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주말 사용법

송지현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산문집 <동해 생활>이 있다.
제6회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p는 화요일에 퇴근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토요일에 퇴근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 정도면 같이 사는 것이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데, 토요일 저녁부터 화요일 저녁까지, 그러니까 일주일의 반절은 각자 생활하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한때 각자의 집에 사는 결혼 생활을 꿈꿨다. 할리우드 커플들처럼.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지금… 그것은 결혼보다 더 먼 꿈이라 할 수 있다.
p는 오후 1시까지 출근해 오후 10시에 일을 마친다. 전에는 이 출근 시간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게 영업시간이 제한되면서부터 우리는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퇴근이 늦은 p가 저녁을 못 먹고 집에 오는 터라, 자연스레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게 되었다. 처음엔 다양한 음식을 시켰는데 이젠 그냥 익숙한 가게에서 익숙한 메뉴를 주문한다. 새로운 시도에는 실패가 필연적으로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p와 나의 관계도 비슷했다. 거의 6년을 만나온 우리는 새로운 시도에 따라오는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편이었다. 익숙한 사람을 만나 익숙한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설정할 수 있는 최대의 목표였다.
우리는 화요일엔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수요일엔 <라디오스타>를, 목요일엔 <맛있는 녀석들> 재방송을, 금요일엔 <EBS 스페이스 공감>을 보면서 야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혼자 있는 주말에 TV를 틀 때면 p와 함께 봐야 할 프로그램을 혹시나 미리 보게 되진 않을까 걱정하며 채널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공들여 채널을 돌리다 보면 문득 화도 났다. TV 속 사람들은 다들 멋진 풍경을 보러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하다못해 그냥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라도 했다. 해도 잘 안 드는 집에서 혼자 TV나 돌리며 주말을 보내길 2년째.
*
p의 집엔 금요일 저녁이면 손님이 찾아온다. 손님은 p의 사촌 형의 아들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태어난 지 만 세 살이 되기 전부터 p의 집에서 자랐다. 정확히 말하면 p의 집이 아니라 p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을 보냈고, 금요일 저녁 p의 어머니가 퇴근할 때 p의 집으로 함께 왔다. p의 사촌 형은 5년 전 이혼한 뒤 떡집을 운영하며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때 p의 어머니에게 보육을 맡긴 것이었다. 사촌 형의 떡집은 주말이면 더욱 바빠서 주말에도 아이를 못 데리고 가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도 p의 가족을 편하게 생각했고 p의 가족도 아이에게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금도 주말을 p의 집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p와 내가 주말에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아이 때문이었다.
p는 주말을 온전히 아이와 보냈다. 근육 발달 시기에 맞춰 킥보드나 인라인을 사 주고 함께 공원에 가서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p는 종종 사촌 형이 아이에게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여준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아이와 더 많은 것을 하고, 알려주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서 참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나대로 p와 많은 것을 하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 그러다 술을 마시며 평소처럼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시청할 때였다. 출연자들이 연거푸 틀린 답을 말하는 걸 보다 내가 말했다.
“요즘 뿌듯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뿌듯함을 꼭 느껴야 하나?”
심드렁한 p의 대답에 답답해진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뿌듯함을 느끼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잖아. 예를 들어… 어디 여행을 다녀 와서 침대에 풀썩 누울 때. 그런 날은 잠도 잘 와.”
p가 갑자기 눈을 빛냈다.
“아이를 키우면 시도 때도 없이 뿌듯해. 금요일 밤이 되면 아이한테 문자가 오거든. 삼촌 얼른 와. 그럼 어느새 커서 문자도 보내는구나 하고 뿌듯해. 집에 가면 아이가 우리 내일 인라인 타러 가자, 그러거든. 그럼 또 내가 가르쳐준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뿌듯해. 그리고….”
“야! 좀!”
*
결국 주말을 p와 함께 보내기 위해 공원에 가기로 했다. p가 아이와 함께 공원에서 인라인을 탄다고 한 것이다. 나는 안 그래도 공원에서 조깅을 할 생각이었다며 오가다 얼굴이나 보자고 했지만 사실 p와 아이를 관찰할 셈이었다. 어떤 아이길래 p가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뿌듯함을 느끼는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것보다 나의 주말을 외롭게 만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공원의 나무엔 사방에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공원으로 몰려나왔는지 빼곡한 인파가 저마다의 속도로 뛰거나 걷거나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헤집고 인라인장을 찾았다. 공원의 안내판엔 한가운데에 커다란 원 모양의 인라인장이 표시되어 있었다. 공원 매점에서 젤리와 물을 샀다. 그리고 인라인장에 도착해 p를 찾았다. p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나를 보더니 인라인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쟤야.”
아이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머리는 땀에 절어 뭉쳐 있었고 온몸에 보호대를 찬 덕분에 작은 꼬마 로봇처럼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젤리와 물을 건넸다. 아이는 받아도 되냐는 듯 p를 바라봤고 p는
“삼촌 친한 친구야.”
라고 했다.
아이는 물을 받아 들고 시원하게 마셨다. 마시더니 나에게
“구세주다!”
라고 했다. 그러더니 한 바퀴 더 돌겠다면서 다시 트랙으로 향했다. 나와 p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목적지가 없이도 열심히 달렸다. 그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뿐인데도… 억울하게도 뿌듯했다.
p와 아이는 저녁을 먹으러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헤어졌다. 아이는 p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오래도록 손을 흔들다 천천히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걷고 있는데 p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구세주가 가버렸다고 하네.’
집에 가면 씻자마자 침대에 풀썩 누울 것이다. 그리고 잠은 잘 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