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가장 큰 속성이 일시성이라면, 미술계에서 가장 큰 축제는 아트 페어일 것이다. 단 서너 일간 수십 개의 갤러리가 한 장소에 모이는 아트 페어 현장에는 순간적인 에너지가 발생하고, 이는 아트 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미술 장터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셈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트 페어로 자리매김한 키아프 서울 그리고 프리즈와 바젤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는 저마다의 전략으로 미술계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

시민을 위한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미술관은 ‘대중화’에, 세상에 단 한 점뿐인 고가의 작품이 오가는 갤러리는 ‘고급화’에 방점을 찍곤 하지만 대중에게 컬렉팅 경험을 선사하려는 아트 페어는 두 가지를 모두 실현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다. 영국에서 시작된 어포더블 아트 페어는 ‘누구나 부담 없이 구매 가능한 가격대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적극적인 대중화 전략을 취한 바 있다. 그에 반해 주요 아트 페들은 고급화 전략을 더 강화하는추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작품의 가격대를 높이거나, 블루칩 작가들을 선보이거나, 입장 티켓 비용을 올리는 식의 단순한 고가 전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리미엄’의 본질은 고가 전략과 더불어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경험을 반복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품질의 차별화’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아트 페어들은 일률적인 부스 구획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보통 아트 페어에 참가하는 갤러리들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일반 부스와 한 작가만을 조명하는 솔로 부스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후자의 경우가 늘었다. 올해 프리즈 뉴욕에서도 무려 20여 개 갤러리가 솔로 부스를 택했다. 하우저앤워스,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같은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가 줄줄이 솔로 부스를 선언하자 제임스 코핸, 케이시 캐플런을 비롯한 중견 갤러리도 이 흐름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왜 솔로 부스일까? 아트 페어가 열리면 전 세계 컬렉터뿐 아니라 주요 미술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때 그간 인기 있던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두 가져오는 것도 좋지만, 이 기회에 자신 들이 선보이고 싶던 작가를 전면에 내세워 집중적으로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해 프리즈 뉴욕에서 데이비드 즈워너가 소개한 추상회화 작가 수잔 프레콘(Suzan Frecon)의 부스는 그의 대형 회화 5점만을 당당히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키아프 서울도 다양한 국적의 솔로 부스를 선보인 바 있다.

 

아트 페어가 끝나면 관람객 수를 집계한다. ‘역대 최다 관람객 수’와 같은 지표는 판매액만큼이나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작용한다. 그런데 최근 아트 페어는 관람객의 양적 증대뿐 아니라 질적 향상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멤버십이다. 올해 키아프 서울은 처음으로 멤버십을 론칭했다. 아카데미 프로그램 ‘VIP for MZ’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이 멤버십은 키아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키아프 서울에 대한 혜택을 제공할 뿐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들이 국내 미술계 네트워크에 접속해 미술 시장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멤버십 론칭 후 얼리버드 모집이 빠르게 마감되며 관람객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프리즈 서울이 올해 회원제 프로그램 ‘Frieze 91’을 론칭했고, 아트 부산은 컬렉터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YCC(Young Collectors Circle)’를 진행하는 등 여러 아트 페어가 멤버십을 통해 고객 확보와 더불어 미술 생태계에 기여하는 중이다. 과거에는아트 페어가 개최되면 해당 도시 내 컨벤션 센터에서 메인 행사가 열리고,주변 레스토랑, 카페 등과 연계한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와 달리 최근의 주요 아트 페어들은 도시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베니스 비엔날레처럼 말이다. 지난해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개최 기간에 여러 갤러리들이 이례적으로 밤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또 한남동에 자리한 갤러리들은 ‘한남 나잇’을, 삼청동 일대 갤러리들은 ‘삼청 나잇’이는 이름을 내걸고 지역별로 뭉쳤다. 아트 페어 메인 행사를 즐긴 후 자연스레 도시를 탐험하는 건 특히 외국인 관람객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아트 페어가 인파로 북적이는 비결은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접근성’에 있다.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을 위해 아트 페어는 더 쉽고 편리하게 접근 가능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테면 현장에 QR 코드가 많아졌다. 이를 스캔하면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판매 사이트로 연결되고, 현장을 찾아오지 않은 타인에게 전달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온라인 뷰잉이나 키오스크 등을 통해 새로운 컬렉터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력하는 모습도 돋보였다. 올해 하반기는 키아프 서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굵직한 아트 페어들을 앞두고 있다. 모두 어떤 변화를 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면, 그 어떤 행사보다 발 빠르게 진화하는 아트 페어를 찾아가 직접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