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악은 나아간다.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넘어. 기대와 예상을 넘어선 소리를 들려주면서. 상자루, 노은실, 매간당. 세 이름이 그려가는 음악적 세계는 새로움을 끌어안으며 흥미롭게 증폭되고 있다.
그저 상자루랑 놀다가세
“조선의 재즈 클럽에 온 걸 환영하오. 낯선 이여.” 한 청년이 춤을 추며 꽹과리를 친다. 그 옆에선 점프를 하며 아쟁을 연주하는 이가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리저리 뛰놀며 기타를 친다. ‘이것이 한국의 얼이자 흥이오’라며 자랑하고 싶은 신명 나는 리듬. 집시 재즈(Gypsy Jazz)를 연상 시키는 경쾌한 아쟁 선율까지. 청춘을 바쳐 한국의 전통음악을 공부한 세 사람. 권효창(꽹과리·장구), 남성훈(아쟁·태평소·양금), 조성윤(작곡·기타). 셋의 국악적 DNA와 매 순간 변화하는 자아가 이리저리 중첩되어 ‘상자루’라는 ‘한국식 현대음악’이 탄생했다. 시간의 흐름을 만끽하며 전통과 현대 사이를 노니는 이들의 음악을 감히 예상할 수 없을 터.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셋이 하나 되어 만드는 상자루의 음악이 매 순간 새롭게 빛나며 생명력을 전할 것임을.
퍼포먼스 영상을 찍는 내내 ‘찢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상자루의 공연이 더욱 궁금해졌고.(웃음) 다음 주에는 페스티 벌 공연을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고.
조성윤 공연은 훨씬 더 재미있다.(웃음) 워마드 페스티벌과 케임브리지 포크 페스티벌 공연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다.
상자루가 한국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이름의 뜻부터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상자루’라는 이름을 지었나?
남성훈 상자와 자루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성윤의 작곡 선생님이 ‘상자 음악’과 ‘자루 음악’에 대한 이론을 설명해 주신 적이 있다. 상자는 그 안에 무엇을 넣어도 일정한 틀이 유지되지 않나. 그 반면에 자루는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의 모양대로 유연하게 실루엣이 바뀐다. 우리는 상자를 전통, 자루를 창작적 요소라고 생각해 ‘상자 속 자루’, 즉 전통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창작 음악을 한다는 의미에서 상자루라고 이름 지었다.
세 사람은 국악고등학교 동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이다. 팀을 결성한 계기를 알려줄 수 있나?
남성훈 대학교 1학년을 마무리할 때쯤, 성윤이 노트에 계획을 잔뜩 써서 효창과 나를 찾아왔다.
조성윤 셋이 팀을 하자는 건 아니었고, 스터디를 먼저 하며 팀이 될 수 있을지 간을 보자는 취지였다.(웃음) 대학교 4년간의 계획은 물론이고, 어떤 음악을 공부해 적용할지, 어떤 프로젝트를 해볼지에 대해서도 구상했다. 성훈과 효창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남성훈 학교에만 있는 애들?
조성윤 맞다.(일동 웃음) 우리 셋은 매일 연습실에만 붙어 있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전공에 얼마나 진심을 다하는 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사람들을 관찰했고, 그렇게 효창과 성훈이 내 물망에 들어왔다.
꽹과리와 장구, 아쟁, 기타 등 사용하는 악기의 조화도 매력적이다. 자신이 다루는 악기에 대해 소개해주기 바란다.
권효창 대학에선 꽹과리를 전공했고 장구를 비롯한 전통 타악기를 두루 다룬다. 꽹과리는 구조적으로는 트라이앵글과 다를 게 없다. 왼손으로 열고 막고 오른손으로 때리는 단순한 악기다. 이런 제한이 있음에도 공력을 쌓아온 이들은 이 소리 가 유려한 선율로 들리게끔 연주한다. 꽹과리로 연금술을 부리는 것처럼 채가 말랑말랑한 찰흙을 뚫고 들어가는 느 낌을 줄 때도 있다. 시끄럽다고만 생각할 수 있지만, 때로는 감미로울 수 있다는 게 이 악기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남성훈 상자루에서 주로 소아쟁을 연주하고, 이 외에도 태평소나 양금을 종종 사용한다. 아쟁은 대아쟁과 소아쟁, 두 종류 가 있는데 대아쟁이 그 전신이다. 대아쟁은 제례악 같은 궁중 행사에서 연주되어왔고, 한국 전통음악에서 가장 낮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 그 반면에 소아쟁은 넓은 음역을 소화할 수 있어 음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밴드 음악에 대 해 이야기할 때 우스갯소리로 베이스가 있긴 하냐고, 일렉트릭 기타는 솔로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나.(웃음) 아쟁은 이 두 가지 매력을 모두 가진 악기라 말할 수 있다.
조성윤 국악 작곡을 전공했고, 상자루에서는 주로 기타를 친다. 효창과 성훈이 악기 전공자이니, 내가 돋보이기보다는 두 악기를 더 보여줄 방법을 고민했고, 기타가 조화로움을 더해줄 거라 생각해 산티아고 순롓길을 다녀온 것을 기점으로 주로 연주하고 있다.
악기를 메고 산티아고 순롓길을 다녀온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상자루의 길>로 만들어지기도 하지 않았나. 어쩌다 그런 모험을 떠나게 되었나?
조성윤 시작은 인도 여행이었다. 작곡 선생님이 한국 전통음악의 뿌리가 인도음악에 있다는 학설을 전해주셨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게 팩트인지 직접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2015년에 인도로 향했다. 대학생이 라 돈이 없으니 가장 싼 비행기표를 찾아봤는데 44일짜리였다. 15일은 인도를 여행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바라나시 (Varanasi)라는 도시에서 인도 악기를 배웠다. 입시 준비하듯 눈뜨면 연습하고, 밥 먹고 레슨만 받았다.(웃음) 이 여정을 마치고 나니, 한국음악의 뿌리가 인도음악에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더라. 그저 현지에서 새로운 음악을 접했으니,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성훈은 이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는데, 우리는 팀이니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산티아고 순롓길로 떠났다.
산티아고 순롓길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냈나?
남성훈 일단 죽을 뻔했다.(일동 웃음) 하루에 20~30km씩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심지어 악기까지 메고 있으니까. 체력적으로 힘들어 악기고 뭐고 다 갖다 버리고 싶었다.(웃음)
권효창 다시는 못할 것 같다.(웃음) 처음에는 순롓길을 걸으며 버스킹을 하려고 했는데, 순례객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만 연주했다. 그런데 한 식당 사장이 우리에게 연주를 해줄 수 있냐고 묻더라. 우리 셋이 그곳에 도달하기 한참 전부터 악기를 들고 순롓길을 걷는 미친놈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조성윤 크레이지 코리안들이 있다고.(일동 웃음)
권효창 그래서 식사를 제공받고 연주했는데,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도 몰입해서 공연을 봐주더라.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음악에 저마다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 순간 음악이 감동을 줄 때, 완성도가 높거나 음역이 꽉 차 있어야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저 연주하는 자와 듣는 이의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 중요하구
나 싶었다.
남성훈 그런데 문제는 순롓길을 다 걷고 나니 가진 돈을 다 써버린 상태였다는 것이었다.(웃음) 이후 포르투(Porto)라는 도시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권효창 비유하자면 버스킹 일용직. 하루 벌어서 숙소 연장하고, 하루 벌어서 장 봐다 해 먹었다.
남성훈 포르투에서도 느낀 점이 많다. 거기서는 짧은 순간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을 해내야 했으니.(웃음)
양면의 경험을 한 셈이다. 진심이 통하는 순간에 대한 깨달음을, 한편으로는 상업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권효창 맞다. 그런데 버스킹을 하면서도 스스로 즐겁게 연주한 날이나 화합이 좋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돈을 많이 주고 가더라. 자그마한 동전이 아니라 지폐가 수두룩.(웃음) 반면에 우리도 듣기 싫은 사운드가 나오거나, 집중하지 못한 날에는 돈을 조금밖에 못 벌었다. 결국 음악에는 어쩔 수 없이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다는 것을 배웠다.
상자루를 ‘코리안 집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앞선 여정과 맥락이 이어지는 건가?
권효창 그렇다. 한국에는 유랑하며 예술을 하던 남사당패가 있었고, 유럽에는 여전히 집시가 있지 않나. 그들은 지역을 오가며 문화적 교류를 만들어왔다. 우리도 그런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단순히 무언가를 번안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해석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다. 집시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집시 피들(Gypsy fiddle)’이라는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법을 찾아냈듯이.
‘한국적인 현대음악’이라는 표현으로 상자루의 음악을 소개한 바 있다. 상자루가 생각하는 한국적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
권효창 서양음악은 저음부터 고음까지 어우러지며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라면, 한국음악은 모든 요소 하나 하나가 주인공이 된다. 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는데도 각자의 개성이 살아 움직인다고 느껴지는데, 그게 한국 전통음악의 멋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현대음악이라는 점에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균형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권효창 예전에는 상자루가 ‘젊은 꼰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웃음) 지금껏 전통음악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무엇을 지양하고 또 지향할지 선별하고 검열해왔다. 조성윤 맞다. 자유라는 단어 뒤에 숨어 국악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전통으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도 시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요즘에는 국악 요소에 집착하기보다는 악기의 소리나 질감에 더 집중하고 있다. 상자루는 과거의 음악을 재연하는 전통 예술인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지 않나. 요즘은 우리 음악을 하되 국악기의 소리가 가장 맛있게 들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옛것에 멈춰 있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자루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권효창 동시대성을 갈망하는 것. 사실 전통음악은 과거의 유산인지라, 내가 살고 있는 일상과 괴리가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한 음악을 어떻게 현시대와 연결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예를 들어 오늘 연주한 곡 ‘상자루 타령 2’는 한국의 민요를 모티프 삼아 밴드의 포맷을 활용해 만들었다. 또 다른 원동력은 음악에 지금의 내가 담길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음악을 만들 때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중 한 명이지 않나. 그럼 그 안에 자연스레 동시대성이 생긴다. 척하지 않고 진심으로 곡을 만들면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가 그 음악 자체가 되더라.
방금 말한 상자루의 동시대성이 ‘앨리스 공황상태’나 ‘청년은 강제로 집시’ 같은 곡에서 잘 드러나는 듯하다. 현재에 살고 있는 세 청년이 음악을 만드니, 당연히 그 안에 눈앞의 세계가 담기겠지. 상자루의 음악이 지닌 가장 뚜렷한 색깔은 무엇이라고 보나?
조성윤 그 부분에 대해 우리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음악인지라 명쾌하게 한 줄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비유하자면 상자루의 음악은 삼각형 같다. 비교적 어릴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왔고, 상자루로 함께한 지도 어느덧 10년째다. 성격이며 취향이며 저마다 다른데, 우리를 이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시간일 것이다. 세 사람이 꼭짓점에 서 있고, 함께 공유한 시간이라는 선이 우리를 이어줘 삼각형이라는 면이 드러나는 듯하다. 그게 상자루의 음악이 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국악 안에 머물러왔기에, 국악의 요소는 어느 정도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마다 배워온 것을 뚫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창작 요소가 생기는데, 그것을 수용하고 때로는 깎아내며 우리의 음악을 만들어왔다. 그 시도가 모여 우리의 색깔이 생긴 듯하고.
남성훈 덧붙이자면 전통음악은 명인들이 연주한 것을 누가 더 비슷하게 하는지를 잘하는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도 그 과정을 거쳐 공부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독자적 연주법을 만들려는 의지,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색깔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상자루의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닿길 바라나?
권효창 우리의 음악이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든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 느껴왔다. 그렇다고 ‘이건 순수예술이야. 인기 없는 마니악한 장르인 걸 어떡해’ 하며 숨고 싶지도 않다. 그건 비겁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꾸준히 돌파구를 찾고 싶다. 음악이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영향을 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니까. 결국 윈윈 했으면 좋겠다. 우린 상자루만의 돌파구를 찾을 테니, 누군가는 우리의 음악으로 인해 일상에서의 새로움을, 그로 인한 생명력을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