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3인이 손꼽은 얼굴들.
영화, 미술, 스포츠 등 문화 예술 안에서 당신이 올해 분명히 만나게 될
가장 흥미로운 현재진행형 아티스트 30인.
박재홍
피아니스트
2021년 스물두 살의 나이로 이탈리아의 페루초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일찌감치 클리블랜드 국제 영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와 지나 바카우어 국제 영 아티스트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심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왔다. 그를 우승으로 이끈 모리스 라벨의 협주곡 G장조, 클로드 드뷔시의 전주곡 ‘가라앉은 성당’ 은 꼭 들어보길. 경이로 기교로 무장한 작품으로 스스로 빛나기보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 그 자체가 들리는 연주라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될 것이다.
유남권
공예 작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박강용 선생 이수자. 그의 작업은 굳건하면서도 단아한 구석이 있다. 의자 하나도, 그릇 하나도 아름답다. 작가의 성정이 그대로 형태와 질감으로 옮겨져 조용히 서 있는 것 같다.
이미상
소설가
어떤 강렬한 소설 체험은 그날 하루를 온전히 기억하게 만드는데, 이미상 작가의 데뷔작 <하긴>이 내겐 그랬다. 웹진에 쓴 데뷔작 한 편으로 젊은 작가상을 거머쥔 불가사의한 신예.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조차 갖지 못하게 고속으로 질주하는 이야기, 적중하는 문장…. 그는 지금 한국 문단에서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힘 좋은 도끼다.
살라만다
DJ
최소한의 악기로 간결하고 명징한 음악을 만드는 살라만다. 현대음악가 스티브 라히시(Steve Reich)의 미니멀리즘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나 한국 디제잉 신에 앰비언트 뮤직을 주인공으로 세운 이들이다. 촘촘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빚어내는 반복과 변주는 듣는 이를 숲 한가운데 평온 속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한낮의 기분 좋은 활기 속으로 이끌기도 한다.
김담비
허벌리스트
흡사 마녀의 수프 같은 비비드 컬러의 차 한 잔. 허벌리스트 김담비는 엄숙한 전통 다도(茶道)의 무게를 덜어내며 전통 다도가 쌓아 올린 단단한 울타리를 허물고 확장하는 이다. 그가 만들어낸 실험적인 차 한 잔에는 노르웨이 해초, 부채맨드라미 꽃이나 칡꽃 등 기이하고 낯선 재료들이 창의적으로 담긴다. 차와 향, 명상을 도구로 베를린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Martin- Gropius-Bau) 미술관, 베를린 아토날(Berlin Atonal) 등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유럽 도시에서 퍼포머로 활약 중이다.
차재민
영상 작가
진단받기 어려운 병을 앓았던 어머니의 경험에서 출발해 다른 아픈 여성들을 만나고, 나아가 더 넓은 이야기 속으로 이동한 영상 에세이 ‘네임리스 신드롬 (Nameless Syndrome)’으로 지난봄 리움미술관이 주최하는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한 차재민 작가. 노동, 임금, 돌봄, 도시 개발 등 오늘,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그의 날카로움이 무뎌지지 않기를, 닳지 않기를.
DQM
촬영감독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 <너와 나>는 배우로도 활동하는 조현철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두 소녀의 하루를 차분히 따라가는 영화는 이들이 오가는 길과 들판, 집과 교실, 버스 안에서 오래 머물고 싶게 한다. 나무 사이로 빛이 쏟아지고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빠져들다 돌연 참담해진다. 이토록 빛나는 계절에, 생의 눈부신 한때를 보내던 아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에. 어떤 이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그 가혹한 생의 눈부심을 담아낸 이가 DQM(정다운) 촬영감독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너와 나>를 본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영화의 잔상이 남아 있다. 빈 복도와 초록 들판, 창가에 놓여 있던 화분까지.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장면이라고 느꼈다. <너와 나>를 촬영하기 전에는 사계절의 변화를 이렇게까지 주의 깊게 들여다본 적이 없다.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겨울에 감독님을 만났는데,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잎이 조금씩 돋아나고, 꽃망울을 터뜨려 벚꽃이 떨어지는 때, 초록 잎으로 무성해졌다가 낙엽이 지고 다시 나목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유심히 지켜봤다. 감독님이 이 변화들을 감지하는 것이 우리 영화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기도 했고.
이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데 빛이 큰 몫을 해낸다. 햇빛이 쏟아진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햇빛이 퍼붓는다. 빛에 집착했던 것 같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감독님과 빛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장 아니어도 어디서든 빛만 보면 그 풍경을 찍어 감독님에게 보냈다. 빛이 닿아 있는 순간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기였다. 빛이 닿기까지의 시간, 빛이 닿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들에 대해 생각했다. 촬영 중 잠시 쉬다가도 운동장 흙 위로 햇빛이 드리울 때, 화단에 빛이 스며들 때는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서둘러 카메라를 다시 잡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아, 오늘 햇살이 좋다’라는 말조차 잘 하지 않는 건조한 사람이었는데(웃음), 뒤늦게 알게 된 아름다움이 크게 다가왔다.
두 소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했다. 관점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세월호를 보러 진도에 간 적이 있다. 내가 운전을 하며 가는데 옆에 앉은 감독님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풍경이 아이들의 부모님이 보는 풍경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어떤 각성이 있었다. 동시에 나는 그들이 봤을 법한 것을 절대 찍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가당찮은 일이지 않나.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들이 느낄 법한 것을 내가 느낀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 때마다 고민이 컸다. 내가 어떤 의미나 의도를 갖게 되는 것을 경계했다. 거기에는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도 포함된다. 지금까지 DQM이 해온 작업이 그러하듯 기록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다가가려 했다. 영상으로 내가 재주를 부릴수록 가짜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너와 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어떤 장면인가? 시기마다 바뀌는데 지금은 이 영화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꼽고 싶다. 강아지 ‘진식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밤이라 조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강아지가 새하얗게 빛났으면 했다. 조명을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다 결국 모든 조명을 끄고 카메라 노출만으로 그 장면을 담았다. 가장 어두운 밤, 새하얗게 빛나는 강아지가 프레임으로 들어오던 순간, 문득 멈춰 렌즈를 보는데 감동적이었다. 요즘은 그 장면이 많이 떠오른다.
이미래
설치미술가
지난봄,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 관에는 살아 있는 동물의 내장을 방금 꺼내 걸어놓은 듯한 5m 남짓한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고무호스로 친친감겨있고,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에서는 점액질 물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래 작가의 ‘엔드리스 하우스 (Endless House: Holds and Drips)’다. 그가 공들여 빚어낸 도발은 아트 바젤로까지 이어졌다. 정제되고 번듯한 미에 숨이 막힐 때는 언제고, 이미래의 박력 있는 작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김동해
공예 작가
돌멩이에 가느다란 황동 선을 매달아 만든 ‘풍경’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본 적 있다. 소재는 금속이 분명한데 바람에 서서히 흩날리는 모습이 기다란 들풀 같았다. 차갑고 단단한 물성의 재료로 시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는 이다.
최재원
시인
최재원 시인의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는 ‘나랑 하고 싶은 게 뭐예요?’로는 전달되지 않는 정서와 에너지가 있음을 아는 이의 실험으로 가득하다. 욕설과 사투리, 온라인 대화 메시지등 경계를 가르지 않고 시 안으로 끌어들인 시어에는 힘이 넘쳐 흐르고, 사유는 찐득하게 얽혀 있다.
말든
뮤지션
딘과 라드 뮤지엄이 만든 얼터너티브 레이블 소속의 싱어송라이터. 트릭 하나를 익히기 위해 수백, 수천 번 연습하고 그러다 다쳐도 다시 스케이트를 타며 느꼈던 마음으로 첫 앨범 <Boneless>를 만들었다. 꽤 독특한 방식으로 사운드를 전개하는데, 생소하거나 불편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생경하고 신선하지만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한 매력이 있다.
강아름 & 이정은
그래픽 디자이너 (체조스튜디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체조스튜디오’와 매거진 <사물함>을 함께 만든다. 군더더기 없이 균형이 잘 잡힌 디자인을 선보이는 동시에 집안의 사소한 사물을 탐구하며 모두의 일상을 그리는 매거진을 선보인다. 두 디자이너가 만드는 것들에는 디자인이 품은 메시지가, 디자인 너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민예
텍스타일 작가
다양한 색과 굵기를 지닌 실을 사용해 잔디와 이끼, 넝쿨, 그리고 숲을 만드는 작가.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지만 시드는 것이, 결국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누군가를 위해 한 땀 한 땀 실을 꿰어 식물의 형태를 만들었다. 작은 오브제가 되기도, 거대한 군락을 이룰 수도 있는 그의 작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비정형성이다. 바람이 불면 흩날리고, 해가 들면 밝아지며 마치 살아있는 듯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프레임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자유로이 생존한다.
노재원
배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데 왠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 목소리나 눈빛 때문인지, 그가 지닌 분위기에 끌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배우 노재원이 그렇다. 영화 <한비>에서도, <윤시내가 사라졌다>에서도 그는 크게 내색하려 들지 않는 인물을 연기했다. 미묘하고 은근하게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간극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 몰입은 자연스레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이토록 섬세하게 감정을 다루는 배우에게 또 어떤 얼굴이 존재할까?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2023년에도 그의 영화를 볼 작정이다.
정우영
축구 선수 (SC 프라이부르크 소속)
공이 있을 때도 뛰고, 없을 땐 더 뛴다. 이렇듯 쉼 없는 움직임은 상대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의외의 공간에서 기회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패스 혹은 슛을 시도한다. 골이나 어시스트 같은 기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실을 무기로 삼는 선수다. ‘최선을 다한다’는 상 투적인 말의 진가를 보여주는 그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기대하게 만든다.
유지영
영화감독
자신의 20대를 투영해 영화 <수성못>을 만들고, 30대가 된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고민하며 영화 <Birth>를 만들었다. 유지영 감독은 언제나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통해 사유하고, 그 사유를 영화로 구현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솔직하고 내밀한 언어로 채워져 있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사유했을, 그래서 괴로웠을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감독.
이정현
농구 선수 (고양 캐롯 점퍼스 소속)
이번 시즌 성장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농구선수는 단연코 이정현이다. 프로로서 두 번째 시즌에 돌입한 그의 플레이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무모한 시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