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국악은 나아간다.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넘어. 기대와 예상을 넘어선 소리를 들려주면서. 상자루, 노은실, 매간당. 세 이름이 그려가는 음악적 세계는 새로움을 끌어안으며 흥미롭게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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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판 위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인도의 명상 악기 스루티박스(Shruti Box)의 깊은 배음과 조화를 이루며 공명한다. 우리 전통 판소리의 구슬픈 노랫말 같기도, 명상 음악 속 고요한 찬트 같기도 한 노은실의 음성은 공간 전체를 배회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관객을 불러 모은 ‘판’에서 그가 섬세하게 지어 올리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관객은 소리꾼의 해석을 떠나 저마다의 풍경을 떠올린다. 판소리라는 세계가 지닌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해온 소리꾼 노은실은 오늘도 자신의 목소리를 재료 삼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통 판소리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와 깊은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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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공연 예술가, 소리꾼, 보이스 퍼포머 등 다양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해왔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어떤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지 소개해주기 바란다.

전통 예술이라는 수식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 판소리를 바라보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극과 미술 등 공연 예술 분야와 판소리를 결합해 유연한 형태로 공연을 선보인다. 목소리를 매개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표현해가는 내 음악적 방향성을 몇 가지 단어로 정의하려다 보면 한정적인 단어와 표현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목소리 예술”이라는 직관적 표현으로 내 음악을 소개하곤 한다. 판소리라는 단어를 풀어놓고 보면 결국 공간 위에 소리를 펼쳐놓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목소리로 어떤 공간을 짓는 사람이라 말하기도 하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명상 악기로 쓰이는 인도의 풍금인 스루티박스를 주요 악기 삼아 종처럼 제의적 의미를 지닌 오브제와 피아노,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노래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판소리에 입문했나?

내가 나고 자란 전북 남원이 국악의 고장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집 밖을 나서면 늘 가야금이나 대금 소리가 들리고, 뒷집에 유명한 명창 선생님이 살았다.(웃음) 어릴 때부터 몸소 국악을 경험하다 보니 내게는 클래식이나 팝보다도 더 가까운 음악이 국악이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던 내게 아버지가 일찍이 판소리를 권해 자연스럽게 시작했지만, 배우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명창 선생님과 마주 앉아 선생님이 내는 소리를 그대로 모사해 마치 녹음본을 튼 것처럼 노래하는 방식이 그 나이에는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배운 그대로 수행하는 느낌이라 답답한 순간도 많았고.

그러한 교육 방식에 의문을 품기도 했나?

당시에는 맹목적으로 노래하기 바빴지만, 내 경험과 사유를 노래에 담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회의감은 늘 있었다. 판소리는 서사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장르다. 가령 바다를 주제로 한 곡에서는 그 이야기가 그리는 바다의 풍경을 노래로 표현해내야 하는데, 선생님이 노래로 표현한 바다의 풍경과 나의 그림이 다르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됐다. 언젠가부터 ‘그걸 왜 맞다고 생각하고 노래해야 할까, 나만의 목소리로 내가 생각한 바다를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다. 이후 대학에서 소리를 전공하면서 판소리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며 그 안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게 됐다.

대학에서 판소리의 개념을 새롭게 탐구하던 당시의 화두는 무엇이었나?

판소리의 본질에 대해, 나아가 판소리가 결국 현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전까지 내가 머물러온 세계 바깥에서 판소리를 바라보고 새로운 해석을 더해 나만의 예술 언어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 무렵 체코로 유학을 떠나 공연 예술을 공부하면서 연극 분야에서 활용하는 극적 요소를 판소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기도 했다.

체코에 머물며 판소리에 대한 관점이 변하거나 확장된 순간이 있었나?

체코에서 판소리 워크숍을 연 적이 있다. 한국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판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노래를 불러주고 감상을 나눠보니 이 낯선 소리를 이미지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이미지가 곡에서 이야기하는 중심 주제와 대체로 닿아 있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결국 음악에서 중요한 건 언어보다도 소리가 만들어내는 정서와 분위기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기점으로 판소리를 기반으로 노래하는 내 작업을 미술의 영역에 빗대어 목소리로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이라 인식하게 됐다.

그때 목소리로 그림을 그려간다는 표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내가 하는 음악을 미술로 치환하면 ‘스케치’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는 마치 붓처럼 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도구 역할을 하고,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목소리가 모여 점이나 선, 면같이 추상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스케치에 가까운 이 결과물을 보고 관객이 저마다 어떤 풍경이나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상상할 여지를 주는 것이 목소리 예술을 통해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인데, 이는 결국 판소리라는 전통 예술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화이트 재킷 KIMZISU, 안에 입은 원피스 Alte, 화이트 롱스커트 Treemingbird,
롱부츠 Charles & Keith,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평소 ‘판소리의 연극성’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연극과 판소리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통해 발견한 판소리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언젠가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연출가가 “왜 판소리를 들을 때면 항상 무언가를 떠올리게 될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판소리에서는 어떤 시각적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수많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는 거다. 그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처럼, 판소리는 소리만으로 연극의 무대미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 언어다. 소리꾼 한 명이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이끌어가고 자신의 소리를 통해 관객 앞에 어떠한 풍경을 펼쳐낸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복합적인 공연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수궁가>를 인형극 형태로 재해석한 <판소리 인형극 수궁가>가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퍼펫극과 오브제를 활용했는데,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자 했나?

소리꾼 한 명과 북 치는 고수로 구성되는 전통 판소리의 형식이 갖춰지기 이전으로 돌아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판소리의 원형을 자유롭게 상상해본 작품이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풀어가는 게 소리꾼의 역할인데, 아주 먼 옛날에는 장터의 보부상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시끌벅적한 장터에서 보부상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짚신이나 지팡이 같은 주변의 온갖 사물을 활용했을 테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이처럼 자유롭고 유동적인 판소리 고유의 성질을 공연에 녹여내면서도 퍼펫극을 활용해 간결한 대사와 춤으로 극을 이끌면서 동시대 관객이 공감할 만한 요소를 더했다.

기록으로도 남지 않은 태초의 판소리를 상상해보는 발상이 굉장히 흥미롭다. 판소리의 원형을 재해석해 무대에 올리는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

국악 안에서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이렇게 판소리를 다시 보게 하는 작업이 내게는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곡을 만들 때도 전통음악을 배웠기 때문에 그 틀에서 벗어나겠다거나 현대적 요소와 결합 해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는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오랜 시간 판소리를 공부하며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원형의 재미를 보여주는 게 오늘날 내가 판소리를 재료로 해나갈 수 있는 역할이라 본다. 이론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아는 판소리보다 더 크고 넓은 세계가 있다고, 전통 판소리 바깥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제안하는 거다. 그래서 꾸준히 과거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계속 상상해야 판소리의 영역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선보인 <엠비언트 판-소리>라는 작품을 통해 현대의 판소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당신의 해석과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판소리와 앰비언트 음악이 지닌 연관성에서 출발한 작품인가?

<판소리 인형극 수궁가> 가 판소리가 지닌 극 언어의 특성을 강조한 작품이라면 <엠비언트 판-소리>는 내 음악적 언어를 더 깊이 탐색해본 작품이다. 앰비언트는 당시 음악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던 음색이나 분위기 자체를 강조한 장르다. 주의를 끌지 않고 잔잔하게 공간 전체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판소리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느꼈고, 두 개념을 나란히 두어 내가 지닌 다양한 목소리 질감과 음색으로 특정 분위기와 공간감을 만드는 데 집중해 공연을 풀어나갔다.

목소리가 악기인 셈이니 다양한 음색과 질감을 표현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듯하다. 자신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찾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 있나?

판소리를 새롭게 정의하려 노력하던 시기에는 일단 내 목소리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부터 다시 파악해야 했다. 평생 노래하며 살아왔는데 내 목소리가 어떻게 울리고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감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소리를 배우면서 습득한 전통적 발성에서 벗어나 색다른 소리를 내보기 위해 팝이나 록, 제3세계 음악 등 고등학생 무렵부터 꾸준히 즐겨 듣던 장르의 창법을 소리 내어 하나씩 표현해봤다. 그렇게 입 밖으로 꺼내본 소리 하나하나가 체화되면서 지금의 목소리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전통 판소리에서는 소리꾼이 소리(노래)와 아니리(말)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비해, 언어가 없는 구음으로 곡을 구성한 점도 인상적이다. 곡에 구음을 자주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

곡을 만들 때 중심에 어떤 단어나 문장을 두어 이야기를 구체화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내가 느낀 정서를 스케치하듯 즉흥적으로 흩뜨려놓는 데 가깝다. 감정과 정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영역이지 않나. 관객에게 명확하게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구음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목소리의 결만으로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관객이 온몸을 동원해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의 빈자리를 관객 스스로 채우게 되는 거다.

목소리로 공간을 짓는다고 표현한 만큼, 당신이 지어 올린 공간을 관객이 어떻게 감각하는지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당신의 공연에서 관객이 무엇을 느끼고 가기를 바라나?

하루는 무대를 마치고 감상을 나누는 자리에서 자신이 느낀 우울한 감정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해준 관객이 있었다. 우울하던 감정이 내 음악을 만나 더 우울해졌다는 거다.(웃음) 이렇듯 일상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감정을 공연에서 마주하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낀다. 내 음악을 통해 어떤 것을 감각하고 그걸 어떻게 가져가는지는 모두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저 열린 마음으로 조금은 생경할 수 있는 이 소리들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경험에 빗대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화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미 너무 많은 답을 찾아가고 있지 않나. 내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만큼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각자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