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 상냥하게, 그 무엇보다 따뜻하게. 영화 <린다 린다 린다>의 노래가 다시 시작되었다.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와 배우 배두나, 마에다 아키, 카시이 유우, 세키네 시오리. 20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의 아주 경쾌한 하루.

이번에 다시 보니 영화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거예요.
<린다 린다 린다>가 지닌 여백이 저에게 더 따뜻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 안에 담긴 설렘의 정서도 더 크게 느껴졌고요.

배두나 배우

‘진정한 우리로 있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고교 생활 마지막을 장식할 축제를 준비하는 밴드부에 결원이 생긴다. “송, 밴드 안 할래?” 얼떨결에 한국인 유학생 ‘송’(배두나)이 보컬로 합류하고, 네 친구는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진심으로 ‘진정한 우리’가 되어가며 공연을 맞이한다. 2006년, 눈부시게 푸르른 청춘의 영화 <린다 린다 린다>가 등장했다. 그날부터 시작된 이 영화의 여정은 좀 독특하다. 일순간 뜨겁게 불타오른 적은 없지만, 소멸한 적도 없이 아주 오래 잔잔하게 그만의 열기가 지속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색은 바래기 마련인데, <린다 린다 린다>의 푸르름은 유독 선명하게 빛을 잃지 않았다. 청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그리고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이들이 언제나 <린다 린다 린다>를 지금의 영화로 끌어다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0주년을 맞은 영화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때 모습 그대로.

아우터와 톱, 셔츠, 팬츠, 모자 모두 Label Archive, 슈즈는 본인 소장품.

영화 <린다 린다 린다>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일본과 한국에서 4K 리마스터링 버전 재개봉을 포함해 여러 행사가 이어지는 중입니다. 마치 밴드의 아시아 투어를 보는 듯해요.(웃음)

세키네 시오리 개봉 당시에는 배두나 배우가 합류해 일본에서만 프로모션을 했는데, 20주년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더 성대해진 것 같아요. 20년 만에 드디어 한국 관객을 만나는구나 싶어서 설레요.

배두나 스톤 로지스라는 영국 록 밴드가 있는데, 앨범 하나 내고 멤버끼리 싸워서 해체했거든요. 그러다 10여 년 만에 다시 뭉쳐서 공연 한 적이 있어요. 왠지 그 밴드가 생각나요. 저희도 라이브 한 번 하고 헤어졌다가 20년 만에 만나서 월드 투어를 하는 느낌이라.(웃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저희는 싸우진 않았습니다.(웃음) 아까 극장에서 사인 받으려고 포스터를 들고 기다리는 영화팬들을 만났어요. 이들 덕분에 우리 영화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구나 싶어요.

배두나 투어는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잔잔하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어요. 그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촬영해왔는데, 어딜 가든 <린다 린다 린다> 좋아했다는 고백을 몇 번씩은 듣거든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저도 해외 영화제에 갈 때마다 <린다 린다 린다>를 좋아해주는 분들을 만났어요. 가장 놀라웠던 건 2021년에 미국에서 린다린다즈(The Linda Lindas)라는 걸 밴드가 결성되었다는 소식이었고요.

배두나 맞아.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밴드가 생겼다는 거예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기타 겸 보컬이 2004년생이고, 막내인 드럼이 2010년생이라는데, 2006년에 나온 영화가 지금 세대에게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구나 싶어서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영화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 수면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린다 린다 린다>는 세대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현재의 영화로 존재해왔어요. 이 영화가 이토록 오래 계속 회자되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이 영화는 이런 이야기고, 그래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다며 강요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폼 잡으려 하지 않는 영화랄까요. 극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 안에 나도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죠. 그와 더불어 배두나 배우가 출연해준 덕분에 일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확장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까지 계산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그래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영화가 된 것 같아요.

감독님을 포함한 모든 배우가 여전히 변함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배두나 (배우들을 바라보며) 거짓말이야.(웃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인데요.

20년 전과 지금. 영화는 그대로지만, 배우는 다른 감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가 달리 보이는 부분이 있나요?

카시이 유우 솔직히 말하자면(웃음) 그때는 영화를 보지 않았어요. 무대 인사를 위해 보고 난 이후엔 감상하지 않은 거죠. 뭔가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제대로 보니, 너무 좋은 작품이더라고요.

세키네 시오리 롱테이크로 찍은 신이 많아서 촬영할 때는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내심 전개가 너무 느린데 싶었고요. 지금은 그런 의구심이 없어요. 이 모든 게 영화가 지닌 매력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배두나 어떤 영화든 개봉 당시에는 아쉬운 마음에 저 자신을 채찍질만 하게 돼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거죠. 그러다 이번에 다시 보니 영화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거예요. <린다 린다 린다>가 지닌 여백이 저에게 더 따뜻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 안에 담긴 설렘의 정서도 더 크게 느껴졌고요.

마에다 아키 20년 전에는 가볍게 지나쳤던 부분이 지금은 울컥하게 하거나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밴드 고문 선생님이 나오는 장면에서 그때는 학생의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선생님의 마음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게 돼요. 같은 작품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각자 어떤 장면을 가장 좋아하나요?

마에다 아키 너무 많은데요. 전에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옥상 신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냥 걷고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장면에서 더 여러 감정을 느끼게 돼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마지막 라이브 신을 얘기해야지.

배두나 그거 제가 말하려 했어요.(웃음)

카시이 유우 공연이 시작되기 전 송의 뒷모습을 담은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죠. 화면 비율 때문인지, 다른 연유인지 모르겠는데, 대단했어요. 영화에서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해요.

배두나 공연 당일에 밤새 연습하고선 늦잠을 자버리잖아요. 그러다 다급히 깨서 빗속을 달리다 버스 정류장에서 넷이 타타닥 섰는데, ‘노조미’(세키네 시오리)가 베이스를 두고 왔다는 말에 송이 다시 뛰어가는 장면이요. 예전에는 귀엽고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얼마나 공연을 하고 싶은지, 그 간절함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작은 부분이 모여서 영화의 설렘이 만들어진 거 구나, 정말 쓸데없는 장면이 없구나 싶더라고요.

아우터와 슈즈 모두 Label Archive, 원피스 Arts De Base,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색 포인트 스웨터와 스커트, 니삭스, 리본 장식 힐 모두 SHUSHU/TONG,
프레셔스 레이스 화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이어링과 링 모두 Chopard.

셔츠 Arts De Base, 톱 Label Archive, 스커트 AMABE, 양말과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 영화는 ‘그때의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확신이 드는 귀한 작품이에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린다 린다 린다>는 마음에 남는 대사가 쉼 없이 나오는 작품이기도 해요. 특히 초반부, 학생들이 찍은 축제 홍보 영상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영화의 주제로 읽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는 때가 아이를 그만두는 때는 아니다’, ‘진정한 우리로 있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등이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그 대사를 쓸 때는 사실 좀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10대 시절, 자의식이 과잉되어 괜히 어려운 말을 쓸 때가 있잖아요. 그런 고등학생들을 약간 놀리듯 쓴 말인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얘들이 맞는 말만 하더라고요.(웃음) 영화 후반 네 친구의 스토리와도 이어지고요.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그 애들의 말에 설득당한 것 같아요.

촬영하던 시간을 회상해보면, 네 배우가 ‘진정한 우리’로 있을 수 있던 시간은 어떤 순간이었다고 생각하나요?

배두나 라이브 연습하는 장면이요. 그때 연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진짜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무대에 서겠다는 열망이 가득했거든요.

마에다 아키 필사적이었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제가 볼 때는 옥상 신인 것 같아요. 롱테이크였는데, 그걸 일곱 번인가 여덟 번까지 다시 촬영했어요. 그때 다 같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일체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사실 저는 압박이 느껴져서 좀 무섭기도 했어요.(웃음) 테이크를 여러 번 가면서 배우와 제가 4대 1 구도로 마주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카시이 유우 나중에는 오케이가 나도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감독님을 둘러싸고 있는.(웃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때 찍은 모든 테이크가 다 좋더라고요. 사실 그때 저는 어떤 게 좋은 컷인지 구별할 수 없었던 거죠.

배두나 감독님 혹시 모니터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그것도 맞긴 한데.(웃음) 어쨌든 그 장면은 네 인물을 모두 잘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구간이라 생각해서 조금만 신경 쓰이는 게 생겨도 다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영화에 유독 ‘의미’라는 단어가 자주 나와요. 네 친구가 부르는 노래에서도, 그리고 나누는 말 속에서도요. 어떤 의미의 의미였나요?(웃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글쎄요. ‘린다린다(リンダリンダ)’에 ‘사랑의 의미를 알아주세요’라는 가사가 있긴 한데, 그에 영향을 받아 쓴 건 아니에요. 그런데 가사와 대비되는 대사가 나오긴 하네요. 의미를 알아달라고 노래하면서, “의미 따윈 없어”라고 말해버리는, 하하.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제가 10대 때 그런 말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게 의미가 있어?” “의미가 중요한가?” 이런 식의 말들을요.

배두나 저 그 대사 너무 좋아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 좋은데, 그 이유가 저라는 인간이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거든요. 항상 자기 계발을 해야 하고 발전해야 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존재 같은데, 그 말이 주는 해방감이 있더라고요. 왜 의미가 있어야 해? 없어도 돼.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이런 말들이 무척 좋은 거죠.

영화를 보며 이토록 사랑스러운 밴드의 공연이 단 한 번뿐이라 아쉽다는 생각을 했어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이후에도 밴드의 여정은 계속되었을까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저만의 해석인데요. 축제 날은 재미있었지만, 입시를 치러야 하는 학생들이니까, 공부하느라 조금씩 서먹서먹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송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고, 그날 ‘케이’(카시이 유우)가 공항까지 배웅하러 와서 ‘우리 또 만나자‘라는 말을 건네면 송은 울고.(웃음) 나머지 셋은 성인식 때 재회하게 되는 거죠. 어쨌든 ‘파란 마음 밴드’는 지속되지 않는 게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어요.

배두나 일단 저는 탈퇴해야 해요. 노래를 너무 못해.(웃음)

개봉 때 실제로 라이브 공연도 했잖아요.(웃음)

배두나 그땐 프로모션의 일환이었으니까요.(웃음) 시부야 Ax에서 개봉 기념으로 영화 상영 후에 두 곡을 불렀어요.

야마시타 노 부히로 감독 앙코르에는 응할 수 없었습니다. 연주가 가능한 곡이 두 곡뿐이라….

배두나 저는 원래 무대공포증 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하니까 너무 신나서 즐기게 되는 거예요. 그때 너무 좋았어요.

(왼쪽부터)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셔츠와 베스트, 팬츠 모두 Label Archive, 모자와 슈즈는 본인 소장품.
배두나 메탈 브로치가 돋보이는 레더 톱과 스커트, 레더 부츠 모두 Miu Miu,
콰트로 클래식 후프 이어링과 양손의 콰트로 클래식 다이아몬드 링 모두 Boucheron.
카시이 유우 아우터와 톱, 스커트 모두 Amabe, 슈즈 Label Archive,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에다 아키 원피스 Calvin Klein, 양말과 슈즈,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세키네 시오리 셔츠와 슈즈 모두 Label Archive, 원피스 Arts De Base,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무리할까요. 밴드의 무대는 끝났지만, <린다 린다 린다>의 여정은 계속 이어지는 중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영화는 어떤 순간에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작품인가요?

세키네 시오리 본업이 뮤지션이라 제게 출연작은 <린다 린다 린다> 딱 한 편이에요. 그런데도 어딜 가나 “저 그 영화 무척 좋아해요”라는 말을 들어요.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좋은가(웃음) 싶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다시 보고 싶더라고요.

마에다 아키 힘을 얻고 싶을 때요.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거든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생존 확인용.(웃음)

카시이 유우 왜 여태까지 이 작품을 안 봤나 생각해봤는데, 그때의 내가 부러웠던 것 같아요. <린다 린다 린다> 현장이 진짜 좋았거든요. 그런데 일이란 게 그때처럼 다 좋을 순 없잖아요. 영화를 보면 그때와 지금을 자꾸 비교하게 될 것 같은 거죠. 그래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정말 편 하게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라요.

배두나 공감해요. <린다 린다 린다>는 제 첫 해외 진출작이었는데, 작품도 현장도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 정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완벽함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보기 어려울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절망적인 순간에는 외려 이 영화를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영화를 꽤 오래 해왔는데 모두의 아이디어, 열정, 에너지가 하나의 형태로 완성된 경험은 제게도 몇 번 안 되는 드문 일이에요. 이 영화는 ‘그때의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확신이 드는 귀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생각이 많아질 때, 자신감이 바닥난 것 같을 때, 그래서 술에 잔뜩 취했을 때(웃음) 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