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웹툰 작가를 포함한 만화 작가가 더 잘 쉬고, 더 투명하게 정산을 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관련한 내용을 담은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 제·개정안을 내놓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만화, 특히 웹툰은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작화로도 유명하지만, 작가의 노동 강도가 엄청난 것으로 악명 높기도 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 웹툰 작가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설문에 응한 800명의 웹툰 작가 중 70%는 일주일에 6일 이상 창작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창작하는 날이면, 하루 평균 9.5시간을 작업에 쓴다고 답했죠. 이 때문에 목이나 허리, 손목 관련 질환을 앓기가 다반사이며, 유산 등 더 심한 건강 악화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인기를 끈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의 고 정성락 작가는 3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를 두고 회차당 100컷 이상을 작업하는 등 과로 때문에 지병이 심하게 악화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죠. 2023년에 이뤄진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 중 우울증 기준을 초과한 비율은 28.7%였습니다. 한국에서 평생 우울증을 한 번 이상 경험할 확률은 7.7%(2021년 기준)인 것에 비해 매우 높았죠.
이렇게 노동 강도가 높은 큰 이유 중 하나는 작업해야 하는 컷 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이 생각하는 한 회당 컷의 적절한 양은 평균 53.9컷이었습니다. 반면 실제로 제작되고 있는 회 당 평균 컷 수는 64.6컷이었습니다. 45.4%의 작가는 컷 수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해 자율적으로 노동 강도를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이번에 고시된 새 표준계약서에는 연재 계약 시 작품의 장르와 형식 등을 고려해 최소·최대 컷을 먼저 합의하게끔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아울러 50회 연재 시, 작가에게 2회의 조건 없는 휴재를 보장하는 조항도 신설되었습니다.
작가가 계약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불공정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잦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작품을 준비하다가 일방적인 계약 파기를 당하거나,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식이죠. <검정고무신>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작품의 그림 작가 이우영 작가는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에 ‘손해배상청구권 및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한다는 등 작가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계약서를 작성했는데요. 추후 형설앤으로부터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허락 없이 그렸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장을 받기에 이릅니다. 그는 법적 분쟁에 오랜 기간 힘들어하다 2023년 3월, 결국 숨졌습니다. 같은 해 11월에 이르러서야 법원에서 이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죠.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먼저 새로운 표준계약서는 비밀유지 조건을 완화했습니다. 작가가 계약을 맺거나 검토하기 위해 변호사 등의 전문가나 저작권 관련 공공기관 등에 자문할 때는 비밀유지 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명시했죠. 작가가 자신의 권리를 더 명확히 알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웹툰을 영화화하는 등 2차적저작물을 작성하기 위해 제3자와 계약할 때는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또는 그와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새로 추가됐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새 표준계약서가 널리 쓰이게 하는 것입니다. 문체부는 이를 위해 내년부터 관련 사업을 공모할 때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사업자나 단체를 우대하고, ‘표준계약서 사용 지침’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더 건강한 만화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독자 또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