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겨울 사랑’, 박노해) 영하의 온도를 견디게 하는, 우리의 겨울을 표상하는 두 개의 영화.
바튼 아카데미



타인이 내게 온기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을 긍정하고 싶은 날엔 영화 <바튼 아카데미>를 본다. 영화는 1969년의 겨울, 미국의 한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마스임에도 집에 갈 수 없는 학생 다섯 명과 그들을 관리할 선생님, 요리를 해줄 주방장만 남아 있는 교정의 모습을 그린다. 저마다의 상처로 세상에 등을 돌리려 하며 날 선 감정과 말을 토해내는데, 그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뻔하게 느껴질 법한 소재임에도 <바튼 아카데미>가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이유는 영화가 훑는 인물의 궤적이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인종차별, 빈부 격차와 같은 당대의 소재를 깊이 다루고, 상실이나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 사유한다.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지나 영화 속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고, ‘나와 당신이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믿을 때, 그 가치가 더 소중해짐을 여실히 증명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겨울의 초입, 얼어붙은 거리 위에 마른 낙엽이 굴러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가 떠오른다. 헬싱키의 차가운 도로 위, 회백색 시멘트를 연상시키는 낮은 채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한기 서린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친다. 어긋나고 삐걱대면서도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 계절의 추위를 무색하게 만드는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던 인물들의 얼굴에 설렘이 묻어나는 순간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서, 올겨울도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찾는다.