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시네마
World Cinema

BIFF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wide angle

박도신 · 서승희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월드 시네마 상영작은 다른 비아시아권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작품과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박도신 개인적으로 월드 시네마는 관객 서비스라고 본다. 아시아 영화나 한국 영화는 발굴하는 데 취지가 있다면 월드 시네마에서는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을 선보이려고 한다. 그렇다고 흥미 위주로 고르는 건 아니고, 거장의 작품 또는 신인 감독이라 하더라도 화제가 된 작품 위주로 선정한다. 아무래도 지난해와 올해 편 수가 줄다 보니 더욱 엄선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잘 알려진,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을 많이 포함했다.

올해 어떤 작품에 주목하면 좋을 것 같은가? 박도신 직업상 남들이 못 보는 영화를 많이 보는데, 종종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작품, 나중에 국내에 수입해 일반 상영을 하길 바라는 작품이 있다. 그중 하나가 댄 슬레이터 감독의 <더 패밀리>다. 캐나다 작품으로 우리 영화제에서 이번에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하게 됐다. 웰메이드 스릴러물이다. 2015년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한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더 위치>와 비슷한 느낌이다. 한국계 감독 저스틴 전의 <푸른 호수>라는 작품도 주목하면 좋겠다. 저스틴 전은 선댄스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으로 전작도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앞으로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만큼 주목받을 이다. 서승희 네덜란드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라는 영화가 있다. 폴 버호벤 감독은 <로보캅> <토탈 리콜> <원초적 본능>, 최근에는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엘르>를 만든 이다. <베네데타>는 17세기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이 1시간도 안 되게 느껴질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다. 씨네필 관객이나 일반 관객 모두 재미있게 볼 영화다. 포르투갈 출신 미구엘 고메스 감독의 <더 트스고어 다이어리>도 추천한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지난해 팬데믹 록다운 상황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시대의 아픔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톤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더 패밀리

더 트스고어 다이어리

월드 시네마 안에서 두드러지는 올해의 흐름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도신 지난 2~3년간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작품의 완성도도 높다. 여성이라서 주목받는다기보다 실력 있는 여성 감독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오픈 시네마 섹션에 포함된 한국 배우 전종서 씨가 등장하는 영화 <모나리자와 더 블러드문>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애나 릴리 아미푸르라는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 유머가 섞인 SF물인데, 스토리가 굉장히 신선하다. 또 하나의 흐름은 세계 영화 신에 한국 스태프가 활발히 참여하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전종서 배우나 저스틴 전 감독도 그렇고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을 담당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라스트 나잇 인 소호>도 우리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서승희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30대 여성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데, 이 영화가 등장함으로써 세계 영화 판도와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유럽 영화가 미국 영화에 비해 아카데믹한 건 사실이지 않나. 영화의 만듦새는 훌륭하지만 워낙 그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다수를 사로잡을 만한 대중성은 조금 떨어진다. 한데 <티탄>은 다르다. 그리고 <티탄>의 수상 이후 호러, 스릴러, 멜로 등 장르도 다양해지고 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티탄

영화 산업이 변화하는 와중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초 OTT 공식 섹션 ‘온 스크린’을 신설했다. 변화에 발맞춰 무엇을 더 해나가고 싶은가? 박도신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다는 점 이외에 영화와 시리즈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지 않은가.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시리즈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런 변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OTT 기업들이 우리 영화제를 통해 신인 감독을 많이 발굴하고, 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올해는 어렵지만 상황이 나아진다면 내년에는 OTT 관계자들을 초대해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영화제 부대 행사인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을 통해서 관심을 가질 만한 좋은 프로젝트들도 있으므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서승희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 거장이라 할 만한 감독들이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참 기쁘다고 하더라.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영화제의 역할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영화는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본이 필요하다. 배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나.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영화제 본연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월드 시네마에 소개한 작품 가운데 일부라도 국내에 개봉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