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저 한 장면을 위해 한 인간이 영혼을 다 쏟아부었구나, 갈아 넣었구나’ 싶은 장면들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이겠지.” 김지운 감독이 영화로부터 배운 영화.



“하루 12시간 동안 극도의 몰입 속에 있다가 ‘컷!’ 하는 순간에만 잠깐 풀리는,
그 긴장과 이완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내게는 영화 현장, 영화를 만드는 순간뿐인 거다.
그래서 못 벗어나는구나 싶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감독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한국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부산국제영화제가 함께하지 않았나. 1996년 첫 회가 열린 이후 10년, 15년 동안 역동적인 한국 영화가 많이 등장했고, 당시 해외에서 한국 영화의 강점으로 역동성, 다양성, 작품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가 그걸 전투적으로 밀고 나갔다. 또 한편으로는 인큐베이터가 돼 한국 영화가 잘 배양될 수 있는 환경과 자양분을 만들기도 했다. 그 좋은 시기에 나 역시 영화제와 함께 컸다. 그런 의미에서 동지 같고, 전우 같다.
부국제와의 추억을 꼽자면 어떤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너무 많다. 촬영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 흔히 부산영화제를 ‘영화의 바다’라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술의 바다’라고도 부르지 않았나. 광복동, 남포동에서 영화제 행사를 할 당시에는 그 일대 식당과 술집마다 영화인들이 가득 들어차서 거리를 걷기가 힘들 정도 였다. 내가 술을 잘 못함에도 그 안에서 영화인들과 어울리고, ‘저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할 법한 해외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다. 모든 이들이 평상과 돗자리에서 어우러졌던 풍경이 떠오른다. 마치 영화의 장날 같은, 축제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또 하나의 기억은 2008년이었다. 새벽이 다 돼 밤늦게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해운대 바닷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쫙 서 있는 거다. ‘이 새벽에도 행사를 하나’ 하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다음 날 영화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관객과의 대화(GV) 행사를 위한 줄이었다.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밤새 줄을 선 것이다. 한국 영화계에도 이렇게 열정적이고 뜨거운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기억이 있다. ‘앞으로 정신 차려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확실히 멋진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벨 에포크였지.
올해 CHANEL × BIFF ASIAN FILM ACADEMY의 교장직을 맡으며 부산과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어떤 마음으로 함께하게 되었나?
거창한 이유나 사명감이 있다기보다는 몇 해 전부터 제안받았는데 촬영 중이라 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올해는 시기가 잘 맞았다. 나도 이제 중견을 넘어 원로 감독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다 보니, 그간 내가 받아온 것들, 그리고 영화 안에서 쌓아온 것들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탤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게 됐다.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는 뺏어 먹을 것만 좇지 않고, 나눠 줄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가벼운 마음에 비해 ‘아카데미’, ‘교장’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오지는 않았나?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주입하는 일은 아닐 것 같다. 펠로우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가? 나는 영화를 독학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그저 ‘영화를 하며 살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시작한 거다. 아무 연고나 도움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혼자 이곳에 뛰어들었다. 그 동기도 조금 우스웠지만, 그저 시나리오를 썼고 첫 시나리오가 덜컥 당선이 된 거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 나름대로 고난이나 절망의 시간도 있었지만, 거기서 깨달은 것들이 분명히 있다. 영화를 하며 살아온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내가 무언가를 준다기보다는 후배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취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와중에도 공들여 잘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영화란 결국 자기만의 시선과 언어를 기어코 찾아가는 작업이라는 것. 노출이나 감도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이 맡으면 되고, 감독은 오직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비전과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생각을 차분히 상식적인 언어로 공유하면 현장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내 구현해준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태도로 배워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영화로부터 영화를 배웠다는 말로 들린다. 지금 떠오르는 큰 배움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영화는 종합예술이자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하나의 원형 비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지 않나. 영화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각자의 버튼을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눌러야만 작동하는 시스템 같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타이밍을 놓치거나 실수를 하면 결과물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도 삐걱거리는 상황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다. 한데 현장의 모든 사람이 타인의 실수를 감싸주고 독려하는 풍경을 보며 내가 배운 것이 있다. 영화는 다 같이 가야 하는 것이구나, 뛰어난 몇몇의 성취가 아니라 서로 부족한 것을 메우며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영화구나 하고. 누군가의 작은 실수조차도 그 사람이 최선을 다한 흔적이라는 것, 결국은 하나의 결과를 이루기 위해 다 같이 애쓰는 것이 이상적인 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도 좋다는 것 역시 배웠다. 영화를 할수록 그 마음이 더 커지고 있다.
영화도 결국 타인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는 인내심이다.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난 잘못된 일에 화를 내기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내 운명이다’라고 생각하며 같이 가게 되는 마음 같은 것이 생긴다. 설사 어떤 결핍 때문에 영화가 부족하게, 혹은 모자라게 나왔다 하더라도 ‘이 또한 내 운명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영화를 하면서 갖게 된 태도 같다. 그렇게 보면 영화적 재능도 중요하지만, 감독에게는 인내도 필요한 자질인 것 같다. 내가 현장에서 화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일이 없으니까 어떤 이들은 내가 온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지독한 거다. 독하게 견디지 않으면 안 되니까.


영화 <거미집>은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제작의 고됨에 대한 영화다. 이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무엇일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었다고 각본집에 쓴 적이 있다. 그 자문에 지금 이 순간 무엇이라 답하고 싶나?
음, <거미집>의 시작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팬데믹 당시 <거미집>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멈춘 때였고, 극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촬영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생을 다 토해 영화를 사랑하고 만들어왔는데 이렇게 끝나는구나,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매체인 영화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인가 싶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지난 시간을 복기하게 되더라. 영화를 처음 동경하던 때의 마음이 지금 내게 남아 있는지, 한 편만이라도 좋으니 영화를 만들고 싶던 그 간절함과 절박함이 아직 내게 있는지 자문하게 됐다. 그 질문들이 <거미집>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장마다 어려움을 느꼈고, 매 작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다시 현장에 서고, 다시 꿈을 꾸며 여기까지 온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팬데믹 이전부터 영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이미 절멸의 시간을 맞이했고, 팬데믹은 그저 종말의 시간을 앞당긴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맞다면 이제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죽음을 바라보듯 영화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수명을 다해가는 시기에 그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사람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거미집>은 내 방식대로 영화에 보내는 찬가이자 러브 레터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다. 물론 이후에도 어떤 영화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또 어떤 영화 안에는 여전히 영화 정신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 영화 정신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무엇일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 곧 <거미집>이다.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 정신이란 무엇인가?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있을 텐데, 내 경우에는 ‘만듦새의 윤리성’이라고 본다. 대충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이 본 세계를 반드시 기억해내려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라 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저 한 장면을 위해 한 인간이 영혼을 다 쏟아부었구나, 갈아 넣었구나’ 싶은 장면들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영화는 그런 작업이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영화란 결국 내가 세상에서 느끼는 모순들 – 나 자신에 대한 모순까지 포함해서 – 부조리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본다. 때때로 삶의 순간마다 불안할 때가 있는데, 세계의 다른 영화 속 부조리들을 함께 보면서 ‘아,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누군가도 이렇게 느끼며 살고 있고, 이를 돌파하고 극복하려 애쓰는구나’ 하며 안심할 수 있었다. ‘나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강한 용기를 얻었다. 그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영화에서 받은 것들이다.
‘좋은 영화’라는 말은 삶의 시기마다 상황마다, 변화해왔을 것 같다. 2025년 현재 김지운 감독에게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영화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또 어떤 시기에는 관객을 몰입하게 하고 시간을 망각하게 만드는, 몰아의 상태로 이끄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여긴 때도 있었다.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만드는 솜씨, 그런 재주가 돋보이는 영화가 좋은 때도 있었다. 지금은 연결 혹은 통로를 만들어내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 있을 때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연결점을 찾아주는 영화들이 있다.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 뒤 영화가 끝나도 영화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 빠져나갈 통로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에는 <브루탈리스트>가 내게 그런 영화다.
어떤 이유로 영화 안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가?
글쎄, 태어나서 단 하나 잡은 일이니 천직이라는 건데···.
중간에 도망가고 싶진 않았나?
사실 은퇴를 빨리 하고 싶었다. 영화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아마 10년쯤 하면 끝이겠거니 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선배 감독들만 봐도 그랬다. 나라고 10년 이상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스탠드>만 찍고 폼 나게 은퇴하자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됐다. ‘내가 못 벗어나는구나’ 하고. 영화를 한다는 건 나를 일종의 몰아의 상태로 이끄는 일이다. 현실에서 내가 몰아의 상태로 갈 수 있는 곳이 영화 현장밖에 없는 거다. 현실은 현실인답지 않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인간관계도 하지 않고, 웬만한 건 다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일상생활에 동반되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 내 차를 들이받으면 “보험 처리 하시죠” 하고 넘어가고, 손해 보는 일을 당해도 그냥 잊어버리는 식이다. 하루 12시간 동안 극도의 몰입 속에 있다가 ‘컷!’ 하는 순간에만 잠깐 풀리는, 그 긴장과 이완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내게는 영화 현장, 영화를 만드는 순간뿐인 거다. 그래서 못 벗어나는구나 싶다.
영화 <거미집>도 결국 사랑의 서사로 다가왔다. 감독으로서 영화의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
영화를 보며 사로잡히는 순간들이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깊은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마술적인 순간은 사람의 표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저 표정은 뭘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어떤 정서를 강력하게 전하는 표정이 있다. 그래서 한때 ‘나는 사람의 표정을 찍으려고 영화를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어떤 표정 하나가 불가사의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왜 저 표정이 공포로 다가올까? 혹은 매혹으로 다가올까? 한데 모르겠다. 내게도, 내 현장에서도 마치 자연현상처럼 예기치 않게 천둥이 치듯 맞닥뜨리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이 사람의 이 표정을 담다니’ 이런 순간이 영화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순간들로 영화를 계속 붙들고, 그 순간들을 찾으려 영화를 찍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