발은 담가볼 것 같아요.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생각하기보다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일도 공연이 있어요? 있어요.
내일은 저녁 공연을 해요.

오늘 촬영 끝나면 자정이 될 것 같은데요?
저는 괜찮아요. 공연 마치면 온 힘을 다 썼다 싶으면서도 기묘하게 또 에너지가 들끓어요. 우리 연극에도 그런 대사가 있잖아요. 신비로운 일이에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