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하려는 마음. 이토록 보편적인 본능 너머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고 있다. 국내 첫 레즈비언 가족, 그리고 11년째 동거 중인 게이 부부. 웨이브 다큐멘터리 <모든 패밀리>는 슬픔에 지지 않는 마음을 품고 두 가족을 응시한다. <모든 패밀리>를 제작한 임지수 기자, 그리고 전청림, 정나래 PD와 대화를 나눴다.
웨이브(Wavve)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모든 패밀리>는 한국 최초로 아이를 낳은 레즈비언 모모(母母) ‘규진’과 ‘세연’, 모태 신앙을 가진 게이인 ‘킴’, 그와 11년째 동거 중 인 ‘팩’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나?
임지수 과거에 저출산과 비혼 출산에 관해 취재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산은 대체로 남녀의 결 혼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나. 그 점이 세계적 추세와 달 라 우리도 비혼 출산을 검토해보자는 취지로 기사를 준비 했다. 덴마크의 정자은행 크리오스(Cryos)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니 이용자의 50%가 초이스 맘(결혼하지 않고 자 신의 선택으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여성)이고, 34%가 레즈비언이더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혼 출산에도 반감이 있을 텐데, 레즈비언 출산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어 통계를 빼고 기사를 냈다. 이후 한국 최초로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가졌다는 규진의 임신 기사를 보았다. 그 순간 내가 지난 기사를 통해 레즈비언의 존재를 지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OTT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출하던 시기라 이번엔 성소수자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모든 패밀리>를 기획했다.
프로그램의 포맷 또한 매우 흥미롭다. 4인 가족, 의사, 목사, 퀴어 부모 등으로 구성된 20명이 두 가족의 이야기를 보고 코멘터리를 남긴다. 이러한 구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나래 퀴어 이슈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쉽다. 두 가족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함께 담고 싶었다.
임지수 사실 남자끼리 손잡고 다니는 것도 보기 힘든 사회이지 않나. 누군가는 이들의 모습, 그 이미지를 보는 것 자체도 버거울 테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와 함께 TV를 보며 편히 의견을 나누는 느낌이라면, 더 많은 이들이 끝까지 프로그램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스무 명 중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테고 말이다. 한편으론 자칫 잘못하면 동성애가 찬반의 대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어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 자체가 매우 논쟁적이니, 그것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모든 패밀리>의 카메라는 규진과 세연의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을 따라가고, 킴과 팩이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거나 친구의 아이를 돌봐주는 모습을 담아냈다. 이러한 두 가족의 일상 을 보여주며 종교와 동성애, 결혼과 출산, 가족의 형태 등 다양한 층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퀴어 그리고 가족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 중 꼭 다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전청림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모두 목사인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생활해온 터라, ‘이 사람들이 정말 죄를 짓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져보고 싶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목사 중에는 퀴어 반대 시위에 나갔던 분도 있는데, 영상을 보고 나서는 이들 개개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는 선뜻 말하지 못하더라. 동성애자라는 커다란 뭉텅이만 보다가 이들의 존재를 실제로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지수 규진의 임신 과정 또한 섬세하게 다루려 했다. ‘동성애는 이해하는데, 왜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냐. 그건 욕심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이들이 임신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을 꾸린다는 건 지극히 보편적인 욕망이지 않나.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는 건 이들도 마찬가지임을 드러내려 했다.
두 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했을 텐데, 인상적인 경험이나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나?
임지수 사실 거절당한 기억이 많다. 규진과 세연이 헤어 숍에 가는 장면을 찍었는데, 처음에는 반기다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장면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킴과 팩이 상견례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식당 측에서 두 사람이 게이라는 걸 알고는 로고를 철저히 가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본 기분이 들었다.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커밍아웃 하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기도 했고. 촬영허가를 받기 위해 이들이 레즈비언이고 게이임을 알릴 때마다 위축되는 내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출연진은 어떤 마음으로 이겨내왔을까 싶었다.
두 가족이 숱한 어려움을 겪음에도 이 프로그램은 유머와 웃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전청림 맞다. 유쾌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차별과 배제는 물론 존재했지만, 그것을 일부러 지우지 않되, 슬픔을 옆에 두고서도 씩씩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임지수 지금껏 어떤 다큐멘터리들은 이것이 내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도록, 비극적이고 슬픈 면을 과잉 묘사해온 것 같다.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 두 가족이 그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도록, 그 일상을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담아내려 했다.
정나래 눈빛과 시선에도 집중했다. 이들이 서로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커다란 사랑이 화면에 담기길 바랐다. 세연이 잠든 규진을 빤히 쳐다보며 쓰다듬는 장면이나 킴과 팩이 함께 외출 준비를 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이들이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가 가진 사랑의 모양은 전혀 다르지 않음을 절실히 느낀다.
<모든 패밀리>를 보며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 새삼 깨달았다. 또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을 확신하게 됐다.
임지수 우리도 사랑의 힘은 정말 강력하다고 느꼈다.(웃음) 규진과 세연을 만나기 전, 나는 두 사람 이 사회 변화에 앞장서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 짐작 했다. 그런데 둘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자신을 앞세워 목소리 내는 일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내던져 기존의 법과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나. 이 모든 행동의 이유가 결국 둘이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죽음 이후를 대비하며 서로를 보호해주고 싶으니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했다.
킴과 팩의 유쾌하고 또 단단한 모습을 바라보며 배우거나 느낀 점도 많았을 듯하다.
임지수 최근 방송 영상을 쇼츠로 편집해 올렸더니 악플이 많이 달렸다. 그래서 킴과 팩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했는데 “기자님, 남이 남긴 악플을 왜 이렇게 음미하세요?” 하며 되레 위로해주더
라.
정나래 킴과 팩은 오래도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자신들의 모습을 공개해와서 그런지 누구보다 의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 존중받길 원하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혐오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아 그런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단단한 마음가짐을 본받고 싶다.
끊임없이 거절을 당하고, 여러 차별과 혐오를 마주할 것임을 알면서도 이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정나래 4인 가족의 코멘터리를 담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이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나?”라는 말이 나왔다. 사실 세상은 이미 많이 변했다고 본다. 그걸 보거나 말할 기회가 현저히 부족할 뿐. 그래서 일단 세상이 달라졌음을, 우리 주변에 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이에 대해 편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힘쓰고 싶었다.
임지수 내가 지난 기사에서 레즈비언의 통계를 뺀 것처럼 자꾸만 지워지고 숨게 되는 존재가 많은 듯하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감추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들의 삶을 수면 위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희망을 품고 <모든 패밀리>를 만들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결국 <모든 패밀리>가 시청자에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 길 바라나?
전청림 사람들은 나와 멀리 있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 더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가난한 사람은 어떻고, 동성애자는 어떻다는 둥 말이다. 그러다 보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앞서 말했듯 요즘 프로그램 영상을 쇼츠로 올리는데, 퀴어 이슈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영상이 뜨다 보니 “이게 뭐야”라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그 반응을 보고 이런 당황스러움이 변화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었다.
정나래 맞다. 처음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자꾸 마주하면, 그 크고 작은 당황스러움이 축적되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실마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당황스러움으로 시작하더라도 결국 동질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패밀리>가 더 많은 대화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