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애써 챙기려 하지 않아도, 다정함은 어떤 형태로든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배우 김민하는 다정한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힘을 믿는다.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프린지 코트와 셔츠 드레스 모두 Dries Van Noten.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스웨이드 뷔스티에 드레스 Gabriela Hearst.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진주 장식 미니드레스 KIMHĒKIM.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스웨이드 뷔스티에 드레스 Gabriela Hearst.

드라마 <태풍상사>가 어느덧 후반부에 접어들었어요. 1997년 IMF 시기를 배경으로, 갑작스레 태풍상사 사장이 된 ‘강태풍’(이준호)이 직장 동료 ‘오미선’(김민하) 등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죠. 큰 사랑을 받으며 방영되고 있습니다.

기분이 정말 좋아요.(웃음) 배우들을 비롯한 모두가 9개월 동안 소중히 다룬 작품이거든요. 한 인물, 하나의 일화까지 진심으로 와닿기를 소망하면서 촬영했는데, 많은 분이 공감해주시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후기로 남겨주시는 그 마음이 참 예쁘게 여겨져요.

매회 방송 이후, 김민하 배우의 SNS에 비하인드 사진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촬영장 구석구석을 포착한 데서 애정이 묻어나는 듯했어요.

실제로 사랑이 가득한 현장이었어요. 사이가 얼마나 돈독했는지 헤어지고 싶지 않더라고요. 촬영이 마무리되기 일주일 전부터는 신이 끝날 때마다 울었고, 마지막 날에도 마음이 뭉클했어요. 희한한 경험이었어요. 그만큼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고요.

왜 유독 다른 현장이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위기를 함께 겪는 <태풍상사>의 인물들처럼, 이 드라마를 완성해가는 동료들도 희로애락을 깊이 나눴거든요. 같이 무너지기도 하고, 서로를 기다려주거나 힘껏 밀어주며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도 하면서요. 그래서 애틋함을 더 절실히 느낀 것 같아요.

<태풍상사>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는 건 1990년대 후반의 풍경을 세밀하게 재현한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작품을 통해 시대를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이 연기의 매력이기도 하죠?

그럼요. 인간에게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갈망이 본능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태풍상사>를 비롯한 시대극에 참여하면서 재미를 느껴왔고,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도 커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에 접근할 때면 그 시절의 감성에 대해 특히 고민하는 편이에요.

<태풍상사>의 시대적 감성이 마음에 어떻게 와닿았어요?

1990년대 후반이 엄청난 문화적 부흥기더라고요. 당시의 노래 가사나 책 등을 살펴 보니 아주 다채로웠어요. 물론 지금에 비하면 보수적인 면이 있겠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 함께’ 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지 않았나 싶고요. 개개인을 좀 더 중시하는 요즘과 달리, 하나의 원을 이뤄 으쌰으쌰 굴러가는 느낌인 거죠.

약 30년 전의 분위기가 물씬 담겨 있는데도 오늘날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시대든 고난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구체적인 상황은 때마다 다르겠지만, 극복해야 하는 힘듦은 인류가 살아온 내내 존재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겨내기 위한 힘을 키워나가는 게 인간의 끝없는 숙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맥락에서 <태풍상사>는 시대상을 다루지만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지금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태풍상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길 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시대가 아닌 개인, 작품 속 인물에게로 화제를 돌려볼게요. 김민하 배우가 연기한 미선은 태풍상사의 영업사원이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여러 어려움을 야무지게 헤쳐나가요. 미선과의 만남이 본인에게 무엇을 남겼다고 느끼나요?

미선은 태생적으로 따뜻한 사람이에요. 영리하고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삭막한 상황에서도 회사와 가정을 먼저 생 각하죠. 때로는 표현이 서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곁을 지키면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더라고요. 그런 미선을 표현하면서 ‘내가 이만큼 다정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제가 지향할 삶의 자세를 미선에게 배웠어요.

다정함은 삶에 온기를 더해주지만, 모두에게 다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음… 맞는 말 같기도 해요. 미선처럼 다정함이 타고난 성정인 경우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향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를 애써 챙기려고 하지 않아도, 다정함은 어떤 형태로든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그 사 람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품고 있다면 자연스럽게요.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다정한 태도의 발화점인 거네요.

적어도 남한테 상처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의 끈만 놓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살아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잖아요. 그 점에 경각심을 가지면서 저 나름의 방식으로 다정해지려고 노력하는 편 이에요. 이른 아침 촬영장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예쁘다고 칭찬해주고, 헤어지기 전에 꼭 포옹하는 식으로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굉장하더라고요.

맞아요. 타인과 함께하는 작은 순간이 커다란 힘으로 작용할 때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요. 그 느낌이 희미해져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붙잡으려 했고요. 사람 간의 유대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너무나 중요해요. 돌이켜보면 제가 휘청이거나 허덕일 때, 어둠 속에서 빛을 찾게끔 도와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늘 말하지만, 사랑에서 오는 힘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에코 퍼 튜브톱 드레스 Acne Studios, 레더 슬링백 Dries Van Noten,
스퀘어 프레임 네크리스 Tom Wood, 타이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에코 퍼 튜브톱 드레스 Acne Studios.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요.
그 느낌이 희미해져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붙잡으려 했고요.
사람 간의 유대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너무나 중요해요.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김민하 MinhaKim 태풍상사 TyphoonFamily 오미선 드라마
프린지 코트와 셔츠 드레스 모두 Dries Van Noten.

지난 인터뷰들을 읽어봤는데, 사랑이란 단어가 꾸준히 등장하더라고요. 사랑이 김민하의 삶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맞아요. 저는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해요. 특정한 대상이 있는, ‘하트 뿅뿅’ 하는 사랑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가족, 친구, 동물 등 여러 곳으로 파생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죠. 이러한 사랑이 저를 굳게 다져주고, 저라 는 사람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줘요. 사랑의 코어가 되게 단단한 것 같더라고요.

사랑의 힘이 가장 커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도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랑은 여러 대상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생각해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 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거죠. 그것만으로도 사랑이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고, 언제나 존재해왔어요. 시대를 초월해 돌고 도는 걸 보니, 결국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사랑은 지금껏, 나아가 앞으로도 존재할 테지만 그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김민하 배우의 연기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겠죠. “(사람들이) 언제든 다시 내 연기를 봤을 때, 어떤 형태로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떠올라요.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에요. ‘이런 사람도 있어’ 하면서 다독여주고, 외롭지 않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이요. 그래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작품 안에 촘촘히, 조금이라도 스며들어 있었으면 해요. 크게 소리 내지 않더라도, 속삭이듯이 말을 건네는 이야기에 마음이 가요.

그 덕분인지 김민하 배우가 맡았던 인물들에게서 조용한 힘이 느껴지는 듯해요. <태풍상사>의 미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영화 <하나코리아>의 ‘혜선’,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의 ‘희완’과 <파친코>의 ‘선자’ 등이요. 반응을 살펴보니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호평도 많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뿌듯하죠.(웃음) 다행이구나 싶고 안심되더라고요. ‘이 일을 잘하고 싶어!’라고 마음먹기보다 그저 작품 속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임하고 있거든요.

캐릭터 자체가 되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기울이는 점이 있다면요?

한 캐릭터를 맡는 몇 달의 기간 동안, 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계속 따라가려고 노력해요. 이와 동시에 저와 캐릭터를 분리하려고 하고요. 당연히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겠지만, 차이점은 무엇일지 고민할 필요도 있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작품 속 인물이 곧 제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그 작업이 매번 잘되진 않죠. 제가 캐릭터에게 받는 영향도 있어요. 적정한 거리를 두는 게 쉽지 않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저한테 없는 좋은 점을 습득하려고 해요.

긴 시간 함께한 캐릭터를 떠나보내는 일은 수월하던가요?

그건 참 잘합니다.(웃음) 끝났으니 보내줘야죠. 이전 캐릭터들을 돌아보면 졸업 앨범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깔깔 웃으면서 넘겨 보고, 어떻게 지내려나 궁금해하기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둥실 떠오르더라고요. 데뷔 이래로 쉼 없이 일해왔는데, 계속해서 많은 캐릭터를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사람으로서 최근에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한동안 바쁘게 지내다가 며칠 전부터 휴식기가 시작되었는데요. 다음 촬영을 위한 컨디션과 에너지를 회복하는 일이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지 탐구하는 중이에요.(웃음)

새로운 쉼의 방법을 찾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매번 똑같아요. 작품에 들어갔을 때 지키지 못했던 일과를 되찾는 거예요. 일단 잠을 푹 자고(웃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려고 해요. 책을 워낙 좋아하니 독서의 비중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어요. 촬영하느라 미처 펼치지 못한 새 책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문학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등 문화 전반과 가까운 일상을 보낸다고 들었어요.

그 덕분에 늘 영감을 얻어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이 저를 깨워주고, 도태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살게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무감각해지는 순간이 가장 두렵거든요. 제 느낌들을 놓치지 않고 정리해두기 위해 일기를 쓰기도 해요.

한 매체에 1년 가까이 기고한 칼럼을 ‘관찰일기’라고 칭했죠. 일상의 촉을 곤두세운 채 하루를 잘 살아가는 이의 사유가 담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스로 보기에는 어떤가요?

글쎄요. 제 생각엔 ‘잘 사는’ 하루가 과연 있을까 싶어요. 저마다 삶의 방식이 있고, 느끼는 바도 다를 테니 어떤 기준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도 제가 하루를 보내면서 중시하는 건 있어요.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는 것. 다른 누구도, 나 자신도 해하지 않는 것.

지난해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하면서 ‘나를 지키는 프로젝트’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본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을 이제는 터득했다고 느끼나요?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아직까지도 스스로를 할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때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반성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어요.

상처가 나더라도 아물 때까지 담담히 기다릴 수 있는 정도는 된 거네요.

그렇죠. 마음이란 파도 같은 거잖아요. 언제든 불안정해질 수 있고, 높아졌다가 이내 낮아지기도 하는. 아주 큰 파도가 밀려오면 어느 순간 휩쓸릴지도 모르죠. 제가 아주 강한, 심지 굵은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 점을 인정하고, 유의하면서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흔들림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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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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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랑은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생각해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거죠.
그것만으로도 사랑이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시대를 초월해 돌고 도는 걸 보니, 결국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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