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아름

박강아름

 

중학교 2학년 때 아빠의 유품이었던 8mm 캠코더로 첫 영화를 만들었다. 10대 때부터 <섹스>, <물어보는 거야, 너한테>와 같은 영화를 통해 젠더 이슈에 질문을 던졌고, 20대가 된 후로는 <파리의 노래>, <유실>, <내 머리는 곱슬머리> 등 청년들의 삶과 여성의 몸을 주제로 단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2015년 제작한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회의 미적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현재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지난 8월 19일 프랑스에서의 결혼 생활을 담은 두 번째 사적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개봉했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어떻게 만들어진 영화인가? 사실 이 영화는 남편 ‘성만’이 집에서 식당을 열어 손님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제목은 ‘외길식당’. 성만은 프랑스로 오기 전에 채식 식당에서 보조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한창 요리를 배우면서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 내 유학에 따라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거다. 불어도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프랑스로 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학원과 집을 오가며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하는 것뿐이었다. 주부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하는 파트너에게 다시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외길식당을 기획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프랑스 다큐멘터리 버전 같은 느낌을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트레일러 영상을 만든 뒤 전작의 프로듀서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문경 PD에게 보여줬는데 뜻밖의 피드백을 받았다. 나와 성만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 고착화 되어 있는 성 역할을 완전히 전복시킨 캐릭터들로 그려져 재미있다는 거였다. 그 부분을 흥미롭게 느낄 줄은 몰랐다. 사실 난 촬영 소스를 보는 내내 내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상태였거든. “밥은? 밥은 언제 줘?” 이런 멘트를 너무 자연스럽게 치더라.(웃음) 흔히 한국에서 많이 봤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그럼에도 영화는 결국 <외길식당>이 아닌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됐다. 내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나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결심이 선 후로 촬영의 초점은 손님과 성만의 관계가 아닌, 나와 성만의 관계로 옮겨갔다. 외길식당은 ‘식당’보다도 ‘주방’, ‘집’으로서의 공간에 더 무게가 실렸고. 그렇게 박강아름과 정성만의 결혼생활, 그 안에서 전복된 성 역할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기획이 시작된 거다. 박강아름은 왜 프랑스에서 한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을 갖고. 그러면서 김문경 PD는 전작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프로듀서로 합류하게 됐다.

 

 

한 인터뷰에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마치고 나서 이제 다시는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돌아온 이유가 있나? 첫 번째 장편 영화였던 전작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만들었을 때, 한국 독립 다큐 신에서는 응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심사위원들에게 들었던 말들이 내 안에 계속 남아있었다. ‘학예회 하느냐’ 같은 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퍼포먼스를 학예회라고 귀엽게 표현하시네’ 하고 넘어갈 텐데 당시에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더라. 그런 경험이 쌓여 이제는 사적 다큐멘터리 말고 더 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럼에도 두 번째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던 건 김문경 PD의 응원 덕분이었다. 김문경 PD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계속 발견해주고, 그 일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켜 줬다. 그런 동료가 곁에 있다는 건 엄청난 일임을 느꼈다.

영화는 아름이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한 학기 동안 프랑스에서 지냈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간 거였는데 그 때의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웠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물론 6개월만 있었으니 그랬던 거겠지.(웃음)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 생활비나 학비가 덜 든다는 거였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쭉 다니고 싶었지만, 집안 상황이 여의치 않아 유학은 불가능했다. 이루지 못한 프랑스 유학이 콤플렉스가 되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3천만원의 현금이 생겼을 때 프랑스로 떠나자는 목표를 세웠다. 대학원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3천만원을 모았고, 당시 연애 중이었던 성만과 프랑스로 떠나게 됐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결혼이라는 제도 내에서의 성 역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결혼과 비혼을 꿈꾸는 관객에게 어떤 감상을 남기게 될까? 김문경 PD가 한 말 중에 공감이 됐던 말이 있다.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일도, 사랑도 다 잘 해내고 싶었던 30대 여성의 좌충우돌 이야기로 보여지길 바란다. 다만 이 여성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뿐이다.” 이 말에 아주 깊이 공감한다. 사실 난 ‘결혼은 어떤 것이다’와 같은 정의를 내리고 싶진 않다. 그럴 위치도 아니고. 그보다 질문을 던지고 싶다. 결혼은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길래 박강아름이 그토록 결혼을 원했던 것일까? 비혼주의자인 파트너까지 설득해가면서. 영화를 통해 이에 대한 각자의 답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산과 육아, 학업. 하나씩만 제대로 해내기에도 벅찬 일들을 병행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떨어지는 체력, 돌아오는 카드 값, 무엇보다도 영화 작업을 해야하는데 카메라에 담긴 나를 대면하기 싫은 마음이 너무 커서 힘들었다. 촬영이 다 끝났는데도 한동안 소스 영상을 보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까 너무 불안해서 괜히 촬영만 더 했고. 앞서 말했듯 나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불편했던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영상 속 장면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힘들었던 과거의 장면들을 굳이 들추어 보려니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았던 거지. 그렇게 한 달 반 정도는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정말 감사했던 건 김문경 PD가 그 시간 동안 한국에서 묵묵히 기다려줬다는 거다. 지속적인 응원과 믿음을 보여준 동료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박강아름
이너로 입은 셔츠는 누마레(NOUVMAREE), 팬츠는 랙 앤 본(rag & bone), 트렌치 코트와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베이스볼 캡은 어썸 니즈(AWESOME NEEDS).

 

이번 영화가 스스로에게 남긴 것은 뭘까? 함께할 동료. 그리고 이제 계속 영화를 해도 되겠다는 확신.

그 확신은 어떻게 갖게 되었나? 작업을 하며 내가 가고 있는 방향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럴 땐 우선 생각을 미루고 두려움에 떨도록 뒀다. 너무 애쓰지 않고 힘을 빼 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주변 동료들에게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타이밍이 온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응원을 주고 받다 보면 즐거움이 생긴다. 다시 일에 몰입할 힘을 얻게 되고. 그런 과정이 쌓여 단단한 확신이 만들어졌다. 혼자였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거다.

박강아름 감독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자기 자신이다. 연출가로서 자신을 사용할 때 꼭 지키거나 경계하려는 자세가 있나? 영화를 통해 내 모습을 보여줄 때 경계하는 건 없다. 다만, 내가 찍는 나의 모습이 모두 진짜라고, 그 단면이 나의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촬영된 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니 어떤 찰나의 순간에 내가 대단하게, 혹은 초라하게 느껴진대도 거기에 도취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 태도를 취하려는 게 나의 장점인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카메라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는 거고. 나는 나를 더 알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건데 솔직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을 영화로 풀어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책임감을 느끼며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내 목소리가 모든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그냥 ‘여성의 목소리’ 그 자체다. 여성인 나를 매개 삼아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샹탈 아커만(Chantal Anne Akerman), <샹탈 아커만 회고전–저기> 포스터 2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스틸컷 3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 <탭 앤드 터치 시네마> 스틸컷 4 나혜석, 문화콘텐츠닷컴.

 

귀감이 되는 여성 창작자가 있다면. 영화 감독 ‘샹탈 아커만’과 ‘아녜스 바르다’, 영화 제작을 넘어 사진,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예술가 ‘발리 엑스포트’,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 모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건강하게 창작 활동을 지속해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함께 하는 동료. 영화는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롯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돈. 당연한 거지만 먹고 살아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상업영화의 데뷔를 목표로 하는 장편 시나리오를 쓸 것인가, 혹은 내 이야기를 하는 독립 창작자로 갈 것인가. 대학교 4학년때 즈음 이 문제를 두고 나를 들여다 봤다. 내 성격과, 좋아하는 영화적 취향을 고려해봤을 때 나는 후자가 더 맞는 것 같더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본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웃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길이 그쪽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뿐이다. 결단한 이후로 한 번도 그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다른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일과 별개로 교직 이수를 준비했고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서는 실제로 교사로 일했던 내 모습이 담겨있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차기작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첫 번째는 딸 ‘보리’와 여덟 살이 된 반려견 ‘슈슈’의 이야기다. 둘의 관계를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관계와 사랑은 필연적으로 이별,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보리와 슈슈의 이야기 뒤편에는 내가 죽음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도 함께 다뤄지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나혜석’이라는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1920년대의 척박한 환경 가운데 여성으로서 묵묵히 자신의 서사를 구축해 나갔던 나혜석의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다. 현재 자료 조사를 하고 있는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