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단 단원이 되고 싶던 열한 살 아이의 꿈이 이뤄지던 날. 있지(ITZY) 류진의 오늘.



어젯밤에 태양의서커스, 쿠자(KOOZA) 공연을 봤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오늘 촬영의 콜타임이 새벽 6시였으니,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다시 공연장을 찾은 셈이네요.
맞아요. 보는 사람에 따라 여운의 농도는 다르겠지만, 멋진 공연을 보고 나면 최소 하루나 이틀은 그날의 에너지로 살게 되잖아요. 그래서 출발할 때부터 기분 좋다, 설렌다 하면서 왔어요. 제가 리액션이 큰 편이 아니라서 티는 잘 안 나겠지만, 지금 내적으로 굉장히 신난 상태예요, 헤헷.
어제 공연은 어땠어요? 제일 좋았던 퍼포먼스를 골라본다면요?
저도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 보통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에 가면 어느 정도 가늠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 장치를 통해 올라오겠구나, 지금이 환복 타이밍이겠다, 곧 클라이맥스겠다 하는 것들요. 그런데 어젠 완전히 다른 형태의 무대와 퍼포먼스라 하나도 예측이 되지않는 거예요. 오랜만에 아이처럼 ‘와~’ 하면서 온전히 즐긴 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건, 물론 입이 떡 벌어지는 곡예도 놀라웠지만, 감초 역할을 하는 ‘킹’과 ‘클라운’이 등장할 때 탁 하고 환기가 되잖아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던데요. 보셨죠?
네, 저도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무척 사랑스럽잖아요. 그래서 오늘 촬영에도 킹 역할의 단원을 초대했습니다.(웃음)
너무 좋아요.




서커스는 언제 처음 봤어요?
2011년이요. 그러잖아도 얼마 전에 아빠가 (정보를) 보내주셨는데요. 제목이… 태양의서커스, 바레카이네요. 그 공연을 보고 서커스에 푹 빠졌어요. 그날 DVD도 사고, 굿즈도 다 쓸어 왔어요.(웃음)
그날부터 서커스단 단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거고요?
어린 시절의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 현란함에 매료되어 자연스럽게 저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의 꿈이 이뤄진다면?’이라는 상상이 오늘 태양의서커스 팀과 함께한 화보의 주제였어요.
화보 기획을 전달받고 무조건 해요, 당연히 해야죠! 그랬어요. TMI이긴 한데, 제가 덕질에 성공률이 높은 편이거든요. 이번 덕질도 이런 식으로 성공하게 되는구나 싶어서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서커스 무대 위에 올라보니 무엇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던가요?
단원들의 퍼포먼스를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경탄하게 되더라고요.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듯이 거뜬하게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흥미로운 건 백스테이지에 있는 소품들이었고요. 영화든 음악이든 좋아하는 사람들은 만들어지는 과정도 궁금해 하잖아요. 비하인드 신을 본 게 가장 인상 깊어요.
무대, 관객석, 아티스트 텐트(워밍업 공간), 야외 공간까지 오늘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했는데, 역시 류진 씨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무대구나 싶었어요. 무대에 올랐을 때 뭔가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평소엔 10명 내외의 사람만 있어도 엄청 떠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신기하게 무대에 올라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관객이라는 한 단위로 느껴지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무대 위에 있을 땐 모든 움직임이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지잖아요. 누워도, 공중을 날아도요. 그래서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스위치가 켜지는 건가요? 무대 위의 류진으로서.
파이팅! 하고서 무대에 오르기 전과 후를 분리하는 건 아니고요. 이 곡은 이런 표정으로 가야지, 이 부분의 안무를 팬들이 좋아하지, 여기서 호응 유도 한번 하자, 이런 식으로 해야 할 요소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누구나 일에 몰두할 때 느껴지는 기운이 있잖아요. 그게 자신감이나 여유로 비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장 사랑하는 무대를 꼽는다면 어떤 공연이 떠올라요?
제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해요. 비가 보슬보슬 예쁘게 내리는 날이었어요. 야외 무대에서 ‘Sooo LUCKY’라는 곡을 선보였는데, 분위기에 취해 되게 행복하게 노래했던 기억이 나요. 기술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기억에 오래 남는 무대인 것 같아요.
그럼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무대는요? 완성도의 면에서.
데뷔곡으로 올랐던 음악 방송 무대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참 잘했다 싶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그 곡만 반년 넘게 연습했거든요.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나? 이 정도로 적당하게 잘 표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연습을 하고 또 했어요. 역시 시간과 노력은 들인 만큼 티가 나는 것 같아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의 답이네요.
제가 그런 편인 것 같아요. 결과가 최선을 다 한 만큼 나오지 않을 때도 많다 보니, 그 때문에 상처받는 것보다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나에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죠.



지금도 과정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죠? 새 앨범 <TUNNEL VISION>이 나오기 열흘 전 입니다. 이 인터뷰가 실린 책이 나올 무렵엔 결과를 마주하고 있을 테고요.
그래서 열렬하게 연습하는 중이에요. 재미있게 멋있게 봐주면 좋겠는데, 그때의 저는 어떤 마음일까요?
지금은 어떤 마음이에요?
양가적 감정이 드는 순간인 것 같아요. ‘얼른 보여주고 싶다’ 그러다가도 ‘아직 준비가 다 안 됐는데? 다가오지 마’ 이런 마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죠. 앨범 공개일마다 똑같이 드는 생각이 있는데요. ‘어? 이상하다, 유출된 건가? 왜 사람들이 우리 앨범을 알지?’ 이런 기시감이 드는 거예요. 매번 갑작스러워요.(웃음)
데드라인이 없다면 완성의 시점을 어떻게 판단할 것 같아요?
그 곡에 질렸을 때. 그게 열심히 준비했다는 방증이지 않나 싶어요. 제가 정할 수 있다면 그 느낌을 기준으로 삼을 것 같아요.
<TUNNEL VISION>을 준비하는 과정에선 어떤 고민이 있었어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즐거우면서도 어느 순간 ‘이게 맞나?’ 싶어 멈칫할 때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고, 연차가 쌓일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통해 좀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저희가 그간 빠르고 복잡하면서도 잘 맞춰진 안무를 선호했는데, 이번엔 템포가 좀 느린 음악이라 거기에 맞춰서 각자의 느낌을 보여줄 여유가 있는 안무를 준비했어요. 비주얼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고요. 대중이 ‘얘네 아직 뜨겁네’ 할 수 있게끔 준비했어요.
6곡 중 앨범과 동명의 곡 ‘TUNNEL VISION’을 타이틀로 정한 것 역시 새로운 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요.
맞아요. 의도적으로 다른 선택을 했어요. 아프로 비트에 힙합이 섞인 곡인데, 기존의 있지 음악에서 찾기 어려운 리듬과 흐름이 있어서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어요.





새 앨범 공개에 이어 내년 초에 세 번째 월드 투어도 시작해요. 새해의 가장 기대되는 무대 중 하나일 것 같아요.
2년 만에 하는 월드 투어라 멤버들이 벌써부터 욕심을 내고 있어요. 한창 세트리스트 짜는 중인데요. 이 곡도 넣자, 저 곡도 넣자 하면서 다들 들떠 있어요. 나중에 동선에 맞춰 새 안무가 정해지면 이 곡 넣지 말걸 그러면서 울상을 지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런데 콘서트는 아무리 준비가 고되어도 늘 그 이상의 호응과 기운을 얻기 때문에 힘들어도 가보자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좀 마법 같아요.
무엇이든 가능한 무대라면 어떤 식으로 연출해보고 싶어요?
저 그런 상상 되게 많이 해요. 꿈의 무대는 역시 서커스이기 때문에 저희가 노래 부르고 단원들이 곡예를 하는 것…을 넘어서 저희가 곡예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했다가 혼자 정리해요. 덤블링은… 하면 다칠 수도 있겠다, 패스! 링 퍼포먼스는… 노래를 할 수가 없겠구나, 안 되겠다. 이런 식이에요.(웃음) 제가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높이 올라가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태양의서커스, 쿠자 공연 중에 공중에서 외줄타기가 있긴 하던데요.(웃음)
아이고, 제가 코어 힘이 약해서요, 헤헷.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어요. 12월을 유독 좋아한다면서요. 눈, 별과 달, 크리스마스를 모두 볼 수 있어서.
그래서 겨울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12월에 좋아하는 게 몰려 있어요. 왠지 모르게 서커스도 연말과 잘 어울리지 않나요? 12월이 되면 한 번 더 보려고요.
12월 지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건요? 올해 마지막 소망을 남기며 마무리할까요.
버킷리스트가 없는 편이긴 해요. 오늘 큰 소망을 이뤄서 올해의 운은 다 썼다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12월이 가기 전에 눈은 꼭 보고 싶어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거리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나가서 한껏 눈을 맞는 것도 좋아요. 투어 준비를 하느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연습실이 지하거든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