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기억의 전쟁>, 책 <길은 학교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을 통해 예술가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길보라 감독. 이번에는 지난 10월 13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  전시 <몸이 선언이 될 때>의 공동 기획자로 참여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개인적인 화두에서 출발한 임신 중지에 대한 질문은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연대로 이어졌고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11월 3일까지 전시 <몸이 선언이 될 때>가 열렸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다’는 기획으로 여러 작가의 전시를 프로그래밍했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기 바란다.
<몸이 선언이 될 때>는 낙태죄 폐지 이전과 이후에 임신 중지를 둘러싼 여러 작업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됐다. 김화용 작가가 총괄 기획을 맡고 내가 공동 기획자로 참여했다.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보자는 기획으로 여성의 몸을 둘러싼 여러 이슈를 다룬 작업을 한데 모아 같이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출발점이다. ‘임신 중지’가 죄였기 때문에 발화하지 못했던 몸의 이야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다양한 영역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나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드는 아티스트로서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로서 참여했다. 총괄 기획은 김화용 작가가 맡았다. 이 밖에 영상과 사진, 타투 작업을 하는 작가가 동참했다. 작가들뿐 아니라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도 낙태죄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외국의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이번 기획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이 ‘연대’와 ‘연결’인데, 셰어가 낙태죄를 둘러싼 연대기를 만들었고 그 연표를 중심으로 개별 작업을 엮었다.

하나의 기획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작업물을 모은 과정이 궁금하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작가는 또래 여성 작가들로,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각각 다른 곳에서 ‘몸과 임신 중지’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관한 현재의 법안이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기 전이었고,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었다. 어느 날 미국에 있던 전규리 작가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비슷한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굉장히 중요한 주제에 대해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은 주제의 다른 작업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생 여성 작가들이 이러한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나의 기획으로 엮고 싶어서 김화용 작가에게 전시의 형태로 기획해보자고 제안했다.

<몸이 선언이 될 때>에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 졸업 프로젝트인 단편 <My Embodyed Memory>(2019)로 참여하게 되었다. 졸업 프로젝트의 주제를 여성의 몸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몸에 새겨진 기억에 관한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나의 전작인 다큐멘터리영화 <기억의 전쟁>과 연결되는 작업이기도 하고. 나는 스스로 특정 주제를 계속 연구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영화나 책, 강연으로 나타난다. 이번에는 몸에 새겨진 어떤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네덜란드 필름 아카데미에서 아티스틱 리서치를 하던 중에 임신 중지라는 소재에 관심이 갔다. 임신 중지로 몸에 남은 기억, 임신 중지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영화로 풀어보려고 했다. 나와 엄마, 할머니 모두 임신 중지 경험이 있는데, 왜 우리는 이에 대해 함께 얘기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우리 몸 혹은 기억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알아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졸업 프로젝트는 17분 정도 분량의 단편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 장편영화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상영한 단편을 초안 삼아 장편 <Our Bodies>로 발전시키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시선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가치관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을 테고, 자신을 의심하게 될 때도 있지 않나?
장편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임신 중지를 둘러싼 많은 논의가 있었다. 낙태 대신 임신 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낙태는 임신 중지에 비해 편중된 가치관이나 죄의식을 반영하는 단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임신 중지는 죄의 영역에 있었다. 현재는 죄의 영역이 아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 중지를 바라보는 사회의 분위기를 계속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터부시되는 분위기에서 이 작업을 공개하는 건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또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당사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시기에 어떻게 릴리즈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다큐멘터리영화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건이 현재도 살아가며 존재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무엇인가?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여러 작업을 한 공간에서 보여줬을 때 어떤 논의와 담론을 만들어낼지 궁금했다. 정상 가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퀴어의 재생산권, 혹은 비인간 동물의 재생산권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몸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 세상을 만들 것인지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전시의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앞서 자신에 대해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굳게 믿으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창작자로서 지향하는 바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글을 쓸 때도 있고, 영화로 담아내기도 하며, 혹은 말로 전하기도 한다. 예술가로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예술을 통한 사회적 임팩트를 만드는 일이다. 나는 예술이라는 방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다.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가?
<반짝이는 박수 소리>부터 <기억의 전쟁>까지 내가 해온 작업은 항상 내 개인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나나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모든 이야기가 나로부터 출발하지만 이것이 나나 내 가족의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사회와 연결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왜 기억되지 않는 걸까?’, ‘이 중요한 기억이 왜 논의되지 않는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해 공적인 역사에 내 이야기를 덧대는 작업을 한다. 이 일이 재미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이야기가 흥미로우며 그것이 응당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영화나 글 또는 다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이것이 사회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공적인 분위기나 공적인 기억을 계속 변화시키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

그 이야기가 대중이 주목하지 않는 주제일 때도 있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이 지치게 하지는 않나?
대중이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업자로서 내가 지치지 않는 방식을 항상 고민한다. 예술가로서 번아웃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길에 대한 고민. 내가 하는 작업이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없으며,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이 적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를 몇 명이 봤는지, 내가 쓴 책이 몇 권이나 팔렸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내가 계속 작업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이번 전시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 전시라는 형태가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시도하고 싶다. 이번 전시를 기반으로 다음에는 다른 형태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전략적으로 고민하면서 선택해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시도는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본다면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는 도구가 된다.

<몸이 선언이 될 때>처럼 하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동료 여성 창작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맞다. 그랬기에 이번 전시도 가능했다. 1990년대생 여성 창작자뿐 아니라 총괄 기획을 맡은 김화용 작가, 국내외 영화제나 다양한 현장에서 만난 해외 작가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모두 다른 영역에서 이 사안에 대해 작업해왔고, 이 전시를 제안했을 때 환영해줬기에 <몸이 선언이 될 때>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전시 이후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다. 재생산 정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임신 중지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임신 중지를 둘러싼 배틀그라운드의 지형과 맥락에 대해 명확하게 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 엄마가, 우리 할머니가, 나의 파트너가, 그리고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이라는 점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가?
생물학적 성별이 이야기의 주제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굉장히 다른 감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불평등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현재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나는 여성이며, 농인 부모의 자녀고, 음성언어뿐 아니라 수화언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는 세상이 명확히 존재한다. 부모님과 할머니로부터 이런 것을 배웠다. 내가 가진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다.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여성은 누구인가?
어머니와 할머니. 레퍼런스가 되어주는 분들이다. 정작 어머니는 자신이 말하는 것은 흔해서 역사가 될 수 없다며 ‘보라가 왜 내 이야기를 찍는 거지?’ 하고 의아해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다. 공적인 기억이 되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재킷과 팬츠 모두 코스(COS),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