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앨범 <Purple Heart> 부터 열두 번째 앨범 <LIFE!>까지, 늘 지금의 음악으로 시대와 공명해온 밴드. 자우림의 음악은 언제나 유효하다.

김진만 셔링 재킷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팬츠 Comme des Garçons, 신발 Junya Watanabe Man,
셔츠와 리본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윤아 레이스 네크라인 셔츠와 코트, 스커트, 브로치 모두 Freckle, 신발 Maison Margiela.
이선규 코트 Taekh, 셔츠 Moseori, 팬츠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신발 Dries Van Noten,
리본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Markgong, 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링 재킷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셔츠와 리본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셔츠, 팬츠, 신발 모두 Dries Van Noten.

새 앨범 너무 즐겁게, 한편으론 호되게(웃음) 잘 듣고 있습니다. 앨범 전체를 들은 사람들은 알 거예요. 음악에 혼난 기분.

김윤아 아하하하, 좀 그렇죠.

타이틀곡 ‘LIFE!’을 포함해 범상치 않은 열 곡의 트랙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김윤아 시대를 나눠보면 1집부터 시작한 시도가 3집에 잘 영글었고, 4집부터 메시지나 편곡 방향 등의 새로운 실험이 8집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다음 9집부터 또 다른 시도를 했고, 그것들이 11집에 너무 아름답게 완성된 거죠. 솔직히 11집을 마쳤을 때는 이를 넘어서 더 발전한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럼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우림이 가장 잘하는 사운드가 뭘까? 12집의 작업은 이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그 답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폭발력 있는 날것의 음악이었고요. 사실 4집부터 시작한 사운드 실험이 그런 방향이었는데, 그땐 약간 미흡했던 것 같아요. 4집부터 8집까지 다 좋은 앨범이지만, 지금이라면 그렇게 프로듀싱 하지 않을 것 같은 거죠. 그래서 그때 추구한 날것의 사운드를 다시 새 마음으로, ‘이게 우리의 마지막 앨범이다’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낸 결과가 12집이에요. 결과적으로 11집과는 또 다른 결로 완성형 앨범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만족도가 꽤 높습니다.

결과물에 대한 감상에 28주년, 12집 같은 숫자가 품은 의미도 포함되나요? 오랜 시간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음악을 해온 데 대한 방증이라는 점에서요.

이선규 10집을 냈을 때 ‘와’ 하는 느낌이 있긴 했어요. 그때를 제외하곤 숫자에는 크게 감상이 없었어요.

김진만 배철수 선배님이 장수 밴드를 나열하면서, 정규 앨범을 가장 많이 발매한 밴드는 자우림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검증된 건 아니지만 그런 타이틀이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그랬어요.

김윤아 이런 숫자들은 사실 내부보다 외부에서 더 크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아요.

열두 번째 앨범의 방점이 ‘정규’에 있다는 점에서는 귀한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싱글이나 EP가 익숙하고 당연해진 시대에도 자우림은 여전히 정규 앨범을 고수하잖아요.

이선규 오히려 열 곡은 너무 적은 게 아닌가 하고 우리끼린 내심 양심에 찔렸어요.

김진만 가끔 다들 EP나 싱글을 내는데 우리도 그럴까 이런 얘기를 하는데, 막상 앨범 작업을 할 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앨범의 시작을 여는, 동명의 타이틀곡이 지닌 에너지가 엄청나던데요. 열 곡 중 ‘LIFE!’를 타이틀곡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선규 타이틀곡 선정에서는 늘 회사 분들 의견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저희는 잘 모르니까요.

김윤아 이번에는 데모 단계에서부터 거의 전원이 ‘LIFE!’를 타이틀곡으로 지목했는데, 저도 동의했어요. 앨범 전체의 정서를 다 흡수해서 대변할 수 있는 곡이고, 또 자우림의 새로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곡이니까요. 다만 앨범 홍보로 저희도 챌린지를 하는 중인데, 너무 어렵게 짠 게 아닌가 싶긴 해요, 하하.

이선규 저희가 첫 번째 주자로 올리고, 이후에 다른 뮤지션들 챌린지를 쭉 보는데, 저희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만 다른 분들은 긴장을 좀 한 것 같더라고요, 하하.

그러잖아도 ‘라이프! 챌린지’를 하면서 발견한 것들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자우림의 첫 챌린지잖아요.

김윤아 너무 신났어요.(웃음) 소란의 영배 씨, 역시 노래를 진짜 잘하시더라고요. 터치드는 역시 쿨하고요. 밴드 카디는 가사를 살짝 잘못 알아서 ‘쏟아지는 빛 속’을 내리는 비로 생각하고 우산을 소품으로 쓴 거예요. 그게 너무 귀엽고, 안쓰럽고, 고맙고 그랬죠. 드래곤포니는 새롭게 편곡을 했는데, 들으면서 ‘와 우리 노래 되게 멋있다’ 그랬어요. 아이들 미연 씨랑 NCT 도영 씨도 선뜻 응해주어 고마웠고요. 또 받기만 하면 안 되니까, 저희도 다른 팀의 챌린지에 참여해봤는데, 되게 재미있던데요.(웃음) 작업할 때는 저희 음악밖에 안 들으니까 최근 1~2년간은 다른 음악을 거의 못 들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많이 듣고, 많이 부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번 앨범을 리스너 못지않게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작업하기 전에는 엄청난 번아웃을 겪었다면서요.

김윤아 이번 앨범 만들며 좀 세게 오긴 했지만, 번아웃은 계속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럼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나 번아웃인가?’ 싶죠.(웃음)

김윤아 다 똑같아요. 결국 번아웃은 과로로 해소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 아니, 과로는 심했다. 조금 많은 양의 업무?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물으려 했는데, 조금 무서운 답인데요, 하하.

김윤아 제가 번아웃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죠?

이선규 내 기억으로는 8집? 9집?

김진만 8집 내고 아팠으니까.

김윤아 그러니까 꽤 오래된 얘긴데, 사실 번아웃은 은퇴하지 않으면 치료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중독자라서 일하면서 느껴지는 도파민이 장난 아니거든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술과 음식을 잔뜩 먹어야 비슷한 양의 도파민을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로요. 그만큼 일이 재미있어요. 그런데 일을 하려면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어요. 특히 곡 작업을 할 때는 엄청난 정신력을 쏟아야 하니까 하고 나면 번아웃이 오는 거죠. 그래서 앨범이 나오면 어떻게 만든 건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는 곡을 못 쓸 것 같아요. 11집 내고 나서 특히 심했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오아시스에서 물이 다 말라버렸어요. 제가 아무리 뭐가 안 된다고 해도 평정심을 잘 잃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할 건 많고,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작업실에서 ‘아악’ 소리가 절로 나더라고요.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만든 게 ‘LIFE!’예요. 가사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가 진심이었어요. ‘카르마’에선 ‘더는 날 태우지 않아’ 하고요. 그렇게 또 쓰다 보니 ‘아 재미있어’ 이러는 거죠.

김진만 데모 작업을 할 때 한 지인이 ‘LIFE!’ 가사를 보고 이런 말을 했어요. “자우림은 지금까지 ‘살아 있는 동안은 춤을 추는 것이오’ 했는데, 이번 앨범은 ‘we’re not dancing, just writhing’이 라고 하셨네요.” 그 말이 이 앨범의 핵심이구나 싶더라고요.

김윤아 그게 저의 번아웃에서 기인한 거죠. ‘내가 춤추는 것처럼 보여? 나 몸부림치고 있는 거야’라 말하는, 아주 솔직한 가사입니다.

그렇게 솔직한 나의 마음을 몸부림치듯 쏟아낸 후엔 무엇이 남았나요?

김윤아 12집을 내고 인터뷰를 하면서 이 질문을 들은 게 처음이거든요. 오…, 좀 좋은 것 같아요. 역시 한번쯤은 질러줘야 하나 봐요.

이선규 셔츠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모자 Moseori, 신발 Tod’s,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윤아 분홍 코트와 타이츠, 신발 모두 Fendi.
김진만 셔츠 KIMHĒKIM, 브로치 Freckle, 신발 Dries Van Noten,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분홍 코트 Fendi.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나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름 지금, <LIFE!>가 달리 보이는 지점이 있나요?

김진만 아직은 작업 시점에서 크게 멀어 지지 않은 것 같아요.

김윤아 단독 콘서트를 하고 난 후에야 이 앨범의 진가가 느껴질 것 같아요.

이선규 이번 앨범을 리스너들이 어떻게 즐길지가 무척 궁금해요. ‘일탈’이라는 곡이 깡총깡총 뛰어노는 음악이라는 걸 라이브 하면서 알게 됐거든요. 저희도 공연하면서 곡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김진만 그런 의미에서 ‘아테나’ 반응이 가장 기대돼요. 군중의 떼창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라.

김윤아 그 곡은 어디 좋은 데 응원가로 팔려갔으면 좋겠어요.(웃음) 개인적으로는 ‘뱀파이어’가 궁금해요.

김진 저도 궁금해요. 공연 때 윤아가 어떤 표정으로 부를지.

‘Hey, Hey, Hey’가 나온 1997년부터 지금까지 자우림의 음악은 늘 리스너들의 마음에 여러 형태의 파장을 일으켰어요. 자우림의 음악으로 위로받았다거나 힘을 얻었다는 말은 어떤 태도를 갖게 만드나요? 자신들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동요를 일으키고 있음을 체감한 순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김윤아 어느 시점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해주시는데요. 저는 음악에는 항상 힘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비슷해요. 개인에게 크고 작은 위로가 될 순 있겠지만, 음악은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이건 3분 동안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요. 음악은 생활필수품이 아니잖아요. 말하자면 누군가에겐 굳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거라 늘 붕 떠 있는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끝나도 어쩔 수 없고 상관없다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많은 분이 “자우림의 음악 덕분 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전하는데, 그때부터 엄숙한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허투루 살면 안 되겠다, 음악 하는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싶은 거죠. 누군가에게 음악으로 슬픔을 공유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북돋고, 인생을 조금 더 낫게 느끼게 했다면 그건 미천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김진만 밴드 활동을 하면서 제일 힘이 되는 게 그런 말들이죠. 어쩌면 음악을 지속하게 하는 본질적인 원동력이에요.

이선규 예전엔 그냥 하는 얘기겠거니 싶기도 했는데, 점점 더 진심이 느껴져요.

김윤아 그래서 더 성실하게 잘 살려고 해요. 학창 시절에 부모님이 음악 하는 걸 반대하셔서 심리학과에 진학했는데, 그땐 아동 심리 치료사가 될 생각이었어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음악 하면서 위로받았다는 말을 들으니까, 이게 내 삶의 소명이구나 싶은 거죠.

그러면 세 분은 어떤 음악에 마음이 움직이나요?

김윤아 요즘 새로 발견한 밴드 중에 배드배드낫굿(BADBADNOTGOOD)이 있는데, 음악이 되게 좋더라고요. 또 얼마 전에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을 보고 왔는데, 원래도 좋아하는 라벨에 더 빠져서 며칠 째 ‘라벨 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 제게는 음악이 생활필수품이에요. 없으면 안 돼요.

이선규 학창 시절에 들은 음악들이 아직도 저를 움직이고 있고요. 최근에는 김윤아의 <관능소설> 앨범에 빠져 있습니다.

김진만 자우림의 ‘잎새에 적은 노래’요. 날씨가 어떻든 좋은 날이다 싶게 만드는 음악입니다.(웃음)

28년간 음악을 해오면서 자우림에게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였다 생각하나요?

김윤아 몇 가지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저희가 데뷔하게 된 날의 일. 무명 밴드가 클럽에서 공연했는데, 마침 그 날 MBC 영화제작팀이 공연을 보고 영화 타이틀곡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던 순간. (후에 자우림은 3일 만에 네 곡을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데뷔곡 ‘Hey, Hey, Hey’다.) 그리고 3집의 ‘매직 카펫 라이드’가 처음엔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다들 낯설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곡이 프링글스 광고 음악에 쓰이고 난 뒤 라이브 공연을 하는데, 관객 반응이 백팔십도 달라진 거예요. 그날의 장면도 떠오르고요. 비슷한 예로 ‘하하하쏭’도 처음엔 다들 어려워했는데, 펩시콜라 광고에 팬들과 뛰어놀며 공연하는 장면이 쓰인 이후 공연에서 관객들이 광고와 똑같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본 날도 생각나요. 2013년에 <SNL 코리아>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부른 날도 있고요. 이런 순간들이 모두 자우림에겐 결정적인 장면이에요. 우리가 계속 우리 멋대로 음악을 하면서 관객을 모을 수 있고, 앨범을 낼 수 있고, 그게 28년 동안 지속된 데에는 이런 순간이 하나하나 모여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요즘 하는 챌린지나 유튜브 콘텐츠 촬영, 혹은 지금 하는 시도들도 공연장에 새로운 팬들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순간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 해요.

대중음악가로서 지닌 분명한 태도가 느껴지는 말이네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늘 시대 안에 지금의 음악으로 존재하기 위해 골몰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김윤아 대중음악은 사람들이 들어야 존재하는 음악이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지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고, 이를 음악으로 잘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음악 외에는 모르는 게 많아요. 그런데 이걸 모른 채 하게 되면, 그건 딴 세상의 얘기밖에 안 되거든요. 언제까지 사랑 얘기만 하는 건 저한테는 조금 지루한 일이기도 하고요. 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그래서 엑스 중독입니다.(웃음) 거기서 지금을 사는 이들의 생활과 생각을 엿보고 있어요. 인스타그램도 있지만, 거긴 미화된 게 좀 많아서요, 하하.

코트 Taekh, 셔츠 Moseori, 팬츠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신발 Dries Van Noten, 리본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셔츠, 신발 모두 Dries Van Noten,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이스 네크라인 셔츠와 코트, 스커트, 브로치 모두 Freckle, 신발 Maison Margiela.

이제 막 <LIFE!>로 콘서트나 또 다른 무대가 이어지는 터라 좀 이른 질문이지만, 머지않아 자우림의 다음 음악도 만날 수 있을까요?

이선규 아니요, 아직은.

김윤아 저는 구상하고 있어요!

김진만 (웃음)김윤아 씨가 자우림 13집이 나오는 데 조건을 걸었어요.

김윤아 1집부터 지금까지, 송라이팅부터 기타 등등 전체의 평균 70% 정도 일을 했어요. 바꿔 말하면 두 형들이 합쳐서 30% 정도의 일을 한 건데, 그게 이분들이 무능해서는 아니란 말이죠. 능력이 있어요. 엄청나요. 그런데 일을 그만큼만 하는 건(?) 게으르기 때문이에요.

김진만 아흐흐.

김윤아 2025년 연말부터 2026년 초까지 공연 스케줄을 마치면 저는 좀 놀려고 해요. 너무 오래 일만 했거든요. 친구들 만나서 뜨개질하고 맨날 영화 보러 갈 거예요. 그때 형들은 일을 할 거예요. 제가 정해줬어요. 선규 형은 2024년에 시작한 원맨 밴드 우주용사멤버쉽클럽으로 네 곡 이상 담은 EP를, 진만이 형도 본인 이 싱어가 되어 만든 곡 네 곡 이상으로 EP를 발매한다. 그래야 자우림 13집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게 조건입니다.

자우림의 2026년 캘린더는 이미 절반 이상 채워진 것 같은데요.(웃음)

김윤아 자우림의 여름 페스티벌 무대들, 두 멤버의 EP, 그리고 저의 휴가. 신난다! 아하하핫.

이선규 저도 윤아처럼 일로 도파민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데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김진만 사실 EP에 대해 계속 생각은 해왔는데, 늘 결론은 ‘이거 안 되겠는데?’로 가요.

김윤아 생각은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냥 악기 앞에 있어야 해. 괴롭단 생각?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저도 괴로워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요!

김진만 (두 손을 모으며) 분발하겠습니다.(웃음)

촬영하면서도 살짝 느끼긴 했는데, 김윤아 대장님의 기세가 자우림을 작동하게 하는 큰 축이지 않나 싶어요.

이선규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윤아가 70% 정도 하고, 저희 둘이 30%를 따라가는. 오늘 화보는 윤아가 70%보다 더 컸던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오늘 화보에선 두 분의 역할이 컸습니다. 안 할 것 같으면서 컷마다 굉장히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보여주셨어요.

김윤아 알아보셨군요. 두 분 되게 포토제닉 하다니까요.

이선규 오늘은 진만이 18, 제가 12 정도. 이래저래 합쳐도 결국은 30이에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