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쪼개지고, 흩어지며, 홀로 서는’
핵개인이 바꿀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2023년의 화두는 챗GPT의 등장이었다. 생성형 AI와 협업에 따른 세계의 변화가 가파르다. 챗GPT를 활용하며 프롬프트에 옳은 값을 넣을 수 있도록 학습하는 것만이 이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의 전부일까? 그것으로 우리는 이 변화에 충분히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그의 네 번째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보다 큰 화두를 건넨다. “위로부터 아래로 억압적인 기제로 유지되던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이제 개인이 상호 네트워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라고. 사회를 유지해온 시스템이 변화하며 막강한 힘을 갖게 된 ‘핵개인’이 탄생했다고 말이다. 저자는 핵개인의 등장 배경과 특성에 대해 ‘학벌 인플레이션’, ‘효도의 종말’, ‘이연된 보상’, ‘5분 존경 사회’, ‘AI 동료’, ‘마이크로 커뮤니티’, ‘미정산 세대’ 등의 키워드로 분류해 새 시대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한다. 그가 정의하는 핵개인은 특정 세대나 성별로 손쉽게 정리될 수 없다.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쪼개지고, 흩어지며, 홀로 선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오늘 촬영은 AI를 이용해 배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재미있네요. 그러잖아도 지난달 세계사진협회(WPO)가 후원하는 세계 최대 사진 대회에서 1등을 한 작가가 당선 후 그 작품이 AI로 만든 이미지라고 밝힌 사건이 있었어요. AI를 이용한 창작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아가 창작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굉장히 현대미술적으로 던졌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인터뷰를 준비하다 보니 신간 홍보를 위한 인터뷰 대부분을 레거시 미디어보다는 유튜브 채널과 유료 구독 서비스에서 하셨더라고요. 저자 역시 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해가는 것이죠?
맞아요. 1만 부 배포되었다고 해도 시장에 깔려 있기만 하고 아무도 읽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열독률이 높은 쪽으로, 좋아하는 것을 돈을 지불해 보고 그만큼 피드백을 보내는 이들 쪽으로 움직인 거예요. 이제는 푸시(push)가 아니고 풀링(pulling)이 된 거예요. 과거의 레거시 미디어가 ‘내가 당신을 보게 하겠다, 어젠다 세팅은 내가 한다’ 하는 태도였다면 이제는 ‘나도 이걸 좋아하고, 당신도 좋아한다면 우리 함께 좋아하는 이야기를 합시다’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권력이 빠진 거죠. 그 사람이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하는 게 권력이잖아요.

“위로부터 아래로 억압적인 기제로 유지되던 권위주의를 지나 이제 개인이 상호 네트워 크의 힘으로 자립하는 새로운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는 많은 지면을 들여 탈권력을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 을 쓴 저자의 탈권위도 인상적입니다. 새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기성세대가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젊은 세대가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꼰대력이 쏙 빠진.(웃음) 인상적인 독자 반응 중 하나가 “이건 부장님이 보셔야 돼”였어요.(웃음) “내가 사는 방식이 옳은 거였네. 매일 상처받았는데 그 사람이 틀렸네”라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런 분들 생각하며 책을 쓴 거예요. 응원하려고. 지금 세상과의 불일치는 시대의 언어로부터 멀어지면서 만들어져요. 본인은 모르죠. 관용적 표현이기 때문에 쓰는 거예요.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고, 세대를 이야기할 때 M과 Z를 붙이면 절대 안 되죠. 밀레니얼 세대인 부장과 Z세대인 대리가 어떻게 같은 세대예요? 그럼에도 MZ세대라고 한 데 묶어 “얘네들 다 똑같아, 둘 다 정신없고, 조직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희생 정신은 빵점이며…” 하는 식으로 타자화하는 게 문제로, 이는 언어의 감수성 없이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순간부터 발현됩니다.

책에서도 ‘채용이 아닌 영입, 직원이 아니라 구성원’이라고 용어를 정정했죠.
내가 쓰는 언어가 나의 세계관이고 잘못된 언어가 잘못된 세계관을 형성해요. 그러니 별 생각이 없더라도 ‘상사, 부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를 하대하게 돼요. 상사, 부하가 아니라 ‘동료’죠. 기성세대의 언어 습관에 기성의 세계관이 들어 있는데, 치열하고 각박했던 과거의 세계관이 현행화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으면 새 세대와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사람들은 일일이 어원을 생각하기보다 표현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뱉게 되잖아요. 그 순간부터 드디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최근에 태어난 이들은 이미 신규 버전으로 패치가 돼 있으니 기성세대의 현재 운영 체계가 문제가 되는 거죠. 우리가 보다 섬세해지고 배려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만큼 더 나은 삶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거친 삶이 아니라 상호 배려하고, 타인의 자아를 존중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겁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말을 해줄 어른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어른이 아니고요.(웃음) 계속 배우고 싶은 사람인데 누구에게 배우고 싶은가 하면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감도가 높은 분들에게 배우고 싶죠. 부장님에게 배울 것도 있겠지만, 대리님
에게 배울 것이 더 많은 상태가 된 거예요. 변화가 빨라졌기 때문이에요. 또 한 가지는 부장님이 알고 있는 걸 저도 알 만큼 경험이 쌓였는데, 대리님이 알고 있는 건 제가 알 만큼 내 감도가 떨어졌기에 대리님 바라기가 된 거예요. 당연히 그분이 제 스승이죠.


변화한 시대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보편적 세대론으로 묶지 않은 것도 미덕이에요.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고 했죠. 김 대리와 박 과장이 새로운 세대의 사람이라서 수평성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수평성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가 됐는데 당신이 안 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있는 거라는 거예요. 세대론으로만 흐르면 젊은 세대는 이해가 안 되는 존재라고 하며 동시에 희화하잖아요. 한 세대를 타자화함으로써 혁신을 거부할 명분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쟤들도 늙으면 나처럼 돼” 하고 본인을 합리화하는 거죠. 본인이 세파에 찌들고 혁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은 늙으면 다 완고 해진다고 퉁치고 싶은 거거든요. 근데 그렇지 않은 분 많아요. 배철수 씨를 보세요. 칠순인데 얼마나 멋있고 쿨해요. 그분이 나이 들어서 멋있어진 게 아니라 멋있는 사람이 나이가 든 거예요. 그분은 젊을 때도 멋있었어요. 지금은 내가 이렇지만 나중에 좋아질 거라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좋아져야죠.


신년을 맞아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받을 것 같습니다. 2024년을 관통하는 화두는 뭐라고 보십니까?
2024년의 화두, 트렌드는 없어요. 우리는 내일이 오면 뭐가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금부터 향후 5년간 잘 살아야 좋은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해가 바뀌었다고 불현듯 ‘새로운 내가 있네?’ 하게 되는 건 없어요. 내일은 모르지만 오늘, 지금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드릴 수 있어요. 지금의 이야기는 ‘핵개인이 왔다’예요. 핵개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본인 삶의 주체적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이번 설날에 엄마, 아빠와 뭘 해보면 좋겠다’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또 오랜다. 나이 드신 양반들 불쌍하니까 가자’ 하는 건 핵개인의 태도가 아니에요. 주체적 의지로 행동하는 이들을 핵개인이라고 부릅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AI 등 지능화의 힘으로
예전보다 성취의 크기가 커질 거예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커짐으로써,
인간이 증강됨으로써
핵개인이 대두한 것이죠.

핵개인의 독자성은 조직의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상관없는 것이죠?
그럼요. 스스로 공감 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면 핵개인입니다. 자기 스스로 설득돼야 해요. 그러지 않고 시켜서 했다? 이 사람들은 이미 핵개인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설득해야 돼요. 같은 업무 지시를 받아도 이견을 낼 수 있고, 다른 방향을 제시하 거나 그걸 부술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풀면 안 돼요. 문제는 찢거나 내가 새롭게 정의해야죠. 상대의 질문이 틀렸는데 그걸 따라가면 나도 똑같이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핵개인이 만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나를 위한 세상을 만듭니다. 개인이 도구로 쓰이지 않는 세상이요. 핵개인은 어떤 회사를 다닐지가 아니라 ‘회사를 다녀야 해?’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내 일을 하면 회사가 필요 없잖아’ 혹은 ‘배울 게 있으니 회사를 다닐 거야. 그 대신 3년만’ 하는 경우도 있죠. 조직 생활을 해도 나에게 빅 픽처가 있으니 영화 <쇼생크 탈출> 주인공처럼 조용히 숟가락으로 벽을 파는 겁니다. 이 경우에는 충분히 자기 명분이 있으니 회사 안에서도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죠.

지금 이 시점에 핵개인이 등장한 배경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핵개인이 되고자 하는 건 근원적 욕망이었는데 이전에는 타협한 거예요. 나라는 존재가 워낙 작기 때문에 누군가 와 연대함으로써 그 무리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각자의 이상을 이뤄온 거죠. 휴대폰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큰 회사에 들어가. 10만 명 중 한 명이 돼서 수출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면 너에게는 성과급이 주어져”라고 했죠. 하지만 디지털 도구와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래하면서 그 말을 거부하고 ‘내가 해볼까?’ 싶은 환경이 만들어졌어요.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조3천억 원에 팔릴 때 직원이 총 13명이었다고 해요. 1인당 1천억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죠. 챗GPT를 만든 오픈AI가 최근 이사회를 열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놀란 게 1백조원 규모 회사의 구성원이 7백명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이제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엄청나게 소중해졌어요. 창의적인 사람은 AI 등 새로운 지능화의 힘으로 예전보다 성취의 크기가 커질 거예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커짐으로써, 인간이 증강됨으로써 핵개인이 대두한 것이죠.

핵개인 사회에도 규칙이 있다고 보십니까?
제가 질문해볼게요. 부장님이 퇴근 시간 이후에 전화해도 되나요?

음… 부득이한 경우 메시지로 먼저 통화 가능 여부를 물어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요. 괜찮지 않습니다. (좌중 웃음) 하면 안 돼요. 근무시간 외 통화 금지법이 이탈리아에도 프랑스에도 있어요. 심지어 프랑스 기업들은 개인 전화 번호 공유를 금지하기도 한다 해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근데 한국은 비상 연락망을 만들죠.(웃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는 폭력이라고요. 핵개인의 규칙은 상호 존중이에요.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말이 있죠. 존댓말을 쓰는 이유는 당신도 반말을 들으면 화가 나기 때문이에요. 역지사지, ‘너라면 좋겠냐?’를 늘 상기해야 합니다. 예전의 삶이 험했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어요. 핵개인이 되려면 먼저 회개하고 시작해야 돼요. 과거 관행에 따라 했던 행동이 있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사실 저도 회개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 핵개인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일희일비하 면 안 돼요. 특히 청년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잖아요.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1 백만 개가 돌거든요. 하지만 복잡계 이론에 의해서 당신이 어떤 플랜을 세우더라도 안 돼요. (좌중 웃음) 계획할 게 아니라 실행해야 해요. 계획을 다 세울 수 없으니 꿈을 세우는 거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 다른 건 몰라도 몸의 움직임으로 감동을 주고 싶어’ 하면 춤을 배우건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나가건 나의 적응이 축적 돼야 해요. 계획을 세우다 찢고, 내일 다시 시작하고, 매일같이 원데이 클래스를 반복하면 안 됩니다.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면 안 되고, 꿈의 행위를 얼라인 시켜야 해요.

책에서 언급한 ‘자기 서사’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제 네 번째 책이에요. 책을 완성하면서 화두가 이전하거든요. 이 과정에서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건 단지 말이 아니구나, 내 삶을 보여준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됐어요.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저는 노바디인데요. 이런 책을 썼습니다’ 하면 ‘왜 이러세요?’ 할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고 10년 동 안 계속해서 이야기하니까 ‘이 인간 또 저래’ 하면서 한번 들어나 볼까 한단 말이죠. 궐기 대회는 의미가 없어요. 그건 앞으로 하겠다는 거니까. 이미 한 것을 통해 나를 보여줘야 해요. 지난번 책 제목이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예요. 당신의 모든 것 이 축적되면 서사예요. 그래서 늘 잘 살아야 해요. 서사는 일상의 기록이니까 그 기록의 밀도를 높인 사람이 유리해요. 그 기록이 곧 증거가 되어주니까요. 이는 꾸준히 쓴 글일 수도 있고, SNS 계정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마리끌레르> 독자 중에 커리어 시작한 분도 많을 텐데요. ‘난 이런 뜻이 있고 재주가 있는데 왜 안 알아주지?’ 하고 야속해한단 말이에요. 지금 꾸준히 하면 알아봐줘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하 는 것이지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주장은 당신의 어떤 주관적 형태의 외침이기 때문에 객관화하려면 여러 증인과 증거가 필요해요. 그래서 쓴 문장이 “고유함은 당신의 어떤 주장인데 진정함이 타인의 평가다”예요. 고유함을 오래 유지해야지 그러지 않고 계속 내가 이 렇다 하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는 기성세대에도 해당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신기술의 등장으로 직업의 존폐에 대한 예견이 넘쳐나고, 특히나 미디어 산업의 경우 AI가 기사를 꽤 잘 쓰지 않습니까?(웃음)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진짜로 답을 드릴게요. (테이블 위 스마트 폰을 가리키며) 일단 이 녹음 앱을 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