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공생을 위한 22가지 질문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 부부장 정명원 검사

‘영업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최소한 술 마시고 싸우는 사건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했어. 그런데 아니었어. 발생 시간만 좀 앞당겨졌을 뿐, 사람들이 밤 9시 40분까지 부지런히 술을 마시고 10시 전에 깨알같이 사건을 저지르고 나서야 집에 가더라는 말이지. 마치 이 사회에는 반드시 저질러야 하는 범죄의 총량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야.’

검사들끼리 흔히 하는 농담이다. 범죄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부대끼며 생기는 마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좁은 세상에 워낙 많은 사람이 복잡하게 모여 있으니까, 개별성을 인정받을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서로 부딪쳐 일어나는 파열음 같은 것 말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고, 만날 수 있는 시간과 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가 제한되면서, 인간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면 범죄도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검사들의 소박한 낙관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통계를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날마다 밀려오는 사건부의 사건 수는 줄어들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새롭게 나타난 범죄 유형도 있다. 선금을 보내면 마스크를 확보해주겠다는 사기가 새롭게 물품 사기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자가격리 중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는 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일처럼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상이 이제는 매우 중한 범죄가 되기도 한다.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버스 기사를 폭행하는 유의 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는 현실을 보고 있으면, 마스크를 써달라는 단순한 요구에 이렇게까지 분노할 이유가 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눈빛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도 일단 웃통 벗어 던지고 붙고 보기도 하는 것이 현대 문명국가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형사부 검사 10년이면 서당 개가 풍월을 읊듯 알게 된다. 하지만 전 인류가 맞이한 낯선 팬데믹 시대의 분노에 찬 얼굴은 어쩐지 더욱더 생경하기만 하다.

낯설고도 끈질긴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류는 갑자기 서로가 서로에게 감염원이 되었다. 손을 잡고 음식을 나누고 보듬어 안고 입을 맞추는 모든 다정한 행위들이 일시에 위험한 행위가 되었고, 어느 정도는 금지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문명에 대한 신뢰 같은 것이 한편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개인의 자유, 개인정보,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데 대한 합의 같은, 당연히 지금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던 지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공포 앞에 잔뜩 의문형의 얼굴을 하고 서 있다. 처음 맞이하는 상황 앞에 우리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무엇보다 마스크를 오래 쓰고 있어 숨이 막혔다.

“나는 고혈압 증상이 있어 마스크를 쓰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운데, 그런 상황을 알아줄 생각조차 안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탓하기만 하는 버스 기사는 마땅히 응징해야 한다.”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구한 버스 기사를 폭행한 남자는 못내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고혈압 증상이 있는 그의 사정을 생면부지의 버스 기사가 알 리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공포가 되는 시대에 타자에 대한 이해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 자리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분노로 표출하는 불안한 자아가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끝내 좌절하고 말 일은 아니다. 범죄는 언제고 인간성의 발현이다. 어쩌면 이것은 전 지구적으로 맞은 의문과 성찰의 시간이다. 뜻하지 않게 제약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조금 거리를 벌리고 앉아 이제 모두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지구에는 인간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부터,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팬데믹이라 이름 붙여진 이 시절에 우리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낼 수 있는가에 따라 결국 미래 시대 범죄의 표정도 조금은 바뀔 수 있을 테니까.

다정과 격정 사이, 두려움과 외로움 사이, 나를 알아달라는 애절함과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원망 사이, 어느 시대라도 범죄는 이런 것들의 틈바구니에 있다. 팬데믹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그 틈바구니를 오래 들여다본 인류가 새로운 세상에서 맞이하게 될 범죄의 얼굴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마스크 때문에 잔뜩 김이 서린 안경 너머로 상상해보는 미래 시대의 범죄는 멀고 아득하지만,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조금 더 숨통이 트이고 나면 곱고 애잔한 인류의 얼굴 같은 것을 그 속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팬데믹 이후 공생을 위한 질문 #2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아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