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의 네 번째 정규 앨범, <0집>이 완성됐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하나의 원이 그려졌다.



저는 <0집>이라는 앨범을 꼭 완성시키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그 앨범에 담긴 이야기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계절이 있나요?
지금부터 8월까지 빼고 전부요. 원래 여름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너무 더운 것 같아요.
이른 더위가 찾아온 5월에 치른 야외 콘서트 <밖>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단독 페스티벌’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는 시도처럼 보였어요.
<밖>이라는 공연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염원처럼 품고 있던 제 로망이에요. 어느 시절엔 뜬구름 잡는 소리였겠지만, 점점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게 됐어요. 단독 공연인데 사람들이 맥주 마시면서 음악 듣고 싶을 땐 듣고, 쉬고 싶을 땐 쉬는 공연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지붕이 없는, 그런 공연을 많이 보며 자랐거든요.
록은 공연장도 좋지만, 어쩐지 탁 트인 페스티벌에서 즐기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듯해요.
그렇죠.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공연장은 ‘우리’라고 느끼는 절대다수의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감동이 있어요. 그 반면에 이번 야외 공연은 저를 보러 오신 분들, 함께 따라온 분들, 그냥 분위기를 즐기러 온 분들이 뒤섞인 분위기가 되게 새롭고 좋았어요. 밖인데 묘한 종류의 ‘안’을 느낀 공연이랄까.
양일간의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기분은 어땠나요?
정말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언제 다시 하거나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풍경이라 너무 아쉬웠죠. 타이밍, 제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분들이 모두 맞아떨어져 퍼즐처럼 성사된 공연이라.
그 뜨거운 무대에 대한 아쉬움과 별개로, 자신을 여전히 ‘방구석 음악인’으로 여기나요?
방이라는 키워드가 없는 존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 형태는 다를지라도, 각자의 방에서 마음이 생겨나고 또 그 마음이 잦아들고. 수많은 시작과 과정과 끝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저는 여전히 제가 방구석 음악인이라 생각해요. 그걸 굳이 다른 언어로 바꿀 필요성도 못 느끼고요.
여전히 그 방에서 이승윤의 모든 음악적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가요?
결국 저는 음악이 누군가의 방에서 들렸으면 해요. 바깥에서 저희가 같이 공명했어도, 그 시간을 갖고 다시 방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제 음악이 더 많은 방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보다 더 시작에 가까운 무렵 만든 29곡의 노래가 새 음반 <0집>이 됐어요. 과거의 음원을 새롭게 단장해 4집으로 다시 공개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 스스로는 당시에도 그 노래들을 완성작이라 규정하지 않았어요. 많이 아끼고 좋아하는 곡들이어서 언젠가 꼭 제대로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돌이켜보니 치밀하게 의도한 건 아니지만 1집, 2집, 3집을 낸 제 사투와 분투, 그 여정이 <0집>을 위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0집>을 아주 잘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 한켠에 있었고, 동시에 앨범을 낼 때마다 음악적 세계관과 정체성을 공고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각각의 앨범은 앨범대로 제게 너무 큰 의미가 있지만, 언젠가 비로소 <0집>과 이어지는 하나의 큰 원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0집>은 1, 2, 3집을 전부 끌어안은 의미를 가졌으면 했고요. 그게 지금이라 생각했던 거예요.


부츠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떻게 <0집>으로 묶은 29곡의 노래들이 그 정도의 큰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1집 내기 전까지 저는 노래를 한 번도 완성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어요. 곡에 어떤 뉘앙스를 담았다 정도지, 필요에 의해 낸 쪽에 가까웠죠. 이력서나 명함처럼 공연장을 찾거나 다른 뭔가를 위해서.
그렇다면 곡이 완성됐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많은 창작자가 그렇듯 0부터 100까지 완벽하게 맘에 쏙 들긴 어렵겠죠. 하지만 과거의 저는 결과물과 계속 거리감을 뒀어요. 완성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언젠가 다시 할 것이라 생각했고. 이제는 비로소 음악에 담은 이야기를 저와 붙여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내 것이다, 하는 느낌일까요?
그렇다기보다 이 친구로부터 반 발짝 떨어져 있지 않고, 그냥 같이 가는 거죠. 전엔 만들어놓고도 살짝 뒤에 빠져 있었다면.
모든 곡을 재녹음했죠. 원래 버전과 어떻게 다르게 들렸으면 했나요?
곡을 쓸 당시 완성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고 1집부터 3집까지 발표하면서 그걸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겠다고 느낀 감각에 충실하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느낌보다는.
과거의 곡들이지만, 뒤를 돌아본다는 표현은 옳지 않은 듯하네요. 오히려 원형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죠. 그래서 많은 노래에 여전히 10년 전 제 보컬과 악기 연주도 들어있어요. 새롭게 뭘 한다기보다 10년 전 제 목소리와 지금 제 목소리가 함께 만든 합작품 같기도 하고요. 3집 <역성>을 완성했을 땐 이 앨범을 만들려고 태어났나 보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그에 비하면 <0집>은 일흔이 되든 여든이 되든 제대로 완성한다는 마음속에 시간이 쌓였고, 그 일련의 과정을 살아내며 이 시점에 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거죠.
스스로 상당한 만족감을 표현한 <역성>을 완성한 만큼 이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건가요?
<역성>을 냈 을 당시엔 그냥 너무 좋았어요. 자의식 과잉이 나타날 정도로 자랑스러웠고요. 내가 이런 앨범을 내다니. 이후 미래에 대한 다양한 방향성이 생겼지만, 다시 <0집>에 담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계속 그 원을 그리고 살아내는 게 인간의 일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뭔가 할 수 있겠다, 하는 느낌보다.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을 비롯한 평단의 극찬, 세간의 평가와 상관없는 순수한 만족감에 가까운 거죠?
앨범 발매 이전에 <역성>의 마스터링이 끝난 최종 음원을 받자마자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0집>을 완성한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좀 싱숭생숭해요. 4집으로 발표하는 <0집>을 통해 아주 큰 이야기를 하나 마쳤구나, 하는 싱숭생숭함. 과거의 이야기인 동시에 지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얼 훔치지’ 같은 곡은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평생의 숙제 같은 고민을 담고 있거든요.


<0집>엔 두 개의 타이틀곡이 있죠. ‘무얼 훔치지’와 ‘뒤척이는 허울’. ‘무얼 훔치지’가 이승윤이라는 아티스트의 오랜 내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이야기라면, ‘뒤척이는 허울’은 밖을 향해 외치는, <역성>의 프로토타입처럼 보이기도 해요. 애초에 29곡을 하나의 주제로 묶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앨범을 통해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나요?
결과적으로 1집과 2집과 3집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아요. 어떤 것들의 원형, 여전한 것에 대한 이야기라 말할 수도 있고요. 앨범 전체로서 단일한 메시지는 없어요. 각각의 곡에 따라 의미 부여가 됐으면 해요. 리스너들이 원하는 대로.
그래선지 한편으로 상당히 자유롭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자유롭게 불렀다, 자유롭게 만들었다, 자유로운 구성이다. 어느 쪽으로든요.
애초에 장르를 규정하지 않고 기타로 만든 음악 혹은 밴드 사운드를 차용한 음악이라는 틀 안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했기 때문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게 포크라 불리든 록이라 불리든. 다만 2집, 3집 등에서 앨범 각각의 방향성이나 세계관을 구축했던 이유는 분명하고요. 그랬기에 <0집>이라는 더 큰 판을 통해서 이 노래도, 저 노래도, 이런 말도, 저런 말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 만든 곡을 다시 발표한 게 처음은 아니죠. 1집에 열일곱 살 때 만든 ‘흩어진 꿈을 모아서’를 수록했다던가. 음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타임리스’ 하다고 믿나요?
음악가가 정하기 나름인 듯해요. 어떤 음악가든 모든 노래가 타임리스 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그저 <0집>이라는 앨범을 꼭 완성하고 싶었던 거죠. 무엇보다 그 앨범에 담긴 이야기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에. 과거의 노래를 한다기보다는 제가 앞으로도 살아내고 싶은 삶을 담은 앨범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앨범에 수많은 삶, 살아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겠지만,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모토가 있나요?
제 삶의 모토는 ‘모토 같은 거 만들지 말자’. 다만 살아내는 것에 관해 조금이라도 노래를 닮고 싶다. 제가 쓴 노래지만 그 노래의 10분의 1만이라도. ‘달이 참 예쁘다고’라는 노래가 특히 그렇고요. 근데 그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나는 배 아픈 가수다.” 이승윤을 대중에 각인한 말 중 하나예요. 여전히 무언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나요?
조각가 로댕도 죽을 때까지 자기 제자를 질투했대요. 그건 다소 과하지만, 저는 시기와 질투 자체를 극복할 생각이 없어요. 여전히 다른 창작물과 창작자에게 질투를 느끼고 동시에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발전의 동력이 되겠죠. 무엇이 이승윤을 가장 질투 나게 하나요?
금연에 성공한 모든 사람.(웃음) 계속 실패해서요. 음악적으로는 너무 많아요. 페스티벌에서 마주치는 분들을 다 질투하고 있어요. 현장에서 볼 때, 음악과 무대는 그야말로 아티스트 수만큼 다른 형태여서 모두의 무대를 볼 때마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0집> 앨범 라이너 노트에 이렇게 썼어요. “저는 여전히 수많은 것들을 훔쳐 덕지덕지 기워내어 저로 살고 있습니다.” 한편 훔친 게 모두 내 것이 되진 않고요. 끝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게 있다면요?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나’라는 존재나 자아라는 것은 사실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누구도 ‘나는 이런 존재야’라고 설득력 있게 말하기 어렵고. 그러나 저희는 의외로 남들이 부여한 어떤 이미지를 자신이라 여기며 살고 있죠. 저는 그래도 1집, 2집, 3집을 내고 다시 <0집>을 완성한 이 궤적 자체는 온전한 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어요.
곧 <0집>이 공개되어 그 궤적이 드러나면, 끝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일 또한 해낸 셈이네요.
글쎄요. 더 살아봐야 알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이 원을 그리는 이야기를 살아낸 것인지, 아니면 말로만 잘 꿰어낸 것인지.
얼마나 더 살아보면 알 수 있을까요?
죽기 전엔 알지 않을까요?
자기 수명보다 10년 더 사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라고 얘기했죠.
장수하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웃음). 저는 저에 대해 영원히 모르고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내가 나라고 믿으며 사는 어떤 영역이 있는 거고, 저는 제가 그린 궤적을 믿고 싶은 거죠.
지금의 이승윤은 무엇을 위해 음악을 한다고 말하고 싶나요?
무엇이란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음악을 한다는 거지. 지금의 이승윤은, 그리고 여전히 이승윤은 음악을 한다. 음악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거창하게 말로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의미 부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요?
음원을 완성했을 때. 그리고 공연을 다니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감각들. 이 노래가 저분들에게 왜 의미를 가질까,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이런 분위기가 생길까 하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감각이 제 노래에 더해질 때 그 기분이 너무 좋아요.
대체 이게 뭐라고, 같은 느낌인가요?
맞아요. 저한텐 당연히 의미가 있죠. 아무리 자기한테 대단한 거라도 남에게 그게 꼭 대단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요. 그런데 제 노래를 그 순간 그렇게 온몸으로 들어주신다는 감각이 저를 아주 기쁘게 해요.
새 앨범에 대해선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요?
오래 기다려준 걸 알고 있으니 팬들에게 선물 같은 기분을 드리면 좋겠고, 나머지는 반응해주시는 대로 받아들여야죠.
<0집>, ‘0’ 이후의 이승윤은 어디로 가나요?
그건 진짜 모르겠어요. 이건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한 이야기라서. 아마도 계속 음악을 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