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것.
아름다우면서도 골치 아픈 것.
다시 돌아온 넷플릭스 드라마 <엑스오, 키티>의
작가 제니 한이 생각하는 ‘성장’이란 그런 것.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라라 진’의 연애와 우정, 가족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공개된 당해 넷플릭스에서 3분기 최다 시청 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모두가 지나온 청소년기의 추억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양인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물이란 점이 대중의 마음을 울렸다. 영화의 세계관은 주인공 라라 진의 여동생 ‘키티’를 주연으로 한 스핀오프 드라마 <엑스오, 키티>를 통해 계속 넓어지는 중이다. 돌아가신 엄마를 더 가까이 느끼고, 장거리 연애 중인 한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 고등학생 키티는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성장한다. 두 이야기의 중심에는 소설가이자 각본가, 제작자로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부단히 확장해온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이 있다. 2014년, 소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로 4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영 어덜트 문학에 반향을 일으킨 그는 이후 자신의 소설을 각색해 스크린에 옮기는 과정에 정면으로 뛰어들었고, 그렇게 세 편의 시리즈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내가 예뻐진 그 여름>에 이어 <엑스오, 키티>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에는 언제나 후회 없이 사랑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소녀들이 등장한다. <엑스오, 키티> 시즌 2 공개를 한 달 앞둔 시점, 작품의 중심에 선 작가 겸 총괄 제작자 제니 한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작가가 지어 올린 넓고 다정한 세계 안에서 캐릭터와 함께 커가는 배우의 모습을 본다.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마무리한 <엑스오, 키티> 첫 시즌 이후, 어느덧 시즌 2가 공개됐습니다. 한국에서 촬영을 재개한 경험은 어땠나요?

서울 곳곳을 오가며 촬영할 수 있어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시즌 1을 찍을 당시에는 팬데믹 때문에 장소에 제한이 많았던 터라, 시즌 2에는 서울 특유의 분위기가 더 많이 묻어났으면 했거든요. 이번 시즌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게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 기뻐요.

이번 시즌에는 어떤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했나요?

시즌 2는 키티가 한국에 있는 외가 친척들을 만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한층 확장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키티는 엄마에 대해서도,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경험한 세계에 대해서도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가 가족, 나아가 자신이 속한 문화와 처음으로 깊이 연결되는 순간을 담고자 했습니다.

2014년 발간한 소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4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엑스오, 키티> 시즌 1은 공개 일주일 만에 49개국에서 글로벌 1위를 기록했습니다. 자신의 소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최근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사람들이 바쁜 하루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자리에 앉아 제 책을 읽거나 제 드라마를 봐준다는 사실에 언제나 겸손해집니다. 작가로서 바랄 수 있는 건 그저 이야기를 매개로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는 일이라 생각해요. 제가 지어 올린 이야기가 책과 영화, 나아가 드라마 시리즈로 모습을 바꿔가며 수많은 독자를 만나고, 고유한 생명력을 얻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믿기지 않을 만큼 벅찬 감정을 느낍니다.

데뷔작 <셔그>부터 <내가 예뻐진 그 여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까지 오랜 시간 10대의 삶을 주제로 소설을 집필하셨어요. 청소년기가 지닌 어떠한 속성이 작가를 쓰게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기에 대해 쓰는 일에 특히 마음이 가는 건, 이 시기가 모든 종류의 감정을 깊고 생생하게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이 무렵 우리는 많은 ‘처음’을 경험하죠. 첫사랑, 첫 키스, 첫 친구…. 처음 겪는 일은 절대 잊을 수 없잖아요. 인생에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기리기 위해 글을 씁니다.

청소년과 성인 독자를 아우르는 영 어덜트 문학이 지닌 힘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어릴 때 탐독한 영 어덜트 소설들은 저를 종종 다른 세계로 데려다놓았어요. 그 이야기 안에서 제 존재를 온전히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죠.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문학작품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게는 크리스토퍼 파이크(Christopher Pike)나 주디 블룸(Judy Blume)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그런 존재고요.

<엑스오, 키티>를 비롯해 <내가 예뻐진 그 여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에는 모두 사랑과 우정, 꿈과 욕망에 대해 탐구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젊은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성장하는 여성 인물을 그릴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제가 그린 캐릭터들이 현실적이고 진짜처럼 느껴지길 바라요. 그들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제게는 중요해요. 성장한다는 건 때때로 골치 아픈 일이잖아요. 내가 누구인지, 젊은 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아내는 건 더욱 복잡한 일이고요. 하지만 복잡하다는 이유로 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캐릭터들을 판단하지 않으려 해요. 온 세상이 이미 그들을 충분히 판단하고 있으니까요.

작품에 인물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모든 캐릭터 안에 제가 지닌 면의 일부가 담겨 있어요. 인물을 너그럽고 관용적인 시선으로 다루려 노력하는 건 아마도 제가 스스로를 그렇게 대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모든 캐릭터가 각자가 바라는 최상의 모습이 되기를 매 순간 응원해왔고, 저 자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엑스오, 키티> 시즌 2의 한 장면.
이미지 제공 넷플릭스

한편,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두 편의 작품과 스핀오프 드라마에 모두 총괄 제작자로 함께하며 지면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소설가와 제작자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어떤 점을 배우고 깨달았나요?

시나리오 집필도, 제작 총괄도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소설 쓰기는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명상적인 과정입니다. 그 반면에 TV 프로그램 제작은 팀 스포츠에 가까워요. 작가, 감독, 디자이너, 편집자 등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며 목적지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작업이죠. 프로듀싱과 각본 작업을 할 때는 소설을 쓸 때와 달리 실용적인 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산, 배우, 시간의 제약 등 모든 것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죠. 하지만 눈앞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작품의 세계를 직접 만들어갈 때 느끼는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집필하던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드물었고, 실제로 라라 진 역을 동양인 배우로 캐스팅해야 한다는 의견을 관철하기까지 숱한 각색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작가를 지탱해준 확신은 무엇이었나요?

라라 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나침반 같은 존재였어요. 그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충실히 반영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영화화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라라 진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커다란 의미로 다가올 것을 알았어요. 그들에게도 자신과 닮은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작품에 대해 대표성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단순히 재현의 필요성을 넘어 선 무언가” 역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해오셨죠.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반영한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난 10년 동안 출판과 콘텐츠 업계는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경험해본 것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계속 들여다보면서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님이 이런 훌륭한 수상 소감을 남기셨죠. “1인치짜리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면 훨씬 더 놀라운 영화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요.

10여 년 전 업계에 만연하던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소설 원작자로서 제작 과정 전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등 출판업계에서 여러 첫 사례를 만들어오셨어요. 매번 처음이라는 수식어와 나란히 걸어올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작가로서 더 나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 늘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저를 나아가게 합니다. 지난해에 처음으로 시리즈 연출을 맡았는데, 모든 과정이 도전이었고 두렵기도 했지만 매일이 흥미진진했어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계속 탐구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 생각하고, 이는 제 작품을 지켜봐주는 열정적인 독자와 관객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