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최진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일주일>,
단편소설 <비상문>이 있다.
제32회 신동엽문학상,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봤어.”
은지가 보여준 태블릿의 메모 창에는 화장지, 욕실 세제, 주방 세제, 달걀, 양파, 맥주 등이 적혀 있었다.
“딸기도 사자. 파프리카랑. 아, 견과류도.”
“두부 좀 구워 먹을까. 들기름에.”
“좋아, 두부. 그리고 또?”
메모를 보태며 은지가 물었다. 송과 나는 거실을 둘러보며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내일 저녁에 마트 갈 거니까 생각나는 거 있으면 단톡 방에 올리기로 하고. 다음 안건은 에어컨. 어떤 모델로 사면 좋을까?”
은지가 태블릿의 인터넷 창을 열며 물었다. 에어컨은 우리가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사는 가전제품이다. 지난여름 에어컨 고장이 잦아 크게 고생하면서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는 꼭 새 에어컨을 사자고 다짐했지만, 가을과 겨울을 보내면서 그 다짐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며칠 전 은지가 단톡 방에 ‘봄맞이 가전제품 할인 페스티벌’ 링크를 올리지 않았다면 송과 나는 여름을 코앞에 두고서야 고장 난 에어컨을 떠올렸겠지. 은지가 올린 링크를 보고 송과 나는 연이어 메시지를 남겼다.
“역시 반장.”
“반장 최고.”
나는 은지를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은지와 나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은지는 계속 반장을 맡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나는 은지를 줄곧 ‘반장’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내 핸드폰 연락처에 은지는 ‘오 반장’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이십 대 내내 오 반장은 서울에, 나는 수원에 살았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으나 가끔 긴 시간 통화하면서 서로의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오 반장이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고 2년이 흘러 이혼 소식을 알렸을 때도 진심으로 축하했다. 오 반장이 이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전 애인과 동거를 끝내고 헤어졌다. 이후 오 반장과 나는 밤이나 주말에 만나 두세 시간씩 걷거나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갔다. 어느 날 속초의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이제 더는 싱크대랑 같이 자기 싫어서 투 룸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전세는 별로 없고 월세는 부담스러워 고민이라고. 스무 살부터 나는 계속 원룸에서 살았고 늘 싱크대를 머리맡에 두거나 바라보면서 잠들었다. 언젠가는 방과 주방이 분리된 곳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으로 주택 청약을 들고는 있지만 운 좋게 당첨이 된다고 해도 무리해서 대출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렇게 평생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서…. 등등의 말을 듣던 오 반장이 내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두 가지 형태의 가족을 경험했지. 하나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가족이었어. 부모님과 내 동생 말이야. 우리는 20년 가까이 한집에서 살았어. 근데 내가 어른이 된 뒤에는 부모님이랑 같이 2박 3일을 보내는 것도 힘들어. 어릴 때는 부모님 말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지만 이제 더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자꾸 언쟁이 생기더라고. 명절이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만 모여서 2박 이상은 넘기지 않는 게 모두에게 평화인 것 같아. 다른 하나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지. 부부 말이야. 그 선택의 결과는 너도 잘 알지. 부부만큼 서로에게 상처 주기 쉬운 관계는 없는 것 같아. 지은아, 있잖아. 나는 이제 그 누구와도 결혼할 마음이 없어. 하지만 평생 혼자 살고 싶지도 않아. 나에겐 서로 보호하고 의지할 가족이 필요해. 혈연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 말고 다른 형태의 가족. 나랑 그걸 해볼래?
나 또한 결혼 계획은 없었다. 이전 애인과 동거하면서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았다. 동거를 끝낸 결정적 계기가 바로 결혼이었으니까. 애인과 그의 가족은 결혼을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같은 권력관계에 자진해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종종 애인의 가족을 만날 때면 나는 확실하게 느꼈다. 애인의 가족과 나는 수직적 관계임을. 그들이 요구하면 나는 행해야 했다.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다고, 원하지 않는 일도 원한다고 말해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죄를 짓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이 불편했다. 정말 기묘한 일은, 애인의 부모와 내가 수직적 관계에 놓일 때면 애인과 나도 수직적 관계로 변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관계는 사회에서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에서까지 그것을 의식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출산하지 않겠다는 나의 입장을 처음에는 애인도 거부하지 않았지만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태도를 바꿨다. 손주를 기대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가 없다고, 한 명 정도는 낳아주는 게 자식 된 도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낳아준다고?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한 생명을 만들겠다고? 그런 생각이야말로 무책임하지 않나? 막상 낳아서 키우다 보면 낳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애인은 마치 아이를 낳아본 사람처럼 말했다. 출산하지 않겠다는 선택만으로도 나는 자꾸 잘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별을 결심할 즈음 애인이 내게 많이 한 말은 ‘적당히 좀 하자’ ‘남들처럼 살자’ ‘가족 사이에 그럴 수도 있지’였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평생을 ‘너무 별난 사람’ 취급받으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오 반장이 말한 그걸 해보고 싶었다. 상하 관계가 없는 동등한 가족. 서로를 어른으로 존중하며 각자의 가치관과 사생활을 지켜주는 가족. 중요한 일은 의논하여 결정하면서 서로를 보살피는 가족.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출 필요 없이 우리만의 룰을 새로 만들 수 있는 공동체. 대화가 통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송은 오 반장의 대학 친구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혼을 선언했다. 송에게는 구체적인 인생 계획이 있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달성할 목표, 직급과 저축에 대한 계획, 해마다 연차를 모아서 떠날 여행 계획, 40대 중반에 도전할 창업과 창업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선택할 플랜 B가 있었다. 나와 송은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 반장의 결혼식 때 인사를 나눴을 뿐이다. 그러나 오 반장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기에 완전한 타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속초 여행 이후 오 반장은 나와 송을 한자리에 불러 자기가 세운 계획을 밝혔다. 오 반장은 결혼하면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아파트를 샀고 이혼 뒤에도 그 아파트에서 (대출금과 이자를 혼자 감당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 아파트를 우리 셋의 공동 명의로 바꾸자고 했다. 함께 대출금을 갚으며 생활비도 규칙적으로 걷을 것인데, 각출하는 금액은 각자의 연봉에 맞게 차등적으로 정하자고 했다. 함께 지내다가 만약 누군가가 독립을 원한다면 가족 관계는 종료되며 (누군가 떠난 자리에 누군가를 대신 넣지 않는다) 요리와 청소 등 가사는 상의하여 분배하며 반드시 주기적으로 역할을 바꾼다. 보름마다 가족회의를 한다. 회의 안건은 무엇이든 가능하며 회의 내용은 간단하게 기록한다. 계획을 모두 말한 뒤 오 반장은 당부했다. 우리는 하우스 메이트가 아니야.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거야. 그걸 꼭 염두에 두고 결정하면 좋겠어.
햇살 눈부시고 바람 따뜻했던 3년 전 5월 20일, 송과 나는 오 반장의 집으로 짐을 옮겼다. 매년 5월 20일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꽃을 선물하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샴페인을 마시며 우리가 가족이 된 날을 기념한다.
스탠드형 에어컨 한 대와 벽걸이 에어컨 세 대의 출시 연도와 에너지 효율 등급과 디자인과 가격을 비교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밤 10시. 세 사람 모두 동의한 제품의 주문을 마치고 송이 말을 꺼냈다.
“내 후배가 고양이 임보처를 알아보고 있거든. 근데 마땅한 사람이 나타나질 않나 봐.”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고 위로하는 공동체다. 우리는 서로의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이다. 우리는 미래를 함께 계획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험에서 구한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