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사진가 듀오 알바란 카브레라는 경이를 자아내는 아름다운 나무의 면면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시간과 삶의 의미에 대하여.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진을 주로 촬영해왔다. 자연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자연을 마주하는 건 보편적인 일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은 문화권이나 사회집단에 따라 다른데, 자연만큼은 예외다. 나무는 이러한 자연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다. 아름다운 나무를 마주하면 누구든 마음이 동하기 마련이지 않나. 나무가 모든 인간에게 같은 정도의 경이로움을 선사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나무는 언제나 인간 가까이에, 지역마다 다른 종류로 존재해왔다. 세비야에서 10대 시절을 보낼 때 자주 바라본 야자수와 레몬나무, 무화과나무가 문득 떠오른다.

나무를 사진에 담아내는 ‘On Listening to Trees’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헤르만 헤세의 문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는 인간보다 수명이 길고 오랜 역사를 이어왔으며 움직이지 못하지만 뿌리내린 자리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다. 이러한 자연의 특성에 대해 알고, 이를 인간의 특성과 비교하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무의 모습을 포착하며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자 했다.

나무를 촬영한 사진을 모아 지난해 동명의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10여 년 전부터 최근까지 촬영한 사진들을 담았는데, 촬영 연도와 날짜에 따라 시간순으로 배열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사진가인 우리의 흥미를 돋우는 다른 주제들과 긴밀하게 관련을 맺을 수 있도록 배열했다. 사진을 일종의 학습 도구로 여긴다. 사진을 통해 다양한 주제에 집중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진집을 출간한 이후에도 꾸준히 나무를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고 있다.

자연의 장면을 포착하면서 삶을 대하는 가치관에 달라진 지점이 있나?
그렇다. 더욱 큰 인내심과 보다 차분한 내면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과 다른 삶의 리듬을 지닌 생명체를 관찰하는 경험은 바삐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인간은 왜 항상 서두를까?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 걸까?’ 하는 질문을 품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연에 대해 새롭게 한 생각이 있다면?
예전에는 자연을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자연의 주기는 큰 변화 없이 해마다 반복되니까. 그런데 최근 장기화된 가뭄과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소식을 자주 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자연이 언젠가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인간과 자연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나?
인간이 자연에 의지하는 것이지 자연이 인간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나무와 자연,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관점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인간의 행동과 생활방식으로 인해 파괴되는 건 결국 인간, 즉 우리 자신이다.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고, 기후가 위협적으로 변하고, 수많은 나무가 사라지고 있지만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자연은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세상에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류의 미묘한 균형을 지키고,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에 대해 오랜 기간 사유한 입장에서 나무의 삶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앞서는지 궁금하다.
나무처럼 오래 살고 싶다.(웃음) 그런데 나무는 인간보다 긴 삶을 살지만, 나무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삶은 찰나처럼 짧을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세상의 모든 일은 한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말이다.
시간은 인간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법일 뿐이라고 본다. 이 세상이, 우주가 작동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이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영원’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관점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류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대로 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실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인간이 저마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그렇기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어떤 매체도, 심지어 사진조차도 현실을 오롯이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인지해야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우주의 일부로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이런 문장을 읽었다. ‘알바란 카브레라의 시적 세계는 자연, 나무의 땅, 나무가 전하는 삶의 메시지에 몰입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당신의 시적 세계를 사진에 펼쳐내며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나?
이미지를 마주한 누군가가 더 깊이 생각하고, 옛 기억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더없이 행복할 듯하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것, 혹은 그 이면의 것을 발견하는 일이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삶은 배움을 통해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않나. 우리가 무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 여기에 삶의 아름다움이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