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우리는 매일매일>입니다. 어떤 의미가 담긴 제목인가요?
우리는 매일매일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꼭 성취나 승리로 이어지진 않잖아요. 그래서 잠시 쉴 때도 있고요. 그럼에도 희망을 꿈꾸거나 계속 싸우는 것. 이게 페미니스트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지은 제목이에요. 매일매일 뒤의 말은 관객이 자유롭게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제목을 놓고 오래 고민했어요.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진은영 시인의 책 <우리는 매일매일>이 생각났고, 다행히 시인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쓸 수 있었어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 걸까? 혹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나의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영화 초반에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곧 영화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일부러 초반에 기획 의도를 밝혔어요. 예전부터 민주화운동이나 학생운동은 잘 정리된 작품이 많은데, 여성운동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많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여성운동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정말 다양한 활동이 있었고 역량이 부족한지 자료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보단 제 시선으로 그 시기와 지금의 일상을 함께 다루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고요.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은 또 어떤 고민이 있는지도 보여주는 기획으로 방향을 튼 거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의 기분이 궁금했습니다. 기대했던 점도, 걱정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은 데요.
설렘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저는 이들에게 영화 출연 요청이라는 목적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되게 떨렸어요. 과연 바로 승낙을 해줄까 싶은 거죠. 거절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친구들이 그런 다큐멘터리라면 좋을 것 같다며 응해줬어요. 심지어 제가 기획을 할 때 놓쳤던 부분까지 일깨워주고, 다들 적극적이었어요. 특히 짜투리가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지금의 1020 페미니스트들과의 접점이라든가, 당시의 영페미가 간과했던 부분 등 제가 생각지 못했던 지점까지 얘기해줬어요.
키라, 짜투리, 어라, 오매, 흐른. 영화에는다섯명의친구가등장합니다. 선정기준이있었나요?
처음엔 저처럼 한동안 여성주의 활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다른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와중에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했어요. 그래서 여성운동이나 여성학을 연구하는 분들보다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귀촌 해서 사업을 하는 짜투리, 의료생협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일을 하는 어라, 수의사인 키라, 음악을 하면서 청소년기관에서 일하는 흐른. 모두 이런 지점에서 떠올린 이들이에요. 사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장인 오매는 위의 기준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온 친구라 처음엔 섭외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던 시기가 한국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난 시기라 활동가들을 아예 배제하고 영화를 만들긴 어렵겠다 싶었어요. 처음 세웠던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활동가의 마음에 대해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오매를 만났어요.
친구들의 별명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던데요. 감독님의 별명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고래라는 별명을 썼어요. 제가 고래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지은 별명이기도 해요.(웃음)
자료화가 어려워 방향을 바꿨다고 했지만, 영화에 꽤 많은 사진과 영상 자료가 등장합니다. 특히 여성운동사의 주요한 분기점 중 하나인 1996년 ‘고대생 이대 축제 난입 폭행 사건’은 영상으로 보니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소장한 자료도 있었고, 영상은 여러 네트워크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질문에 언급한 사건은 이화여성위원회가 아직 VHS 테이프를 가지고 있어서 영화에 쓸 수 있었어요. 분량 때문에 몇 장면만 썼지만,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 따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참 많았더라고요. 대동제 마지막 날 직접 꼰 짚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전통이 있거든요. 그걸 훼방하겠다고 알코올 램프를 가져와 던지기도 했다는 거예요. 약간 야만의 시대였죠.(웃음)
1990년대 말, 여성운동의 선봉에 섰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 대화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매일매일 100% 페미니스트로 살기는 어렵다는 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어요. 그리고 삶의 모든 괴로움이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요. 어라가 ‘내가 괴로운 건 경영이 어렵거나 사업 확장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은 아니지 않아?’ 하고 질문하더라고요. 어라처럼 다른 이유를 더 세밀하게 생각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갖는 고민이 좀 확장되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좋았어요. 긍정적인 기운을 받았고, 위로와 힘이 되었어요.
후반부에 다섯 친구에게 ‘페미니즘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면요?
어렵네요. 출연자한테는 물어놓고. 하하. ‘내가 잘 모르니까 알려줘’ 하는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거든요. 제 식으로 대답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세상의 여러 가지 것을 바라보는 게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어요. 거기서부터 작은 움직임이라도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친구들이 활동하던 그때와 달리 페미니즘은 정말 빠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여성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생각보다 변화가 빨리 오는 것 같으면서도 더딘 것 같아요. 어쨌든 유사이래 가부장제 사회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권리를 얘기할 수 있게 된 건 100여년 정도밖에 안되었잖아요. 당장 어떤 성과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쉬어가면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힘들잖아요. (웃음) 강박적으로 생각하면 길게 못 가니까 쉬엄쉬엄 같이 가면 좋겠어요. 주변에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아요. 멀리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런 마음이 지금 우리한테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