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미디어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경제 시리즈부터 여행 콘텐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인생 사진(인생샷)을 찍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가 정한 여성성과 꾸밈 노동에 속박된 여행을 하지 말자’는 여행기 ‘디폴트립’(default와 trip의 합성어)을 시작으로 지금껏 남성향 콘텐츠로 여겨져 온 캠핑기를 여성의 자리로 가져온 ‘텐트하우스’, 여성의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읽는 ‘보스들의 수다방’, 비혼 여성의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당신의 가계부’ 등을 선보이며 구독자 16만5천 명, 누적 조회 수 8백30만 회에 달하는 채널로 성장했다. 이들의 콘텐츠에는 유독 ‘내 인생을 살려준 사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하말넘많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하말넘많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유의 댓글이 많이 달린다. 20~30대 여성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며 스스로 각성하고 또 누군가의 각성을 도우며 성장해온 두 사람의 지난 여정이 책 <따님이 기가 세요>(포르체)에 담겨 있다.

 

예약 판매 첫날부터 화력이 대단했어요. 교보에서 실시간 판매 1위를 하고, 출간 이후 빠르게 증쇄했죠. 5천 부나 증쇄했다면서요. 강민지(이하 강) 금요일에 예약 판매를 시작해 주말 지난 월요일에 바로 2쇄를 찍은 걸로 알고 있어요. 서솔(이하 서) 증쇄 시기와 물량이 이례적이라고 하시는데 저희가 (출판계를) 잘 몰라서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했었어요.

예약 판매 중이라 책을 읽은 사람이 없는데도 독자 리뷰가 폭발적으로.(웃음) ‘정독했어요. 너무 잘 읽혀요’ 이러면서.(웃음) 어떻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실 수 있을까 하면서도 그래도 우리 잘 살고 있었나 보다,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진 않지만 그래도 잘못 살지는 않았나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내 인생을 살려준 사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하말넘많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하말넘많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유의 리뷰가 유독 많아요. 누군가의 인생에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요. 유튜브를 시작할 때는 저희가 뭘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취미, 소모임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댓글이 저희 채널에도 많이 달리고, 토크 콘서트에서도 육성으로 듣곤 하는데요. 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희는 ‘우리야말로 당신들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요. 여성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 좋자고 시작한 일이니까. 그래서 부끄러워요. 토크 콘서트 같은 데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왜 이러세요. 아, 그만!’ 하게 되고요. 토크 콘서트에서 저희가 선물은 절대 안 받겠다고 했더니 이후에는 그 감정을 편지로 길게 써서 전해주시더라고요. 네 장, 다섯장 이렇게 써서 주세요. 편지지도 돈 주고 사지 말라고 했더니 집에 있는 A4 용지나 메모장 찢어서 만드시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싶어요.

무슨 일은요. 큰일을 하고 있죠. 동시대 여성들이 하말넘많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오랜 침묵 후) 머릿속이 하얗네. 대리 만족인가? 저희도 어디 나가서 할 말 하겠다고 밥상 엎고 그러지 않거든요. 하고 싶은 말 있어도 참는 부분이 있지만 보이는 건 참지 않는 모습이니까. 저희 이름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인 것처럼 할 말을 참지 않고 사는 듯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로 인한 답답함이 저희를 통해 해소되는 걸까요? 또 어떤 면에서는 저희를 통해 ‘내가 그래서 불편한 거야?’ 하는 식으로 본인의 생각을 인정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그러네?’ 하면서. 왜 책을 사는 것 같으세요. 사람들이? 글쎄요. 저희에게 특히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잘 맞는 친구가 있어서 부럽다’예요. 나도 이 사람들처럼 친구들과 즐겁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게 아닐까요. 가치관이 맞는 친구. 요즘에는 가치관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큰 화두 같아요. 가치관이 맞는데 일까지 같이 할 수 있고, 나는 아직 비혼 메이트가 없는데 이런 식으로. 사실 그 부분에 마음이 좀 쓰여요. 우리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에필로그를 쓰기도 했어요. 이 책은 이렇게 맺어야 할 것 같아서.

앞서 큰일이라고 말한 건 비교적 시장의 규모가 정해져 있는,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채널에서 구독자 16만 5천 명은 굉장히 기록적인 숫자이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1만 명씩 올라갈 때마다 밤에 잠을 못 잤어요. 3만 명 정도 됐을 때는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 거지?’ 싶다가 4만 명, 5만 명부터는 ‘어디까지 커지려고 이러지’하고 겁이 나더라고요. 근데 어느 지점부터는 커지면 커질수록 재미있었어요. 그다음부터는 우리 어떻게 하면 ‘떡상’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념으로.(웃음) 16만, 17만이라는 숫자가 가능성으로도 보이지만 동시에 한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이 모든 사람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너무 많은 숫자지만 유튜브에서 16만, 17만이 그렇게 큰 숫자는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숫자에 연연하기보다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는 마음이 더 커요. 작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하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 계속하는데 의미가 없기야 하겠어?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마음도 더 편하고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저희가 콘텐츠를 만드는 데 대단한 목적의식이나 사명감, 부담감을 갖고 하는 걸로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저희는…. 큰 생각이 없거든요.

맞아요. 한 인터뷰에서 ‘일단 하자’는 마음에서 한다고 했었죠. 그 말이 더 와닿더라고요. 일단 하는 태도야말로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계속 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엄청난 대의를 갖고 ‘이건 꼭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면 (반응이나 결과에) 실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순서대로 차근차근.

 

그래서 이 책도 ‘일단 하자’ 하고 시작했군요? 정확해요. 기회가 생겼네? 해볼까?

책을 읽고 나면 지금까지 하말넘많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말넘많이 무엇을 해왔는지 찾아보게 될 것 같고, 이미 잘 아는 이들은 하말넘많의 뒷이야기를 듣는 듯해 새로운 재미가 있겠지 싶어요.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다 해도 글쓰기는 새로운 영역이라 공저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집필 중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어요? 앱에 목차를 만들어놓고 서로의 글을 보면서 계속 썼는데 서솔 글을 보면 제 글이 너무 가벼운 거예요. 이게 책이 되겠나 싶고. 저는 반대로 강민지 글을 보다가 내 글을 보면 (심각해서) 어휴… 하게 되니까. 서로서로.

두 사람 각자의 성향이 글에 반영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영상을 만들 때는 저희의 다른 점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둘이 한 화면 안에 있으니까 인지가 안 되기도 했고요. 근데 글로 보니까 저만 한참 심해로 내려가는 거예요. ‘내 글, 너무 피곤할 거 같은데’ 하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반대로 저는 ‘나도 너처럼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 하고 묻고요. 나는 해변에서 튜브 끼고 노는데 저긴 심해인 거죠. 이 낙차에 대해 서로 고민하다가 그냥 그런가 보다, 어쩔 수 없다 하고 초고를 보냈어요.

책은 총 네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파트 1이 하말넘많의 전사라면, 파트 2부터는 두 사람이 느끼고 각성하는 것들이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사회적 의제가 되어왔는지 비교적 시간순으로 기록돼 있죠. 꾸밈 노동에 대한 화두가 점차 비혼, 비혼과 직결된 주거 문제와 경제문제, 경력 단절, 사이드 잡으로 이어지고요. 돌아보니 하말넘많이 반 발짝 앞서 말해왔구나 하는 느낌도 새삼 들어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저희도 영상을 올리면서 깨달은 적이 많아요.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하는 거야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며 우려하기도 했지만 빠르다고 느낀 여성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지금도 ‘어떻게 이 영상이 2년 전에 나왔지?’ 하는 댓글을 이따금 봐요. 늦었다는 게 상대적인 거라 우리가 뭘 하던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아직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전히 꾸밈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많으니까요. 속도가 다른 건데. 유튜브가 시간성에서 자유로우니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 좋은 거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쌓아놓는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쌓아놓는 게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그게 지금처럼 책이 될 수도 있고요. 유튜브는 안 봐도 책은 읽는 분들이 있으니까. 우리 영상을 팔로업 못 해도 책은 읽는 분들이 있잖아요. 책뿐 아니라 우리가 아카이빙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려고요. 우리 이야기를 남겨놓는 것, 발화해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N잡러, 사이드 잡 등 커리어 확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 두 사람의 화두 처럼 느껴지고요. 본인들의 삶은 어떻게 넓혀가고 싶은가요? 요즘에는 유튜브 운영 외에도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그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고민해요. 저희가 의류 브랜드와 여성 전용 바를 운영하는데(모두 ‘스튜디오 포비피엠’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 <소그노>의 허휘수, 김은하와 동업 중이다) 어떻게 더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해요. 성별 구분 없는 메인스트림 쇼핑몰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 등을요. 오프라인 토크 콘서트도 많이 했으니까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해보려 해요. 언젠가 지금 올리는 콘텐츠 한 편을 오프라인 버전으로 기획해 무비 클럽, 북 클럽 등의 이름으로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변화하고 확장하는 와중에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요? 유튜브 채널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게 되더라도, 혹은 우리가 같이 일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저희 채널이 가진 정체성은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하말넘많은 우리의 뿌리고 채널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생각해본 적은 없거든요. 훗날 그 형태가 어떻게 변하건 하말넘많의 여성주의적 감각만은 남길 바라요. 근데 해이해질 수도 있잖아요. 늘 심각하게 사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이 감각을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항상 깨어 있고 싶고. 우리가 적어도 여성주의에 반하는 무언가를 만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어요. 앞으로 뭘 만들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뭘 쓰건 여성들이 불편하게 느낄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요. 그게 하말넘많의 정체성이라면 정체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시 서솔 님의 마무리가…. 마무리 좋았다. 고마워. 제가 이렇게 뭍에서 튜브 던지면 심해에서 서솔이 받아서. 자꾸 허벅지를 찔러서요.

두 분의 이런 호흡을 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항상 이런 식이에요. (강민지가) 말을 먼저 하니까 이제 질문을 받으면 그냥 (강민지를) 쳐다보거든요. 먼저 말하겠지 하고. 그러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서솔에게) 물으면 정리한 말을 하는 거죠. 저희가 고런 프로세스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