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 한국 여성 미술가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여성 미술가의 비율이 90%를 넘었다는 소식이 세계를 휩쓸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여성 작가 정금형, 이미래가 참여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뉴스만으로 여성 작가의 위상을 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울산시립미술관 정필주 학예연구사는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관 참여 작가 2백13명 중 아시아 작가는 10명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3명이 남성이므로, 겨우 7명만이 아시아 여성 작가인 것이다. 유럽 출신 작가가 47%, 북미 작가가 23%, 아프리카 작가가 9%를 차지한다. 여성 작가가 이렇게 많이 참여한 것은 비엔날레 역사상 1백27년 만인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시아 여성 작가가 소외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더군다나 한국 여성 작가는 겨우 두 명에 불과한 것을 보며, 우리 여성 작가가 치열한 미술계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전시 <양혜규: 이중 영혼>이 열렸다. Courtesy of Kukje Gallery

윤희 작가의 개인전 <논-피니토>. Courtesy of Museum Ludwig

이불 작가. Courtesy of the artist

마니페스타 14를 통해 이불 작가가 선보인 작품의 설치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정서영 작가의 개인전 <공기를 두드려서>. Courtesy of Barakat Contemporary

전시 프로젝트 ‘현대 커미션’에 아니카 이 작가가 참여했다. Courtesy of Tate

순기 작가. Courtesy of Arario Gallery

색동의 캔버스에 잉크로 작업한 김순기 작가의 ‘색동 구름(Cible-Nuage)’. Courtesy of Arario Gallery

물론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 여성 미술가는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지난 6월에 열린 아트 바젤 바젤에서 한국 작가 작품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단색화 남성 작가였다. 한국 여성 작가로는 송현숙, 양혜규, 이미래, 아니카 이의 작품만이 부스를 빛냈다. 반면에 유럽과 미주 중심으로 구성된 베니스 비엔날레나 아트 바젤에 비해서 비교적 국적에서 자유로운 각국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는 한국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프랑스에 거주하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조각가 윤희의 개인전이 지난 8월 21일 독일 코블렌츠의 루트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에서 막을 내렸다. 프랑스 남부 작업실에서 조용히 작업만 하던 윤희 작가의 전시는 2019년 아트 바젤 홍콩과 2022년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찬사를 받고 대형 미술관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은 여러 점의 에디션이 있는 조각이 아니라, 뜨거운 금속 용액을 반복적으로 던진 결과 용액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거나 겹겹이 쌓이고 엉겨 그 자체로 작품의 형태를 이루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이 특징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 김순기의 활약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오는 9월 10일부터 2023년 2월 5일까지 독일 칼스루에 미디어아트센터(ZKM)에서 개최하는 개인전 <김순기: 게으른 구름(Soun-Gui KIM: Lazy Clouds)>은 2019년 동명의 개인전을 개최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와의 협력으로 진행된다. 전시에서 작가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문화, 철학, 언어에 대한 비교 연구의 산물인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9월 24일부터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진행하는 단체 기획전 <제58회 국제 기획전 카네기 인터내셔널(The 58th Carnegie International: Is It Morning for You Yet?)>에도 참여해 21세기 현안을 마주하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2023년 4월 2일까지).
우리나라 대표 여성 작가인 이불과 양혜규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불 작가는 1990년대 기계와 유기체의 혼종인 사이보그 시리즈 조각 작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설치 작업을 통해 미래를 조망하는 진보의 개념이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202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네지 전시관 <유토피아 세이브드(Utopia Saved)>, 2019년 미국 SCAD 미술관 <이불: 태양의 도시(Lee Bul: City of the Sun)> 등의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2023년 스웨덴 예테보리 미술관, 핀란드 탐페레의 사라 힐덴 미술관, 리만머핀 뉴욕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해외 그룹전으로는 올해 7월부터 코소보 프리슈티나 마니페스타 14(Manifesta 14)에서 <은색 금속 비행선(Willing to Be Vulnerable – Metalized Balloon  V4)>을 10월 말까지 전시한다. 또한 독일 볼프스부르크 현대미술관의 그룹전 <체크 포인트: 한국에서 바라본 국경>에도 참여 중이다.
양혜규 작가는 2022년 아트 바젤 바젤에서 국제갤러리를 포함해 5개의 갤러리 부스에 작품을 선보이며 인기를 과시했다. 올봄에는 베를린의 바바라 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쳤으며, 파리의 샹탈 크루젤 갤러리에서 10월부터 개인전을 갖는다. 특히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7월 31일에 막을 내린 <양혜규: 이중 영혼>전을 주목할 만하다. 덴마크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초기작과 대표작 그리고 신작에 이르기까지, 1994년부터 2022년까지 만든 50여 점 이상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전시 제목 <이중 영혼>은 이중의 가치들을 배가하고 짝짓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유래했다. 이외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단체전 <종잡을 수 없는 침묵>(9월 5일까지),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3인전 <슐레머에게 동하다-100년만의 3부작 발레>(10월 9일까지)에도 참여 중이다.

이불과 양혜규 작가는 우리나라 대표 작가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갤러리의 대표 작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품의 예술성뿐 아니라 상업적 가치 또한 인정받아 해외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된 여성 작가들이 여럿 있다. 독일 타데우스 로팍과 미국 리만머핀 갤러리의 이불, 프랑스 샹탈 크루젤과 벨기에 디펜던스의 양혜규, 네덜란드 악셀 베르보르트의 김수자, 영국 필라 코리아스의 구정아, 독일 스프루스 마거스의 송현숙, 알민래쉬의 김민정 등이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서울이 아니라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아직까지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가 해외 활동에 날개를 달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의 첫 공동 개최를 맞아 준비한 전시도 주목해야 한다. 정서영 작가는 9월 1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 <오늘 본 것>을 개최한다.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다운 행보이며, 키아프 시즌의 유일한 한국 여성 작가 대형 전시로 서울을 찾는 미술 관계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또한 올해 12월 1일~12월 18일까지 런던 프리즈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프리즈에서 개관한 전시 공간 ‘나인 코르크 스트리트 런던(No.9 Cork Street London)’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알루미늄, 브론즈, 나무, 제스모나이트 등 다양한 재료를 본뜨고 쌓으며 균형을 맞추는 조각적 행위를 통해 변화된 사물의 위상, 사물과 조각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이러한 조각적 시도를 통해 정서영은 ‘시간과 공간’을 포섭하는 장소로써의 조각을 선보이려 한다.

신진 작가를 다루는 아트 바젤 ‘스테이트먼트’ 부문에 소개된 이미래 작가의 작품. Courtesy of the artist and Tina Kim Gallery

이미래 작가. Courtesy of the artist and Tina Kim Gallery

한국 여성 미술가가 좋은 전시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큐레이터의 역할도 중요하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이숙경 수석 큐레이터는 2023년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총감독으로 임명되며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다. 10월 16일부터 2023년 3월 19일까지 열리는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공동 예술 감독 4인 중 한 명은 최빛나 큐레이터이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최빛나 감독은 유럽에서 가장 핫한 큐레이터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네덜란드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의 디렉터인데, 카스코는 유럽 현대미술 담론계에서 커먼스(commons)의 가치와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미술 기관이다. 이번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해외의 국제적 비엔날레 중 역대 가장 많은 16명의 한국인 작가가 참여할 예정이라니, 한국 여성 작가의 활약까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울산시립미술관 정필주 학예연구사는 ‘미술 시장은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 빠르게 대응한다’고 설명한다. “서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난민, 여성에 이르는 소수자 문제는 미술관만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유명 갤러리들 또한 적극적으로 관련 작가를 발굴하고 있지요. 국제적 예술상을 여성 작가가 독식하고, 각종 비엔날레에 한국 여성 작가가 초청된다고 해서, ‘여성’의 이야기가 진부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 논리 속에서 번역 불가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하는 여성 예술가들이 우리 속에 있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997년 영국 터너상(Turner Prize)이 여성 작가만으로 후보를 발표했을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2022년 여성과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작가로만 이루어진 후보 리스트에는 모두가 담담하다.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을 맞아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몰리는 이때, 여성 그리고 한국 여성 미술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격려는 예술계에서도 필요하다. writer 이소영(미술 전문 기자)

writer 이소영(미술 전문 기자)

The Best is yet to Come

2021년 3월 미술계의 많은 이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사건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경매 회사 크리스티 옥션에서, ‘비플’이라는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디지털 작품이 무려 약 6천9백30만 달러(당시 한화 약 8백30억원)에 낙찰된 것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단숨에 생존 작가 가운데 제프 쿤스(Jeff Koons)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다음으로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가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경매를 시작으로 미술계 일각에서는 도대체 이 NFT란 무엇인지, 또 NFT와 미술의 만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등 앞으로 도래할 NFT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NFT 미술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을까? 우리가 놓친 부분은 없으며, 장밋빛 미래를 점칠 수 있을까?
NFT 미술이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사건은 다양한 디지털 매체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확립하고 보존하느냐 하는 미술계의 오래된 이슈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 예술 작품의 가치는 쉽게 말해 ‘원본성’과 ‘유일성’에 의해 지켜진다.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의 예술은 자연스럽게 고유의 원본성과 유일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물질로, 작품으로 남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학 기술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미디어’로 통칭하는 다양한 매체 작업이 많아진 만큼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창조성, 유일성, 원본성 등을 보호하는 대책이 필요해졌다. 그렇게 도입된 것이 ‘에디션’의 개념이다. NFT가 미술에서 그 활용도를 입증한 첫 번째가 바로 이 부분이다. 실제로 2021년 9월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국내 최초로 ‘미술품 보증서’에 NFT를 도입해 자신 판화의 진위성을 보증하면서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했다. 하지만 NFT 미술은 단순히 작품을 ‘보증’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NFT 미술이 활성화되고 활황을 맞고 이제 겨우 1년이 넘게 흐른 지금 시점에서 예술계는 이 NFT와 함께 작업하고, 또 플랫폼을 만들면서 이 새로운 기술의 예술을 광범위하게 실험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생활이 어려워지며 다양한 온택트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함께 모여서 문화생활이나 친목 도모를 할 수 없을 때 제페토, 포트나이트, 호라이즌, 심지어 닌텐도 ‘동물의 숲’과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모여 콘서트를 개최하거나 티 타임을 갖는 등 각자의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물리적 전시의 한계를 느낀 작가와 갤러리들 역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 뷰잉 룸을 만들며 디지털 세계에서의 전시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작품을 디지털화 하거나, 디지털상에서 작용하는 작품을 만들고, 또 거래 수단이 필요하던 찰나 NFT 미술이 해법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NFT의 필요성에 더욱 크게 공감하며 누구보다 빨리 뛰어들었던 디지털 아티스트, 즉 NFT 커뮤니티 출신 작품들은 물론이거니와 원래 전통적인 매체로 미술 시장에서 인정받던 세계적인 작가들 역시 이 재밌는 놀잇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일례로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Urs Fischer)는 갈색 달걀과 라이터를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조형한 작품 ‘카오스 #1 휴먼(CHAOS #1 Human)’을 시작으로 ‘카오스 #1-#501(CHAOS #1-#501)’이라는 5백1개의 NFT 디지털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또 일본의 대표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도 NFT 마켓 플레이스 오픈씨(@opensea)에 자신의 첫 NFT 컬렉션을 발표해 높은 거래가에 판매했다. 갤러리를 비롯해 아트 기업 역시 적극적으로 NFT 사업을 론칭해 작가들과 다양한 작업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 유수의 갤러리 가운데 하나인 페이스갤러리는 웹 3.0 허브인 ‘페이스 베르소(Pace Verso)’를 통해 지난 6월 21일부터 6월 23일까지 존 제라드(John Gerrard)의 NFT 시리즈 ‘페트로 내셔널(Petro National)’과 제프 쿤스의 NFT 시리즈 ‘문 페이즈(Moon Phases)’를 선보인 바 있다. 앞으로도 페이스갤러리는 사이먼 데니(Simon Denny), 장 후안(Zhang Huan), 글렌 카이노(Glenn Kaino), 드리프트(DRIFT) 등과 같은 디지털 작가의 작품을 이 플랫폼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갤러리현대의 NFT 플랫폼 ‘에트나’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주자로 소개된 이는 우리나라 1세대 실험 예술가 이건용 화백이다. 플랫폼상에서 그는 아바타가 되어 디지털 ‘바디스케이프’에 컬렉터가 원하는 색상을 조합해 그려준다. 갤러리현대는 에트나를 통해 디지털 아티스트를 발굴하기보다 이미 현실 세계 미술 시장에서 인정받은 작가들을 ‘디지털 세계’ 즉 또 하나의 메타버스로 데려와 새로운 디지털 아트를 선보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디지털 아트를 하나의 대형 공공미술로 제시한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인 디스트릭트에서도 ‘아르떼메타’라는 크립토 아트 플랫폼을 만들어 아르떼뮤지엄에서 선보인 이머시브 작품을 NFT화 하고, 일반 관객들이 컬렉터가 되어 대형 미디어 작품의 조각(일부)을 소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쯤이면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공통점을 찾았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많은 예술가 혹은 기관이 NFT 미술을 새로운 예술 장르로 보기보다, 하나의 방법(method)으로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물리적인 전시 공간에서 디지털 아트를 선보이던 작가들이 작업 세계 확장 및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해 NFT를 도입하거나, 늘 신선한 매체를 찾아 작업하는 작가가 실험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매체로써 NFT를 활용하는 식이다. 비플처럼 소위 무명의 언더그라운드 작가가 메이저 예술 신에 유입되어 NFT 미술 작가로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현실 세계에서 이미 입지를 다진 이들의 새로운 행보가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캔버스 작업을 하던 작가, 조각, 설치 작가 등 이전에는 디지털 아트를 주로 선보이지 않던 작가들도 NFT 미술을 통해 새로운 작업 방식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실험적인 작품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운다.

또 NFT 미술은 창작자가 곧 판매자가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한다. 즉,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갤러리가 필요했지만 NFT 미술 거래는 개인이 디지털 작품을 만들고, 이를 프로모션해서 결국 셀프 판매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이 점이 아직 갤러리와 연이 닿지 않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작가의 관심을 끌었다. 자연스럽게 NFT 미술은 작품의 세계관이나 타임라인을 만들며 컬렉팅 가능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고 온라인과 디지털 플랫폼 친화적 작가들에게 유리해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 이렇게 작가가 직접 마켓에 뛰어들고, 디지털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서 미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큐레이터십’이라는 전문적인 한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또 NFT 미술의 확장과 발전에 발맞춰 따라오지 못하는 유통과 저작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그리는 NFT 미술의 청사진은 작가의 역량, 시장의 규모, 기술의 발전, 관련 윤리 의식의 발전 및 법안 마련 등이 총체적으로 잘 맞물려 성장하고 또 굴러갈 때 가능한 모습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앞서 언급한 부분 중 ‘미술 시장’만이 NFT 미술 성장 속도와 맞물려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심상용 교수는 공동 저서인 <NFT, 처음 만나는 세계>에 수록한 글 ‘NFT, 기게스의 반지’에서 “미술 시장이 돌연 투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런 미술 시장에서 유일한 목적이 미적 수준과 무관하게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재정비되는 것”이라 일갈하며 NFT 미술을 그야말로 테크놀로지와 자본이라는 두 가지 은유가 결탁해 탄생한 ‘대항하기 힘든’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는 어딘지 마블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빌런 타노스가 한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필연적이다(I’m inevitable).” 기술이 출현하면서 이에 따른 예술이 파생됐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만은 이들을 예술로 정의하고, 가치를 환산하고, 또 거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양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거대해진 미술 시장과 ‘투자’와 너무도 밀접하게 맞물린 듯하다. “NFT는 인간이 아닌 계약을 위한 기술이고, 예술이 아니라 따로 떼어져 나온 예술, 곧 자산화된 예술을 위한 기술”이라고 정의하는 심상용 교수. 아직도 미술계 안팎에서는 NFT 미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평가를 유예한 사람, 또 이것은 예술이 아니라고 일갈하는 사람 등 의견이 분분하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미술이니까. 출현하고 주목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형태와 방법의 미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NFT 미술을 더욱 예민하게 뜯어봐야 할 것이다. 사진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도 혹자는 ‘회화’라는 전통 미술 장르를 죽일 것이라고, 혹자는 함께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예단했다. 하지만 결국 사진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장르가 되어 다른 전통 매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은가. NFT 미술은 분명 기존 미술과 나란히 성장해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참여와 투자, 그리고 성급한 평가는 지양해야 필요가 있다. 지금 시점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자. 분명,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하나둘 드러날 것이다.

writer 정송(프리랜서 에디터)

글로벌 미술 시장은
왜 서울을 주목할까?

페레스 프로젝트 서울의 전속 작가인 라파 실바레스(Rafa Silvares)가 올해 5~7월 개인전 <에어백>을 개최했다. Courtesy of Peres Projects

최근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비비안 수터(Vivian Suter)의 한국 첫 개인전이 진행되었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리만머핀 갤러리의 외관. Courtesy of Lehmann Maupin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쾨닉 서울의 루프톱. Courtesy of KÖNIG GALERIE

올여름 내한한 톰 삭스(Tom Sachs)의 개인전 <로켓 팩토리 페인팅>이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열렸다. Courtesy of Thaddaeus Ropac Gallery

올해 들어 예술과 관련한 국제 뉴스에서 서울과 한국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키아프와 공동 개최되는 프리즈 서울에 머메이드급 갤러리와 컬렉터들이 방한을 앞두고 있지만, 이보다 앞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해외 갤러리다. 전면적인 움직임은 2016년, 프랑스 갤러리인 ‘페로탕’이 삼청동에 둥지를 틀면서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2017년에 ‘리만머핀’과 ‘페이스’가 들어왔다. 2019년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한 ‘베리어스 스몰 파이어스’가 한남동에, 2021년에는 ‘타데우스 로팍’, ‘쾨닉 서울’도 개관을 알렸다. 그리고 2022년, 독일에서 온 ‘페레스 프로젝트’와 미국의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서울점을 오픈했다. 지난 3월, 리만머핀은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했고, 페이스 또한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으며, 페로탕은 8월 말 도산공원에 2호점을 개관했다. 1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이 도시에서 굵직한 갤러리들의 개관과 확장을 모두 목격한 셈이다. 현재 더 많은 해외 갤러리가 한국 지점을 내기 위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갤러리가 해외 진출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많은 요소 중 첫 번째는 대개 작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해외 갤러리의 경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한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미술 기관과도 협업하게 되는 것이다. 진출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지역 사무소 혹은 소규모 쇼룸 형태로 운영을 시작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서울 그리고 한국의 시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이들이 적잖은 시간을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서울의 갤러리 지형도가 한층 풍성해졌다. 전통적인 ‘아트 디스트릭트’로 여겨지던 인사동 및 삼청동 일대에 이어 한남동에 신규 벨트를 형성했고, 한동안 주춤하던 청담, 도산공원 일대까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해외 갤러리를 통해 래리 피트먼(Lari Pitman), 샘 길리엄(Sam Gilliam), 제이슨 마틴(Jason Martin), 켈리 비맨(Kelly Beeman) 등 한국 혹은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을 선보인 작가도 다수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아니카 이(Anicka Yi) 또한 글래드스톤 갤러리와 함께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장기적으로 글로벌 프로그램을 함께할 한국 작가들을 찾는 것 또한 해외 갤러리들이 집중하는 목표 중 하나다. 실제로 이건용, 이배, 이불, 이우환 등 한국 작가들이 글로벌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으나, 세대 및 다양성 면에서 아직까지는 사례가 한정적이다.

글로벌 체인을 갖춘 한 갤러리의 디렉터는 “해외 갤러리의 진출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라며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더 넓게는 한국 미술 시장의 확장에 기여해 결과적으로는 국내 갤러리 및 한국 작가들에게 이익이 두루 돌아갈 것이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처럼 해외 갤러리의 유입으로 인해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한 국제적 주목도가 차츰 높아지자, 프리즈 서울을 비롯한 글로벌 아트 페어 개최 이외의 영역도 들썩이고 있다. ‘크리스티’와 ‘필립스’가 특별 기획전을 예고했고, 1990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철수한 바 있는 소더비가 오는 10월을 기점으로 다시 서울 사무소를 차리고, ‘소더비코리아’로 돌아온다.
이러한 추세에는 2000년대 홍콩의 미술 신이 겹쳐 보인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 시장을 논할 때 아시아 허브는 언제나 홍콩을 가리켰다. 2013년, 일찌감치 아트 바젤이 아시아 진출의 거점으로 홍콩을 선택했다.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하우저앤워스, 화이트 큐브 등 유명 갤러리 대다수도 홍콩 지점을 운영 중이다. 세계 3대 경매사인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또한 홍콩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홍콩의 입지를 흔들 만한 변수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2014년 발발한 우산 혁명부터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확산 등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크다. 게다가 최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60여 년 만에 홍콩의 인구가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을 정도로 일명 홍콩 엑소더스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이미 탄탄한 인프라 덕분에 아시아 미술 시장의 전초기지 자리가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제2의 홍콩을 노리는 도시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아트 마켓 리포트 2022’에 의하면 2021년 이후 글로벌 아트 세일즈 총액은 6백50억 달러(한화 약 85조원)에 달해 2020년에 감소했던 금액대를 회복했을뿐더러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거래 총액을 넘는 호황을 누렸다. 지난 1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이 호황을 누렸다는 방증이다. 작품 거래 규모는 미국, 중국, 영국 순서로 많았는데, 이들의 활동이 전 세계 거래의 80% 이상에 기여한다. 한국 미술 시장의 화두가 1조원 돌파 여부인 점을 감안하면 규모 자체를 비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미술 시장은 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에 도달한 이후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미술품이 단순한 소비재나 여타 사치품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미술 시장’이 형성된 지 이제 갓 50년을 넘긴 셈이고, 상업 갤러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미술 현장, 언어, 역사나 문화적 배경이 서구와 다르다 보니 글로벌 파워가 유독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이 한국이었다. 하지만 최근 영화, TV 시리즈, K-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분위기가 반전했다. 미술 시장에서도 자연스럽게 한국과 서울의 매력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한국 미술 시장의 잠재력이 커지고 구매력 있는 컬렉터들이 급증했다는 점도 유효했다. 게다가 미술품에 수입세나 부가가치세, 양도세가 없고, 5만 달러(한화 약 6천5백만원) 이하의 작품 판매에는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의 혜택까지 있다. 동시대 미술에 호의적인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리만머핀의 손엠마 서울 시니어 디렉터는 “한국에 대한 해외의 기대감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미술 시장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프리즈 서울 이후 변화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이 뇌리를 맴돈다. 서울과 한국이 글로벌 미술 신에서 이토록 주목받는 날이 올 줄이야. 아, 다시 고쳐 말해야겠다.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라고 말이다. 간과하기 쉽지만, 미술 시장은 엄밀히 말해 미술계라는 지극히 촘촘한 생태계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 시장을 넘어 제2의 홍콩 이상의, 보다 역동적이고 건강한 생태계를 일굴 때에야 한국 미술 신이 세계를 상대로 진정한 힘과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

writer 이가진(미술 칼럼니스트)

화이트 큐브를
넘어선 공간들

전시 <블랙 워터 멜론>이 지난해 웨스에서 열렸다. Courtesy of WESS

창고로 쓰던 건물을 개조한 전시장 홀 1의 입구.

뮤지엄 헤드에서 선보인 정유진 작가의 개인전. Courtesy of Museumhead

지금 서울의 미술 작품들은 어디에 있는가? 전시를 보러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하는 일부터 전시 관람이 시작된다. 서울에는 다양한 미술관, 전시 기관들이 있지만 미술관도 대규모 기관도 아닌 여러 공간들이 산포한다. 1990년대는 대안 공간, 2010년대에는 신생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전시 공간들은 2022년에도 새로운 형태로 곳곳에 자리한다. 이러한 전시 공간은 무엇을 원동력으로 움직이는가. 화이트 큐브의 네모반듯한 물리적 공간과는 다른 몇 곳의 전시장을 찾아보자. 이 글의 목표는 동시대 젊은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몇몇 공간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지면 특성상 서울에 위치한 극히 일부의 전시장만을 언급하려 한다.

먼저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뮤지엄 헤드’다. 뮤지엄 헤드는 올여름 젊은 미술가 정유진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은 <Run>. 그는 근래 경험할 수 있는 재난의 현실과 미디어적 경험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작가는 공간 건물 앞의 환경, 전시장 내부 천장에도 작품을 설치했다. 그의 작업 안에는 유머와 사건의 잔해, 설치할 때 필요한 육중한 덩어리와 조각의 외피가 공존한다. 그것은 작가가 가진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뮤지엄 헤드 안에는 1990년대 초중반 태생 젊은 작가의 실험적인 작업과 기획 방식을 살필 수 있는 전시가 펼쳐졌다.

뮤지엄 헤드가 네모반듯한 단독주택 1층이라면, 양천구에 위치한 전시장 ‘홀 1’은 찾기가 쉽지 않다. 창고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작가 김동희가 운영하는 독립 공간이다. 홀 1을 찾아가기란 그다지 용이하지 않지만 전시장 안에서 볼 수 있는 전시는 남다르다. 작가 김동희는 전시 공간 자체를 작업의 재료로 한 개인전(<시청각>, 2017)과 이번 부산 비엔날레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장의 공간 디자인을 맡아왔다. 그러한 작가가 운영하는 곳인 만큼 공간 벽면에 붙어 있는 계단,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통으로 된 전시 공간 등 특유의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젊은 작가의 개인전이나 기획자의 전시에 대한 정보를 홀 1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알아내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찾아가서 보는 묘미를 가진 전시장은 또 있다. ‘디스 이즈 낫 어 처치’ 또한 미술가 그룹 ‘아워 레이보’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과거 교회 건물을 사용한다.

공간 운영을 누가 하느냐 또한 전시 공간의 성격을 지배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국가’를 의식한다면 지금 이 글에서 말하는 전시 공간은 작품의 형식적 특성과 경험의 상황에 집중한다. 실례로 작가 문보람, 정명우, 조익정이 운영하는 공간 ‘윈드밀’(2021년 2월)은 퍼포먼스 중심의 작업들을 선보이며, 용산구 청암동에 위치해 있다. 이 작가들이 해내는 작업들 또한 퍼포먼스를 비롯한 움직임에 기반해 있다. ‘디스 이즈 낫 어 처치’가 위치한 성북구에는 ‘웨스’라는 전시 공간이 있다. 웨스는 전시 기획자 11명이 모여 2019년 10월부터 운영해온 곳이다. 이곳은 함께 공간을 운영하는 기획자마다의 특색이 전시장의 방향성을 독립적으로 드러낸다. 즉, 지난봄 큐레이터 이성휘가 기획한 조각가 전국광의 전시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조각과 직면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또 큐레이터 노해나가 기획한 여성 조각가에 대한 전시, 큐레이터 신지현이 기획한 10개의 그림과 이미지에 관한 전시 또한 기획자마다 지닌 전시와 작품에 대해 갖는 태도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즉, 웨스는 기획자의 연구와 태도를 강조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리고 완성된 이후에도 미술을 둘러싼 생산은 멈추지 않는다. 종로구 통인동에 자리했다 2020년 용산으로 옮긴 ‘시청각 랩(AVP lab)’ 또한 오피스 형태의 전시장을 선언하며 전시의 연구를 강조해왔다. 글을 쓰는 필자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이곳에서는 음악가 장영규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프로젝트, 덴마크에 거주하는 작가 쥬노 김과 진행한 디지털 퍼포먼스 등 온라인 환경에서의 미술 작품을 둘러싼 연구에 집중해왔다.
이쯤 왔으니, 브라이언 오도허티가 1976년 <아트포럼>지에 쓴 글 ‘하얀 입방체 안에서(Inside the White Cube)’를 떠올려보자. 그는 일찍이 하얀색 벽인 화이트 큐브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전시장으로의 변화를 주장했다. 이미 50년 전 이야기로, 전시장은 작가의 실험과 전시 기획자의 의도, 관람객과 동시대 문화 현상과 조응하며 여러 조건들과 결합한다. 전시장은 극장, 도서관, 서점, 플리마켓이 되기도 하며 모든 것을 뛰어넘는 작가의 작업실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러다 2020년 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을 활용한 디지털 시공간의 영역이 동시대 미술 현장에 등장했다. 문을 닫은 전시장, 미술관, 갤러리 공간을 온라인 뷰잉 룸이라는 디지털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한 것. 2021년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예약제가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2022년 현재는 전시장을 향한 관객들의 반응이 더욱 다양해진 듯하다.

서울에 국한해 현재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기획자 김인선이 서촌에 운영하는 ‘윌링앤딜링’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뜻깊은 개인전들이 열리고 있다. 올여름 열린 이동훈의 개인전에서 그의 흥미로운 조각을 볼 수 있었다.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CR 콜렉티브’(http://cr-collective.co.kr)도 흥미로운 개인전과 기획전을 꾸준히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다. 디렉터 오세원은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을 포괄하며 전시마다 공간을 과감하게 변화시킨다. 신미경의 전시 때는 전시장 색깔이 1백80도 변모했고, 작가 무니페리 전시 때에는 일종의 극장이 되었다.

시대마다 전시장은 변화한다. 1920년대 경성에서 전시를 보려면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강당이나 백화점 안의 전시장에 가야만 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 인사동이나 홍대 앞에 흥미로운 전시 공간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과 위치를 별도로 기억할 만한 공간들이 여럿 흩어져 분포한다. 이 공간들을 찾아가서 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작품이나 관습적인 방식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전시, 그 자체다.

writer 현시원(큐레이터, 시청각 랩 대표)

영 컬렉터의 정체

언제부턴가 아트 컬렉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영 컬렉터’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영 컬렉터는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20~40대 컬렉터를 총칭한다. 이들은 미술 시장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흐름을 재빠르게 감지하고, 신진 작가와 작품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습득하며 자신만의 개성 있는 컬렉팅을 선보이고 있다.

영 컬렉터의 등장은 한국 미술 시장이 확장되며 시작되었다. 지난해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키아프 서울은 사상 최대 판매액과 관람객 수를 기록하며 한국 미술 시장의 현재를 알렸다.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했던 2020년을 제외하면, 2019년과 2021년 사이의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 화랑미술제는 30억원에서 72억원, 키아프 서울은 3백10억원에서 6백5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 총액도 꾸준히 경신되고 있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의 낙찰 총액은 약 3천2백억원으로 2020년에 비해 2.8배가량 급증했다. 작품 설치를 돕는 운송 업체는 3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소비자가 늘었고, 액자를 만드는 업체의 대표도 “이렇게 바쁜 시기는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다. 올해도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공동 개최되는 등 미술과 관련한 움직임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미술 시장이 크게 확장한 이유 중 하나는 작품 소비에 대한 열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 시대가 시작된 이후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각자의 공간을 작품으로 꾸미거나, 해외 여행이 아닌 컬렉팅에 목돈을 쓰는 이들이 많아졌다. ‘컬렉팅 초보자’를 뜻하는 단어인 ‘컬린이’도 지난해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소비를 즐기는 MZ세대가 일상적인 제품이 아닌 미술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아트 바젤과 UBS가 펴낸 ‘아트 마켓 리포트 2021’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품을 구매한 자산 1백만 달러(약 11억 원) 이상의 컬렉터 2천5백여 명 중 52%는 M세대, 4%는 Z세대다. MZ세대는 어느덧 현대미술계에서 영 컬렉터라는 이름으로 굵직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영 컬렉터가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먼저, 영 컬렉터는 또래 작가의 작품을 선호한다. 영 컬렉터의 대부분이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인 1980~90년대생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즐긴다. 내 주변의 영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배헤윰, 박민하, 박노완, 이은새, 정희민, 오종, 박경률, 이은, 옥승철, 최지원, 송수민 등이 인기 작가로 꼽힌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를 통해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 작품 소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대부분 신진 작가이다 보니, 메가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가에 비해 작품 가격이 합리적인 편이라 부담 없이 소장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작은 작품은 1백만원대, 큰 작품은 1천만원대 정도다.

또한 영 컬렉터는 구매한 작품을 스스로 홍보한다. 기성세대 컬렉터가 온라인상에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면, 영 컬렉터는 SNS를 활용한다. 새롭게 소장한 작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일종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컬렉션 소개를 목적으로 별도의 계정을 만들거나, 자신만의 해시태그를 쓰는 이들도 있다. 내가 ‘@soyoung_collection’이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해시태그로 ‘#soyoung_collection’을 이용하듯이 말이다. 또 컬렉터가 작품 관련 게시물을 올릴 때 작가를 태그하면, 컬렉터의 팔로워에게도 새로운 작가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 나의 경우에도 ‘@theicygays’, ‘@bech_risvig_collection’,

‘@underdogcollection’을 비롯한 해외 영 컬렉터의 계정을 보며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이제는 작가 본인이나 갤러리스트뿐 아니라 컬렉터도 작가를 알릴 수 있다.

SNS를 통해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며 ‘디깅(Digging) 컬렉션’이라는 말이 생겼다. 갤러리나 아트 딜러의 조언을 듣고 작품을 고르던 기성 컬렉터와 달리,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영 컬렉터는 국내외 갤러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적극적으로 컬렉팅한다. 좋아하는 영역을 ‘덕질’ 하듯이 깊게 파고드는 소비문화가 미술까지 확대되면서, MZ세대는 아트 토이나 동시대 미술 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SNS를 통해 여러 작품을 살피며 키워온 안목까지 더해지니, 훌륭한 신진 작가를 일찍이 발견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미술을 사랑하는 컬렉터라면 ‘디깅’을 포기할 수 없을 테고, 미술에 대해 깊이 파고들수록 좋은 작품들을 컬렉팅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 컬렉터는 끊임없이 미술계의 문을 두드린다.

지난해 서울시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서울특별시 인구의 약 35%를 차지한다. 이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67.2%로, 부모 세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넘어섰다. MZ세대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며 이들의 소비는 경험 지상주의, 예술 지상주의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타인과 다른, 나만의 특별한 삶을 살고자 하는 MZ세대에게 아트 컬렉팅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작품을 열정적으로 컬렉팅하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한다.

writer 이소영(아트 컬렉터 겸 미술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