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 ‘카셀 도큐멘타’

카셀 도큐멘타 15 루앙루파
©documenta fifteen 2022

독일 중부 헤센주에 속한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 ‘카셀(Kassel)’. 세계 2차 대전 당시 무기 공장이 있었던 공업 도시임에도 푸른 녹지를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곳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헤라클레스 산상 공원, 라이트 그림형제의 박물관 등 친환경적인 면면과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죠.

5년마다 개최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행사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는 평화로운 카셀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이 도시의 대표적인 행사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현대미술 전람회로 꼽히는 만큼, 전시 시즌마다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카셀을 찾습니다.

 

카셀 도큐멘타 15 루앙루파 루루하우스
documenta fifteen, ruruHaus, Kassel, 2021, Photo: Nicolas Wefers
카셀 도큐멘타 15 루앙루파 루루하우스
FUSSBALLABALLA, a series of events in the context of documenta fifteen at ruruHaus, Kassel, 2021, Photo: Nicolas Wefers

도큐멘타는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히틀러에 의해 퇴폐의 소산으로 여겨졌던 모던아트(modern art)를 재조명하고 문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선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죠. 회화, 사진, 조각, 퍼포먼스, 설치, 필름 등 장르의 경계를 넘어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중심으로 현대 미술의 미래상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권위 있는 미술 행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55년부터 시작해 올해 15번째 개최를 맞이한 카셀 도큐멘타는 주요 미술관인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부터 도큐멘타 홀, 박물관, 공원 등 카셀 내 32곳에서 100일간의 여정을 이어갑니다.

 

 

카셀 도큐멘타 최초의 아시안 큐레이터, 루앙루파(ruangrupa)

카셀 도큐멘타 15 루앙루파
documenta fifteen, ruangrupa, back row f.l.t.r.: Iswanto Hartono, Reza Afisina, farid rakun, Ade Darmawan, Mirwan Andan; front row f.l.t.r.: Ajeng Nurul Aini, Indra Ameng, Daniella Fitria Praptono, Julia Sarisetiati at the installation Vietnamese Immigrating Garden by Tuan Mami (Nha San Collective), 2022, Photo: Nicolas Wef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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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큐멘타 15의 큐레이터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신의 예술, 창작 집단인 ‘루앙루파’로 선정되었습니다. 루앙루파는 2000년 설립된 비영리 예술 공동체로 전시, 축제, 출판, 라디오 등 다양한 형식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팀입니다.

이들은 도큐멘타 최초의 아시안 큐레이터로 주목받았습니다. 2002년 나이지리아 출신 기획자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를 제외하곤 주로 백인 남성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통과도 같은 기존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습니다. 어느 때보다 여성 및 아시아 작가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카셀 도큐멘타 15 루앙루파
Artistic Team and ruangrupa members at ruruHaus, f.l.t.r. Lara Khaldi, Iswanto Hartono, Gertrude Flentge, Mirwan Andan, Frederikke Hansen, Julia Sarisetiati, Reza Afisina, Ajeng Nurul Aini, Ade Darmawan, Indra Ameng, Kassel, 2021, Photo: Nicolas Wefers

이들은 도큐멘타15의 출발점으로 룸붕(lumbung)을 제시합니다. ‘룸붕’은 인도네시아어로 ‘공동의 쌀 헛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잉여 자원의 집합체이자 작물 저장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앙루파는 이를 공동체의 합작 생산과 균등한 분배, 공존을 위한 논의의 장소로 확장시켰죠.

룸붕의 정신은 루앙루파가 감독하는 도큐멘타 15의 전시 방법에도 녹아있습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모두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토론과 워크숍을 통해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고 교감합니다.

 

 

카셀 도큐멘타 15에서 만난 아티스트

카셀 도큐멘타 15 반 누르그 컬래버러티브 아트 앤 컬처
태국 작가 그룹 반 누르그 컬래버러티브가 만든 스케이트보드장에서 보드를 즐기는 관람객들. documenta fifiteen: Baan Noorg, The Rituals of Things, 2022, Installationsansicht, Fridericianum, Kassel, 13. Juni 2022, Foto: Nicolas Wefers

스케이트보드장 위를 질주하거나 자유로이 낙서하거나. 카셀 도큐멘타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모든 예술 작품은 단순한 감상 대상을 넘어 아티스트와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매개로 기능합니다. 정적이고 무거운 분위기 대신 적극적인 자세로 작품의 면면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타 작가나 기념비적인 작업물을 내세우는 대신 집단 창작에 초점을 맞춘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작가들이 협업하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끼바위쿠르르
(ikkibawikrrr)

카셀 도큐멘타 15 이끼바위쿠르르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카셀 도큐멘타 15에 참여한 이끼바위쿠르르. ikkibawiKrrr, courtesy the artists
카셀 도큐멘타 15 이끼바위쿠르르
오토네움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이끼바위쿠르르의 작업물. documenta fifiteen: ikkibawiKrrr, Building a fire, Changing clothes, Sharing small talk, 2022, Installationsansicht, Ottoneum, Kassel, 15. Juni 2022, Foto: Nicolas Wefers

고결, 김중원, 조지은 작가로 구성된 ‘이끼바위쿠르르’는 한국 작가로선 유일하게 카셀 도큐멘타 15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설치미술, 행위예술, 작곡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통해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환경 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팀입니다.

 

카셀 도큐멘타 15 이끼바위쿠르르 오토네움 자연사박물관
Museum of Natural History Ottoneum, exterior view, Kassel, 2022, Photo: Nicolas Wefers

이들은 박물관이자 환경 보존을 위한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오토네움(Ottoneum) 자연사박물관을 전시 장소로 택했습니다. 한국전쟁 및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미역의 역사를 소개한 ‘미역 이야기(Seaweed Story)’와 미크로네시아 섬에 남아있는 태평양 전쟁과 식민주의 잔재를 탐구한 ‘열대 이야기(Tropics Story)’를 주제로 한 비디오 네러티브 작품을 선보였죠.

미역 이야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20여명의 제주 해녀들이 합창한 제주 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열대 이야기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점령 장소인 활주로와 버려진 동굴 요새, 묘지 등 전쟁의 흔적들이 녹아 있습니다.

 

네스트 콜렉티브
(Nest Collective)

카셀 도큐멘타 15 네스트 콜렉티브
네스트 콜렉티브의 압착된 헌 옷을 활용한 설치 작업물. documenta fifteen: The Nest Collective, Return To Sender, 2022, Installationsansicht, Karlswiese (Karlsaue), Kassel, 14 Juni 2022, Foto: Nils Klinger
카셀 도큐멘타 15 네스트 콜렉티브
documenta fifteen: The Nest Collective, Return To Sender – Delivery Details, 2022, Installationsansicht, Karlswiese (Karlsaue), Kassel, 14. Juni 2022, Foto: Nils Klinger

‘콜렉티브(Collective)’는 하나의 목표와 운영 아래 모인 자발적 예술단체를 의미합니다. 케냐 출신의 ‘네스트’ 콜렉티브는 소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는 리사이클 프로젝트 <Return to Sender>를 선보였습니다. 압착된 헌 옷을 활용한 설치 작업물로,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제작되었습니다.

 

리처드 벨
(Richard Bell)

카셀 도큐멘타 15 리처드 벨
documenta fifiteen: Richard Bell, Embassy (2013- fortlaufend), Gespräch zwischen Richard Bell, Nadir Bahmouch (LE18) und Marwa Arsanios, Friedrichsplatz, Kassel, 16. Juni 2022, Foto: Nils Klinger
카셀 도큐멘타 15 리처드 벨
documenta fifiteen: Richard Bell, Embassy (2013- fortlaufend), Gespräch zwischen Richard Bell, Nadir Bahmouch (LE18) und Marwa Arsanios, Friedrichsplatz, Kassel, 16. Juni 2022, Foto: Nils Klinger

호주의 원주민 운동가 ‘리처드 벨’은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에서 백인들의 탄압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성향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정치색을 숨기지 않는 카셀 도큐멘타의 특징과도 통하는 작품입니다.

 

와주쿠 아트 프로젝트
(Wajukuu Art Project)

카셀 도큐멘타 15 와주쿠 아트 프로젝트
Documenta fifiteen: Wajukuu Art Project, Wakija Kwetu, 2022, Installationsansicht, Documenta Halle, Kassel, 11. Juni 2022, Foto: Nicolas Wefers
카셀 도큐멘타 15 와주쿠 아트 프로젝트
documenta fifiteen: Wajukuu Art Project, Shabu Mwangi, Wrapped Reality, 2022, Installationsansicht, documenta Halle, Kassel, 13. Juni 2022, Foto: Nicolas Wefers

아프리카 작가들로 구성된 그룹 ‘와주쿠 아트 프로젝트’. 양철 지붕으로 덮인 독특한 외관의 도큐멘타 홀 입구에 나이로비 빈민가와 마사이 전통 가옥을 참고한 구조물을 설치했습니다.

 

인스티튜토 데 아르티비스모 한나 아렌트
(Instituto de Artivismo Hannah Arendt)

카셀 도큐멘타 15 인스티튜토 데 아르티비스모 한나 아렌트
쿠바 작가 그룹, 인스티튜토 데 아르티비스모 한나 아렌트. Instituto de Artivismo Hannah Arendt (INSTAR), Art to the limit, Workshop with the theoretician Brian Holmes and the artist Claire Pentecost, Havana, 2017, Photo: INSTAR
카셀 도큐멘타 15 인스티튜토 데 아르티비스모 한나 아렌트
정부 기관의 검열을 비판한 인스티튜토 데 아르티비스모 한나 아렌트의 설치작품. documenta fifiteen: Instituto de Artivismo Hannah Arendt (INSTAR), INSTAR archive, List of censored Artists, 2022, Installationsansicht, Documenta Halle, Kassel, 12. Juni 2022, Foto: Nicolas Wefers

난민, 자본주의에 대한 관점 등 저항을 뿌리로 성장해온 도큐멘타의 색을 지닌 아티스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부 기관의 검열을 비판한 설치작품을 선보인 쿠바의 작가 그룹 ‘인스티튜토 데 아르티비스모 한나 아렌트’처럼 말이죠.

 

브리토 아츠 트러스트
(Britto Arts Trust)

카셀 도큐멘타 15 브리토 아츠 트러스트
documenta fifteen: PAKGHOR- the social kitchen, Britto Arts Trust, 2022, documenta Halle, Kassel, 18. Juni 2022, Foto: Nils Klinger
카셀 도큐멘타 15 브리토 아츠 트러스트
documenta fifteen: PAKGHOR- the social kitchen, Britto Arts Trust, 2022, documenta Halle, Kassel, 18. Juni 2022, Foto: Nils Klinger

전시장 밖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방문객들과 나누어 먹는 ‘브리토 아츠 트러스트’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방글라데시 작가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유기농 식품은 거짓말입니다’라고 쓰인 도자기들로 식품 산업을 비판하며 독특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출신의 작가 1천여 명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며 카셀 도큐멘타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6월 18일부터 시작된 카셀 도큐멘타 15는 오는 9월 25일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