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공생을 위한 22가지 질문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많은 노력을 들여 ‘올바름’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나고, 세상을 일궈온 ‘선생’으로서 져야 하는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어릴 적 어른들을 통해 아주 많은 올바른 태도를 습득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올바름이라는 것이 내 인생을 종종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사랑이 나쁜 짓이라고 나에게 말한 사람은 없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연애를 했다. 그 모습을 좋지 않게 본 한 선생님은 연애하는 것이 천박하고 헤프다는 식으로 비유했다. 결국 나는 휴대폰을 압수당했고, 그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날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빛에, 그리고 부당한 처사에 화가 나고 자존심이 꽤 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당시에는 별다른 표현을 하지 못했다. 무엇을 반박해야 하는지 몰랐고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잘못한 거구나’ 하고 스스로 수긍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영화에서 책에서, 드라마에서 사랑은 나쁜 짓이 아니었는데, 중학교 시절 나와 친구들에게 사랑은 나쁜 짓이 되어버렸다. 그 일을 겪은 이후, 이전과 다르게 어른들의 옳은 말에 물음표를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 들어갈수록 ‘어른들의 올바름’을 믿지 않게 되었다.

정치에 관심이 생길 무렵 정치인들의 차별과 혐오가 담긴 발언을 듣고는 모순적인 어른들의 올바름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는 했다. 국가와 국민에게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고,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에게 안전한 환경과 정책을 제공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청년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은 원래 저래’ 하는 무력감은 정치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청년들이 체감하는 어떤 감각이다. 그리고 실상을 들여다보게 될 때, 청년 세대가 왜 정치인들에게 매번 실망할 수밖에 없는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결말이 뻔한 드라마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동성애를 두고 찬반 논쟁을 벌인다. 많은 사람이 성 소수자로 존재하고, 버젓이 살아 움직이는데도 그 존재를 두고 사회의 지도자들이 찬반을 논하는 시대에 나와 당신들이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두고 여당에서는 찬반 토론을 벌인다. 이런 비상식적 행태를 목격할 때마다 마음은 미어지고 분노가 차오른다. 누군가의 삶을 대변해주지는 못할망정 누군가의 삶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들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진정한 올바름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과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정치인들은 그들이 실천하지 못한 일을 시민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왔고, 요구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 배워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또 다른 이름은 평등법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올바름을 감각해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오늘도 불평등 속에서 고립되어가는 사람들에게, 차별과 혐오가 누군가의 삶을 집어삼키고 있는 이 순간에 정말 평등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