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김미조
오버사이즈 재킷과 셔츠 모두 아바몰리(AvaMolli), 팬츠 아미(Ami), 스틸레토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해안가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는 갈매기는 사실 육지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훨훨 날아갈 기세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지만 결국 머물던 자리로 돌아가는 갈매기를 보며 김미조 감독은 ‘엄마’를 떠올렸다. 첫 장편영화 <갈매기>를 통해 감독은 세 딸을 둔 어머니이자 재개발 위기에 놓인 수산시장 상인인 60대 여성 ‘오복’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세상에 맞서는 오복의 말과 행동에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목소리가 녹아 있다.

 

첫 장편영화 <갈매기>가 7월 28일에 개봉했다. 먼저 소감이 어떤지 묻고 싶다. 믿기지 않는다. <갈매기>가 극장에서 상영할 거라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는 마음으로 만든 대학원 졸업 작품이기 때문에 과연 사람들이 귀 기울여줄지 의문이 들었다. <갈매기>에 관심을 가져준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개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범대학에 다니다가 감독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 영화의 어떤 점에 마음이 이끌렸나? 대학 진학을 위해 4수를 한 뒤 ‘더 이상 인생을 살아가며 모험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범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이 나와 너무 맞지 않아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 난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릴 땐 극장을 찾아가 영화 포스터를 모았는데, 다 본 작품의 포스터는 별도의 파일에 따로 보관하는 식으로 ‘도장 깨기’를 하듯이 여러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나를 내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큰 일탈이었다. 직접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에 매력을 느꼈고, 각 작품이 끝난 후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도 언젠가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욕망이 지금까지 이어진 듯하다.

이번 영화의 크레디트를 쓸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지긋지긋하더라.(웃음) 그토록 꿈꿔온 일인데, 지금 돌이켜보니 온전히 즐기진 못한 것 같다.

<갈매기>는 60대 여성 ‘오복’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혀> <혐오가족>을 비롯해 앞서 선보인 단편영화에서도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딸만 넷인 가정에서 자라며 많은 일을 겪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는 등 고부 갈등이 있었고, 낯선 사람이 창문을 통해 집 안을 들여다보는 사건을 여러 번 겪은 이후로는 1층에 살지 않았다. 이런 경험과 가정환경이 자연스레 영화로 이어지게 했다. ‘나는 여성의 이야기만 하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다기보다는 내 근간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기조를 형성했다.

<갈매기>가 첫 장편영화인 만큼 기획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듯하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나? 당시에는 사람들이 다소 불편해하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소재일지라도, 영화에서만큼은 다양한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복을 화두로 꺼내보고 싶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쟁 등으로 인해 누군가 죽어가는 작품은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데, 왜 성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는 유독 보기 불편해하는 걸까? 나중에는 점차 오기가 생기더라.

 

갈매기 김미조

<갈매기>를 만들며 1970~80년대 영화를 참고했다고 들었다. 당시 작품들의 어떤 점에 주목했나? 대학원에 다닐 때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여의도에서 두 인물이 행진하듯 걸어가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당시의 작품을 여러 편 찾아 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투박하지만 무언가를 향해 끝까지 달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힘을 본받아 <갈매기>에서도 전반적으로 반영해보려고 노력했다. 색 보정도 그 시대의 한국 영화를 레퍼런스로 삼아 작업했다.

<갈매기>라는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를 본 이후 ‘갈매기’라는 제목 자체에 매료됐다. 그래서 첫 장편의 제목은 장르에 관계없이 무조건 <갈매기>로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갈매기의 특성에 대해 찾아보다가 육지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지점이 현실에 꿋꿋하게 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오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연극을 자주 보는 편인 것 같다. 그렇다. 친언니인 배우 김가빈이 연기를 해 어린 시절부터 자주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다녔고, 그 경험이 나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다.

김가빈 배우가 전작들에 이어 <갈매기>에도 오복의 막내딸 ‘지애’ 역으로 함께했고, 그 외에도 연극 출신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연극배우들과 작업은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카메라를 비롯한 매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연극배우들이 선보이는 날것의 연기를 카메라에 그대로 담고 싶었다. 이들과 작업할 땐 조금 과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특유의 힘이 있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만큼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도 많다. 오복이 시장 상인 ‘점례’의 입을 잡아 뜯으며 싸울 때, 오복의 남편 ‘무일’을 비롯한 남성들이 모여 앉아 소주를 마실 때처럼 배우들의 합이 느껴지는 장면을 찍을 때 쾌감을 느꼈다.

오복은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수산시장 상인이다. 그의 캐릭터를 어떻게 구체화해나갔나? 안타깝게도 최근에야 어머니에게 관심이 생겼다. 살면서 어머니를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몇 번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엄마는 엄마니까’ 하는 마음으로 지내다가 뮤직비디오 제작 과제를 수행하며 어머니를 촬영했다. 어머니가 집을 떠나 홀로 인천의 바닷가에서 갈매기들과 노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너무나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더 나아가 영화를 통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의 친구를 통해 구시장과 신시장의 갈등에 대해 접했다. 작품의 제목인 ‘갈매기’와 연결되고, 오복이 일할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설정했다.

 

갈매기 김미조

영화를 본 후 오복이 겪은 사건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맞다. 사실 처음에는 성폭력을 당한 어머니를 둔 딸의 시점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내가 딸이다 보니, 딸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가 더 완성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써나갈수록 어머니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오복의 시점으로 방향을 바꿨다.

오복을 연기한 정애화 배우의 역할이 중요했을 듯하다. 일단 정애화 배우와 내 어머니의 나이가 같다. 또 오복과 정애화 배우는 살아온 배경은 달라도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오복은 절대로 타인에게 먼저 해를 가하지 않지만 맞으면 반드시 되갚아주는 인물이라 기세 넘치는 배우가 연기하길 바랐는데, 정애화 배우는 몸집이 작은데도 발 빠르고 짱짱한 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기를 아주 잘하셨다. 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배우였고, 다른 대안은 없었다.

작품 안에서 오복에게 일어난 성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대신, 블랙아웃으로 표현했다. 오복이 고통에 겨워 울부짖는 모습을 촬영하고 편집할 때 내가 “오케이”, “이 장면 좋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나 자신 그리고 오복을 연기한 배우와 관객 등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 중 블랙아웃을 택한 의도가 있나? 성폭력은 아주 낯설고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이를 검은 화면으로, 예고 없이 탁 던져주는 것이 오복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복이 사건을 스스로 극복해가는 모습을 그릴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을 나쁜 존재로 담아내지 않으려고 했다. 세상이 오복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건사해야 하는 가족이 있거나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있을 때, 오복 같은 인물을 얼마만큼 지켜줄 수 있을까? 삶에 존재하는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순 없겠지만 개인의 목소리는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초점을 맞추며 오복을 그려나갔다. 생존권이라는 큰 명제 아래에 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에 집중했다.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오복을 관망하듯이 카메라에 담았다. 관객들이 오복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며 그의 동요하는 감정을 읽어주길 바랐다. 또 이러한 촬영 방식을 따라야 오복뿐 아니라 주변과 함께 맞물려 전개되는 이야기가 보다 잘 전달될 것 같았다.

 

갈매기 김미조

오복의 남편 무일은 아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에 이런 말을 한다. “성폭행은 여자가 응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립될 수가 없어.” 실제로 내가 들었던 말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무일이 과연 자신의 아내에게 성폭행이 일어났을 때도 이 의견을 견지하게 될지 생각해봤다. 영화 후반부를 보면 큰딸 ‘인애’의 결혼식을 마친 후 오복과 무일 그리고 막내딸 지애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이 가족이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가겠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사건이 이혼이나 파혼으로 이어지며 가정을 깨뜨릴 수도 있겠지만, <갈매기>에서는 대안적인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무일의 대사 이외에도, 내가 직접 접했거나 온라인 기사의 댓글에서 본 말들을 그대로 활용한 대사들이 많다.

영화의 끝에 흘러나오는 트로트가 인상적이다. 시나리오를 쓰며 자료 조사를 하러 수산시장이나 청과물시장을 찾아갈 때마다 트로트를 듣게 됐다. 그래서 오복을 비롯한 시장 상인들의 삶에는 언제나 트로트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삽입한 ‘갈매기 테마’는 행진곡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처연하지만, 오복은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테니까.

<갈매기>가 개인 또는 사회에 영향을 끼치길 바라는 마음이 있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라도 외친다면,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반응해주지 않을까?

<갈매기>의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갈매기>는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영화가 아니다. ‘나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을 담았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차기작과 감독으로서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스릴러, 액션, 코미디가 뒤섞인 모녀 복수극을 준비 중이며 현재 시나리오를 완성한 상태다. 앞으로 여자들이 아주 많이, 몇 십 명쯤 등장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직장인처럼 꾸준히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꾸준히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건 힘들지만 멋있는 일이다. 맞다. 결코 쉽지 않을 테니 부지런히 노력해야겠다.(웃음)

영화를 만들며 지켜나가고자 하는 가치는 뭔가?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좋겠다.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이 재미있다면 다음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뜻을 모아 유의미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