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TRPP

엘리펀트999
지브라 패턴 셔츠 셀린느 바이 육스(Celine by YOOX), 체인 네크리스 아페쎄(A.P.C.), 데님 팬츠 칼하트(Carhartt), 베이스볼 캡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운동화 컨버스(Converse).
치치 클리셰
플레어 롱드레스 초포바 로위나 바이 매치스패션(Chopova Lowena by MATCHESFASHION), 슈즈 닥터마틴(Dr. Martens),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후루카와 유키오
체크 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투 브리지 안경 모스콧(Moscot), 팬츠와 샌들 모두 코스(COS), 브레이슬릿은 본인 소장품,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중국계 프랑스인 치치 클리셰, 친한파 일본인 후루카와 유키오, 한국인이지만 외계인설도 따라다니는 엘리펀트 999. 라멘집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느닷없이 밴드를 결성했다. 이름은 TRPP. 그리고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하나의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 <Trpp>를 발매했다. 리스너들 사이에 선 이들의 정체가 (누가 봐도) 싱어송라이터 윤지영, 밴드 일로와이로의 강원우와 바이 바이 배드맨의 길라라는 설이 있지만, 이들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였다. 속이는 사람만 있고 속는 사람은 없는 지독한 세계관에 빠진 세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만났다. 그리고 인터뷰에 앞서 엘리펀트999는 이런 말을 했다. “저희가 컨셉트질 밴드라서, 지금부터 컨셉트질 좀 할게요.”

 

이름부터 묻고 싶다. TRPP는 어떤 뜻이 담긴 이름인가? 엘리펀트999 비밀이다. 사실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는데,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괜히 알려주기가 싫어졌다. 다음 음반이 나올 때 공개할 생각이다. 힌트를 준다면, 이번 음반을 자세히 들어보면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다.

앨범 소개 글에 간결한 한 문장만 적혀 있다. Come, Get me out now! 후루카와 유키오 내가 지은 건데, 소개 글을 고민하던 날에 이상하게 그 말이 종일 입에 맴돌았다. 혼자 노래 부르듯 ‘Come, Get me out now’를 반복했는데, 멤버들이 좋다고 이걸로 하자고 하더라. 엘리펀트999 나도 애들도 상처가 많은 시기에 만나서 밴드를 하게 됐다. 그리고 같이 음악을 하면서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 문구로 결정했다. 치치 클리셰 아 그래? 나는 그냥 지은 건 줄 알았어. 엘리펀트999 그냥도 있고. 치치 클리셰 사실 음반의 주제를 미리 정하지 않고 시작했다. 하나씩 만들다 보니 대체적인 흐름이 생겼고, 해방감도 의도하지 않게 느낀 감정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모르겠다’는 식의 관조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엘리펀트999 따로 있을 때는 그러지 않는데 이상하게 우리 셋이 모이면 ‘나 몰라라’ 식이 된다. 원래는 소심하고 할 말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인데, 모이면 ‘모르겠고 그냥 하자!’ 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작업하면서 치치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사고 치고 싶어. 부수고 싶어’였다. 우리도 모르게 치치의 말에 동조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후루카와 유키오 그래서 장르도 파괴적이면서 그 안에서 해방감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슈게이징을 택했다.

작업하면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었나? 후루카와 유키오 스매싱 펌킨스, 제임스 이하, 블러, 많다. 애초에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우리가 좋아한 뮤지션이 되었다고 상상하면서 작업했고, 일부러 곡 안에 이들의 흔적을 남겼다. 엘리펀트999 유키오와 내가 클리셰를 좋아한다. 그걸 음악에도 적용한 거다. 숭고한 우리의 음악 세계를 펼치는 게 아니라 놀 듯이 “슈게이징 밴드라면 이런 건 해야지” 하며 작업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슈게이징 밴드 음악에서 꼭 한 번은 나오는 정형화된 주법으로 기타 사운드를 채운 곡도 있다. 음반 커버에 보랏빛을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통 밴드라고 하면 기타, 베이스, 보컬 혹은 드럼이 더해지는 구성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TRPP는 세 멤버 가 모두 보컬 겸 기타다. 후루카와 유키오 멤버를 구할 시간이 없었다. 구할 생각도 없었고.

 

밴드 TRPP

 

곡마다 노래 부를 사람과 기타 칠 사람을 정하는 방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치치 클리셰 다른 건 모르겠고 이 밴드에서 기타 치는 내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기타를 치겠다고 했고, 다른 멤버들도 동의해줬다. 후루카와 유키오 노래는 녹음 시작한 사람이 부르는 걸로 했다. 엘리펀트999 누구든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하도록 둔다.

의견이 부딪치는 때에는 어떻게 해결했나? 치치 클리셰 우리는 확실한 한 가지 해결법이 있다. 누가 “나 이거 꼭 하고 싶어” 하면 바로 오케이했다. 후루카와 유키오 이유도 묻지 않는다. 얘가 하고 싶다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주는 거다. 절대적인 신뢰 관계다. 엘리펀트999 각자 하고 싶은 걸 다 하니까 의견이 부딪칠 일도 없고, 불만도 없이 아주 행복하게 작업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다. 현실적으로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음반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 같진 않다. 후루카와 유키오 욕심이 없어서 가능하다. 이걸로 뭔가를 해내거나 어떻게 되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냥 일기장처럼 각자의 마음을 음악으로 남겨두자는 마음으로 했다. 엘리펀트999 그 마음이 셋이 되다 보니, 더 큰 시너지가 만들어진 거고. 후루카와 유키오 망해도 된다. 우리끼리 이 추억을 하나 만든 걸로 됐다. 나중에 다시 보면서 그때 되게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치치 클리셰 맞아. 좋으면 됐지. 걱정이 없으니까 멈출 필요 없이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계속 TRPP가 즐겁게 음악을 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 엘리펀트999 영원한 젊음. 치치 클리셰 늙어도 괜찮아. 멋있게 늙으면 되잖아. 나는 시끄럽게 음악 할 수 있는 별장과 모든 음식이 가능한 요리사만 있으면 평생 할 수 있어. 후루카와 유키오 나는 드러머만 한 명 있으면 좋겠다. 치치 클리셰 갑자기 현실적으로 말하네? 후루카와 유키오 아니다. 지금의 이 마음만 있으면 된다.(웃음)

지금까지 만난 밴드 중에 가장 행복지수가 높아 보인다. 치치 클리셰 만족도 100%다. 후루카와 유키오 나는 음악이 아니어도 얘네랑 하는 거면 뭐든 좋을 것 같다. 얘네가 트로트를 하자고 했어도 나는 했을 거다.

오늘은 음반이 나온 날이다. 오늘을 어떻게 기념할 생각인가? 치치 클리셰 원래 음반이 나오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술을 진탕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내일 이사해야 해서. 엘리펀트999 이사는 봐줘야지. 후루카와 유키오 이사팔. 치치 클리셰 꽤 재미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