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통과하며 마침내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는 두 사람.



전도연 벌키한 페이크 퍼 코트 Sportmax, 사파이어를 세팅한
마크리 포지타노 이터넬레 링 Buccellati.
넷플릭스 드라마 <자백의 대가>가 론칭과 동시에 대한민국 톱 시리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많은 이들이 <자백의 대가>를 정주행하느라 잠을 잘 못 잤다고 하더라고요. 요 며칠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있나요?
열심히 찍었는데 많은 분이 봐주시니 기분 좋아요. 잘 봤다고 이야기해주시니 또한 다행이고요. 그렇다고 크게 체감되는 건 아니고요. 넷플릭스 시리즈이다 보니 미국에서 사는 언니가 연락해서 이런 점이 좀 좋구나 하고 있어요.
‘길복순’(<길복순>)과 ‘하수영’(<리볼버>)에 이은 장르물의 주인공입니다. 이번 작품의 ‘안윤수’까지 모두 극한의 상황에서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이죠. 몇 년 사이 이런 인물들에 마음이 기운 건가요?
<리볼버>는 개봉하기 훨씬 전이던 4년 전부터 이야기가 오간 작품이에요. <무뢰한>으로 인연을 맺은 오승욱 감독님과 다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좀 밝고 경쾌한 작품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님의 ‘밝고 경쾌함’은 여기까지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당시 오승욱 감독님이 “이 작품을 통해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는데, 배우로서는 너무 감사한 말이잖아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경우예요. <자백의 대가>는 제가 이정효 감독님과 작업한 드라마 <굿와이프>를 좋아해요. 지금도 <굿와이프> 팀과는 1년에 한 번씩은 봐요. 작품을 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어느 날 조문주 프로듀서와 함께 두 분이 저희 집에 와서 “두 여자의 이야기이고, 스릴러다. 함께하고 싶다”고 하시기에 “할게요”라고 했죠. 요즘에는 여자 주인공의 서사를 다루는 작품이 꽤 있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드물던 때였고, 스릴러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두 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스릴러라는 장르에 녹여낼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헤어지고 보니 제가 제목도 안 물어봤더라고요.(웃음)
많은 이들이 <자백의 대가> 초반부의 팽팽한 긴장감을 이야기합니다. 그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동력은 초반에 드러나는 안윤수의 모호한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느꼈어요. 배우로서 안윤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향으로 접근했는지 궁금합니다.
윤수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장치적 설정을 초반부에 한 건 맞아요. 그런 뉘앙스를 많이 표현하려 했고, 감독님도 연출적으로 초반에 그 이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어요. 한데 이야기가 복잡하다 보니 윤수에게 향하는 의심의 혼란을 중간에 좀 덜어냈어요. 저 역시 촬영 중에는 장면이 어떻게 완성될지 알 수 없었는데, 완성된 이야기를 보니 혼란을 잘 줄인 것 같아요. 윤수를 처음 접했을 때는 저 역시 웃음이 많은 편이라 ‘이 여자 좀 이상하지 않아?’ 하고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남편이 죽은 뒤 취조실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의상이 괜찮을지 의문은 좀 있었죠. 근데 이 또한 제 시선이 고정돼 있는 거예요. ‘이럴 때는 이래야 한다’는 사고가 내 안에 있는 거죠.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당장에 옷장의 옷들을 모두 바꿀 수는 없는 거고, 윤수라면 그 상황에서 가장 얌전한 옷을 골라 입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수는 학교 선생님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오해를 살 수 있는 이라고 봤어요. 더불어 그의 이면을 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고아로 자라 가족에 대한 결핍이 컸기 때문에,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에 대한 강박도 강했을 거예요.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자기만의 기준에 집착하는 인물이라 보고 그 이면을 주로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작품 얘기를 하면 조금 복잡해져요. 왜 초반에 그는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증명하려 하지 않았을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내가 아니니까, 나는 곧 감옥 밖으로 나갈 거야’라는 믿음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요.
자신이 죽인 게 아니기 때문에 증거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리고 CSI 드라마로 인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웃음) 그녀의 생각이 너무 정체돼 있기도 하고 고지식하기도 하죠. 내가 범인이 아니니까, 조사해도 나올 게 없으니까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누가 윤수 집에 제발 커튼 좀 달아주세요”라는 댓글을 보셨나요?(웃음) 한데 방금 한 말로 미뤄 보면 윤수는 자신을 내보이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 듯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누군가가 훔쳐봐야 하니 장치적으로 필요했던 건데요. 재미있네요. 근데 커튼이 있긴 있어요. 잘 때는 치고 자나 봐요.(웃음)
두 여성 배우가 이끄는 투 톱 구도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업의 의미를 어떻게 느끼는지, 또 두 인물이 함께한 장면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김)고은 배우도 저도 언젠가 작품을 같이 하길 바랐거든요. 그사이 고은 배우도 여러 작품을 거치며 성장했기 때문에 궁금했고, 기대했어요. 호송차 안의 장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위험한 거래가 성사되는 결정적인 신이고, 무척 더운 날 촬영한 터라 더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찍힐지, 어떤 감정이 생길지 저도 궁금했던 시기였고요. 다만 이야기 안에서 두 사람이 실제로 마주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장면을 더 만들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녀들의 만남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함께 고민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할 때조차 완전히 알지 못한 채 임하다가도 연기를 함으로써 이해 되는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백의 대가>라는 작품에 대해 새롭게 보이는 것,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였어요. 대본 속 윤수는 모성이 굉장히 강한 인물로 설정돼 있고,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의 근원이 딸 ‘솝이’에 대한 모성으로 설명돼 있었어요. 근데 그 부분에 의문이 있었어요. 왜 여성 서사의 동기는 늘 모성이어야 할까. 모성이라는 것은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것이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을 좀 덜어내고, 감정을 과잉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피하려 했죠. 제가 생각한 윤수는 자기중심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을 극복하려 애쓰며 사는 친구거든요. 캐치하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가 짜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라면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모습에서 윤수가 그동안 남편의 보호와 돌봄 안에 있던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설정 속에서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딸 솝이와 마주하게 된 거죠. 이 과정에서 제가 생각한 윤수와 상황이 좀 충돌하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아 아쉬움도 있어요. 돌이켜보면 내가 이 지점을 보다 분명하게 잡고 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지금 들어요.
그의 주요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모성이 동력이 아닐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이 엄마인 이상, 모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죠. 다만 극 안에서는 많은 사람이 윤수에게 끊임없이 모성을 상기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딸을 생각해서 (감옥에서) 나가셔야죠”, “아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윤수를) 내보내야 한다” 같은 말들이 반복되잖아요. 물론 상황적으로 이해되는 말들이지만 동시에 그녀에게는 남편을 죽인 범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목적,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욕망도 분명히 존재하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윤수의 행동은 모성과 더불어 여러 감정과 욕망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봤어요.
새로운 작품 앞에서 매번 두려움과 공포가 크다고 했습니다. <자백의 대가>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나요?
새로운 인물을 만날 때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와요. 저는 그 인물에 들어가 직접 경험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인물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마다 방식이 다르겠지만, 저는 작업하면서 인물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거든요.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늘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두려움이 들죠.


전도연 벌키한 페이크 퍼 코트 Sportmax, 사파이어를 세팅한
마크리 포지타노 이터넬레 링 Buccellati.
흥행 여부를 떠나 전도연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 없이 고루 호평을 받아왔음에도 그렇다는 건가요?
연기가 익숙하긴 하지만, 익숙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게 매번 새로운 인물을 만나니까요. 작업 방식 자체는 익숙해질지언정 인물마다 디테일은 모두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연기에 완전히 익숙해졌다고 느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만약에 <자백의 대가>를 다시 찍는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매번 고민하고 생각해도 내가 놓친 것들이 많이 보여요. 다음 작품에서는 이런 점들을 더 신경 써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막상 또 새로운 인물로 들어가다 보면 다시 다른 것을 놓치게 돼요. 그런 부족함 때문에 더 긴장하게 되고, 보다 열심히 해보려고 하게 돼요.
부족하다는 건 오직 배우 본인의 기준일 텐데요. 그 기준치가 높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결국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에 대한 만족. 물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무시할 순 없지만, 저는 무엇보다 자신에
게 엄격한 편이에요. 그게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제 기준과 제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엄격함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죠.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놀듯이 한 것 같아요. 워낙 어릴 때 시작했고, 배우가 꿈이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언제든지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좋은 직업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거나 집착하는 마음 없이 이 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태도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일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생긴 것 같아요. 만약 처음부터 일에 대한 집착이 컸다면 지금쯤은 좀 지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연기가 진지하게 다가온 기점은 언제라고 보나요?
영화 작업을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첫 영화인 <접속> 때만 해도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도 잘 모른 채 시작했어요. 한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 시켜서 대사를 외우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작업의 일부라는 걸 영화를 하며 깨달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책임감이 생겼고요. 제 생각이 반영돼 인물이 만들어질수록 더 고민하게 되고, 더 열심히,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어요.
그 때문일까요,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은 큰 상실이나 배반을 겪으면서도 늘 자신의 삶을 붙들고 있는, 자기 삶의 주인인 인물로 다가옵니다. 인물이 ‘주체적’이라는 건 배우에게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그 안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왜’가 중요해요. 모든 것은 ‘왜’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왜 이 여자가, 왜 이 상황에, 왜 이 사람과, 왜 이 자리에서’ 하며 끊임없이 묻다 보면 작고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인물의 서사가 생기는 것 같아요.
혹시 넷플릭스에서 ‘전도연’이라고 검색해본 적이 있나요? <접속> <해피엔드> <밀양> <하녀> <멋진 하루> <무뢰한> <길복순> <일타 스캔들> 등 그간의 작품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어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름다운 작품들이더라고요. 지금 돌아봐도 부끄럽게 느낄 만한 것이 없는. 문득 이 화면을 보며 당사자는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내 이름을 검색해볼 생각은 못 했어요. 저는 제 필모그래피를 굉장히 사랑해요.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든 그렇지 않든 내가 쌓아온 모든 작품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제 작품은 지금 봐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작품들이어서 좋은 것 같아요.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품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동시에 내가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싶고요. 배우가 아니라면 ‘작년에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라는 게 일의 성과로 남을 텐데, 제게는 그때의 시간과 생각들이 작품으로 남는 거잖아요.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냥 나이 먹지는 않았구나 하며.
저는 제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전까지는 눈앞의 일을 해내느라 고마움을 제대로 못 느끼며 바쁘게 지나온 것 같아요. 한데 일을 해나갈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배우님은 어떠세요?
맞아요. 저도 그래요. 30대는 물론이고 40대까지도 일을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50대라는 나이를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늘 먼, 남의 이야기 같았는데, 누구나 그러하듯 결국 그 나이는 저에게도 오잖아요. 배우이기 때문에 더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거겠죠. 나이 때문에 여성으로서 어떤 경계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고, 더 이상 멜로드라마를 할 수가 없나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제가 <일타 스캔들> 할 때도 나이가 있는데 로맨틱 코미디를 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됐고 보란 듯이 잘해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누가 날 지켜주는 게 아니니까 내가 스스로를 지키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어요. 스스로를 다독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요. 우리 사회는 특히 나이에 민감하잖아요. 어느 기사를 봐도 타이틀에 늘 나이가 들어가 있고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이제 중요한 건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어떻게 잘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점인 것 같아요. 감사하며, 잘 받아들이면서 살아야겠다, 내 할 일을 잘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을 텐데, 같은 맥락으로 어딘가 천진하고 투명한 윤수의 얼굴은 전도연 배우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마다 살아가며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잖아요.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싶지는 않아요. 저 자신도, 시간도, 생각도 억지스러운 데 없이 자연스럽게 흘렀으면 좋겠어요. 그 ‘자연스러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생각인지 행동인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그저 눈앞에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멀리 내다보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버티고 잘 살아내는 거죠.
마무리할까요. 지금까지 배우로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외부적인 이유 말고 내부적인 이유요.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뭐가 더 없어요. 제일 나다운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보면 결국 일하고 있을 때더라고요. 어릴 때는 현모양처가 꿈이었고, 아이를 워낙 예뻐하니까 좋은 엄마의 삶을 꿈꾸기도 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그 시간은 나 자신을 내어주는 시간이지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은 아니더라고요. 물론 삶에는 그런 순간도 필요하지만요. 하지만 사람은 결국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언제가 가장 나다운지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 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일 테고요. 저에게는 그게 일이고, 그래서 이 일을 가장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참, 설경구 배우님과 인터뷰할 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추억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어요. 전도연 배우님과도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 경구 오빠랑 영화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촬영을 같이했어요. 지방 촬영이라 숙소에서 쉬는데, TV에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나오더라고요. 사실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경구 오빠가 잘생겼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어디 동네 아저씨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만화 가게나 은행에 있을 법한. 근데 다시 보니 너무 잘생긴 거예요. 요즘은 그런 얼굴이 없어요. 너무 매력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설경구 재발견’ 중이에요.
그러잖아도 설경구 배우님이 그러더라고요. 20여 년 전 두 분 처음 만났을 때 전도연 배우가 “오빠라고 부를게요. 아저씨 같지만”이라 했다고….(웃음)
그러니까요. 지금 보니까 저렇게 잘생겼는데. 눈이 삐었던건지.(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