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미술 시장 속, 아트 페어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앞세운 아트 페어들이 앞다투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이들의 지속 가능성을 논해야 할 때.

조시 타데우스 존스 | 저널리스트이자 작품 거래 온라인 플랫폼 아트시(Artsy)의 시니어 에디터. 10여 년 동안 <뉴욕타임즈> <파이낸셜 타임스> <프리즈> 등의 매체에서 아트 페어와 미술 시장 전반, 작가와의 대화를 주제로 보도하고 있다.

주연화 | 아라리오 갤러리와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 기획과 작가 관리를 도맡으며 예술 산업에 20년 가까이 종사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로서 미술 시장에 관한 교육과 전문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원재 | 원앤제이 갤러리 디렉터 겸 키아프 인터내셔널 보드 멤버. 원앤제이 갤러리는 프리즈와 아트 바젤, 아모리 쇼 등 주요 국제 아트 페어에 참여하며 한국과 아시아 기반 작가들을 글로벌 시장에 소개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미술 시장의 이례적 호황을 이끈 주역으로 아트 페어의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아트 페어의 시장 규모와 작품 거래 실적이 나날이 확대되는 가운데, 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아트 페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 미술계에서는 이를 두고 ‘아트 페어의 춘추전국시대’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변화하는 미술 시장의 흐름을 발 빠르게 포착하는 업계 종사자들은 이러한 아트 페어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글로벌 아트 신에서 활약 중인 전문가 3인과 함께 아트 페어의 현재와 과제,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심도 깊은 대담을 나눴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앞세운 아트 페어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아트 페어의 확장 속도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주연화 팬데믹을 거치며 국제 미술 시장, 그중에서도 한국 미술 시장은 전례 없는 흥행을 경험했다. 팬데믹 직후 몇 년간 지속된 미술 시장 호황과 컬렉터 집단의 세대교체 영향이 크다. 문제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경기 침체와 함께 이 추세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몇 년 후 얼마나 많은 아트 페어가 살아남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박원재 동의한다. 새로운 아트 페어가 대거 개최되었다고 해서 이것을 아트 페어의 성공이라 보긴 힘들다. 팬데믹 직전에 개최를 준비하던 페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면서 한꺼번에 흥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미술 시장 자체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올해 아트 바젤이 공개한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 2024’에 따르면 작년 전체 미술 시장 규모는 2019년 수준으로 회귀했다. 아트 페어가 많아져도 시장 자체가 커지지 않는다면 갤러리스트로서 페어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긴 어렵다고 본다.

조시 예리한 지적이다. 아트 페어는 갤러리에 실질적 수익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미술 시장은 작년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했고, 앞으로 시장이 안정화될 여지도 있다. 페어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거다. 팬데믹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는 건, 사람들을 한 공간에 결집시키는 아트 페어의 특성 덕분일 것이다. 큐레이터와 컬렉터, 블루칩 갤러리와 신진 갤러리가 한곳에서 만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예술계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아트 페어의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아트 페어가 수적으로 빠르게 팽창하고 있지만 이 흐름이 앞으로도 지속될지, 혹은 질적 성장으로 이어질지 확실치 않은 셈이다.

박원재 그렇다. 원앤제이 갤러리가 국제 아트 페어에 막 참여하기 시작한 1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오픈 마켓으로서 페어가 지니는 분명한 이점이 있었다. 반면 페어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요즘은 영향력 있는 예술계 플레이어들을 집중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든 컬렉터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연화 국제 아트 페어를 방문하는 컬렉터들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현실적으로 1년에 많아야 두세 개 페어를 방문할 수 있다. 결국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컬렉터의 우선순위에 있는 소수의 아트 페어가 관심을 받게 되는 거다. 그래서 더욱 중요해지는 게 작품의 질이다. 많은 이들이 아트 페어의 장기적 성장을 논할 때 차별화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국제적인 수집가들을 페어에 끌어들일 수 있는 단순하지만 유일한 열쇠는 좋은 작품이라 본다.

조시 흥미로운 의견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특정 페어가 부각되는 배경에는 사교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바젤 근교에서 진행하는 대안 행사 ‘바젤 소셜 클럽’이나 올해 첫선을 보인 신생 페어 ‘서퍼 클럽 홍콩’처럼, 페어 개최 시기에 맞춰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성격의 행사가 함께 열리고 있지 않나. 이런 사례를 보면 더 이상 작품 구매만이 페어에 오는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트 페어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가길 바라는지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거다.

통상 아트 페어는 작품 거래를 목적으로 개최되는 상업적 행사지만, 앞선 사례들처럼 최근 다양한 아트 페어가 구매력 있는 컬렉터뿐만 아니라 대중의 접근성을 고려해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아트 페어를 찾는 이들의 목적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아트 페어의 성장을 위해 상업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보나?

박원재 아트 페어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페어의 고객이 갤러리라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아트 페어에 갤러리가 없다면 콘텐츠가 없고, 콘텐츠 없이는 당연히 대중에게 다가갈 수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새로운 아트 페어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지에 의문을 품게 된다. 참여 갤러리와 컬렉터가 계속해서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살아남는 이들은 결국 갤러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페어 비즈니스의 핵심을 이해하는 이들일 거라고 본다. 페어마다 각자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갤러리들을 초대하는 게 우선 과제라 생각한다.

조시 아트 페어에서 갤러리의 영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페어에서 갤러리가 꼭 필요로 하는 건 관객이다. 관객도 아트 페어의 성공 방정식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거다. 페어의 접근성을 높여 새로운 컬렉터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대중이 스스로 아트 페어의 일원이라 느낄 수 있을 만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때 관객 경험을 섬세하게 큐레이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아트 바젤의 파르쿠르, 프리즈 스컬프처처럼 도시 곳곳에서 공공 예술을 선보이는 기획이나, 비영리 기관과 협업해 라이브 이벤트를 선보이는 프리즈 뮤직 등이 많은 관객을 아트 페어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주연화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아트 페어가 상업성 짙은 작품과 실험적 예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 나가는지와도 연결된다. 아트 페어에서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결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즉 상업성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페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작품 수집이 주목적이 아닌 대중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는 작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앞선 사례들처럼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주제 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고, 신진 갤러리나 유망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려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신진 갤러리와 작가를 글로벌 마켓에 소개하는 등용문으로서 아트 페어의 역할 비중은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동시에 여전히 출품 장벽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신진 갤러리와 작가의 아트 페어 참여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조시 지금은 페어 참가 비용으로 인해 갤러리의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상태다. 최근 아트시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갤러리 중 절반 넘는 수가 아트 페어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로 참가 비용에 대한 부담을 꼽았다. 아트 바젤은 2019년부터 소규모 갤러리에 부스를 마련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차등 가격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런 정책적 지원이 신진 갤러리의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원재 소위 블루칩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이는 건 갤러리 입장에서 분명 도움이 되지만, 모든 페어에서 블루칩 작품들만 소개한다면 차별화를 도모하기 어렵다. 반대로 차별화를 위해 신선하고 새로운 갤러리를 선택하더라도 이 갤러리가 몇 년 사이 사라져버리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내가 아트 페어 디렉터라면 신진 갤러리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가질 것 같다. 큐레이팅 측면에서 독특하고 도전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을 거다.

조시 실제로 큐레이터 개인의 역할이 강조되는 아트 페어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문화적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비엔나 컨템퍼러리가 올해 예술 잡지 <에포크>의 편집장 프란체스카 개빈을 큐레이터로 임명해 동유럽의 신진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는 아트 페어가 늘어나면 기존의 상업적인 작품들과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나란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질 것이다.

주연화 공감한다. 지금의 아트 페어는 구조상 소속 갤러리가 없는 작가는 참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소속 여부에 관계없이 큐레이터가 선보이는 독자적인 프로젝트 안에서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도 합리적인 방법이다.

아트 바젤 보고서에 의하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작품 거래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보 수집과 작품 거래 과정에서 온라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컬렉터 비중이 늘고 있는 가운데, 현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오프라인 아트 페어가 여전히 미술 시장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박원재 필수품이 아닌데도 우리가 예술 작품에 매료되는 건, 예술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아트 페어는 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이다. 정확히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페어에 걸어 들어가더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아트 페어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의견을 내비치긴 했지만, 아트 페어는 예술이 무엇인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플랫폼이라 생각한다.

주연화 우리는 지금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여전히 작품과 직접 만나는 순간에서 오는 특별함을 원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현장의 경험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조시 나는 아트 페어가 오프라인 현장 너머에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트시에서는 오프라인 페어와 관련 없는 상업적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페어에 참여할 여건이 되지 않거나, 인스타그램에서 페어 부스에 관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하는 거다. 그래서 오프라인 페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온라인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페어에서의 경험을 보다 장기간 지속시키는 게 이상적인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장에 오는 관객 중에도 작품을 감상할 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보다 온전히 혼자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부스에서 QR코드를 스캔해 온라인으로 작품을 보고 천천히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온라인 창구를 마련해두는 거다. 이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갤러리에도 도움이 될 거라 본다.

대담을 마무리하며, 아트 페어의 향후 미래는 어떤 모습일 거라 예상하나?

조시 아트 페어를 하나의 브랜드로 생각하는 관점이 더욱 보편화될 거라 예상한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작가 줄리 머레투와 BMW의 협업 아트 카가 처음 공개될 예정이라는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이처럼 아트 페어가 패션이나 스포츠 분야와의 협업을 지속한다면 예술에 기술을 접목하거나 타 산업군의 컬렉터들을 불러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접근법은 기존의 전형적인 페어 형태에서 벗어나 모두가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아트 페어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박원재 앞서 논의한 것처럼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면 정해진 기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일주일이 아니라 1년 내내 진행될 수도 있겠지.

주연화 미술계에 크고 작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아트 페어가 비단 갤러리와 컬렉터를 위한 거래의 장으로 머무는 것에서 나아가 새 세대 컬렉터들이 예술을 몸소 경험하고 취향을 확장하는 축제의 현장이자 시장의 지형을 배울 수 있는 교실 같은 공간으로 변모할 거라 생각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변화하는 아시아 아트 신에도 큰 기대를 품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컬렉터들이 아트 바젤이나 프리즈에 모여들지만, 향후 몇 년 안에 홍콩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나 도시가 글로벌화되어 페어 시즌에 전 세계 컬렉터의 발길이 닿는 공간이 될 거라 예상한다.

조시 어떤 도시일지 물어보려던 참이다.(웃음)

주연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