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더 쉬운 선택지일 때,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일 수 있을까. 여기, 5명의 젊은 여성 소설가가 ‘함께함’에 대한 짧은 소설을 보내왔다. 나라는 공고한 벽을 허물 때 우연히 마주하는 장면, 누군가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온기, 서로를 돌보며 확장되는 삶. 이제 우리는 안다. 함께함이 동반하는 수고로움이 때때로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나를 구원하는 건 결국 우리라는 것을.
<흰옷 빨래의 날>
안담
글쓰기 모임 ‘무늬글방’을 운영한다. 6명의 활동가를 초대해 비건 음식을 대접하고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책 <엄살원>(공저)을 시작으로 단편소설 <소녀는 따로 자란다>, 산문집 <친구의 표정> 등을 발표했다.

매년 마지의 기일이 오면 흰옷을 모아 빨래를 한다. 마지가 유니폼처럼 자주 입던 크림색 티셔츠도 잊지 않고 꺼내서 빤다. 아마도 처음 살 때는 흰옷이었을 거다. 내가 애용하는 독일 브랜드의 캡슐 세제는 성능이 뛰어나다. 이 티셔츠에서는 마지의 냄새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나도 마지의 냄새를 잘 떠올릴 수가 없다. 꽤 강한 냄새였는데, 그런 냄새가 잊히기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
마지와 나는 6년 전 홍제역 근처의 모둠전으로 유명한 음식점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당근마켓을 통해 새집의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 있었고, 마지는 그 글을 보고 연락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좋은 집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련산과 홍제천이 코앞이고 인왕산이나 북한산도 비교적 멀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프라랄 게 없는 낡은 쓰리룸이. 크고 힘 좋은 내 개와 오를 산이 있고,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는 게 나는 좋았다. 내 개는 순하다 못해 맹한 편이지만, 구인 글에는 남자나 키 큰 사람에게는 경계심을 보인다고 적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혹적인 매물은 아니다. 글을 올린 지 일주일 만에야 한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월세를 제가 다 내도 되나요? 챗 주세요.’
왜 월세를 다 내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집안일을 잘 못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돈으로 살림을 사겠다는 건가 싶어 순간 예민해진 나에게 상대는 그런 게 아니라 살림 요령이 워낙 없어서 그렇다, 열심히 배울 자신이 있으니 교습비를 드린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하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마지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좀 놀랐다. 일단은 그의 체취가 강해서 놀랐고, 그다음에는 뭐랄까, 그가 상당히 미인이라서 놀랐다. 시간이 한참 지날 동안 그의 이목구비가 실은 반듯하고 조화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키가 크고 자세가 구부정한 데다 살집이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미팅에 가까운 자리에 나오면서 슬리퍼에 롱 패딩을 선택한 기개가 더 인상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모자를 푹 눌러썼음에도 머리에 하루치 이상의 기름이 쌓였음이 티가 났고, 옷 위에도 살 위에도 먼지가 앉은 듯이 사람 전체가 어딘가 희부연 인상을 주었다. 분명히 미인이지만, 미인으로 살지 않은 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았다.
노란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커다란 철판에서 빈대떡이며 동태전, 육전, 버섯전, 파전이 쉴 새 없이 생겨났다. 기름을 왕창 쓰는 식당 한복판에 있으려니 마지의 체취도 조금 묻히는 듯했다. 예비 동거인들의 미팅 장소로는 주말 낮의 카페가 제격이지만, 마지가 만날 수 있다고 한 시간에 문을 연 카페는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만나자고 했는지 물으니, 낮에는 주로 잔다고 했다. 집에 관해서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묻자, 마지는 글만 보아서는 사람하고 같이 살기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누구든 사람이 좋아서 같이 사나요. 돈이 무서워서 그렇죠. 그런데 마지 님은 사람 싫어하는 사람 괜찮으세요?”
“그 점이 마음에 들어서요. 나한텐 좀 유리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대답하고 한참이나 입을 씰룩거리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 나는 좀… 사람이 덜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거든요. 니가 사람 새끼냐는 말도….”
뜸을 들인 시간에 비해서는 참으로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서 마지는 파하하 웃었다. 그 실없음이 은근히 맘에 들어서 마지에게 집을 한번 보러 가시겠냐고 물었다. 집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면서 마지는 여러 차례 토할 듯이 힘들어했다. 조금도 지칠 이유가 없는 나의 튼튼한 개가 뒤따라오는 마지를 쳐다봤다가 나를 올려다봤다가 했다. 너는 사륜구동이잖아, 좀 기다려, 개를 달래면서 저 사람이 과연 이 집에 살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을 때, 거친 숨 사이사이로 마지가 힘겹게 외쳤다. 괜찮, 아요, 난, 집에서, 안, 안, 안, 나가.
마지와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 넓고 휑한 쓰리룸 곳곳으로 고소하고 더운 기름 냄새가 퍼져 나갔다. 집주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십자 형광등의 잔인하리만치 무감한 흰 빛이 그날 따라 조금 노랗게 보이는 듯도 했다.

마지가 왜 종종 사람이 덜 되었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지를 나는 그가 우리 집에 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는 전반적으로 사는 게 서툴렀다. 또는 사는 정도가 아주 미약했다. 다른 사람의 0.3인분 정도만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음식도 휴지도 수건도 잘 줄지 않았고, 배달시킨 햄버거 포장지와 담배꽁초를 제외하면 쓰레기도 많이 생기지 않았다.
마지는 방에서 도통 나오는 법이 없었지만, 마지의 체취는 어디든 갔다. 가족도 아닌 사람의 옷가지를 건드리면 실례인가 싶었던 날들도 잠시, 나는 마지가 손을 댄 적이 있는 모든 섬유 제품이라면 발견 즉시 그러모아 세탁기로 가져갔다. 마지 덕에 아끼게 될 월세를 다 더해보고도 분이 가라앉지 않던 어느 날, 나는 마지에게 빨래를 맡겼다. 마지가 상당히 겁에 질리기에 빨랫감과 세제는 세탁기 안에 이미 다 넣어놓았고, 세탁이야 기계가 해줄 테니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와 나갔다. 기나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마지는 세탁기 앞에서 빨래를 뒤적이며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지는 나를 보더니 심각하게 말했다.
“빨래가 다 젖어서 나왔어.”
씻는 건 가르칠 수 없어도 빨래만은 가르치리라 굳게 마음먹고는, 날을 넉넉히 잡아 마지에게 내가 아는 세탁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빨랫감 분류법과 세탁기 작동 순서를 적은 메모도 옷방 문에 붙였다. 설명하면 할수록 빨래가 이렇게 복잡하고 할 말 많은 노동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세제를 많이 넣으면 오히려 세탁이 잘 안 된다는 점, 세탁기도 주기적으로 청소가 필요하다는 점, 무엇보다 빨래는 건조되어서 나오는 게 아니고 반드시 건조대에 널어 말려야 한다는 점….
마지가 빨래를 할 줄 알게 되자, 집에서 느끼는 마지의 후각적 존재감 또한 한결 옅어졌다. 나는 기세를 몰아 락스와 과탄산소다로 옷에서 나는 쉰내를 빼고 흰옷을 표백하는 법도 가르쳤다. 다음 날 오후에 귀가했을 때, 나는 사뭇 달라진 거실 풍경에 압도되어 신발도 벗지 못하고 현관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사방에서 흰 천이 나부꼈다. 흰옷, 흰 양말, 흰 수건, 흰 담요, 흰 베개 커버, 흰 식탁보…. 바람과 햇빛을 받으며 나른하게 흔들리는 흰 천들을 보고 있자니 흡사 서낭당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유령들이 정모를 하는 집에 잘못 들어왔거나.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젖은 천들 사이로 쭈뼛쭈뼛 마지가 나타났다. 군데군데 붉은 얼룩이 생긴 검은 옷을 양손에 든 채였다.
“미안해. 검은 옷은 락스 물에 담그면 안 되는지 몰랐어. 냄새를 빼고 싶었는데….”
나는 대답 대신 마지가 차린 서낭당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일부러 이 시간에 빨래한 거지? 이 집에는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정도만 볕이 세게 드니까. 나는 물었고, 마지는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빨래에 자신이 붙은 뒤로 마지는 내게 종종 살림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날 마지는 머뭇거리다가, 왜 너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나는지 물었다. 나도 유난히 깔끔 떨거나 용모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다. 차이가 있다면 매일 씻는다는 것뿐. 그러니까 좋은 냄새가 난다기보다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말이 공격으로 들릴까 봐 맘을 졸인 게 무안할 정도로 마지의 반응은 덤덤했다. 아, 매일 씻는구나. 오늘 씻어야겠다. 배우는 데 자신이 있다고 했던 마지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씻고 나온 마지에게 내가 머리카락과 목덜미에 바르곤 하는 보디 오일을 좀 주었다. 손바닥에 떨어진 두어 방울의 황금색 오일에 코를 대보더니 마지는 이 냄새구나, 했다.
“몸에서 나오는 기름은 왜 냄새가 좋지 않을까.”
마지가 그걸 신경 쓴다는 점이 신경 쓰여서, 나는 그 오일을 마지에게 주어버렸다.
백련산과 홍제천이 가까운 북향의 집에서 사계절을 보내면서 마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체취가 묽어졌고, 피부색은 미세하게 더 진해졌다. 6개월에 한 번 마지의 상태를 확인하러 집에 들르겠다던 마지의 아버지는 두 번째 방문 만에 보송해진 마지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지나치게 빤히, 마치 부활한 자식을 보듯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이제 좀 사람 같네.
아버지를 보내고 함께 빨래를 개던 그날 저녁, 마지는 내게 물었다
“나 이제 사람 같아?
아버지의 칭찬을 곱씹어보고 있겠거니 싶어서 정말 그렇다고 말했다. 한참 동안 똑같은 양말을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할 일 많겠지.”
“할 일?”
“이런 거… 다 할 줄 알게 돼도. 뭔가 해야 하잖아. 사람이니까… 이런 것만 하면 안 되잖아.”
마지는 여전히 양말을 붙들고 있었다.
“뭘 해야 하는데?”
“음식도 해 먹고. 밖에도 나가고… 사람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책도 읽고. 취직이나 취미 같은 것도….”
그럼, 다 할 수 있지, 대답하고는 수건을 차곡차곡 쌓아 일어나려다가 나는 우뚝 멈추었다. 마지는 울고 있었다. 울음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버거워, 버거워, 마지는 울부짖었다.
이듬해 늦은 가을, 마지는 죽었다. 북한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등의 기사로 마지의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경찰은 등산철인 가을에 흔히 발생하는 실족사로 결론지었지만, 나는 애초에 마지가 산에 갔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집으로 가는 언덕도 버거워하던 몸으로 북한산까지 왜 간 걸까. 마지가 산에 갔을 만한 이유를 추측하다 보면 어느 밤 마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산에 가면 좋으냐고 묻기에 좋다고 대답했었는데.
5년 전 오늘, 그러니까 마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오던 날, 나는 처음으로 마지의 방에 들어가보았다. 방은 놀랍게도 단정하고 깨끗했다. 내가 좋다고 한 모든 청소법을 적용해 치운 방 같았다. 정갈하게 갠 이불 위에 크림색 티셔츠 하나만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나는 티셔츠를 집어 들어 얼굴을 묻었다. 그때 콧속 깊숙이 심어두었던 마지의 냄새가 어땠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냄새를 맡으며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하면 좋은 일이 많다는 사실 따위 결코 알리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베란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빨래가 다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